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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샘 Dec 16. 2020

딸아이의 회식에 대처하는 엄마의 자세

회식이라고 말은 했었다.


보통은 회식을 점심 식사할 때 하는 딸아이의 회사 문화였다. 그런데 이번에 저녁이란다. 평소에 팀원들이 남자들이고 몇 가지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하더니, 회식이라는 말에 잘하고 오라고 응원했다. 그런데 10시가 넘고, 자정이 되어가는데 아직 홍대 근처란다. 내일 휴일이라고 친구들과 등산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렇게 늦게 오면 어쩔 생각인 거지?


사실 내 걱정은 따로 있다. 딸아이가 놀 때, 제대로 논다. 폭탄주를 말아 휴지를 덮고 손목 스냅을 이용해 회오리를 만들어 젖은 휴지를 천정으로 던진다. 자, 원샷하고 외치며 껄껄거리며 노는 모습은 가히 회식의 여왕이다. 필 받으면 밤을 새운다. 딸아이와 함께 신나게 놀고 나면 온 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다. 하도 신나게 웃고 떠들며 마셔서. 그런 것은 다 오래된 친구들이나 가족끼리 있을 때 해야지. 회사에서는 한 번도 술을 마신 적이 없다. 동료 중에는 심지어 우리 딸이 얌전한 아이인 줄로 알고 있단다. 연기력 최고다.

지금까지 잘해 왔는데, 오늘의 회식으로 본색이 드러나는 것 아닐까? 이걸 시작으로 매일 마셔대는 건 아닐까? 나의 걱정도 아무 소용없다.


자정을 넘겼으니, 보나 마나 신나서 본색을 드러내며 놀고 있는 게 틀림없다. 남자들이 대부분이라 가능하면 그러고 놀고 다니면 안 될 것 같은데, 걱정은 자꾸자꾸 커진다. 언제 올 거냐고, 그만 정리하고 오지? 전화를 몇 번 했다. 그러나 기다리다가 잠들고 말았다.


오늘 아침 눈을 뜨자마자 딸아이 방문을 열었다. 생각보다 술냄새가 많이 나지 않는다. 흔들어 깨웠다. 몇 시에 들어왔냐고 물었더니, 새벽 두 시쯤 왔단다.

"술은?"

"팀원들하고 진지하게 이야기하느라 술 많이 안 먹었어."


에고, 쪼금 미안하다. 미안한 마음으로 돌아서 나가는 내 뒤통수에 대고 몇 마디 보탠다.

"엄마, 딸 회식하는데 그렇게 자꾸 전화하는 거 아니야."

"응?"

"엄마 어저께 늦도록 번개했던 날, 내가 필라테스 끝나고 오던 길에, 컨디션 사들고 가서, 거기 있던 모든 분들께 쫙 돌렸잖아. 앞으로 그렇게 나 회식할 때 전화해 대는 거 아니여. 오케이!"


"알았다. 요년아. 쏘리다. 요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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