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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May 21. 2017

남겨진 사람과
살아지는 삶에 관하여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오랜만에 넬의 '그리고 남겨진 것들'을 듣고 문득 두 영화가 떠올랐다. 바로 <맨체스터 바이 더 씨>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었다. 두 영화 모두 음악과 연출, 연기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수작이라고 평을 받는 데다가, 비극 앞에서 주인공들이 되려 덤덤해 보여서 가슴이 메어졌다는 감상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돌아가서 그 노래에서 하필 두 영화가 생각난 이유는 가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치 주인공들이 적어내렸을 법한 가사처럼 느껴져서. 각자 다른 이유로 남겨지고 살아지고 있지만 말이다.

사실은 그래. 흩어지는데 붙잡아 뭐해. 마음만 더 아프게
근데 이렇게 살아지는 게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싶긴 해
가끔씩은 같은 기억 속에 서있는지, 너의 시간 역시 때론 멈춰버리는지
이별은 어때? 견뎌질 만해?
준비한 만큼 어떤 아픔도 덜 해?
사랑은 어때? 다시 할 만 해?
사실 난 그래, 그저 두렵기만 해


From Lee,
Manchester by the sea

주인공 리(케이시 애플렉)은 보스턴 퀸시 지역의 아파트 관리인으로 입주민들이 부르는 대로 묵묵히 배수구를 고치고 쓰레기를 버리고 도로 위의 눈을 치우며 지낸다. 어느 날, 형인 조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단 소식을 듣고 급하게 고향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향하지만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고 만다. 갑작스러운 형의 죽음에 뒤따라 온 것은 조카 패트릭의 후견인이 되라는 유언이었다. 리는 당혹감을 표하며 거부하지만, 패트릭을 맡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인다. 우선은 고향에 남아 형의 장례 문제를 처리하지만, 패트릭에게 유품인 형의 배를 팔아버리고 보스턴으로 이사 갈 것을 제안한다. 패트릭은 여기엔 내 모든 삶이 있다며 완강히 거부한다. 그는 왜 그렇게 고향에 남는 걸 거부하는 것일까? 

    형의 소식을 듣고 '맨체스터 바이 더 씨'로 향하는 그 순간부터 리의 과거가 조각조각 드러난다. 병원에서 형에게 심장 지병이 있어 얼마 살지 못한다는 걸 듣는 순간. 형과 조카와 배를 타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순간. 집에 돌아와 아내 랜디와 두 딸과 아직 기어 다니지도 못하는 아들에게 치대는 순간. 집에서 술에 쩔어있는 형수를 발견하고 서둘러 조카를 방으로 올려 보낸 순간. 무엇보다도 후견인이 되라는 유언을 들을 때 교차되는 과거에서 관객은 왜 그렇게 리가 고향을 거부하는지, 후견인으로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다.

오밤중에 마트에 맥주 좀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신경을 긁는 사이렌 소리 너머 집이 불타고 있었고, 아내 랜디는 아이들이 안에 있다며 울부짖는다. 아침이 되어 아내는 구급차에 실려가고 리는 경찰에게 사건 경위에 대해 진술한다. 그는 친구들과 새벽까지 놀다가, 아내의 잔소리로 끊긴 흥에 혼자 거실에서 티비를 보다 집이 추운 것 같아 난로를 피워놓고 맥주를 사러 마트를 향했다. 난로 차단막을 설치하지 않았지만 괜찮을 거란 생각했고 불행하게도 떨어져 나온 장작으로 인해 집이 불탔으며, 출동한 소방관들이 간신히 아내만 구한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잘못으로 세 명의 아이를 잃게 된 리는 경찰의 총을 빼들어 자살을 시도하지만 사람들이 막아 실패한다. 그 후 랜디는 떠났을 것이고 고향은 지옥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고향을 떠나 보스턴에 아파트 관리인으로 사는 것도 이런 이유는 아니지 않을까 싶다.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단 죄책감에 잠겨, 매일매일 누군가의 집을 관리함으로써 죽음으로 갚지 못한 참회를 대신하는 건 아닐까.

