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샘 Dec 16. 2020

우리 이제 딱 붙어서 살자

우리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멈춰 서야 했다.


비 예보가 있었지만 그렇게 쏟아붓듯이 내리는 빗줄기는 와이퍼의 동작으로는 시야를 확보할 수 없을 만큼 강했다. 대낮인데도 상향 전조등을 켜고 비상 깜빡이를 켜고 속도를 늦춰도 한 치 앞도 보이질 않아, 운전자 쉼터가 나타나자 갓길로 차를 세우고 멈춰 섰다.


칭얼대던 딸아이는 어느새 잠이 들었고, 장난감 자동차 하나를 손에 움켜쥔 아들은 지루한 표정이다.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거 처음 봐요.”

“나도. 아무래도 좀 기다렸다 빗줄기가 좀 가늘어지면 가자.”

지나가는 차들도 별로 없다. 고속도로가 아니라 물바다에 둥 떠 있는 것처럼 고속도로 위로 빗물이 흘러넘친다.


두 아이를 모두 친정 부모님이 키워 주셨다.

지금 같으면 두 번도 생각 않고 육아휴직을 냈을 텐데 그때는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의 손에 아이를 키우고 대부분 출근을 하던 시절이었다. 나도 아기 돌봐줄 분을 구해서 곁에 두고 키우고 싶었다. 그런데 친정 엄마는 절대 그렇게 남의 손에 귀한 손자를 맡길 수 없다고, 내가 키워주마 강하게 주장을 하셨다. 한참 TV에서 애기 봐주는 아줌마가 아이를 떨어뜨려서 지능에 문제가 있는 아이가 되었다느니, 하루 종일 만화영화만 틀어줘서 아이가 근육 발달도 되지 않아 못 걷는 아이가 많다느니 온갖 부정적인 정보만 엄마의 레이다망에 걸려들었다. 다른 사람보다는 할머니가 훨씬 더 낫겠다 싶어 큰 고민 없이 아이를 친정으로 보내고, 우리는 주말마다 아이를 보러 내려갔다. 그렇게 매주 친정을 드나들게 된 것이다. 첫 아이를 업고 동네 마실을 나가면 쉰둥이라고들 했고, 우리 아들 녀석은 말문이 트였을 무렵부터 할머니를 엄마라 불렀다. 할머니를 엄마라 부르며 엄마인 나보다 더 달라붙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을 보면 철없는 엄마였음에 분명하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는 아직 젊었던 할머니의 손길만큼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라났다. 시골에서 그야말로 유기농으로 길러낸 음식들을 먹고 자라고, 직접 담은 맑은 배추 된장국에 밥을 말아주면 어른처럼 한 그릇 뚝딱 비워냈다. 시골 마당에서 햇살을 받으며 흙장난도 맘껏 하고, 여름이면 마당 수돗가에서 커다란 대야에 물을 받아 전용 풀장을 첨벙거렸지. 서랍을 끌어내고 그 속에 들어가 노는 걸 좋아해서 친정집 장롱과 서랍장은 멀쩡한 것이 하나 없었고, 온 사방의 벽에는 제멋대로 그려놓은 낙서가 가득하다. 그것을 보고는 코끼리를 닮았다느니, 사람을 그려놓았다느니 억지스러운 할아버지의 주장은 아마도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을 거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마다 그 어린것을 업고 새벽기도를 다녀오시며 얼마나 많은 축복의 기도를 쌓으신 걸까?


첫 아이가 20개월쯤 되었을 때 데리고 올라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딸아이를 또 친정집에 맡겼다. 첫 아이 때는 떼어놓고 아무 때나 볼 수 없고 달콤한 젖내를 맡으며 비빌 수 없는 그리움에 늘 우울했다면 둘째 딸아이를 맡겼을 때는 기꺼이 키워주시는 부모님이 감사하기만 했다. 그런데 그 딸아이가 돌 무렵이 지나면서 첫 아이와는 달리 우리가 주말에 다녀가기만 하면 울고 보채고, 마치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는 아이처럼 기운이 없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 다녀간 후 종일 보채며 엄마를 찾아대는 여린 손녀딸을 보는 것이 더 마음 아프셨나 보다. 어느 날, 친정 엄마는 울음을 삼키며 전화를 하셨다.

“얘, 안 되겠다. 수진이가 계속 너를 찾으며 운다. 잘 먹지도 않고. 에미가 고픈 거지. 아무래도 데리고 올라가서 품고 키워야겠다.”


딸아이를 데려오기로 결정한 후 바빴다. 돌봐줄 곳을 수소문해 알아놓고, 아이 방도 꾸몄다. 친정에서 쓰던 물건을 그대로 가지고 올라오겠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필요한 물건들을 사 들였다. 마음이 바빠지고 사이사이 두 아이들과 함께 살 기대에 웃음을 참을 수 없다.


주말에 내려가니 아이 쓰던 물건을 다 빨고 씻어서 챙겨놓으셨다. 딸아이는 보자마자 내 품에 쏙 안겨서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그 딸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시는 친정엄마를 어떤 마음이셨을까?

“그래, 올라가서 엄마 냄새 실컷 맡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라, 응? 할머니가 보러 자주 올라갈게.”

백미러로 보니 아직도 길에 서서 손을 흔드시는 부모님이 보였다. 울고 계셨을까? 조금씩 내리던 비가 엄청난 폭우가 되어 올라가는 길을 막아서고 있으니.


헤헤거리며 부산스러운 나와 다르게 남편은 말이 없었다. 생각이 많은 얼굴이다. 고속도로 한가운데서 차를 세우고, 퍼붓는 빗속에서 그는 우리를 불렀다. 몸을 돌려 그는 철없는 아내와 그 품에 안겨 잠든 딸아이와 혼자서도 제법 잘 놀고 있는 아들을 불러들여 두 팔로 감싸 안고는 한동안 말이 없다. 말없는 남편을 따라 내 콧날도 시큰해진다.


“이제 드디어 우리 가족이 온전하게 함께 살게 되었네. 이제부터 우리 딱 붙어서 살자.”

매거진의 이전글 나란히 잠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