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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Feb 26. 2016

사랑에 대해 나를 건조하게 만드는 영화들

현실적이라 잔인한 4가지의 사랑

바야흐로 봄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설렘이라는 단어가 꼭 짝꿍처럼 따라붙는 계절이라 괜히 다른 때보다 사랑 영화도 잘 챙겨보게 된다. 가끔은 '내게도 로맨틱 코미디 같은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해보곤 하며. 봄날, 벚꽃과 바람의 조합이란 정말이지 사람을 괜스레 들뜨게 한다. 그래서 더 잔인한 계절 같단 생각을 한다. 사랑을 하고 있을 때도 하고 있지 않을 때도 적용되는 감정인데, 다른 이들은 한창 봄인데 나만 아직 겨울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우리에게 항상 동화책 같은 순간만 오는 건 아니니까. 날씨는 이다지도 화창하고 맑은데 내 기분은 그렇지 않아 괜히 더 싱숭생숭해지는 계절. 오늘 글로 정리할 4개의 영화들은 그런 느낌의 영화들이다. 쉽게 말해서 봄 날씨 같은 분위기에 멜랑꼴리 한 감성의 영화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힘을 잃어가는 사랑에 대하여

좌측의 블루 발렌타인(Blue Valentine,2010)과 우측의 레볼루셔너리 로드(Revolutionary Road,2008)

두 영화에 나오는 주 인물들은 결혼 생활이 좀 지나 안정기에 접어들어선 부부들이다. 아이가 있고 하루하루 비슷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자칫 평범해 보이는 이 부부들의 결혼 생활이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몇 년을 한 이불을 덮고 동거 동락하던 부부지만 어쩐지 같이 나갈 미래는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한쪽은 지극히 현실적인 삶을 택했고 다른 한쪽은 이상적인 세계에 빠져 있다. 서로의 간극은 접어들지 않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그토록 찬란했던 네 사람의 사랑은 빛을 바라고 힘을 잃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사랑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두 영화는 참 잔인하리만큼 보여준다.


변한건 사랑일까? 아니면 사람일까?

블루 발렌타인은 두 사람이 사랑을 시작하고 그 결말에 확신을 하던 시기와 현재의 결혼 생활을 끊임없이 교차시키면서 그 잔인함을 더 극대화하고 있다. 둘의 결혼 생활이 삐걱거리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다. 관계의 불안정은 서서히 시작된다. 사실 남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순수하고 비현실적인데, 여자가 시간이 흘러가며 현실적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여자를 마냥 원망할 수는 없는 게 그녀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초반에 여자는 사랑했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부모님께 말한다. 부모님처럼 되긴 싫다고. 그녀는 영원한 사랑을 믿었고,  그때의 남자가 항상 자기를 품어줄 것만 같았다. 한창 사랑이 빛 발하던  그때, 그에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하자고 하던 그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원망스럽게도 시간이 흘러보니 결혼은 현실이었고, 그는 짐짝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 더 이상 수습할 수 없이 파탄으로 흘러가는 관계에 그녀는 고한다. 지쳤으니 이제 그만하자며. 남자는 노력했지만 그녀가 원하는 답은 아니었다.


이것이 우리가 꿈꾸던 사랑일까?

블루 발렌타인이 현실 속에서 자연스럽게 빛을 바라가는 사랑에 대하여 얘기하고 있다면,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좀 더 직접적으로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다루고 있다. 상대방과 찬란한 미래를 꿈꿨던 연애시절과 달리 지금 겪는 현실은 그저 하루하루 답답하고 지루한 일상뿐. 게다가 동네에서 가장 선망받는 부부로 보이지만 실제로 둘은 싸우기 바쁘다.

여자는 남자에게 설득한다. 파리에 가서 그가 원하던 삶을 이루고 동시에 자신도 그의 곁에서 찬란한 미래를 찾자고. 남자는 한동안 동조하는 척하지만 결국 현실과 안정을 택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나아가서 제대로 된 삶을 찾고 싶었던 여자는 절망하며 두 사람의 사랑은 파멸로 끝난다. 이 영화의 매력적인 부분은 두 사람의 갈등 관계뿐만 아니라 주변 이웃관계들의 심리 묘사에도 있다. 이 부부의 파리행 소식을 듣자 주변 이웃들은 알 수 없는 허탈함과 공허감으로 그들을 시기한다. 그러다 남자에 의해 무산이 되자 위로하는 척하면서 내심 기뻐한다.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나아가지 못하는 자신들을 합리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현실을 더 알았다고, 용기를 더 못 냈다고 비난할 수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네 명에게 모두 공감이 되는 순간 참혹한 마음이 들었다. 동시에 나라면 어땠을까? 그들과 다르게 행동했을까? 되물었다. 답을 말하자면 아니었다. 나도 그들과 다를 것 없이 관계를 손 쓸 수도 없고 양보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 두 영화가 잔인하게 다가왔다.




