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눈으로 목격한 한국 현대사 중 최고!

한글날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by 리을

2024년 10월 9일 한글날

그 다음날인

2024년 10월 10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노벨문학상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모옌, 욘 포세 - 해외문학을 거의 읽지 않는 저와는 큰 관계가 없는 이벤트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오후 3-4시 즈음 친언니에게 문자로 전해받았습니다.

한국어, 노벨문학상, 한강 작가...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조합에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문장이 머리 속에서 소화되지 않고 공기 중을 빙빙 돌아다녔습니다.

몇 분 동안 점심으로 싸온 빵을 우걱우걱 씹으면서 음식과 함께 그 사실을 소화해보았습니다.


여러 번 곱씹어 이런 각도 저런 각도로 생각해볼수록 감격스러웠고,

개인적으로 큰 의미로 다가왔으며,

이로 하여금 한글이라는 언어에 대한 저의 생각을 추스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현재 마드리드에 잠시 거주하고 있고, 이 엄청난 사건의 홈그라운드인 한국으로 당장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모여서 흥분하고 눈물을 그렁대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어 이삼일 간의 몇가지 생각을 풀어 헤칩니다.



한국문학을 읽는 사람으로서
- 이로써 한국문학이 국내에서 더 많이 선택받는 발판이 되기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꼭 물어본다. 혹시 책을 좋아하냐고 물으며 책 읽는 사람을 열심히 찾아다닌다.

그래서 독서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드는 중에서는 주변에 독서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렇게 나보다 책을 오래, 많이 읽고, 깊게 읽는 친구들을 만났지만

다들 한국문학을 읽지 않는다.


내 주변에서 오늘날 한국문학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건 국어국문학과 등 관련 전공자 뿐이다.

다들 죄와 벌과 가여운 것들을 읽지만, 시선으로부터와 모순을 읽지 않는다.

피츠제럴드와 에밀리 브론테를 읽고, 정세랑과 한강은 들어봤고, 배수아와 이승우는 모른다



나는 책을 좋아하지만 다양하게 읽지는 않는다.

소설을 즐겨 읽지 않고, 읽는다면 한국문학만 읽었다.

백수린과 정용준, 정세랑과 최진영을 좋아하고, 양귀자와 박완서, 구병모를 펼치는게

내 독서목록의 큰 자부심이다.


한강 작가를 열렬히 좋아할 정도로 작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작가의 책을 완독한 적도 없지만.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을 듣고 감격스러워하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

그리고

'이걸 계기로 국내에서 더 많은 한국 문학이 읽히겠구나, 다른 많은 한국 문학 작가들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는 기대감이었다.


같은 언어에서 발원된 생각과 감정을 어떤 중간 과정도 거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나의 언어로 된 문학이 존재하며, 그걸 읽을 수 있다는 것,

굉장한 특권이다.

한국인으로서 한국 문학을 읽을 수 있다는 것 역시 더없는 특권이라고 늘 생각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특권에 공감하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내 주변 사람들은 벌써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작품을 나의 언어로 읽을 수 있다니'

하며 감격했다.



사실 고전은 재미없다. 어렵기도 하다.

그런 어려운 책도 술술 읽어내는 친구들에게 왜 한국문학을 읽지 않냐고, 해외문학을 주로 읽고 있냐고 물어보면

대개 답은 비슷하다.

좋은 한국 작가를 들어본 적도, 경험한 적이 많이 없다고 한다.


그에 비해 해외문학은 '타임리스'하다고 인정받은 문학작품이 전집으로 몇백권씩 쌓여있으니 그걸 하나씩 독파하는 데도 이미 시간이 부족하다. 바쁜 현대사회에서 정보도 경험도 없고, 보장된 바도 없는 독서경험에 선뜻 호기심이 가지 않을 거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정말 기쁘다.

사람들이 벌써 아침부터 서점 앞에 줄을 서서 한강 작가의 책을 사고 있다고 들었다. 내가 이용하고 있는 모든 전자도서관 서비스에서도 한강 작가 작품은 대출도 예약도, 수상이 발표된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서 모두 꽉 찼다.


한강 작가의 작품을 계기로 우리말로 쓰인 글을 읽고

정서적으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면

한국 문학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동시대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을 둘러볼테고,

그 다음 차례는 더 많은 한국 문학 작품들이 국내 독자들에게 선택받는 것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누가 내 블로그를 읽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 따위 상관않고

한국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좋아하는 작가와 주변 사람에게 여러차례 추천받은 작가 몇 분을 기쁜 마음으로 소개한다.


