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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A매치 불매 해볼만한 이유에 대해

축구의 화나는 점과 여전히 멋진 점 1부 - 대한축구협회와 불매

by 리을

축구 팬 어연 2년차, 24-25 개막으로 이번이 3번째 시즌이다.

햇병아리의

적당한 거리감과 적당한 이해로 목격한

축구의 많은 문제와 엄청 큰 매력들,


그 중 초시급한 하나.



불안정한 스포츠 행정
- 대한축구협회의 문제 고르고 골라 2개만


축구를 본격적으로 좋아하게 된 후로 가장 크게 놀란 점이다.

문화체육예술계가 대체로 안정적이지 않다는 줄은 알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정도가 심하다. 이런 조직은 처음 본다.


크게 두 가지 점에서 참 남다르다.


1) 한 개인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불안정한 시스템.

당장 협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태는 정몽규 회장이 중심이다.

정몽규 회장의 잘못된 판단, 결정, 욕심으로 여기까지(클린스만, 홍명보 2차례의 잘못된 A매치 대표팀 감독 선임과정) 왔으니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애초에 이 정도 규모의 조직이

한 개인에 의해서 좌지우지된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된다.


그건 개인의 기행을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다는 뜻이다.

개인이 충분히 뒤흔들 수 있는 정도로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는 뜻이다.


정몽규 회장이 사임한다고 협회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지금 협회의 구조적인 불안정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몽규 회장과 같은 욕심을 가진 다른 사람이 회장이 된다면 충분히 같은 역사를 반복할 수 있다.

(그래서 사임하지 말라는 건 전혀전혀전혀 아니다....)


2)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

*절차적 정당성 : 어떤 일을 하는 과정에서 규칙과 절차를 준수하는 것


협회는 왜 자꾸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할까?

협회는 두차례의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정해진 절차를 따르지 않고, 일부 고위직의 입김에 완전히 좌지우지되었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모든 감독 후보에게 동일한 기준과 절차를 적용하지 않았고, 자의적으로 판단했으며, 대표팀 선임을 위해 조직된 내부 목소리에도 귀를 닫았다.


적절한 규칙을 준수하지 않았다.


잠시, 절차적 정당성이 왜 중요할까?


협회가 구멍가게도 아니고 정해진 절차를 지키는 게 너무 당연한 건데, 초등학생도 지킬 줄 아는 걸 설명해야 한다니 어이가 없지만,

협회가 이걸 준수해야 하는 건 일단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a. 대표팀 감독은 앞으로도 계속 선임해야 하니까 - 앞으로 더 잘 선임하기 위해서

협회는 2차례나 막무가내로 대표팀 감독을 선임함으로써 3번째 차례에서 더 나은 감독을 선임할 수 있는 기회도 날려먹은 셈이다.


일단 막무가내로 감독을 선임했고,

a-1. 결과가 좋다 치자.

그 성공의 비결은 어떻게 해명할 수 있을까?

직감? 운?

절차가 부재했기 때문에 정확히 해명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다음 대표팀 감독은 어떻게 선임할까?

다시 운에 맡겨야 한다.


a-2. 결과가 좋지 않다 치자.

어디서 문제를 진단할 수 있을까?

역시 모든 절차를 무시했기 때문에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오판이 있었는지, 어떤 과정을 정확히 개선해야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할 수 없다. (ex. 감독 선임의 기준이 잘못되었는지, 전력강화위원회의 구성이 문제였는지, 이사회 표결방식이 문제였는지 등 이렇게 구체적인 문제를 짚을 수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과정을 변칙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다음 대표팀 감독을 선임할 때

앞선 감독 선임 사례를 통해 반성이야 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문제 해결의 열쇠는 발견할 수 없다.


개인(현재로서는 회장과 전력강화위원장)을 비판하고 그에게 책임을 무는 것이 최선일 뿐,

시스템 전체를 정비해야 하고,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b. 대표팀 감독도 선수단과 대중의 지지가 필요하니까 - 낙하산 좋아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으니까

사람들이 왜 다 낙하산을 싫어할까?

