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샘 Jan 07. 2021

이렇게 나이 들기

   

직장의 동료들로 이루어진 모임 중에 <오향’s>가 있다.

      

오래전 여름방학, 직장에서 주관하는 스마트 교육 관련 연수가 있었다. 일정 인원이 신청을 해야 개설이 가능한 연수인데 신청한 사람이 턱없이 부족했다. 주관하는 후배가 내부 메시지를 통해 몇 번의 지원을 요청을 했다. 어머나,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직장에서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만 모여 있었다. 스마트한 것과는 거리가 있는, 관심 분야도 아닌 사람들이 스마트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모였다. 이 연수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그저 후배가 어렵다고 하니, 시간 많고 돈(?) 많은 우리가 자리를 채워주고 기회가 되면 맛있는 밥이라도 사주자는 거였다.

      

그렇게 모여진 우리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돋보기들을 꺼내놓고 스마트폰 사용 꿀팁이라든가 사진 촬영 기법, 유용한 앱 다뤄보기 등을 배워 나갔다. 아주 간단한 기능에도 방송국 전문 방청객 수준의 리액션을 보내면서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며 연수에 참여했다. 오랜 기간 강사로 활동한 후배는 이렇게 열심히 연수에 참여하는 분들 처음 만나 본다며 하하 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 연수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또 이대로 헤어질 수 없다며 모임을 만들자고 했다.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모임이 결성되고 그 모임에서 막내였던 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총무가 되었다. 대부분이 50대 이상이었기 때문에 늙은 언니들하고는 안 논다고 농담을 건넸다. 

"야,  너 두루뭉술한 몸매가 우리보다 더 50대야, 군말 말고 우리랑 같이 놀자."

"그리고 너 없으면 누가 총무 하냐?"

"할 수 없네. 정신연령 높은 내가 언니들하고 놀아줘야지."

 그렇게 코가 꿰어서 시도 때도 없이 온갖 이유를 붙여 모임을 정기적으로 임시로 아무 때나 모였다.

      

모임의 이름을 결정할 때도 우리는 현금을 걸고 공모를 했다. 열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나이 많은 여교사들이 있는 자리 어디에서나 향기를 뿜으며 살자고 <오향’s>로 이름을 정하였다. 이 모임 사람들은 대부분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했다. 선배랍시고 무게 잡지 않고 뒤로 빼지도 않았다. 나이 많은 선배들이 경쾌하게 움직이면 분위가 살고, 어렵고 궂은일을 후배 교사에게 미루지 않는, 덥석 덥석 힘든 일도 척척 해결하는 해결사 역할도 했다. 후배들의 시행착오를 보면 잘한다 잘한다 격려와 함께 세월로 다듬어온 학급 운영의 작은 팁들을 알려주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데리고 가서 밥도 잘 사 먹였다. 

      

이 모임에서는 죽이 맞아 여행도 많이 다녔다. 샌드위치 데이나 연휴와 같이 짧은 휴일이 생기면 가까운 곳으로 떠납시다~~ 누가 하나 깃발 들면, 이미 갔단 온 곳이라도 해도 한 번 더 가자며 모이기도 잘 모였다.  제주도는 물론 가까운 일본이나 동남아, 중국으로 며칠 씩 다녀오면 추억이 한가득 쌓여 웃을 일도 더 많아졌다. 함께 다니는 동안 누구 하나 맘 상하거나 얼굴 붉히는 일 없이 그저 서로 이쁘다, 잘한다, 즐겁다 파이팅을 외치며 시끌벅적 재미나게 돌아다녔다. 

      

이 언니들처럼, 모나지 않고, 마음 씀씀이가 넓어 주변을 향기롭게 하는 그런 사람으로 나이 먹고 싶다. 계산기 두들기지 않는 삶의 방식, 욕심 없이 가까운 사람들에게 충분히 따뜻함을 나눠주는 그런 사람으로. 언제나 긍정의 시선으로 일상의 유쾌함을 유지하는 나이 듦.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추가합격이라도 어디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