박완서 : 대문호. 대표작은 <나목>,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기나긴 하루>,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

양귀자, 구병모 : 소재는 독특하고 입체적이고 힘있는 언어의 작가 두 분. 대표작은 양귀자 <모순>, 구병모 <파과> 혹은 <아가미>

정세랑 : 한국문학 독자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나도 정말 사랑하는 작가. 무거운 이야기도 경쾌하게, 끝내는 언제나 사랑과 희망을 선택하는 이야기. 추천작은 <지구에서 한아뿐>과 <보건교사 안은영>

백수린 : 가장 다정한 방식으로 말을 건네는 작가. 읽고 나면 언제나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추천작은 <여름의 빌라>

천선란, 김초엽, 김보영 : SF 문학 작가 세 분. 눈물콧물 나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고, 묵직하기도 한 멋진 이야기들. 추천작은 천선란 <천 개의 파랑>, 김초엽 <지구 끝의 온실>, 김보영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정보라, 박상영 : 국제적으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한국 작가 두 분. 대표작은 정보라 <저주 토끼>, 박상영 <대도시의 사랑법>과 <1차원이 되고 싶어>

정용준 : 그냥 내가 너무 좋아하는 작가님. 책 한 권이면 충분히 한 사람의 세계관을 바꿀 수 있다. 추천작은 <내가 말하고 있잖아>


이외에도 정유정, 편혜영, 배수아, 조해진, 김영하, 이상우, 김승옥, 장강명, 문지혁...원하는 건 뭐든지 다 있다. 취향대로 골라 읽으면 된다.


작가 한 명을 고르는 게 어렵다면 시리즈를 하나 골라 독파하는 것도 좋다.

나도 이 방식으로 한국문학을 알아갔다.

추천하는 한국문학 시리즈는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백수린 <여름의 빌라>, 정용준 <내가 말하고 있잖아>, 양귀자 <모순>



한국(한글)인으로서
- 나의 정체성, 가장 뿌리에 있는 한글이라는 언어


탈조선, 탈조선. 고등학교 때 한창 유행했던 말이다.


시간이 흘러서 아는 친구는 한국을 떠나 해외로 이민 갈까 진지하게 고민 중이고,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오니 유럽에 정착할 생각인 친구, 어려서부터 스페인에서 나고 자라 외국인이나 다름없는 친구를 만났다.

친언니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 삶의 터전을 꾸릴 것 같다.


그에 비해 나는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을 꿈꿔본 적이 없다. 낭만적인 해외살이를 상상해보지도 않았다.

흔히 하는 '한 번쯤은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 적 없다.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를 차례로 배우면서도 그걸 가지고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사실에 위축되었다.

내가 소심한 탓이라고 생각했고, 젊은 나이에 패기가 벌써 쪼그라들었나, 모험심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맥락으로 몇일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깜짝 놀라면서

내가 다른 나라에 사는 걸 상상하지 않았던 다른 이유, 더 진짜 이유를 알아냈다.


나의 정체성, 그 가장 뿌리에 있는 한글이라는 언어.


나는 이 언어에 정말 큰 애착이 있다.

한국어는 내 앞에서 가장 크게 파도치고 가장 큰 숨을 쉬는 언어이다. 글자가 인쇄된 납작한 활자에서 벗어나 나를 압도하고 집어삼킬 수 있는 언어도 한글 뿐이다.

영어로, 독일어로, 스페인어로 된 글을 읽고 감명받은 적은 많지만, 코 앞까지 찾아와 회오리친 언어는 없었다.


여러 언어를 배우고 있지만,

가장 잘 구사하고 싶은 언어는 여전히 한국어다.

국어를 더 매끄럽게 구사하고, 더 명료하게 표현하고, 다듬어서 쓰고 싶은게 큰 과제이다.

한국어가 아직도 어렵다.


한국어만큼 나도 어렵다.

내가 뭐하는 인간인지, 어쩌려는 모양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스스로에게 질문해서 이해시키고 설명받아야 할 때가 많다.

그런데 나라는 사람을 설명한다면, 한글이 아닌 다른 언어로 하고 싶지 않다.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한류 열풍이 풀고, 한국어로 된 오리지널 컨텐츠들이 외국에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BTS, 봉준호, 오징어게임 등등이 그 예.

‘그렇다면 이제 문학 차례인가. 언젠가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을 꺼내본 사람은 많겠지만

말하면서도 근미래에는 일어날 리 없을 거라 우스갯소리에 가까운 허황된 기대라고 다들 생각했을 거다.


이유는 당연히 언어 때문이다.

원래도 노벨문학상은 유럽어가 아니면 받기 힘든 걸로 알고 있다.

