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샘 Dec 21. 2020

당신, 그곳에서 아버지랑 두런두런 대화 나누고 있나요?

결혼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나를 데려간 곳이 아버님이 계신 그 추모공원이었다. 강변에서 맛있는 식사와 달콤한 커피를 마시고 났는데, 그는 어디 들를 곳이 있다며 나를 데리고 간 곳이 아버님을 모신 추모공원이었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아버님을 그렇게 만났다. 


사진에서만 뵈었던 아버님, 어쩌면 그리도 빼어 박을 수 있을까? 백일 사진, 젊은 시절의 모습, 나이 들어가는 모습이 아들과 똑같아서 성품도 그 자상함도 닮았으리라. 그는 입버릇처럼, 아버님이 살아계셨으면 널 정말 아껴 주셨을 텐데... 했었다.     


시간만 나면 남편은 나를,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님이 계신 그 곳으로 갔다. 올림픽대로를 지나 이어지는 강변을 달려 양수리를 지난다. 늘 들르던 꽃집에서 국화 두 다발을 사들고는 아버님을 모신 추모공원을 향해 깊은 골짜기로 들어간다.      


그는 먼저 담배에 불을 붙여 올려드린다. 정성스레 술잔을 올리고 함께 절을 하고 나면, 둘레에 심어놓은 낮은 회양목과 측백나무를 둘러보고는 잔디를 정성스레 손질한다. 그리고는 위쪽에 모셔놓은 아버님 친구 분께도 절을 올린다. 워낙 친했던 두 분은 돌아가시기 전에 미리 공원묘지 땅을 아래위에 사 두셨고, 약속한 대로 돌아가셔서도 이웃하며 지내고 계신단다.      


처음 함께 왔을 때, 남편은 술잔을 부으면서도 뭐라고 뭐라고 중얼중얼 아버지와 대화를 하는 것을 보았다. 아니, 대화가 아니고 마치 옆에 계시는 것처럼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한다. 나는 아무 때고 부모님과 만나서 혹은 전화로 나누는 대화를 그는 그렇게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가 왜 그렇게 이곳에 오고 싶어 하는지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그래,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구나 단박에 이해가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간단하게 준비한 음식을 차리고 절을 한다.  

“자, 이제 아버지랑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세요.”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돗자리를 펴고 앉는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야, 명당자리가 따로 없다. 높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면 사방을 둘러 야트막한 산자락이 이어진다. 계절에 따라 피어나는 가지각색의 꽃들은 수채와에 처음 옅은 색을 칠한 듯 자세히 보아야 색이 드러난다. 하늘은 언제나 푸르고 구름은 천천히 지나간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수없이 혼자 다녔을 그 길을, 나를 데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오는 것을 그는 참 좋아했다. 횟수가 반복될수록 돗자리를 깔고 가만히 앉아 주변을 돌아보다 보면 나도 시간이 멈춘 듯 그지없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남편의 낮은 목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오면 잠깐잠깐씩 졸음이 몰려오기도 한다. 


“이제 인사드리고 가자.”

“아버지하고 얘기 많이 나눴어요? 그럼 이제 슬슬 가 볼까요?”

돗자리를 접고 상석 위를 정리하며 슬쩍 훔쳐본 그는 어김없이 눈이 빨갛다.   

 

가끔 꿈속에서 그 길을 혼자 다녀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 길을 나는 더 이상 혼자서는 도저히 갈 수 없다.

당신, 그곳에서 아버지랑 두런두런 대화 나누고 있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낙산사에 다녀와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