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병문안 참 싫다

by 류샘

참 신기하다. 예감이라는 것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치우는 내가 1학년 때 담임을 맡았던 아이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6학년이 되었다. 배가 뽈록 나오고 머리부터 발등까지 통통한 몸매에, 웃으면 얼굴 전체 근육이 움직이며 하얀 이를 내보이던 녀석이다. 몸집은 커졌지만 그 실루엣은 여전하다. 아직 변성기를 맞지 않은 목소리는 옛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리게 하는 나의 애제자 중의 하나다. 한글을 다 깨치지 못하고 1학년을 마쳤던 아이, 받아 올림이 있는 덧셈을 공부할 때면 열 손가락이 부족해 신고 있던 양말을 휙 벗고는 발가락을 눈으로 헤아리면서 덧셈을 하던 아이다. 공부 시간에 자기가 좋아하는 레고만 하겠다고 떼를 쓰던 아이다. 그러면서도 꾀죄죄한 손으로 먹을 것을 들고 와서는 자기 보는 앞에서 빨리 먹으라며 눈을 깜박이던 아이다. 엄마와 상담을 여러 차례 했었고 함께 그 아이를 위해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던가. 학년이 올라가도 오며 가며 내 교실에 들러서 뭐라고 뭐라고 종알종알 이야기를 하고 가던 아이였다.


치우의 6학년 담임 선생님은 내가 참 존경하는 남자 후배 샘이다. 아침마다 등교하는 아이들과 함께 운동장 걷기를 한다. 일찍 오면 일찍 온대로, 늦으면 안 하기도 하면서 자유로운 가운데 아침을 가볍게 시작하게 하고 싶단다. 매일 한 아이씩 돌아가면서 운동장 데이트를 한다. 두런두런 아이와 운동장을 걷는 선생님과 무질서하게 그냥 아침에 운동장을 걷는 아이들을 보면서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나는 아침 일찍 출근해서 빈 운동장을 바라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아직 조용한, 그러나 좀 있으면 시끌시끌할 빈 운동장을 바라보며 보도블록을 천천히 걸을 때면 마음이 편안하고 또 시작되는 하루가 감사하게 여겨지곤 한다.


그 출근길에 언제부턴가 치우가 있었다. 너무 일찍 와서는 등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빈 운동장을 바라보곤 했다. 그것도 텅 빈 눈빛으로.


“치우야, 왜 이렇게 일찍 왔어?”

“그냥 일찍 일어났어요.”

“그럼 천천히 걸어. 다른 친구들보다 한 두 바퀴는 더 돌아야 하는 거 알지?”

“아니오. 이따 담임샘 오시면 같이 걸을래요.”

“그럼, 내일부터는 조금 늦게 학교에 오지. 일찍 와서 그렇게 멍하게 앉아 있지 말고.”

“아니, 그냥 이렇게 앉아 있는 것도 좋아요. 히”


통통한 몸이라서 늘 살을 빼야 한다고 하던 녀석이 일찍 와서 운동장을 멍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몇 차례 보면서 마음 한 구석이 좀 이상했다. 좋지 않은 예감이 자꾸 들었다.


치우가 일주일이 넘도록 병원에 입원해서 등교를 못 하고 있다는 소식을 갑자기 듣게 되었다.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해서 왜 그런지 검사해 보기 위한 것이란다. 뭔가 쿵하고 내려앉는 듯한 느낌이다. 담임선생님도 어머님이 여러 가지 검사를 하고 있고 결과가 나오면 알려준다고 문자를 주고받았다는데 연락이 없어서 걱정하며 그냥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나랑 오늘 퇴근하면서 함께 병문안 가 볼래요?”

내가 제안하자 후배는 그래 주겠냐며, 자기도 병원을 한번 들러봐야 하나 어쩌나 생각 중이었다고 하였다.


병원에 도착해서 전화를 하니, 소아 격리병동으로 올라오라고 한다. 예감은 이렇게 적중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타고 올라가는 그 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진다. 병실에 가까이 가니, 치우 엄마가 망가진 얼굴로 마스크를 먼저 내민다. 손 소독을 하고 병실로 들어서니 며칠 새 핼쑥해진 모습으로 치우는 자고 있다. 골수 검사 등 힘든 과정을 겪어내느라 아프고 약기운에 잠이 든 모로 누운 치우를 보는데 울컥한다. 아이의 등을 쓸어주고 식은땀으로 젖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하려 애썼다. 엄마 앞에서 담담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밖으로 나와 치우 엄마를 안아주었다. 한참을 말없이 기대고 있다. 앞가슴이 젖어 오는 것이 느껴진다. 현재 6학년 담임선생님은 남자분이라 어색할 테고, 나는 같은 여자이고, 같은 엄마의 마음이니 말없이 위로를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붙잡고 있는 손이 떨려온다. 그 마음을 다 알 것 같다.


치우 엄마의 설명으로는 아이가 배가 아프다는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 들었단다. 그렇게 먹는 것을 좋아하던 녀석이 먹으면 자꾸 배가 아프다고 식사량이 줄었을 때, 살 좀 빠지겠다고 식구들이 모두 농담을 했었단다. 수업 중에도 자꾸 보건실로 내려가고 해서 동네 병원을 두 군데나 들렀는데 모두들 배에 가스가 차서 그렇다고, 변을 시원하게 보지 못해 그런 것이라고 했단다. 차도가 없고 아이는 계속 복통을 호소해서 안 되겠다 싶어 대학 병원으로 와서 검사를 할 때만 해도 가족 누구도 이런 엄청난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다. 누구나 그렇다. 나도 그랬다.


치우는 지금 B세포 악성림프종 3기다. 소장, 대장, 간, 비장까지 전이되어 있으나, 뼈로까지 전이되지 않았다는 것에 희망을 걸고 이제 항암치료부터 시작하게 된다고 한다. 비관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고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사를 믿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고 한다. 엄마가 먼저 힘을 내야 한다고, 이 과정을 잘 이겨내고 밝은 모습으로 학교에서 만나자고, 기도하겠다는 말을 건네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섰다.


며칠이 지난 지금도 마음에 뭔가 큰 돌이 올려진 것처럼 답답하다. 아침저녁으로 기도를 한다. 이 아이의 건강한 모습을, 회복되어 또 환하게 웃으며 나에게 걸어와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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