나머지 언어 중에서는 중국어야 쓰는 인구가 워낙 많으니 번역도 발달했을 거고, 일본어는 전반적인 일본문화가 해외에 소개된지 워낙 오래되었고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예외, 아랍어도 여러 국가가 함께 쓰는 언어다.

근데 한국어는 한국 사람만 쓴다.


거기다 바로 생각나는 예시 두어개만 봐도

- 단무지 색깔을 보고 노오랗다. 은행나무 잎은 누렇고, 누렁니 이빨은 누리끼리, 개나리가 잔뜩 핀 공원은 샛노랗다고 할까

- 뭐하는지 물어보고 싶은 것도 뭐해? 너 지금 뭐하냐? 뭐시당께? 뭣하냐? 님 모함? 일없소?

뭐야 이거, 이게 도대체 번역이 가능한 건가.


조금만 생각해봐도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당분간은 좀 어렵겠다.

해외에 한국문화가 더 많이 소개되어서 한국어 붐이 불지 않는 이상 이거는 너무 욕심이다 하하 웃어넘겼겠거니. (내가 그랬다)



그런데...한강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탔다고?


BTS가 그래미에 노미네이트됐을 때, 봉준호 감독이 세계영화제를 휩쓸 때, 윤여정 배우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았을 때

그 어느때보다 더 판타지소설 같이 느껴진다.


한국문학이 노벨문학상을 탄 건 한국의 음악과 영화, 배우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외국인들이 서툰 발음으로 BTS의 한국어 가사를 떼창할 때 여전히 벅차고 신기하지만, 음악은 가사 외에도 멜로디와 리듬 등의 보조수단이 있다.

한국을 기생충으로 기억할 때도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같은 대사가 기생충을 설명하지 않는다. 촬영, 미술, 편집, 연기 등 영화의 요소들은 더 복잡하다.


헌데 소설은 다르다.

어떤 보조도구도 없다. 배우의 표정도, 장엄한 음악도, 색감도 없다.

표지를 펼치면 늘 같은 색의 재지, 더 같은 색의 문자들이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소설에는 언어뿐이 없다.


한국어로 쓰인 소설이 온전하게 번역이 되었고, 그게 외국인(노벨위원회)에게 완전히 이해받았다는 거,

이게 가능한 건가.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 우리말에서 출발한 감정과 생각이 외국인에게 안전하게 가닿았다는 게 정말 놀랍다.


더 놀라운 점.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를 보면 'historical traumas'를 이야기한다. 역사적인 트라우마를 시적 언어로 승화한 것이 한강 작가의 주요 수상 이유이다.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이유

그 설명에 가장 맞는 작품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담은 <소년이 온다>와 제주 4.3사건을 담은 <작별하지 않는다>.

너무나 한국 특수 이야기다.


한강 작가는 너무나도 한국 특수적인, 어쩌면 현재진행형인 역사적 사건을 서술했고

이건 계급갈등, 식민지배, 생과 죽음 같이 국적에 상관없이 보다 많은 인구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가 아니었다.

이 소재로 서술의 가치와 언어의 힘을 인정받았다는 게...


언어만으로 체험을 가능케 한 한강 선생님의 역량 덕이 크겠지만,

그럼에도 이 말도 안되는 일을 더 신기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노벨 위원회의 한강 작가 수상에 대한 코멘트



사실 놀라움보다 더 큰 건 자부심이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여튼 다시 한 번 나의 모국어에 엄청난 자긍심을 느낀다.


그러다 문득 내가 가장 깊이 있게 읽고, 쓰고, 말하고 싶은 언어는 궁극적으로 한국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를 대한민국이라는 기묘하고 휘청거리는 땅에서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건

부족한 모험심도, 패기도 아닌 한글이다.


언어가 안 돼서 다른 나라에 살기가 두렵다는 차원은 아닌 것 같다.

이 언어가 너무 좋아서 놓을 수가 없어서 한국에 계속 살고 싶다.


많은 한국 사람이 그럴 것 같다.

갈라치고 파편화된 한국 땅에서 우리를 하나로 묶어두는 건 결국 언어밖에 없다.

그들처럼 내 정체성의 가장 끝에 끝, 그 뿌리에는 한국어가 있다.

이 언어는 나의 가장 큰 욕심이다.


우리말로 된 아름다운 노랫말 추천. 정미조 선생님의 <7번 국도>



여성 독자로서
- 계속 책을 읽고 싶은 여성 독자로서

한강 작가는 대한민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기도 하지만

아시아 여성 작가 최초 수상자이기도 하다.