특별한 사랑이라고 믿는 당신에게

라이크 크레이지(Like Crazy, 2011)우리도 사랑일까(Take this waltz, 2011)의 시간축은 위 두 영화들과 달리 무르익은 결혼 생활이 아닌,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에 가깝다. 대부분 시작하는 단계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들이라면 풋풋한 감정을 다룬다. 두 영화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이 영화들이 가진 다른 점은 그렇게 풋풋한 감정을 다루다가 그 마지막엔 지독할 정도로 건조한 시선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두 영화의 엔딩을 한마디로 표현해야 한다면 이 말이 떠오른다. '그렇게 유난을 떨더니 너네도 결국 헤어졌구나.'

내 사랑만큼은 간절하고 애절해서 세상에 더할 나위 없이 특별한 사랑이라고 믿는 당신에게, 과연 그럴까? 하고 조소를 날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화들이다.


사랑했던 건 그대였을까 그때였을까?

라이크 크레이지의 줄거리는 이렇다. 영국 여자가 미국 유학 중에 미국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너무 사랑에 빠진 나머지 비자 문제를 무시하다가 잠시 귀국하고 다시 미국을 가려니 문제가 생겨버렸다. 국경과 절차로 인해 한창인 연인이 괴로워한다. 서로 왔다 갔다 하며 만나기도 해보고, 헤어지고 다른 사람을 만나도 봤지만 결국 얘뿐인 것만 같다. 다른 사람이 곁에 있는 게 미칠 듯이 화가 나고 괴롭다. 그렇게 불타는 연애를 하고 천신만고 끝에 둘은 같이 있게 됐다. 그 전까지 둘은 확신했었다. 우리 사이에는 국경 말고는 문제 될 것이 하나 없을 거라고.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에게 간절해왔으니까. 그러나 둘은 문득 느낀다. 이젠 정말 사랑할 날만 남은 걸까?

개인적으로 가장 뒤통수가 얼얼했던 엔딩을 선사한 영화였다. 그대와 그때는 획 하나의 차이라지만 잔인함의 정도는 어찌 이토록 다른 걸까?


열병같은 사랑에도 끝은 있기 마련이다.

우리도 사랑 일까는 결혼 5년 차에 슬슬 안정기에 접어든 찰나의 여자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설렘을 느끼게 되며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그녀의 남편은 이젠 두근거림을 주는 존재는 아니지만 편안함과 안정감을 주는 남자다. 그와의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그녀는 짜릿하고 설레는 감정을 주는 남자에게 이끌린다. 권태와 익숙함을 구별 못 하던 그녀는 결국 남편을 떠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짜릿할 것만 같았던 그와의 사랑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졌고 뻔해졌다. 영화는 그 과정을 감각적이고도 섬세하게 그려나간다. 특히 영화를 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여자와 남자가 놀이기구를 타는 장면을 인상적인 연출로 꼽고 있다. 마음이 기운 여자가 남자와 놀이기구를 타는데 BGM으로  'video killed the radio star'가 흘러나오는 연출이었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은 그녀에게 적절한 선곡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관계의 끝을 직감한 남편이 아내에게 덤덤히 사랑을 얘기하던 장면에 뇌리에 남는다.


두 영화 모두 한 때는 특별했던 사랑이 다른 사람과 혹은 과거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결말로 끝난다. 그래서 지금 열병 같은 사랑을 하고 있는 연인들에겐 찬물을 끼얹는 듯한 영화일 수도 있겠다. (반대로 안정기에 들어선 연인들에겐 예방주사 같은 영화이지 않을까?)


마무리하며

배우의 연기는 물론 영상과 음악의 연출도 좋은 영화였다. 특히 좋았던 점은 일반적으로 '마음이 떠난 연인들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이야기하던 다른 영화들과 달리 '얼마나 힘들었기에 마음이 떠나게 돼버린 걸까?'에 대한 과정을 현실적이고 섬세하게 그려나갔단 점이다. 비슷한 듯 각기 다른 이유로 관계가 흔들리고 무너지는 연인들을 보며 사랑과 관계를 병들게 하는 요소들에 고민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점에서 앞서 '사랑에 대해 나를 건조하게 만드는 영화들'이란 제목을 붙였지만 동시에 '사랑에 대해 나를 건강하게 만드는 영화들'이란 제목도 붙이고 싶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며 자연스럽게 생각나던 문장이 있다. 다 읽어본 적은 없지만(앞으로도 없을 것 같지만) 그 소설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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