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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리엘 Oct 22. 2017

누군가 나를 기억하는 방식

구태여 애쓰지 않아도 남는 흔적들

 2주일에 한 번, 토요일 아침에는 카페로 나와 노트북으로 글을 쓴다.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페이스북이든 브런치든 온라인에는 저마다 살아가는 이야기가 가득해서, 자칫 헤매다 보면 소중한 토요일 오전이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오늘도 모처럼 그런 날이어서, 같이 글을 쓰는 친구들(소소한글쓰기모임)이 모두 저마다의 약속 장소로 떠난 오후까지 카페에 앉아 있다. 모처럼 운남성 보이차에 대한 브런치 글을 읽고는, 최근 중국 여행을 통해 보이차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후배에게 글 링크를 보낸다. '이것 봐. 이렇게 멋스럽게 마시는 방법도 있대.'


 토요일 낮은 직장인에겐 나름 이른 시간이니까. 답장을 기다리지 않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답장이 왔다. 지금 영화를 보고 있는데 내가 좋아할 만한 작품 같다며 추천을 해준다. 양가위 감독의 <연인>. 열 번은 넘게 돌려 본,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작품이다. 영화별로 별점을 매기는 어플인 왓챠에서 <연인>에 대한 감상평은 내 것이 1등이라며 짐짓 자랑스럽게 답장을 한다. 

어플 '왓챠'에 등록된 영화평

후배도 바로 맞받아 친다. '그럼 제 안목이 정확한 거네요. 인정?' 정확한 안목이노라고 인정할 수밖에.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엇을 흘리고 다녔을까. 어떻게 후배는 내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떠올렸을까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면 자주는 아니었으나, 가끔 비슷한 일들이 있었다. 언젠가 김창완의 엽서 사진을 보고는 내가 생각났다며 보내준 친구가 있었다. 나는 정말로 김창완같이 늙고 싶었기에 그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라하며 고마워했다. 


 어릴 적에는 구태여 특이해지고 싶어 애쓰곤 했다. 색깔 없고 평이한 나에 대한 자신이 없었고,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에 특이함을 묻히고자 좌충우돌하였다. 돌이켜 보면 그때는 내가 원하는 형태의 특이함을 가지고 싶을 뿐, 나만이 가진 진짜 특색은 외면하지 않았나 싶다. 나 자체가 얼마나 특이하고 특별한지 말이다. 못나고 어린 욕심으로 그것을 그저 가리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도, 정말로 가끔씩 코끼리 사진을 보내오는 친구가 있다. 내가 코끼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말이다. 디지몬 관련 아이템을 인터넷에서 발견했거나 맛있는 슈크림빵을 먹게 되면 내가 떠오른다는 지인들도 있다. 그러한 나만의 특이점들을 기억해주고 오는 연락을 받다 보면, 휴면 처리하지 않은 오래된 이메일(예를 들어 한메일) 편지함을 열어보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 그것을 이정표 삼아 한 번쯤 나라는 사람을 되돌아 기억해준다는 기분. 거기에 용기를 더해 연락까지 준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은 이제는 더 이상 인디밴드 노래를 찾아 듣지도, NBA 드래프트 결과를 꿰고 있지도, 신간 SF 만화책을 쟁여두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간혹 나 조차도 기억 못 할 과거의 내 흔적을 계기 삼아 오는 연락이 있다. 그건 낯설고 반가운 감각이다. 어쩌다 그 방향으로 뻗힌 자그마한 나뭇가지로 날아가던 풍선을 붙들듯, 그 덕택에 소중한 추억과 인연을 다시금 소환하게 된다. 


애쓰지 않아도 된다. 구태여 기억되고자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 않더라도 내 흔적은 누군가에게 묻기 마련이니까. 뒤돌아 보면 나도 모르는 새에 훌륭한 나만의 발자국이 남기 마련이다. 그저 조심히만 걸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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