아시아 여성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상징적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백만가지 의미에서 감격했다.


그 중 한가지는 문학의 여성독자로서 기뻤던 것이고, 앞으로 한국문학계의 변화가 궁금해졌다.



내가 자라면서 필독도서라고 읽은 책 중 여성작가의 책이 몇 권이나 될까.

내가 읽은 건 알베르 카뮈, 헤르만 헤세, 아리스토텔레스, 카프카, 사르트르다.

부끄럽지만 고등학교 때 버지니아 울프를 읽기에는 시간이 없었다. 더 부끄럽지만 시몬 드 보부아르와 프랑수아즈 사강의 제대로 된 존재는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알았다.


미술관에 걸려있는 그림 중 여성작가의 작품은 몇 점이나 될까.

죄송하다. 자라면서 인식한 존재는 프리다칼로 밖에 없었다.


여성 작가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할 수 있겠지만,

모르겠다. 그냥 읽으면서 알았다.

남성 작가의 시선으로 쓰인 글과 그림은 읽기 힘들 때가 있다.

세계에 대한 이해가 정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복적으로 한 편의 이야기만 듣는 건 지치고 힘든 일이다.


더 거칠게 말하면 지겹다.

인간의 욕망을 탐구하고 젊음의 자유를 만끽하는 남성 시선의 여성 서술도 지겹고, 극장가에 걸려있는 떼거지의 남자 배우들 포스터도 지겹다. 제작자들은 그 사이에 선명한 색의 예쁜 옷을 차려입은 여성 인물 한 명을 넣으면 만회가 될 거라 착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질리지도 않고 남성 중심 서사만 성실하게 만들어내길래 내가 먼저 질렸다.

이야기에 로맨스적 긴장감을 넣기 위해서 혹은 약방의 감초처럼만 여성 인물을 사용하는 거, 뻔하고 지겹다. 창의성을 발휘해 달라.

주체적인 여성 인물 한 명을 등장시키면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것 같던데, 원래 모든 인물은 성별과 관계없이 입체적으로 그려야 마땅한 거 아닌가? 더욱이 좋은 창작자, 작가는 성별, 국적, 시대를 넘어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인물로 들어가 상상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들 아닌가? 이제까지 한 성에 대해서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게 아주 이해가 되는 부분은 아니다.


균형 있는 독서, 중요하겠지. 하지만 애초부터 그 균형은 존재하지 않았고, 자라면서 남성 시선 서술을 경험할 기회는 충분히 많았으니 이제 다른 선택을 하고 싶다.



혹시 위에서 내가 추천한 작가 목록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박완서, 양귀자, 구병모, 정세랑, 백수린, 천선란, 김초엽, 김보영, 정보라, 박상영, 정용준, 정유정, 편혜영, 조해진, 김영하, 이상우, 김승옥, 장강명, 문지혁.


박완서 선생님을 제외하고 내가 추천하는 동시대 작가들 중에는 여성 작가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

내가 여성작가를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적어도 내가 경험한 한국문학의 현주소는 많은 여성 작가들이 써내려가고 있다.


한국문학을 읽기 시작한 후로 나에게 차고 넘치는 선택권이 주어져서 행복했다.

굳이 애를 쓰지 않아도 10대 소녀부터 70대 할머니의 이야기는 모두 입체적이다.

부잣집 따님, 술집 아가씨, 어린 소녀 등의 간단한 프로필만으로도 대강의 설명이 가능했던 인물들은 여기에 없다.


대신 보건교사이자 초능력이 있고, 자기의 능력이 저주같으면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끝에는 언제나 희망을 선택하는 안은영

한문교사이자 이사장의 손자이며 영적인 힘을 타고난, 안은영의 선택을 받고 그와 함께 학교의 비밀을 파헤치는 방어적인 성격의 홍인표가 있다.



부족한 식견으로 여기저기 주워들은 이야기로는 내가 경험한 한국문학 작품들의 흐름과는 다르게,

아직 국내 문학계는 남성 중심 분위기로 돌아가고 있다고 들었다.


한강 작가가 대한민국 문학계를 영영 바꿔놓았으니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독자로서 한국문학에 바라는 건

더 입체적인 이야기, 더 재미있고 좋은 이야기, 시대를 깨우는 이야기

그리고 그와 어울리게 돌아가는 문학계이다.



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지만, 이만 끝


너무너무 기쁘고 어안이 벙벙하고 자랑스러운 몇 일을 보내며!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눌러담고 사이버도서관의 예약 대기만을 기다리며...


들국화 <축복합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 노벨위원회와의 전화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