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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iel Oct 20. 2018

THIS IS MONGOLIA #4

다이나믹 몽골 여행기 - 네 번째 날

#13. 우린 젊으니까!

달랑달랑

눈을 떠보니 (예상은 했지만) 온몸이 때려 맞은 듯 쑤셨다. 끙끙 앓으며 침대에서 일어나 보니까 뭔가 이상했다. 게르는 밤낮 할 거 없이 늘 어두운데 묘하게 환하다. 세상에-! 문짝이 완전히 떨어져서 어제 대충 동여맨 노끈에 의지해서 달랑달랑 거리고 있었다. 그 틈으로 햇빛이 쏟아져 환했던 것이다. 민정이도 이 광경을 보며 어제 대충이라도 묶지 않았다면 정말 문짝이 날아갔을지도 몰랐겠다며 어이없어했다. 그리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 상태에 대해 물었다. 몸과 마음이 안 좋긴 했지만 여행을 망치고 싶진 않았다. 이틀 뒤면 이 여행도 끝난다. 온몸을 파스로 도배하고 아침식사를 하러 식당을 향했다. 

    간단하게 시리얼과 과일 조금을 접시에 담고 테이블에 앉았는데 어쩐지 더더가 나타나지 않는다. 밥을 거를 리는 없는데. 여길 돌아오긴 돌아온 걸까 걱정스러운 마음에 식당 밖에 나가 더더를 불러보는데 잠이 덜 깬 얼굴의 더더가 나타났다. 얘길 들어보니 어제 구멍에 빠진 다른 차들을 돕다가 새벽 2시 넘어서야 캠프에 돌아왔단다. 그러더니 우리에게 어제 얘기했던 일정 변경은 생각해봤냐고 물었다. 원래대로라면 4번째 날 일정은 바양작을 구경하고 달란자드가드에서 하룻밤 자는 거였다. 더더는 달란자드가드에선 할만한 게 없다며, 체력과 시간과 돈을 들지언정 하루 종일 달려서 울란바토르에서 자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다음 날에 조금 더 여유가 생기니까 테를지 국립공원을 구경할 수 있는 게 매력적으로 들렸다. 어제 일로 꽤 피곤했을 텐데 우리가 원한다면 그렇게 가줄 수 있다고 하니 꽤 감동스러웠다. 보통 몽골 여행에서 권장하는 하루 이동거리는 500km 내외라고 한다. 근데 더더가 제안한 루트라면 하루에 거진 8~900km를 달려야 해서 보통 가이드들은 피곤하고 위험해서 잘 안 한다고. 우리보다 한 살 더 많은 더더는 자긴 젊어서 괜찮다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14. 눈물의 절벽, 바양작

그래서 다른 한국 팀보다 일찍 숙소를 떠났다. 오전내로 바양작을 후딱 보기 위해서다. 운전하는 더더 못지않게 우리 셋의 체력도 고갈된 탓에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멀미가 심하지 않던 나도 이쯤 되니 오프로드가 좀 힘들고 지겨웠다. 한참을 달려 바양작에 도착했는데, 날씨가 좋아서 그랬는지 차강 소브라가의 풍경보다 더 아름다웠다고 느꼈다. 다만 12시간 전에 모래사막에서 굴러 떨어진 나로서는 절벽에 선다는 게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는데,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더더가 나를 절벽에서 미는 시늉을 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났다. 민정과 혜린이 웃겨 죽으려고 하는 더더를 애를 놀라게 하냐며 타박했다. 심지어 같이 움직이던 더더의 친구마저 찰진 한국어로 '나쁜 새끼!'라고 했다. 진정된 나는 더더의 어깨를 주먹으로 강하게 내려침으로써 복수를 행했다. 후후. 짧게 구경을 마치고 초입에서 작은 기념품까지 구매한 뒤에 다시 차에 올랐다. 오래 달려서 잠깐 본다는 게 아쉽고 허무하긴 했지만 내일의 일정을 위해서 서둘러야만 했다. 

