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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n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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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Jun 30. 2018

THIS IS MONGOLIA #3

다이나믹 몽골 여행기 - 세 번째 날

이 날은 우리 모두 다사다난한 타임라인을 보내야만 했다. 짧게 요약하자면 하루 동안 갑자기 강이 생겼고 혜린이는 아프고 나는 구르고 문짝은 떨어졌다. 


#9. 갑자기 강이 생겼고

오늘의 일정은 사막투어의 하이라이트로 우리는 낙타도 타고 모래사막 홍고린엘스에 등반할 예정이었다. 평화롭게 아침을 먹던 중 더더가 고민스러운 표정으로 이동시간이 좀 애매하단다.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자니 1시간밖에 안 걸리는 이동시간이라 점심치 고는 살짝 이르단다. 오늘 도로가 제일 험하고 일정도 빡센 편이라 일찍 밥 먹으면 너무 배고파질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데 우린 사실 별 생각이 없었다. 다른 팀들 가이드들이랑 또 무슨 얘기를 나누더니 경치 좋은 데서 라면이나 끓여 먹자고 제안한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지. 안 그래도 나는 첫날 음식 때문에 탈이 났던지라 더욱 조심하고 있었다. 한참을 울퉁불퉁한 길을 달리는데 갑자기 진풍경이 펼쳐졌다. 산 위쪽에서 물이 레드카펫처럼 펼쳐 흐르면서 갑자기 우리 앞에 강이 생겼다! 다른 가이드 말로는 1년에 한두 번 있는 일이라고. 별 일이 다 생기리라 각오했던 몽골 여행이 지금까지는 예상외로 평화로워서 신기했던 찰나, 이걸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우리는 몽골 여행의 정수를 맛보았다. 

야외에서 먹는 라면은 늘 옳다

    갑자기 생긴 강에 다들 당황했지만 어떻게든 강을 넘어가 보기로 한다. 징기즈칸의 후예답게 더더를 비롯한 다른 팀들도 거침없이 강을 건너고 그곳에서 바로 자리를 폈다. 경치 좋은 곳에서 라면을 끓여먹은 덕인지 다들 표정이 밝았는데 혜린이만 영 좋지 않았다. 오늘 가장 길이 험했는데 미처 멀미약을 반만 먹인 게 원인이었다. 멀미약을 조금만 챙겨 와서 이동거리가 제일 긴 마지막 날에 셋이서 먹으려고 아끼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혜린이의 상태가 심각해서 남은 약을 혜린에게 모두 주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게 민정이는 전혀 멀미를 안 했고 나는 조금 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버틸만했다. 


#10. 혜린이는 아프고

머지않아 사막 초입의 게르에 도착했는데 혜린이가 차에 내리자마자 토를 했다. 엉엉. 덥고 건조한 사막 기후에도 몸살 기운이 느껴진다며 침낭 속으로 파고들어가는 그녀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여행 도중 아프면 심난하다. 좀 쉬겠다는 혜린을 뒤로하고 민정과 나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낙타도 타야 되고 사막도 올라가려면 열심히 먹어야 했다. 사막 오르는 건 둘째치고 낙타는 같이 타고 싶어서 더더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다른 팀들은 10KM쯤 달려서 홍고린엘스 근처에서 낙타를 타는데, 우리는 숙소 근처에서 낙타를 타고 다시 혜린이를 숙소에 내려줄 수 있겠냐 물었다. 더더는 안될게 뭐 있냐며 마침 바로 옆에 있으니까 저녁 먹고 바로 차로 오란다. 다행히도 숙소에 있던 혜린의 상태가 낙타를 탈 수 있을 만큼 나아졌다. 짐을 챙기고 나오는데 어째 문이 이상하다. 잘 닫히지도 않고 자물쇠도 잠기지 않는다. 

