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iel Oct 27. 2017

책이 가져다주는 일방적인 위로

위로해줘서 고맙다고 말하지 않아도

술을 못 마시고 즐길 줄도 모르는 나는 마음이 복잡해지면 글을 술처럼 들이킨다. 평소 읽히지 않는 책들도 그럴 때면 선뜻 손끝에 잡힌다. 내 연간 독서량은 그 일방적인 위로가 필요한 순간들에 채워진다고 할 수 있다. 이번주에만 자그만치 3권을 읽어내렸다. 저번 분기에는 한달에 2권도 채 읽지 못했는데 말이다.


특정한 사건이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냥 피로가, 스트레스가 누적됐고 난 그걸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할지 막막했을 뿐이다. 지금껏 비싼 물건을 사면서, 운동을 하면서, 친구들과 떠들면서, 해외 여행을 하면서 갖가지 방법으로 풀어나갔는데. 이제 그 카드들을 몽땅 써버린 모양이다. 잠깐 국내 어디든 내려가볼까. 소개팅이라도 해볼까. 결국 그것도 잠깐 해소되고 말거란게 뻔해서 생각을 접고 책에 매달렸다.


먼저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란 일본 소설을 읽었다. 가족과 추억을 아련히 쓰다듬는 여섯 개의 단편을 담은 책이었다. 정말로 새파란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서 따뜻한 율무차 한 잔과 곁들이면 좋은 책이었다. 비슷하게 파란 하늘에 한 눈에 들어오는 공항 한 켠에 있는 북카페 구석에서 읽었더니 바닷바람이라도 쐰 기분이 들었다.


다음으론 '라틴어 수업'이란 인문학 서적을 읽었다. 지적이고 교양 있어 보이려는 허영심에 사두었던 책이다. 다른 때라면 그런 용도로 그쳤을지 모르겠는데 마침 내겐 일방적인 위로가 필요했었다. 결론적으론 글에서 느껴지는 저자의 따뜻함이 필요 이상의 위로를 가져다 주었다. 한 챕터에 소개되는 라틴어 문장들도 그 자체로도 좋았지만, 그와 함께 풀어내는 이야기가 명강의였다.


마지막으로 '어떻게들 살고들 계십니까'라는 책을 읽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자식, 부인, 부모님, 사위 등 가까운 사람들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글을 엮어 책으로 냈고, 나는 그들의 그리움과 원망이 마음아파 도저히 못 읽을때면 책장을 서너장 넘겨버리기도 했다. 감정을 꾹꾹 눌러담은 문장들을 보며 자살도 하나의 권리라 안일하게 생각해버렸던 내 자신을 좀 반성하게 됐다.


고된 이번 주에 세 권의 책 덕분에 마음이 완전히 전처럼 후련해졌다라곤 할 수 없지만, 좋든 나쁘든 기쁘든 슬프든 어떤 이야기를 삼켜내는 과정에서 나는 위로를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 굳이 위로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지 않고 위로를 받을 수 있어 좋았다는 점과 함께.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 나를 기억하는 방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