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이 건축동아리 들어간 얘기
경영학과에서 4학년이라면 무릇 취업준비 혹은 자격증 공부에 시달려야 마땅한 시기.
나는 뜬금없이 건축 동아리에 들어갔다.
건축동아리에 들어가서 나의 신분을 밝힐 때마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아니, 어쩌다?'와 '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 번도 똑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게 도대체 왜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서 수도 없이 자문했다.
혹시 늦었지만 건축학과에 갈 생각이 있는가? 미처 몰랐지만 건축가가 되고 싶었나? 아니면 건설사나 건축사무소에 취업할 생각이 있나?
잠시 헷갈릴 때도 있었지만, 여러 번 생각해도 모두 아니었다.
건축에 관심을 가진 지는 꽤 오래됐다. 건축은 아름다우면서 실용적이다. 여타의 예술처럼 보기에 흐뭇하지만, 벽면에 고상하게 걸려있는 대신 사람들의 손길과 자취를 받아들여야 완성된다. 예술의 멋진 가능성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도시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서울을 이해하고 싶었다. 알면 알수록 아리송하고 복잡하고 낯선 도시 서울. 항상 물음표만 한가득 안겨주는 도시를 잘 알고 싶었다.
당초의 목표대로면 동아리에서 한 학기 동안 건축을 공부하고 답사도 하고 책자까지 제작한 뒤에, 서울과 그 안의 동네 몇 군데는 얼추 이해할 수 있어야 했다.
활동하면서 정말로 서울의 역사를 공부했고, 몇 곳의 동네는 샅샅이 답사했고, 유명 건축물을 수도 없이 찾아다녔다.
그렇게 아는 체할 거리는 산더미처럼 쌓여갔지만, 한 가지 의문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염없이 커졌다.
건축명소를 다니는 게 도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인가? 그렇다면 서울의 건축상 수상 공간을 많이 알고 찾아도 가본 나는, 서울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도시의 변천을 몸으로 맞은 사람보다 이 곳을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는가?
활동을 마칠 때쯤 서울은 더욱 미지의 도시가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당초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 셈이다. 건축과 도시를 단번에 읽어내는 것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과제였다. 효율적으로 이뤄낼 수도 없으며 지난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몇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무얼 하고 있나.
스페인으로 교환학기를 와서까지 건축 수업을 듣고, 건축 전시를 다니고 있다. 여전히 건축이 흥미롭고, 도시는 호기심 천국이다.
그때 알았다. 나는 무언가를 얻어내거나 성취하고자 동아리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구나. 순수한 흥미와 궁금증을 좇았던 것 같다.
많이 헤매고 아주 느렸지만 조금씩 배워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그게 아니라면 비효율과 무성과가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에 와서까지 같은 시도를 반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동아리에 들어와서 변화한 것이 무엇이냐고?
사실 나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처음 들어왔을 때와 같은 호기심을 좇고 있다. 여전히 건축물에서 더 많은것을 발견하고 싶고, 사람들은 공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도시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알고 싶다.
건축동아리에서의 한 학기는 그 호기심의 실체를 확인하고 견고히 다지는 시간이었으며,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은 눈을 크게 뜨고 힘껏 두리번거리며 도시로 발을 내딛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