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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n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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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Mar 18. 2018

환갑의, 환갑에 의한,
환갑을 위한 오사카(1)

58년 개띠 남성 두 분의 환갑 기념 오사카 여행기

#01. 나도 모르는 내가 주도하는 일본 여행

58년 개띠의 아빠와 첫째 삼촌의 생일은 고작 이틀 차이로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매해 생일을 함께 보냈다. 고작해야 밥을 같이 먹는 정도였지만. 올해는 두 분의 환갑인지라 같이 해외 여행을 가기로 했다. 일본어를 조금 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모르는 새에 두 분 사이에서 내가 주도하는 일본 여행이 성사됐다. 맙소사. 부모님과 함께 하는 여행도 '걸어서 환장 속으로'라는 말이 있던데. 이제 큰 삼촌네도 함께 해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더욱이 일이 여유로운 상황도 아닌데 말이다. 그나마 위안인 점은 일본을 몇 번 가봤다는 거, 사촌언니도 함께 동행한다는 정도였다. 

    우선 여행 경비는 자식들이 50만원씩 걷어 200만원을 모았다. 흠. 이걸로 6명이 2박3일을 잘 보낼 수 있을까. 혼자서 여행할 때는 식사도 좀 거르고, 다리가 퉁퉁 붓도록 걸어다녀 교통비를 아꼈지만 어른들은 좀 다르지 않은가. 심지어 아빠는 은근하게 료칸 얘기를 꺼내기도 했다. 우선 여행지는 '오사카'와 '후쿠오카'로 좁혀졌다. 오사카는 한 번 다녀와서 그나마 익숙하다는게 강점이었고, 후쿠오카는 가본 적은 없지만 비교적 소도시이기도 하고 온천 접근성이 좋다는게 강점이었다. 며칠 고민한 끝에 오사카를 가기로 했다. 일본의 부엌이라고 불리는만큼 먹을게 많다는 이유로 말이다. 됐어, 잘 먹이면 끝이야.

    먼저 오사카행 항공권을 끊는게 시작이었다. 일찍 끊었으면 20만원 미만으로도 살 수 있었겠지만 여행일이 3달정도 앞두고나니 25만원 전후로 가격대가 형성됐다. 시간대가 좋은 항공권일수록 더욱 비쌌다. 3박4일은 나나 사촌 언니가 시간내기 힘들어 2박3일로 가는만큼 이왕이면 아침 출국, 저녁 귀국인 항공편을 고르기로 했다. 1,2만원을 아끼기 위해 온갖 여행 사이트를 뒤져가며 할인쿠폰을 찾아다녔다. 첫구매 10%할인 쿠폰을 적용하기 위해 아빠, 사촌언니에게 회원가입을 종용하고 분할발권을 한 끝에 1인당 22만원에 구매했다. 이럴 땐 집요한 내가 뿌듯하다.


#02. 경비는 미리 미리 보태주면 좋다.

돈을 달라

    그 다음은 숙소였다.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아빠의 은은한 료칸 타령이 귓가에 맴돌았다. 솔직히 나도 료칸은 한 번쯤 가보고 싶었는데 그동안 어마무시한 가격때문에 포기했다. 이번에 환갑여행을 핑계삼아 가볼까 하다가 여전히 가격 장벽은 높고 튼튼하다. 흑. 대부분 가이세키(일본식 석식 코스요리)를 포함하면 1인당 2~30만원씩이다. 좀 더 알아본 끝에 오사카 근교마을에서 료칸을 찾았다. 가이세키, 조식 포함해서 대략 18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결제하면 200만원을 몽땅 쓰는 셈이다. 내 안의 양아치 근성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 아빠에게 연락해 '어차피 아빠 환갑 여행은 따로 하기로 했으니 이번 여행에 경비를 보태달라'는 얘길 했다.

    후후. 금새 계좌에 150만원이 들어왔다. 모자라면 더 주겠지만 이게 무슨 환갑 여행이냐며 궁시렁대는 소리를 무시하며 료칸을 결제했다. 료칸이 오사카 도심에서 40분 정도 가야하기 때문에 2박 모두 하는건 돈도 여행 코스도 아까워진다. 여행 첫날은 시내 비즈니스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그런 다음 고급진 료칸에 묵으면 아무래도 사람 심리상 황홀해진다. 이 점을 노려야지. 항공권이랑 숙소가 대충 마무리되고나니 한숨 놓였다. 이제 교통비나 식비만 대략 잡아놓으면 된다.

    아마 나 혼자 가는 여행이라면 혹은 친구랑 가는거라면 경로 하나하나 따져가며 1일 패스와 개별 발권 중 뭐가 더 싼지 따졌겠지만 이쯤되니까 나도 귀찮아지기도 하고 멀찍이 지하철창구에서 어른들은 황망하게 기다리고 나는 횡설수설하며 티켓을 사는 모습이 상상되니까 많이 안 돌아다니더라도 1일 패스를 사기로 했다. 한국에서 준비되면 준비될수록 좋겠지. 마이리얼트립에서 주유패스를 구매하니 교통비도 얼추 다 해결됐고 이제 식당을 찾아야하는데 지금껏 경험을 비추어보자면 나는 식도락에 무지한 자로 2천원짜리 편의점 도시락을 먹어도 불만이 없는 수준이라 이 부분이 제일 당혹스러웠다.