    이런 과거를 가진 그에게 누군가를 맡는다는 건, 그것도 고향에서는 더더욱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전부인 랜디를 우연히 마주치고 나선 완전히 과거의 트라우마에 끌려들어 가 결국엔 형 친구 부부에게 조카를 맡기고 보스턴으로 돌아간다. 패트릭은 삼촌은 왜 여기에 남아있지 않냐 묻자 리는 대답한다. 'I can't beat it.' 비 온 뒤엔 땅이 굳기 마련이라지만 어떤 상처는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아물지 않기에 그는 다시 아파트 관리인으로 살아질 수밖에 없다.


From Josee,
Josee, The Tiger And The Fish

대학생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는 이른 아침 할머니가 유모차를 놓쳐버리는 걸 목격한다. 유모차 안에는 걷지 못하는 소녀 조제(이케와키 치즈루)가 있었다. 조제의 할머니는 걷지 못하는 손녀가 산책하겠다고 떼를 쓰는데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여 이른 아침에만 산책한다고 한다. 얼떨결에 츠네오는 조제를 집까지 데려다준 덕에 아침까지 얻어먹게 된다. 조제는 유모차에 타더라도 꿋꿋이 산책하려 하는데 장애인이란 이유로 다치기도 해서, 츠네오는 산책을 그만하는 게 좋지 않냐고 묻는다. 그러자 조제는 꽃과 하늘 등 볼 것이 많다고 산책을 포기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런 엉뚱함에 이끌려서인지, 츠네오는 예쁘장한 썸녀를 내버려두고 조제를 계속 찾아간다. 

    하루는 츠네오가 낮에도 조제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나갔는데, 사실을 알게 된 할머니는 조제에게 몸이 불편한 사람이 평범한 사람처럼 살려고 들면 벌을 받는다면서, 동시에 츠네오에게는 다시 찾아오지 말라며 내쫓는다. 츠네오는 포기하지 않고 조제를 찾아오지만 우연히 츠네오의 예쁘장한 썸녀 카나에를 마주치고 질투와 열등감에 사로잡히며 힘들어하자 할머니는 더더욱 츠네오를 막아선다. 평범한 사람은 조제를 감당할 수 없으니 가라며. 그녀를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지내고 있던 중, 조제의 할머니가 죽었단 사실을 듣고 츠네오는 다시 그녀를 찾아간다. 그리고 조제에겐 자신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 카나에와는 헤어진다. 

    시간이 흘러 츠네오는 조제를 부모님에게 소개하려고 차를 빌려 고향으로 향한다. 둘은 가는 길에 수족관을 구경하려고 했지만, 마침 휴관이어서 조제는 잔뜩 실망하고 만다. 그래도 조제는 여전히 들뜬 채로 말을 걸지만 그는 짜증을 낸다. 휴게소에서 조제가 잠시 화장실을 가있는 동안, 츠네오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부모님을 뵈지 못할 것 같다고 하자 동생은 묻는다. '형, 지쳤어?' 조제도 츠네오도 둘의 결말을 직감했는지, 조제는 바다를 보러 가자고 한다.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고 잠든 그에게 그녀는 말한다. '언젠가 네가 떠나면 미아가 된 조개껍데기처럼 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하지만 그것도 괜찮아.' 

몇 달 후 그들은 성인 잡지를 이별 선물이라며 건넬 정도로 초연하고도 덤덤하게 이별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츠네오는 조제를 떠나는 길 위에서 엉엉 울면서 이별의 이유는 그저 자기가 도망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영화 내내 조제에게 사랑한다 말 한마디 안 했던 츠네오는 끝에서야 사랑한다는 말을 가장 절절한 형태로 부른다. '헤어져도 친구로 남는 여자도 있지만 조제는 아니다. 조제를 만날 일은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건 남겨진 조제에게 츠네오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이자 사랑이었다. 조제가 장애인이란 이유로 츠네오의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 동정이었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조제를 다시 만나지 않겠단 말 이면에는 사랑했던 여자로만 남기겠단 뜻이 있는 거라고. 또한 관계가 끝난 이유를 자신에게 온전히 돌리는 순간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라 믿고 그렇게 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 본연의 심리를 저버릴 만큼 그녀를 사랑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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