제대로 된 절차를 거치지 않아서 괘씸하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다.

감독 본인이 대중의 지지는 물론이고, 선수단의 지지를 얻기 쉽지 않을 것이고, 그건 감독에게도 좋을 게 없다.


3) 대표팀 선수들을 아끼지 않는다.

가장 경악한 지점.

툭하면 대표팀 선수를 방패로 삼는다. 대표팀 내 불화를 조장하는 기사, 논란거리로 비난의 화살이 선수들에게 돌아가도록 유도하는 데 거침이 없다.


협회의 주요 재원은 후원금, 티켓값, 중계료 수익.

정작 협회는 손흥민, 김민재, 황희찬, 이강인 같은 스타 선수들에 의존해서 굴러가고 있다.


선수들에게 국제대회 한 번 한 번이 어떤 의미인지도 협회만 모른 척 한다.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 등 많은 대표팀 선수들의 최전성기 전력을 이렇게 날려버리다니.

아쉬움과 허탈함은 선수들 몫이다.


선수들을 방패 삼아 그 뒤에 숨어버리고, 망설임없이 선수들을 희생시키고.

이런 식의 대응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협회가 선수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스스로 보여줬고,

동시에 대중들도 바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대단하다.



그래서 A매치 불매 할거냐고?
당연.

A매치 불매하고 있다.

정몽규 회장 퇴진 요구가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A매치 경기는 가지 않고 있다.


내가 A매치 불매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할 것이고, 해야 한다고 믿는 이유는

아까 이야기한 세번째 이유((3) 대표팀 선수들을 아끼지 않는다) 때문.

협회가 선수들을 아끼지 않으니까.


협회가 대표팀 선수들을 대하는 방식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 점이 화가 나고 바뀌었으면 해서 불매한다.


A매치 경기, 정말 좋다.

손흥민, 김민재 같은 세계적인 선수들의 플레이를 이렇게 싼 값으로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는 정말 흔치 않다.

축구 좋아하기 시작하고 처음 한 직관이 대표팀 친선경기였다.

3, 4만원짜리 돈 내고 코 앞에서 이강인 선수가 프리킥 차는 거 보고, 김민재 선수가 벽 세우는 거 보니까 정말 좋더라.


가보니 그저 그래서 불매를 하는 게 아니다.

너무 좋았고,

이런 경험을 계속 하고 싶어서 불매하는 거다.


도저히 이해가 안 되지만

한국이라는 축구 불모지에서 자꾸 세계적인 선수들이 나오고 있는데

행정이 뒷받침을 못해줘서 그 기회를 자꾸 날려먹는게 안타깝지 않나


적어도 나한테는

내가 선수들 한 번 더 보는 것보다

앞으로 그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지속가능하고 안정적으로 뛰는 문제가 더 중요하다.



불매보다 더 나은 의사 표현 방식이 있으면 제발 알려달라.

나도 그렇게 하고 경기 좀 보러 가게.


하지만 지금 내가 아는 선에서

불매 외에 더 확실한 의견 개진 방법이 없다.



불매, 과연 의미 있나?
의미 절대 아예 없지 않다. 그보다, 일단 더 나은 방법?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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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발표된 홍명보호 첫 경기 - 아무 공지 없이 A매치 티켓가격을 인상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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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축구협회 사업수익 내용과 손익계산서 (그래프 출처 : 한국경제 신현보 기자)


9월 A매치는 홍명보 감독의 데뷔 경기로 22일 목요일 티켓 오픈을 앞두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별도 공지 없이 티켓값을 인상했고,

확인해보니 협회 재원에서 중계료수익과 입장권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적지 않다.


협회의 수익원에서 입장권 수익은 4번째 규모지만, 외부 수입원인 보조금을 제외한 자체 수익원 중에서는 세번째이고, 변동폭은 그 중에서 가장 크다.


