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야겠다 생각한 것은 몇 년 전이다. 스페인 여행길에서 순례자를 처음 보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자신의 덩치만큼 커다란 배낭을 메고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 내가 있는 알베르게로 들어선 중년의 남자가 들어왔다. 배낭에 주렁주렁 하얀색 조가비를 달고서. 나도 오랜 자유여행으로 꾀죄죄해서였을까? 그는 우리에게 활짝 웃으며 말했다. “부엔 까미노!”
그토록 오랫동안 산티아고 순례길에 마음을 빼앗긴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나를 아는 지인들은 대부분 말렸다. 우선 내가 과체중이고 평소에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함께 낮은 산이라도 등산을 하게 되면 숨이 턱까지 차고 얼굴을 빨개져서 낮술 한 아줌마가 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순례길을 걷겠다고 결심하고 개인 PT를 받았고 걷기 운동도 시작했다. 끊임없이 할 수 있을까 망설일 때, 딸아이는 내 등을 떠밀었다.
“엄마, 지금이 엄마가 가장 젊은 때야. 할 수 있어요. 걷다가 힘들면 좀 쉬엄쉬엄 걷고, 정 안 되겠으면 택시 타고 한 구간 이동하면 돼. 엄마, 무조건 떠나요.”
일부 구간만 걷기로 결심을 하고 우선 티켓팅을 했다. 숙소는 이동하면서 컨디션에 따라 조절해야 하니 예약은 하지 않기로 하고 배낭을 꾸렸다. 배낭의 무게가 삶의 무게라고 했던가. 10킬로를 넘기지 않으려고 넣고 빼고를 수없이 반복했다. 비상약과 발바닥에 바를 바셀린, 발가락 양말, 무릎보호대만 잘 챙겨 넣고 이제 부족한 것은 현지에서 조달한다고 맘먹고 나니 맘이 편했다.
2시간을 걷고 나면 벤치나 길바닥에 보자기를 깔로 앉아 발가락 양말을 벗고 말렸다. 발가락 사이사이 바셀린을 바르고 발가락 양말에 또 한 겹의 양말을 신어서인지 물집이 잡히지 않았다. 육류를 전혀 먹지 못하는 나는 샐러드와 빵으로 식사를 했고, 문어요리 뽈까를 원 없이 먹었다. 공기가 맑아서인지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맑고 아팠던 무릎도 괜찮아졌다. 신기한 일이다.
숙소에서 식사를 마치고 아침 8시쯤 아직 어스름할 때 길을 나섰다. 다음 숙소로 배낭을 부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걷다 보면 어느새 환해진다. 중간에 한두 번 쉬면서 발을 쉬게 하고 12시쯤 바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하도 샐러드를 먹어서 소가 된 기분이다. 다시 출발해서 오후 두 세시쯤 목적한 마을에 도착하면 구글 지도를 이용해 숙소를 찾았다. 배낭이 도착한 것을 확인하고 숙소에 들러 샤워부터 했다. 딱 두 벌만 옷을 챙겼기 때문에 갈아입은 옷을 입고 자고, 내일까지 쭉 입어야 한다. 땀에 절은 옷을 세탁하고 건조까지 시켜 놓고는 내일 숙소를 예약했다. 그리고는 슬리퍼를 신고 어슬렁어슬렁 마을을 돌아다녔다. 대부분 작은 마을이어서 느린 걸음으로 걸어도 한 시간이면 다 돌아볼 정도였다. 그리고는 가장 예쁜 레스토랑에 들어가 식사를 주문하고 시원한 맥주를 한잔 하고 숙소에 돌아와 짐을 다시 챙겨놓고 동키 서비스 카드를 작성해서 배낭에 묶어두었다. 하루를 공책에 기록하고 나서 잠이 들면 다시 하루가 시작되는 반복의 순례길이었다. 첫째 날 출발했을 때는 괜찮았다. 한두 시간 정도 걷고 나니, 이렇게 계속 배낭을 메고 걸을 수는 없다는 결정이 내려졌다. 내 무릎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하루 20킬로에서 25킬로 정도를 걸을 예정이므로 배낭은 소위 동키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한 것은 참 잘한 일이었다.
