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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Aug 12. 2017

코르셋을 풀고 나온 욕망

영화 '레이디 맥베스'를 보고

개인적으로 맥베스라는 단어만 봐도 자연스럽게 스코틀랜드의 황량한 풍경과 앙리 마티스 작품의 강렬한 색채가 연상된다. 워낙 맥베스라는 캐릭터가 비극적인 운명과 파괴적인 욕망의 아이콘이기도 하지만 저스틴 커젤 감독의 맥베스(2015)를 보고 나서부턴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2017)도 그 이름에 걸맞게 강렬하고도 파괴적인 서사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원작은 러시아 대문호 리콜라이의 소설 '므첸크스의 맥베스 부인'으로 오페라, 연극 등 다양한 형태로 변형되었다고 한다. 특히 쇼스타코비치의 오페라 작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하여 유튜브에서 몇몇 곡을 찾아서 들어보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q7lpm6QouZM) 이렇게 사랑받는 소재에다가 신예 감독, 배우가 참여했다고 믿기 놀라울 정도라며 곳곳에서 호평을 받는다고 하여 기대감에 차서 영화를 감상했다. 극장을 나오면서 주인공 캐서린에게 별명을 붙여주고 싶어 졌다. '미녀와 야수'라고 말이다.  (아래의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억압의 반작용,
분출하는 욕망

가난한 농부의 딸 캐서린은 늙은 지주의 부인으로 팔려온다. 첫날부터 남편은 바람도 쐬고 싶고 외출을 좋아한다는 그녀에게 단 하나도 허용치 않는다. 오로지 명령적인 어조로 그저 옷을 벗으라고 할 뿐이다. 그녀는 아침마다 코르셋을 입고 조용한 저택에서 무료하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시아버지와 남편과 대화에서 배제되면서도 부인의 본분에 맞게 잠도 자지 말고 남편을 기다리라는 명까지 받는다. 그렇게 캐서린은 도구적 존재로 철저히 억압받는다. 그러나 곧이어 남편과 시아버지가 장기간 집을 비우게 되면서 그녀에게 자유가 쥐어진다. 특히 하인 세바스찬이 나타나면서 캐서린을 옮아매었던 코르셋이 풀리고 타인의 욕망을 수용하는 도구적 존재에서 욕망을 분출하는 주체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그러나 시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고 캐서린과 세바스찬의 밀애를 알게 되자 다시금 도구로 속박될 위기에 처한다. 이미 욕망과 권력의 단맛을 알아버린 그녀는 시아버지의 음식에 독버섯을 넣고 집 한편에서 죽어가게끔 방문을 잠가버린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아버지의 장례식에 남편이 오지 않을 걸 알고 더더욱 거리낄 것 없이 세바스찬과 사랑을 나눈다. 그것도 잠시 한밤중에 남편이 찾아와 자신의 부정을 두고 말다툼을 벌이다가 충동적으로 세바스찬과 함께 남편을 죽이고 만다. 그녀에게는 두 번째 살인이지만 세바스찬은 적잖이 충격을 받고 흔들리자 캐서린은 영원한 사랑과 신분 상승을 가지고 그를 달래지만 얼마 안 있어 죽은 남편이 대자로 삼은 소년 테디가 그녀의 집에 나타나면서 다시 운명이 뒤틀리고 만다.

    남편과 시아버지와 달리, 잠시나마 테디에게 인간적인 감정을 품지만 남편을 묻은 이후 세바스찬의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녀는 돌이킬 수 없는 짓을 하고 만다. 결국 본인들의 사랑놀음에 죄 없는 어린 소년마저 죽이게 돼버리자 세바스찬은 죄책감에 못 이겨 목사와 테디의 유모에게 사실을 고하지만 캐서린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하인 안 나와 세바스찬 둘이 모의하여 죽였다며 그렇게 지켜내고자 했던 사랑마저 스스로 놓는다.


코르셋을 묶는 여자,
코르셋을 푸는 여자

영화에서 흥미로웠던 점 중 하나는 캐서린의 의복이었다. 순백의 베일에 둘러싸인 소녀가, 코르셋과 시리도록 푸른색의 드레스에서 나체로, 나체에서 검붉은 드레스로. 정적이고 단조로운 공간과 대비되면서 캐서린의 변화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로 느껴졌다. 다음으로 캐서린과 대척점에 서는 안나라는 하녀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주인 캐서린의 부정과 살인을 옆에서 목격하면서 비린내 나는 인간성과 삶의 근간을 이루던 규범의 붕괴에 버티지 못해 실어증을 앓고 끝내 누명이라는 비극을 겪고 만다. 캐서린이 자신을 살인자로 지목하는 순간, 초점 잃은 눈동자와 절망감이 여실히 드러나는 표정이 참 씁쓸하였다. 오죽하면 안나에게는 오히려 죽음이 구원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으로 캐서린 역의 배우 플로렌스 퓨의 연기가 정말로 대단했다고 말하고 싶다. 스크린 너머 정면을 또렷이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아름다웠으나 동시에 본능에 사로잡힌 야수 그 자체였으니까.



P.S. 박찬욱 감독이 좋아할 것 같은 영화라고 느꼈는데, 기사를 보니 이미 강력하게 추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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