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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샘 Dec 16. 2020

베란다의 안마의자

저 안마 의자가 문제였다. 


올봄 새로 발령을 받은 곳은 상습 정체 구간을 지나야 했다. 먼 거리가 아님에도 도로에 차가 묶여 꼼짝 못 하고 지각을 염려하게 되면서 이사를 결정했다. 맘에 드는 집을 구하기 힘들었고, 조금 평수가 좁아져도 깔끔하게 인테리어를 해 주기로 한 집으로 결정했다. 그러나 막상 이사를 하고 보니, 몇 평 차이 나지 않는데도 집안 가득 짐들이 그득한 것 같아 답답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문제는 거실 한쪽을 떡 허니 차지한 저 안마 의자였다.     


저 덩치 큰 안마 의자는 나의 조기교육의 성과이다.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고 나서였다. 아들은 학교에서 접어온 카네이션과 삐뚤빼뚤 적어 온 감사 편지를 어버이날에 내밀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며 자그마한 팔로 목을 끌어안으며 안아주기도 했다. 그런 아들과 아직 유치원에 다니는 딸아이를 앉혀놓고 교육을 시작했다.

“수민아, 그리고 수진아, 고마워. 그런데 어버이날 이렇게 편지하고 카네이션만 주는 거 아니야.”

“그럼요?”

“응, 어버이날이나 엄마 아빠 생일 그럴 때는 이런 사랑이 담긴 편지하고 작은 선물도 함께 주는 거야.”

“어떤 선물이요?”

“응, 미리 용돈을 모았다가 손수건이나 머리핀 뭐 그런 거라도 하나씩 사서 편지와 함께 주는 거야. 알았지?”


물론 나는 어버이날이나 우리 생일 전에 아이들에게 미리 용돈을 두둑하게 챙겨 주었다. 그 이후로 우리 아이들은 작은 선물을 미리 준비해서 내밀곤 했다. 좀 자라면서는 스타킹이나 손수건, 좀 자라서는 영화 티켓, 스카프, 미용실 이용권 등을 주었다.

“그래, 마음은 그렇게 물질로 표현하는 거야. 알았지?”          


가끔 물어보기도 했다. 

나중에 취직하고 돈 벌게 되면 엄마한테 뭐 해 줄 거냐고. 뭘 받길 원하시냐고 물으면 주저하지 않고 말해 놓았다. 아들에게는 1순위로 안마 의자와 매달 두둑한 용돈을, 딸아이에게는 해외여행 티켓과 두둑한 용돈을 생색내지 말고 계좌 송금하라고.          


그러나 잊고 있었다.

아들 녀석이 취직을 하고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정식으로 출퇴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느 날 낯선 전화를 받았다. 안마 의자가 배송되어 왔고 거실 한 구석에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 보니 어버이날이 며칠 뒤였다. 아들 녀석은 매달 월급에서 렌탈료를 부담하기로 하고 농담처럼 말했던 안마 의자를 집으로 보낸 것이다. 역시 조기교육은 중요하다. 이후 나는 저 안마 의자 덕을 엄청 보았다. 퇴근하고 오면 안마 의자에 앉아 일단 쉰다. 발바닥부터 뒷목까지 야무지게 지압을 하면 하루 피로가 풀린다. 특히 어깨 회전근개 파열로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에 나는 몇 개월 동안 저 안마 의자에 누워서 잠을 자곤 했다. 앞으로도 한 동안은 안마 의자 덕을 보아야 하는데, 거실을 너무 많이 차지해서 볼 때마다 답답해 죽을 노릇이다.      


안마 의자 때문에 심난해하고 있을 때, 친정 부모님이랑 여동생 네 가족이 다니러 왔다. 안마 의자 때문에 신경 쓰인다고 하니, 친정아버지께서 그럼 베란다로 내놓자고 하셨다. 혼자서는 엄두도 나지 않았는데 장정들 몇 명이 달려들어 무거운 안마 의자를 베란다로 내어놓으니 속이 다 시원하다. 마치 그 자리게 제 자리인 양 딱 맞춤이다.      


요즘 저 안마 의자 덕분에 행복하다.

한가한 주말, 창을 모두 열고 베란다의 안마 의자에 앉아 햇빛을 받으며 안마를 한 이십 여분 하고 나면 몸이 다 개운하다. 노곤 노곤해져서 깜빡 졸기도 한다. 이른 새벽에 안마 의자에 앉아 서서히 밝아지는 아침을 맞으면 폐 깊숙한 곳까지 새벽 공기가 들어오는 것 같다. 밤에 안마 의자에 가만히 앉아 깜깜한 창밖을 바라보기도 한다. 행복하기까지 하다. 행복이 뭐 별거더냐, 난 이렇게 작고 소소한 것들에서 행복을 찾으며 평온하게 살 거다. 


고마워,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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