제일 맛났던 수테차

    이게 오밤 중 불행의 서막일 줄이야. 우린 앞으로 펼쳐질 사건사고를 모르고 그저 낙타 탈 생각에 들떠있었다. 멀미하는 혜린이를 위해 우리 게르에서 조금만 떨어진 또 다른 게르에 도착했다. 아무래도 낙타 체험도 같이 하는 게르인 모양이다. 더더가 우리를 게르 안으로 부르더니 잠깐 앉아있으란다. 그동안 묵었던 게르는 게스트하우스 분위기가 강했던 반면 이 게르는 정말 전통적인 응접실 분위기에 가까웠다. 주인 분과 더더가 뭐라고 얘기를 나누더니 갑자기 향초가 담긴 병을 민정에게 건넨다. 민정이는 마약이 아니냐며 경계하는데, 더더가 그냥 코담배라고 해명했다. 몽골 남자들 사이에서 전통적 인사법 이래나 뭐라나. 내가 먼저 호기롭게 도전해봤다. 손등에 가루를 살짝 얹고 코로 흡입하는 건데 그 순간 너무 매워서 더더를 몇 대 쳤다. 주인분은 그 광경에 껄껄 웃는데 혜린이도 해보겠다니까 급기야 민정이도 동참. 심지어 민정이는 나중에 알싸한 코담배 향덕분에 낙타 냄새가 안 나서 좋았단다. 코담배 체험을 마치고 이 집에서 직접 만든 수테차까지 맛봤는데 가장 입맛에 맞았다. 

    드디어 낙타 타기의 시간이 찾아왔다. 욜린암의 말들보다 훨씬 덩치가 커서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앉아있던 낙타가 움직이려 일어서니까 마치 걸리버 거인이라도 된 기분이었다. 주인분의 자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낙타를 이끌어줬다. 둘이 조잘조잘거리다가 한국말을 연습하는 모습이 몹시 귀여웠다. 해가 슬슬 지고 있는 사막을 거니는데 형용하기도 힘들 만큼 아름다운 절벽이 나타났다. 액션캠으로 요리조리 찍었으나 눈으로 즐겼던 풍경의 반의 반절도 담지 못했다. 다음의 일을 겪고도 이 풍경 덕분에 이 하루가 미화될 수 있었다고 단언하겠다.


#11. 나는 구르고

왜 이렇게 열심히 올라갔을까

꿈만 같았던 낙타 타기를 마치고 노래하는 사막 '홍고린엘스'로 향했다. 혜린이도 그런대로 버틸만했는지 사막까지 동참하기로 했다. 살짝 어둑어둑해지는 하늘빛에 뙤약볕에서 사막을 오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더더는 어디서 구했는지 플라스틱 썰매를 우리에게 쥐어주면서 사막 정상까지 올라가서 타고 내려오라고 했다. 눈으로 보나 발로 밟아보나 홍고린엘스 등반은 여간 쉬워 보이지 않았다. 민정이와 혜린은 조금 올라가다가 쉬기로 했는데, 나라도 끝까지 올라가보잔 오기가 생겼다. 가파른 경사탓에 건장한 성인 남성도 네 발로 기어가는 지경이었는데, 썰매를 벗삼아 천천히 올라갔다. 중간에 몇 번씩 포기하고 싶었는데 이제껏 올라온게 아까워서 이를 악물고 올라갔더니 한국분들이 몇 명 계셨다. 목이 말라 물을 좀 나눠줄 수 있는지 여쭤봤더니 맥주캔을 하나 건네주셨다. 몇 모금 들이키고 사진 몇 장을 찍고서 너무 하늘이 어두워진거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얼른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이 이성을 지배한 나머지 나는 그 가파른 경사에 썰매를 타기로 했다. 아까 낮은 언덕에서 탔을땐 잘 내려가지도 않더니만 발을 떼기시작하자마 미친듯이 가속이 붙은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수직낙하가 이런걸까.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균형을 잃지말았어야했는데 예상치못한 위협적인 속도에 겁이 난 나머지 균형을 잃고말았다. 썰매는 날라가고 미친듯이 사막을 굴렀다. 이러다간 목뼈가 부려져 죽겠다 싶어서 온 몸을 감싸고 힘을 주며 제발 멈추기를 바랐다. 몇 바퀴쯤 굴렀을까. 사막 정상 근처에서 바닥까지 내려와서야 멈췄는데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어지러웠다. 다행인건 마침 그 근처에서 민정과 혜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둘의 목소리를 들으니 그나마 정신이 좀 차려지는 듯했다. 온 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아팠는데 곧이어 핸드폰이 사라졌단걸 깨닫는 순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 소중한 사진들! 다리 힘이 풀린 와중에도 그걸 찾겠다고 다시 몇 걸음 더 올라가기까지 했으니. 

