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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Dec 14. 2017

신념이란 트랙 위에서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을 읽고

브랜드는 종교와 같다. 사로잡힌 자들에게는 영원히 매혹적인 존재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겐 지루하게 느껴지고 심한 경우 이유 없이 싫어지기까지 한다. 대게는 팬이 많으면 안티도 느는 것처럼 만인의 브랜드에는 만인의 Anti-Consumer가 따라오기 마련인데, 그런 면에서 나이키는 예외적인 브랜드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내 주변에선 나이키를 신은 걸 보고 별로란 평을 내린 사람은 없었다. 있더라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극히 드물었을 것이다. (반대로 J사의 백팩이나 L사의 청바지처럼 국민이란 수식어가 붙는 브랜드를 두고 지루하다거나 한물 가지 않았냐는 얘길 들은 건 쉽게 떠올려진다. ) 참으로 매력적인 생명력을 가진 나이키라는 브랜드가 언제, 어디서 그리고 누군가로부터 어떻게 태동된 건지 늘 궁금했는데 이번에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의 자서전 '슈독'을 읽으면서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책은 500p를 넘는 두꺼운 책인데도 읽다 보면 때로는 마라톤을 뛰는 느낌을, 때로는 100M 달리기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아마도 필 나이트의 운동화에 대한 열정과 신념 덕일 것이다. 필 나이트는 달리기를 사랑했고 다른 사람들도 사랑하길 바랐다. 이유는 단순 명료했다. 세상이 더 좋아질 테니까. 그는 그 신념을 가지고 블루리본이란 회사를 차리고 일본에 가서 오니츠카와의 계약을 따내고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수없이 갈등을 빚고 굴욕을 감내하고 패닉에 빠지고 다시 추스르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를 보면서 그의 성공은 너무나도 당연스럽다가도 동시에 당연하지 않다고 느껴졌다. 


신념을 갖고 살아가란 말은 건강을 위해 매일 아침 달리자처럼 쉽고도 보편적인 진리처럼 들리지만, 막상 아침에 잠에서 벗어나지 못한 몸과 마음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게 느껴진다. 결국 나는 '침대 밖은 위험해' 혹은 '내일부터 하자'며 스스로와의 타협을 마친 후 다시 침대에 눕곤 했다. 이처럼 우리 각자에게는 신념이란 트랙이 있지만 매일 그 위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란 아주 아주 어려운 일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필 나이트는 일단 트랙에 서면 불필요한 생각을 버리고 달리는 사람이었다. 하루는 장거리 선수처럼, 하루는 단거리 선수처럼. 그때 그때마다 필요한 속도로 말이다. 요즘 들어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자주 들었는데 책을 읽고 태도를 바꿔보기로 했다. 우선 맞다고 생각되면 스스로를 좀 믿어보자고. 고민과 불안은 좀 줄여보기로 말이다. 

그녀의 명언


또한 필 나이트는 참 스스럼없는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자서전 치고는 스스로를 방어하고 포장하는데 애쓰지 않는다랄까. 본인이 좀 한심하거나 비난받을 수도 있는 일은 깔끔하고 솔직하게 인정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단적인 예로 나이키란 이름의 탄생 과정을 들 수 있다. 제일 궁금한 부분 중 하나였는데 꽤나 어이없고 황당스럽다. 그는 오니츠카와의 관계가 위태롭자 급히 자체 제작할 수 있는 신발 공장을 찾았고 곧장 생산해야 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브랜드 이름을 정해야 했다. 직원들은 팰콘, 뱅골 등 아이디어를 모았고 CEO로서 자신도 하나 보탰다. 일명 디멘션 식스인데 다행스럽게도 직원들 누구 한 명도 이 이름에 관심 가지지 않고 오직 필 나이트만 마음에 들어했다. 그의 오른팔이라고 할 수 있는 우델은 필이 끝까지 미련을 가지자 '모두가 디멘션 식스는 아니라고 말했잖아.'라고 되짚어주는 일화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CEO로서 압박받는 상황에서 신경질적이거나 권위적일 수 있는데 그 반대의 면모를 보여서 그가 유쾌하고 친근한 사람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리더라면 신념만큼이나 유연함이나 유머를 갖는 것도 몹시 중요하다고 믿는데 그는 두 가지 모두 갖춘 셈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제목이자 신발에 일생을 건 사람들이란 뜻을 가진 '슈독'이란 단어에 대한 필 나이트의 생각이 인상 깊어 이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려 한다. 

슈독은 신발의 제조, 판매, 구매, 디자인에 전념하는 사람을 말한다. (중략) 사람은 평균적을 하루에 7500보, 평생 동안 2억 7400만 보를 걷는다. 평생 동안 지구를 여섯 바퀴나 도는 셈이다. 슈독은 이런 여행에서 한 부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슈독은 인류의 발이 지구 표면과 접촉하는 경첩을 다듬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류를 이어 주기 위한 더 나은 방식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이처럼 안타까운 환자들을 보면 이상할 만큼 호감이 갔다. 내가 삶의 여정에서 만났고, 앞으로 만날 슈독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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