차를 타려고 하는데 주차장에 인상적인 캠핑카가 한 대 서있었다. 캠핑카 후면에는 독특한 할아버지 캐릭터 스티커가 대짝만 하게 붙여져 있었다. 이내 스티커와 똑같이 생긴, 퍽 유쾌해 보이는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어디서 왔는지 묻고 너희같이 예쁜 애들과(?) 같이 여행하는 운전기사는 참 행운이란 말도 덧붙였다. 그 말 그대로 더더에게 전했다. '봐요, 저 할아버지가 더더는 럭키 보이랬어요!' 그는 시큰둥하게 시동을 걸었다.


#15. 끝없는 길 그리고 석양

조그마한 규모의 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했다. 별로 입맛이 없었지만 오랫동안 차를 타려면 속이 든든해야 했다. 밥을 쪼끔 먹고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샀다. 더더는 자리에 없었지만 그의 몫도 샀다. 

틈만 나면 우릴 놀리고 아줌마라고 부르는 더더지만 배부르면 졸려서 운전하기 어렵다고 점심에 만두 두어개 먹는 모습이 꽤 짠하고 감동이었다. 고마움에 간식을 살 땐 그의 몫까지 사곤 했다.

    지긋지긋했던 비포장도로를 벗어나서 드디어 포장도로에 들어섰다. 포장도로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껴지는 순간이다. 끊임없이 차를 타야 했기 때문에 더더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나름대로 온몸이 뻐근해졌다. 중간중간 차를 멈추고 스트레칭도 하고 주변 경치도 한 번 둘러봤다. 밥을 적게 먹었는데도 졸려워서 힘들어하는 더더가 안쓰러웠다. 어차피 차에서 잠을 못 자는 편이라 조수석에 앉아서 심심하지 말라고 수다나 떨어야겠다 싶어서 자리를 옮겼다. 세상에나 앞자리에 앉으니 길이 정말 끝도 없었다. 

    오후 7시쯤에서야 넓디넓은 지평선에 붉은 노을빛이 옅게 깔리기 시작했다. 매번 아름다웠던 석양이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감격스러웠다. 아이패드에 담아온 노래 100여 곡으로 힘겹게 DJ를 이어가던 나는 지금 이 풍경에 맞는 노래를 틀어야겠단 사명감에 불탔다. 조용하고 감미로운 노래를 싫어하던 더더를 위해 일부러 틀지 않았던 몇 곡을 골랐다. Oasis의 Don't Look Back in Anger, Kings of Convenience의 Cayman Island 같은 곡으로 말이다. 우리는 멜로디와 석양이 자아내는 분위기에 도취될 수밖에 없었다. 별 가득한 밤하늘도 아름다웠지만 이 날의 석양은 정말 잊지 못할 것 같다. 기대 안 했던 선물이라서 그럴까.


#16. 응답하라 2002

6월의 몽골은 10시가 돼야 하늘이 비로소 깜깜해진다. 더더가 피곤함이 묻어 나오는 목소리로 1,2시간 뒤에야 울란바토르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그가 정말로 안쓰러웠다. 맨 처음 우리를 식당에 방치하고 사라져서 정말이지 못 미더웠는데 두 번째 날부턴 일정에 없던 계곡도 데려가고 세 번째 날도 애매하게 식당 가지 말고 야외에서 라면이나 끓여 먹자는 등. 한 두 개씩 뭔가 우릴 진심으로 챙겨주는 모습에 고마웠고 나도 모르게 정들었는지 하루 종일 열심히 그에게 말을 붙였다. 가족부터 친구 이야기까지. 게다가 2002년의 한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공통점에 몇 시간을 쉬지도 않고 떠들 수가 있었다. 

든든한 더더

    이 날 기나긴 대화를 통해 알게 된 더더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우리와 한 살 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도 우리보다 곱절로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여행사에서 굳이 투어팀을 받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개인적으로 연락을 주는 고객도 많고 가이드 일 외에도 여러 일을 겸업하고 있다고. 자기는 공부에 영 재능이 없어서 겸손을 떠는 모습까지. 짧은 시간에 정을 붙일 거라 예상 못했는데, 애지간하면 쉽게 정 안 준다는 민정, 혜린마저도 하루 만에 870km를 거뜬히 달리는 몽골 오빠 더더에게만큼은 정 붙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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