    급한 마음에 정상에서 만났던 한국인 분들께 SOS를 보냈다. 그분들도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였을텐데 끝까지 나를 도와주시고 위로해주셨다. 사막에서 파묻힌 핸드폰을 찾기란 불가능인걸 알면서도 미련이 남아 떠나질 못하고 그 자리에서 이십여분을 소비했다. 민정이와 혜린은 잘 터지지도 않는 사막에서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사막 밑에서 뛰어다니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니 죽을 수도 있을만한 상황이었는데 핸드폰만 잃어버린게 어딘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미련은 사라졌는데 아까 상황에 대한 공포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끝까지 남아 핸드폰을 찾아주려했던 한 분과 함께 깜깜한 사막을 내려가는데 멀리서 손전등 빛이 보였다. 더더였다. 그를 보자마자 안도감에 눈물이 터졌다. 죽을 뻔 했다고 하니 더더가 착한 사람은 쉽게 죽지 않는다며 날 토닥였다. 어쩌면 핸드폰을 잃어버리고 크게 다칠 뻔 했던 최악의 상황이었으나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행동으로 많은 위로를 받고 금방 진정될 수 있었노라고 생각한다.

 

#12. 문짝은 떨어졌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나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방심은 금물. 다이나믹 몽골은 끝나지 않았다. 게르로 향하던 중 모래 구덩이에 바퀴가 빠져 차가 앞으로 영 나아가질 않았다. 설마 우리가 차를 밀어야 하나, 게르는 갈 수 있을까 걱정도 잠시, 요 며칠 동행하던 차들이 나타났다. 밧줄로 서로의 차를 연결하더니 구덩이에서 우리 차를 빼냈다. 이제 드디어 게르로 가나 싶었는데 더더가 다른 차를 타고 먼저 돌아가란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구덩이에 빠진 다른 차들을 도와야 된다며. 일초라도 빨리 게르로 돌아가 눕고 싶었던 우리는 군말 없이 차에 탔다. 이미 11시가 넘어간 늦은 시간이라 게르의 모든 불빛이 꺼졌다. 당장 드러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모래사막을 힘껏 구른 탓에 온 몸에 모래를 달고 있던 나는 남은 힘을 짜내서 샤워를 해야만 했다. 빛이 없어 손전등에 의지하면서 말이다. 씻어도 씻어도 모래가 떨어지는데 지쳐서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도 씻고 나니 개운하고 정신이 좀 들었다. 

    얼른 침낭에 누워 쉬어도 모자랄 판에 나는 마지막까지 별구경이라는 패기를 부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게 여

행 중 가장 맑은 날씨를 보여주더니만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는 듯했다. 그래, 살아 돌아왔는데 별이라도 실컷 구경하자는 마음으로 민정이와 삼각대까지 가져 나왔다. 바람도 미친 듯이 불고 날씨도 추웠는데 젊은이의 양지로 사십여분? 한 시간쯤 버텼을까. 원 없이 별 사진을 찍고 나서 민정이도 나도 한계를 느끼고 이제 그만 들어가기로 했다. 문제는 문짝이었다. 낮에도 삐그덕거리긴 했지만 문을 열었더니 문짝이 떨어져 나갈 줄은 몰랐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문은 노끈에 의지한 채 달랑거리고 있었다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에 안 그래도 피곤한데 펼쳐지는 어이없는 상황에 실실 웃음이 나왔다. 아무리 몽골이라지만, 야생이라지만. 오늘의 타임라인은 객관적으로 가혹하다. 바람만 안 불면 대충 문짝을 끼우고 자겠는데 강풍도 이런 강풍이 없어서 어쩌면 문짝이 날아갈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요청할 더더는 보이지 않았고 할 수 없이 바깥에 있던 노끈을 안쪽으로 끄집어서 손잡이에 한 번 묶고 벽 쪽에 한 번 더 묶었다. (같이 방법을 고민하던 민정이는 내 임기응변에 걸 크러쉬를 느꼈다며 감탄하기도 했다.) 침대에 눕자 방전 모드로 급변했다. 아까의 충격과 트라우마를 곱씹을 틈도 없이 강한 피로감과 함께 사막에서의 거칠디 거친 마지막 밤을 마무리하였다.





순하고 귀여운 낙타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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