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riel Aug 26. 2018

WEB이란 거미줄에
걸려버린 사람들

영화 '서치'를 보고

영화 서치(Searching, 2018)은 아버지가 실종된 딸을 SNS를 통해 찾아 나선다는 내용으로 선댄스영화제, 전주 국제영화제 등에서 관객들 호응이 대단했다길래 구미가 당겼다. 운 좋게도 시사회로 일찍이 관람할 기회가 생겨 하늘이 어두컴컴하던, 말 그대로 폭풍전야였던 지난 수요일 저녁 대한극장으로 향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관객들을 어떻게 사로잡았는지 깨달았다. 컴퓨터 스크린과 모바일에 고정된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연출은 과감하고 신박한 정도에 그치지 않고 영화가 내포한 의미를 한층 더 강화하고 몰입하게 만드는 도구로서 훌륭하다. 온종일 PC와 Mobile에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으로서 꽤나 강렬하고 섬뜩했던 영화였다.


아는 만큼 보인다.
그렇기에 아빠는 절망스러웠다.

한 가족의 컴퓨터에 이제 막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아이의 계정이 생겼다. 엄마와 아빠는 아이의 성장과정을 컴퓨터에 차곡차곡 담는다. 입학식부터 피아노 연주회날까지. 가족은 화목하고 아름다운 나날을 보내는가 싶더니 엄마에겐 암 선고를 받고 끝내는 아빠와 아이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아빠는 알뜰살뜰 딸을 챙기고 딸도 아빠에게 다정하나 정작 둘은 깊은 속내를 털어놓는 관계는 아니었다. 엄마의 죽음은 아빠에게도 아이에게도 쉽게 꺼낼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소독하고 약을 덧바르기도 겁나는 상처처럼 말이다. 영화 초반부터 아빠 데이비드는 페이스타임과 아이메세지로 딸 마고와 대화를 나눈다. 얼굴을 보기 어렵다는 대화로 짐작컨대 부녀의 교류는 대부분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지는 듯하다. 마고는 잔소리가 끊이지 않는 아빠에게 친구네 집에서 밤새 스터디할 거라며 황급히 전화를 끊더니 새벽 중에 잠든 아빠에게 3통씩이나 전화를 건다. 아침에서야 되걸어보지만 딸은 받지 않고 평소와 달리 메시지에도 답이 없자 불안해진다. 

    마고의 친구들에게 연락해보라는 동생 피터의 조언을 듣고 데이비드는 벙찐다. 딸 친구들 번호는커녕 누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지를 발휘하여 죽은 아내의 계정으로 들어가 딸의 단짝 친구를 알아내고 연락을 취해봤으나 여전히 아이의 거처는 미궁이었다. 마고가 실종된 게 확실해지자 경찰 신고를 했고 배정된 담당 형사 빅의 조언에 따라 딸의 계정을 접속한다. 딸이 SNS 계정을 샅샅이 뒤져 친구들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데이비드는 두 번째로 벙찐다. 학교에서 사교적인 줄 알았던 딸은 내성적인 아웃사이더에 가까웠고, 오히려 인터넷에서는 익명의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심지어 몇 달 전에 피아노 강습을 그만뒀으면서 강습비를 모아 누군가에게 송금했단 사실까지. 자신이 모르는 딸의 모습에 혼란스러워하는 그에게 형사 빅은 마고의 이상한 행동을 증거 삼아, 납치보다는 가출로 의심된다고 한다. 내 딸이 그럴 리가 없다며 마고의 SNS를 끊임없이 수색한 끝에 그녀가 자주 가는 호숫가를 알아낸다. 그곳에는 마고의 포켓몬 키링과 호수에 잠긴 차를 발견하고 만다. 이후 마고의 실종은 미디어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등지에서 마고의 실종은 주로 흥미로운 가십으로 소비된다. 사람들은 마고와 데이비드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가장 뜨거운 이슈의 물살을 타보려는 기회주의적인 면모가 엿보인다.

    이런 상황에 지치고 있던 데이비드는 SNS에서 마고에게 끊임없이 추근대던 양아치가 도를 넘는 발언을 남기자 이성을 잃고 직접 응징하기까지 한다. 이 사건으로 형사 빅은 앞으로 수사에 관여하지 말라고 선을 긋는다. 그럼에도 데이비드는 꿋꿋이 마고의 컴퓨터를 뒤적거리며 마고와 동생 피터에게 무언가 있음을 알아낸다. 동생마저 딸을 납치한 용의자로 의심하며 피터를 추궁했지만 그에게는 알리바이가 있었다. 말 그대로 미치기 직전,  빅에게서 사건의 용의자를 찾았다며 연락을 받는다. 마고가 결국 변을 당한 것 같다는 소식과 함께 말이다. 실의에 빠진 데이비드는 마고를 위한 온라인 추도식에 아이의 사진과 영상을 올리면서 한 가지 섬뜩한 사실을 깨닫는다. 온라인 추도식 웹페이지의 모델이 딸이 종종하는 라이브 방송의 열혈 구독자와 똑같았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모델의 연락처를 수소문한 끝에 모델은 딸과는 전혀 접점이 없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분명 빅은 열혈 구독자를 수사했고 알리바이가 있다고 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그동안 용의 선상에 있던 사람들은 정말 알리바이가 있었던 걸까? 혹은 빅이 거짓을 이야기한 걸까?


반추(反芻)의 미학

앞서 영화가 섬뜩하다고 한 이유에는 딸을 위험에 빠트리게 할 만한 요인들이 현실과 동떨어져있지 않다는 점이 있다. 마고는 카르텔 보스의 딸이라서, 혹은 원한을 살만한 암살자의 딸이라서가 아니라 그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고 또래와 같이 학교 생활을 하고 SNS를 즐겼다. 다만 엄마의 죽음이란 상처가 곪고 있었고 아빠와 함께 해소하지 못해 외로웠을 뿐이다. 그 결과로 익명의 대상에 쉽게 마음을 열고 아빠에겐 점점 말 못 할 비밀이 생겼던 것이다. 마고도 데이비드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둘에게는 보이지 않는 거리가 생긴 셈이다. 그게 마고가 사라지고 데이비드가 그녀를 찾는데 난관을 겪었던 주 요인이었다. 허나 내가 부모라면 다를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또한 무엇보다 섬찟했던 건 마고의 실종을 다루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별로 친하지 않다던 스터디 친구는 유튜브에 눈물 젖은 얼굴로 마고는 베스트 프렌드라며 영상을 올리고 다른 이들도 너나 할 거 없이 마고의 실종을 쉽게 가십으로 소비한다. 아빠가 범인이다, 마고의 행실이 이상하다 등. 영화 속 사람들은 이조차 잘못됐단 걸 자각하지 못한다. 거미줄에 걸린 줄 모르는 먹잇감처럼 말이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이 평소의 나와 별반 다를 게 없단 사실이 가장 섬찟하고 씁쓸했다. 이처럼 서치는 추한 진실을 잘 활용했고 특히 컴퓨터 스크린에 고정된 시점과 현실적인 미디어 연출은 관객이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여러모로 곱씹을수록 반성하고 스스로를 반추하게 되는 작품이었다.


P.S. 최근 '서치'와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스' 그리고 '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까지. 아시아 계열 배우 주연 영화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앞으로도 흥행 길만 걷고 아시아 배우들에게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떤 장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