협회의 재원의 상당 부분을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으며, 자체 수익원은 불안정하다. 보조금이 없으면 협회는 매해 300억 규모의 적자를 지는 셈이다.


이 상황에서 입장권 수익이 주는 것?

충분히 의미있다.


아니 협회 허리띠 졸라매서 좋을 게 뭐가 있냐고? 선수들이 손해보는 것 아니냐고?

애초에 협회는 수익원이 증가한다고 그 돈을 선수들에게 쓰고 있지 않다.

코로나 이후로 중계료와 입장료 수익이 크게 개선되는 동안 선수 훈련비는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그건 다 아는데, 나만 불매한다고 뭐가 달라지나?남들 다 보러 가는데 나만 손해보는 거 아닌가?
나만 불매해서 다른 사람한테 내 좌석만 넘겨준 것 같아서 불매 안 한다면

나도 그 점이 가장 속상하고 의문이 컸다.

나만 불매해서 나만 손해보는 느낌.


하지만 모두가 동참해서 경기장을 텅텅 비우는 게 불매(보이콧)의 목적이 아니다.

누군가는 경기장에 가서 좌석을 채우겠지만

1회라도 티켓 구매 트래픽이 줄고, 경기장이 1자리라도 더 빈다면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도움을 준 자료는 다음과 같다. (뉴욕타임즈, 포브스,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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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Do Consumer Boycotts Work?(NYT), Do Boycotts Actually Work?(Forbes), MZ세대 소비자의 불매운동에 대한 연구 (소비자


세 개를 요약, 종합하자면

1. 사람들 요즘 다 자기 살기 바빠서 불매 동참 잘 안 하는 거 안다.

2. 하지만 원래 보이콧의 주목적은 기업의 수익을 박살낸다기보다 어떤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

3. 거기다 요즘 엠Zㅣ 소비자들은 자신의 의견과 타인의 의견이 일치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4. 아무리 작은 움직임이더라도, 자신과 동의하는 다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엠Zㅣ는 쉽게 동참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작음 움직임이더라도 뭐든 하는 게 다른 때보다 효과가 클 수도 있다.

5. 또한, 그 이후 나머지 소비자들의 움직임도 무조건 똑같이 보이콧일 필요는 없음. 변화를 위한 다양한 수단이 있으면 더 좋다.


시도해볼만하다고 본다.

조금만 더 많은 사람들이 불매에 동참했으면 좋겠다.

심지어 A매치는 대체재도 있다. TV와 OTT 중계라도 있지 않은가.



하지만 여기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주의점.

불매하지 않은 개인에게 책임을 돌려선 안된다는 것.
엉뚱한 데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지 말자.


SNS에서 '경기 보러 가야지~'하고 댓글 단 개인에게 무차별적 비난을 쏟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다.


한국 특유의 축구대표팀을 소비하는 방식과 문화가 생겼다. 어떤 분위기인지 다들 알거라고 생각한다.

축구대표팀의 대중적 인기가 워낙 높아서 그렇다. 하지만 대표팀으로 유입된 축구팬들 덕분에 국내 축구 시장이 커졌고, 더 많은 축구 이벤트가 열리게 됐다. 대표팀을 계기로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를 알게 된 경우도 적지 않고, 나 역시 같은 경우다.

국내 대표팀 팬들의 분위기 자체는 가치판단할 수 없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더 중요하게는 대표팀 축구에 관심이 있는 많은 사람들이 현재 협회 상황이나 불매에 대해 제대로 알 기회도 별로 없다.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책임이 있는 주체들이 가만히 있어서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각자의 판단을 내린 개개인을 비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책임을 잘못된 방향으로 돌리는 거다.


비판은 대한축구협회(@thekfa)에게, 보이콧 독려 요구는 붉은악마 서포터즈(@reddevilkorea)에게 해야 한다.




그럼에도 축구는 여전히 그 자체로 멋진 점이 많은 스포츠다.

그 세계를 알게 해준

대표팀 선수들의 행복축구를 기원하며,,

이만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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