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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샘 Dec 16. 2020

내 딸 먹이려고 그랬다

딸아이는 할머니와 통화하던 끝에 무심히 한 말이었다.

“할머니, 한 번 내려갈게요.”     

그러나 친정엄마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시고는 내게 전화를 하셨다.

“얘, 수진이가 며칠 있다 내려온다더라.”

“그래요? 언제요?”

“글쎄, 월요일이라 그랬나?”     


외출하고 집에 늦게 들어온 딸아이에게 물었다.

“할머니한테 내려간다고 말했다며?”

“아뇨!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한 건데...”

“크크, 할머니는 너 월요일에 내려오는 줄로 알고 계시더라.”

“에구, 약속 있었는데 미루고 내려가야겠네.”

“아마 그래야 할 걸. 할머니는 장 보러 가셨을 거야.”

결국 딸아이는 할머니 바람대로 월요일에 고속버스에 올랐다.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서 두 돌 무렵까지 자랐다. 할머니의 퉁퉁한 뱃살을 베고 잠이 들던 아이라서 할머니 뱃살이 제일 좋다는 아이다. 마음의 고향처럼 할머니를 늘 그리워한다.     


스물을 넘기고부터는 할머니께 가끔 전화도 드리고 한 옥타브 높은 소리로 웃음도 날려드린다. 그저 이쁘고 사랑스러운 손녀딸이라서 언제나 보고픈 것이다. 하룻밤 자고 올라온다고 내려간 딸아이는 문자로 하소연이다.

<엄마, 나 이러다 짜부 나요. 2시간 간격으로 할머니가 먹으라고 하셔서 배 터질 것 같아.>

     

다음 날 늦게 집에 돌아온 아이 가방이 불룩하다. 낑낑거리며 꺼내놓는 것은 복숭아 다섯 개다. 고향 복숭아는 유난히 달다. 하지만 서울이라고 단 복숭아가 없을까? 꽁꽁 싸매서 딸아이 가방에 넣으신 다섯 개의 복숭아를 보니 여러 생각이 든다. 들고 가야 하는 손녀딸 힘들까 봐 몇 개는 덜어 냈다가, 하나라도 더 맛보게 하고 싶은 마음에 또 몇 개 넣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 에잇~ 하고 결심하듯 봉지를 묶어버린 복숭아가 저 다섯 개일 것이다.     


피곤할 텐데도 복숭아 하나를 깨끗이 씻어서 깎아 내 코 앞에 갖다 놓는다.

“엄마, 할머니가 올라가자마자 엄마 깎아 드리라고 했어요.”

코 끝이 또 찡해 온다. 한 입 베어 물자마자 입안 가득 단 향이 가득하다.  

“그래, 할머니 복숭아가 정말 달아. 서울에서 맛보기 힘든 맛이야. 실컷 먹고 오지 그랬어?”

“엄마, 나 짜부 날 뻔했다고요. 아직도 목까지 음식이 가득 찬 느낌이야.”     


전화를 드렸다. 괜한 싱거운 말도 보태서.

“엄마, 서울도 복숭아가 천진데 뭐하러 그걸 싸 보내요. 서울엔 복숭아 없을까 봐요? 우리 딸 힘들게.”

“크크크 넌 니 딸 걱정만 하니? 난 내 딸 먹이려고 그랬다!”


전화기 너머로 우리 둘은 한참을 웃어댔다.

“그래. 맞아. 내 딸이 최고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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