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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Dec 03. 2017

규동 한 그릇의 위로

막내 착취에 지친 한 주, 가로수길 '지구당'에서 위로받다

지난 한 주간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오만 스트레스받아가며 일을 했다. 헐거운 디렉션 사이에서 발생한 온갖 빈틈은 죄다 막내인 내가 메꿔야 할 몫이었다. 네 일은 네 거, 플래닝을 잘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생긴 주인 없는 일도 네 거, 그리하여 이것도 저것도 다 네 거. 개개인에게는 전혀 악감정이 없다만 이렇게 붕 떠버린 일들이 죄다 막내에게로 넘어오는 구조에는 불만이 있다. 원래 그때는 그런 거라고 말들을 하지만 세상에 원래 그런 게 어딨나. 위로랍시고 빨리 다음 후배 받아서 넘겨주라는데, 그 또한 막내 착취의 대물림일 뿐이지 않나. 아무튼 그렇게 일인다역을 소화하고 나니 많이 지쳤고, 왜인지 모르겠으나 조금은 억울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시체처럼 잠만 잤다. 열댓 시간을 자고 일어나니 도저히 뭘 해먹을 힘도 밖에 나갈 힘도 없어서, 대낮부터 피자를 시켜먹었다. 그리고는 다시 자다 깨니 어느덧 토요일이 다 지나버린 오후 다섯 시였다. 옷을 챙겨 입고 나와서 혜림과 가로수길을 걷다가, 넓은 통창에서 가로수길을 내려다볼 수 있는 새로 생긴 스타벅스의 창가 자리에 앉았다가, 지구당에 갔었다. 조용조용한 와중에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를 들으면서 반숙 계란 터뜨려 휘휘 저어 짭짤 고소 해진 규동을 퍼먹었다. 여전히 지쳐있었던 토요일 밤, 한 그릇의 위로였다.




규동 @ 가로수길 지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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