혼자 나선 길이라 알베르게도 몇 번 이용하였지만 대부분 호스텔이나 저렴한 호텔을 이용했다. 알베르게는 12유로 정도, 호텔은 40유로 정도 되니 부담이 적었고, 대부분 순례자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인지라 가격도 싸 비용 부담이 적은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출발지에 도착했을 때 만난 프랑스 여의사 린은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 아마 각자 혼자 나선 순례길에서 처음 만났기에 제안을 했을 것이다. 각자 숙소에서 짐을 풀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식사와 와인을 한잔하며 출발하기 전날 밤의 설렘을 함께 했다. 무슨 의식처럼, “너는 이 순례길에 왜 왔니?” 물었다. 린은 유방암 수술을 2년 전에 했고, 언니를 몇 달 전 떠나보냈다고 했다. 나는 남편을 잃고 그를 추억하고 기억하고 싶어 이 길에 와 있다고 했다. 우린 꼭 안아주며 서로를 위로했다.
순례길은 대부분 작은 소도시나 풍광이 좋은 트레킹 코스를 걷게 된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많고 중간중간 길을 잃지 않을 정도의 간격에 익숙한 조개 문양의 이정표가 있다. 처음에는 내가 과연 걸을 수 있을까? 위험하진 않을까? 긴장과 두려움으로 즐기지 못했지만 곧 안정을 찾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환하게 웃으며 건네는 “부엔 까미노!”가 정말로 내게 좋은 길을 선무로 주는 것 같았다.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고 생각하니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껴가며 천천히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나무가 울창한 야트마한 산을 넘고 빨간 지붕과 낮은 담장, 곡식을 보관하는 오레오, 작은 성당을 지났다. 길가에 떨어진 밤을 주워 껍질을 입으로 까서 먹었고 길가에 서있는 사과나무를 따서 바지에 쓱쓱 닦아 깨물었다. 바가 보이면 들어가 화장실을 이용하고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셨다.
순례길의 막바지에 이르러서였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루 종일 비가 내려서였을까? 산티아고 순례길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꼼뽀스뗄라를 하루 앞둔 순례 날이었다. 그날은 아르수아에서부터 빼드로우소까지 걷는 30킬로의 비교적 긴 구간이었다. 출발할 때부터 판초를 뒤집어쓰고 걸어야 했고 중간에 쉴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 발바닥도 아팠다. 알 수 없는 눈물이 출발할 때부터 흘러내려 빗물과 눈물이 뒤섞여 얼굴을 흘러내렸다. 무엇보다 그날은 순례길에서 유난히 많은 돌무덤들을 보았다. 산따 이레나 소성당에 도착했을 때는 다시 린을 만났고 나는 그녀의 품에 안겨서 꺼이꺼이 소리까지 내며 울었다. 그녀도 따라 함께 울었다. 성당 옆에 세워진 작은 십자가에 목에 둘렀던 푸른 스카프를 묶고서 남편에게 야트막한 목소리로 인사를 나눴다.
당신이 곁에 있었을 때 더 많이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해 미안해. 당신이 남겨주고 간 그 많은 사랑과 추억들로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 말아요. 수민이가 결혼을 했어요? 알죠? 예쁜 짝을 데려와 당신 없이 결혼을 시켰는데 전세라도 마련해 줄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늘 말하던 대로 내 맘에 쏙 드는 아이를 데려와서 수민이 공부 안 하고 속 썩인 것은 다 용서해 줬어요. 수진이는 걱정 하나도 안 하고 있죠? 언제나 씩씩하게 잘 지내고 당신 대신 내 보호자 노릇까지 잘하고 있어요. 당신이 무슨 일 있으면 병화 형님하고 상의해했었죠? 항상 전화하시고 챙기시니까 내 걱정은 말아요. 난 정말 잘 지낼 거예요. 내 걱정은 말아요.
하루 종일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걷는 그 날에 나는 내가 왜 이 순례길에 나섰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 길에서 진심으로 남편과 이별을 했다. 그 긴 길 위에서, 진정으로 홀로인 그 길 위에서 나는 남편을 생각했고 그리워했고 애도했다. 그리고 그 작은 세리머니를 통해 마음을 좀 덜어냈다. 그리고 더 이상 우울해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나는 다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것이다. 두고 온 스카프가 있는 그 성당에서 나는 다시 남편과 인사를 나눌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어렵겠지만 퇴직을 하자마자 산티아고 순례길 전 구간을 걸을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더 환한 목소리로 남편과 인사를 나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