    다행인 건 여행지가 오사카라는 점이다. 라멘, 오코노미야키, 쿠시가쯔, 타코야키 등 먹을게 천지라는게 걱정을 덜어줬다. 아빠에게 총알을 더 받았지만 호화롭게 식사할 수 있는 형편은 아니니까 값싼 가격에 맛난 걸 즐길 수 있는 시장을 하루에 한 번씩 둘러보기로 했다. 첫날엔 덴진바시 시장을, 둘째 날엔 츠텐카쿠를, 셋째 날엔 쿠로몬 시장을. 하하. 그렇게 코스를 대충 짜 놓고 여행 가기 3일 전쯤 사촌언니에게 연락이 오더니 갑자기 경비가 모자라지 않냐고 질문을 한다. 엥? 큰 숙모가 돈을 보태주기로 했단다. 일단 100만 원을 보내준다니까 멘붕이 왔다. 물론 돈이 넉넉하면 좋겠지만 갑자기 예산이 증액되니까 뭔가 더 호화로운 코스를 짜야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250만 원씩이나 받았는데 매일 시장에서만 싼밥 먹이는 악덕업자 되는 거 아냐? 여행 직전 한껏 예민했는데 급기야 화가 나기 시작했다. 돈을 줄 거면 미리 주던가! 나중에 알았지만 큰 숙모는 미리 얘기하고 돈을 줬는데 사촌언니와 나 사이에서 얘기가 꼬인 거였다. 어쨌든 첫날 저녁을 도톤보리에서 라멘으로 하려고 했는데 와규 코스로 급 편성했다. 뭐 결론적으로 예약 만석이라 못 먹었지만.


#03. 첫날은 굴려야 제 맛

아침 7시 출국 비행기라 새벽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도착하면 좀 피곤하겠지만 첫날에는 대부분 엔도르핀이 넘치는 상태이므로 다른 날보다 코스가 빡빡해도 좋다.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호텔 프런트에 짐을 맡기고 오사카성으로 향했다. 원래는 고자부네 뱃놀이는 하고 싶었는데 11시에 도착했더니 2시까지 예약이 꽉 차서 아쉽지만 성만 둘러보기로 했다. 다행히 날씨가 좋아 슬슬 공원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구경을 마치고 덴진바시로쿠초메역으로 향했다. 여기에는 덴진바시 시장과 오사카 주택박물관이 있는데, 앞서 의진 언니와 갔던 오사카 여행에서도 좋았던 장소여서 일종의 안전빵(?) 개념으로 코스에 넣었다. 어르신들도 처음에는 '웬 주택박물관?'했지만 마치 야인시대 촬영장처럼 일본 전통 주택거리가 펼쳐지자 감탄을 자아냈다. 그리고 다른 곳은 기모노 대여비가 비싸지만 여기는 30분에 500엔만 내면 빌릴 수 있다. 마침 기다릴 것도 없이 가자마자 딱 4명 정도 빌릴 수 있어서 큰 숙모, 엄마, 사촌언니 그리고 나만 입기로 했다. (정착 환갑인 사람들은 제쳐뒀다.)

어머니, 눈을 뜨세요...

    나야 두 번째지만 남은 다섯 명은 들떠서 사진을 잔뜩 찍기 시작했다. 금세 장내가 어두워졌다. 오사카 주택의 밤낮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하늘에는 별과 별똥별이 비추어졌다. 옆에 있던 일본인 분이 내게 별똥별이 3번 떨어지니 그동안 소원을 빌라고 했다. 가족의 건강과 성공적인 여행을 빌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주택박물관이 밝아지자 어른들의 만족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나는 장난기 넘치는 목소리로 여기서 1박을 보낸 거라며 3박 4일 같은 2박 3일 여행이라는 드립을 쳤다. 구경을 마치고 덴진바시 시장으로 들어갔다. 2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어서 늘 붐비는 하루코마 스시도 조금은 한산했다. 초밥 몇 접시와 맥주와 사케를 시켰다. 장어구이 초밥과 계란말이 초밥은 입에 넣자마자 녹는다. 아빠는 혼자서라도 다시 오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가 넘는 시간 동안 쭉 움직였으니 이제는 쉬어줘야 한다. 호텔로 다시 돌아가 6시까지 쉬기로 했다. 가기 전에 간식거리와 휴족시간을 사들고 들어가 모두의 다리에 한쪽씩 붙여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곯아떨어졌다. 다시 나가고 싶지 않은 욕구가 샘솟았지만 야경을 볼 수 있는 날이 오늘밖에 없었다. 우메다 공중정원에서 야경을 보고 도톤보리에 나와 저녁을 먹는 게 첫날 일정의 마무리였다. 젊은 나도 이렇게 피곤한데 어른들은 오죽했을까. 그래도 막상 오사카의 화려한 야경을 보니 기분이 좋아지고 도톤보리에서 뜨겁고 고소한 라멘 국물을 마시니 피로가 좀 가신 듯하다. 다들 고생했다며 각자의 방에 들어가 오사카의 첫날을 마쳤다.


- 다음 편에







날씨가 좋아 다행이었지 아니었음 재미없었을 오사카성
아마 첫날부터 종일 굴리는 조카 혹은 딸을 저주하고 있을 어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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