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샘 Feb 24. 2021

당신의 기도 덕분에

친정 부모님이 다투셨다는 여동생의 전언이 있었다. 젊어서 투탁 투닥 잘 다투셨다. 어느새 두 분 다 여든을 앞둔 연세라 그런 일이 거의 없더니 대판 다투셨단다.  어버이날을 맞아 내려갈 생각이었지만 집안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이번에는 내려오지 말라는 말도 보탰다.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쉬웠지만 선물도 보내드렸고 전화만 드릴 생각으로 남편에게도 내려가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해 두었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 때문이었을까? 어버이주일을 맞아 교회에서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남편은 방향을 틀어 올림픽대로로 들어섰다. 


"어디로 가는 거야? 집에 가는 거 아니었어?"

"아무래도 원주 다녀와야겠다. 얼른 갔다 오자."

"내려오지 말라고 하던데......"

한 번 고집을 부리면 바꾸는 법이 없는 사람인 걸 알기에 시트를 뒤로 쭉 젖히고 그래, 갑시다! 했다.


휴게소에 들러 점심도 먹었다. 친정집에 내려갈 때 뭘 먹고 오면 섭섭해하셨다. 딸, 사위 내려오면 먹이시겠다고 늘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놓으시기에 꼬르륵거려도 휴게소에서는 화장실만 들르고 서둘러 내려가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리 말씀도 드리지 않고 갑자기 내려가는 것이니 신경 쓰시지 않게 먹고 가기로 한 것이다. 


친정집에 거의 도착하면서 전화를 드리고 들어서니, 정말 분위기가 스산하다. 각자의 방에 들어가 계셨고 우리가 도착했는데도 환한 얼굴로 맞지는 못하신다. 아마도 두 분의 말씨름이 계속되는 중이었나 보다. 남편은 친정엄마께 먼저 들어가 너스레를 떨며 신김치 썰어서 내주시라고, 밥 좀 한 술 먹어야겠다고 한다. 아무것도 없는데 어쩌냐 하면서도 엄마는 주방으로 나와서 뚝배기에 된장을 풀고, 신김치를 꺼내 담으셨다. 예고도 없었으니 그저 냉장고에 있던 반찬들을 꺼내놓으시며 어쩌냐만 하신다. 어느새 뚝딱 시골 밥상이 차려졌고 이미 점심을 다 먹었으면서도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친정아버지도 식탁에 함께 앉으셔서 천천히 먹으라며 말을 섞었다. 장모님 신김치랑 된장찌개 먹고 싶어서 내려왔다며 요즘 있었던 일을 껄껄거리며 말했다. 어느새 두 분도 표정이 풀어지셨다.


식사를 마친 후 엄마 손목을 잡고 앉더니, 아버지도 가까이 오시라 했다. 양 편에 두 분을 앉게 하고는 손을 꼭 쥐고는 남편은 말했다.

"징모님, 장인어른, 지금까지는 두 분 기도 덕분에 제가 잘 살아왔어요. 늘 든든하고 감사했어요. 이제부터는 제가 두 분을 위해 기도하며 살 거예요. 아셨죠?"

어찌나 진지하게 말하는지 나는 웃음이 날 뻔했고, 친정엄마는 남편의 손을 쓸어내리며 고맙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나칠 정도로 독실한 두 분은 집안에서 유일하게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남편을 위해 항상 기도하셨다. 

"이제 내 기도제목은 안서방 자네 하나야. 자네만 교회 나가면 더 바랄 게 없어. 알았지? 교회 같이 나가." 하셨다. 어느 날 거짓말처럼 남편은 교회를 가기 시작했고 부모님은 기도의 응답이라고 기뻐하셨다. 그렇게 교회 나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위가 내려와서 두 분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말에 주르륵 눈물을 흘리신 것이다.


한 번도 남편이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깜짝 놀랄 만큼 기도를 잘한다. 나도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은 부끄러워 못하는데 누가 보면 오랜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처럼 잘한다. 나 모르게 남편이 기도를 해 왔구나 놀랐다.


두 분이 왜 다투셨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어버이 주였고 우리는 갑작스럽게 친정에 내려갔고, 남편은 부모님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는 두 분께 각각 용돈을 드리고는 또 너스레를 떨었다.

"장모님, 장인어른, 저 바빠요. 다투시면 또 내려와야 하니, 이제 다투지 마시고 사이좋게 지내세요. 아셨죠?"


남편은 유난히 친정엄마를 좋아했다. 친정에 내려가 두런두런 장모, 사위가 이야기하면 다른 식구들이 모두 잠들도록 계속되었다. 찝찔한 거 좋아한다며 장모님 드시라고 마른 오징어며 쥐포를 보내드렸다. 무슨 일이 있으며 나보다 더 먼저 장모님께 알리기도 했다. 어머니 없이 자란 남편은 아마도 친정엄마를 통해 시린 가슴을 기댔을 것이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친정엄마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러나 엄마는 누구보다 강하게 앞서 보낸 사위를 애도하며 잘 이겨내셨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남편의 기도 덕분은 아닐까 생각했다. 엄마는 가끔 전화로 말씀하셨다.

"꿈에 안서방 다녀갔다. 얼굴이 환하고 좋더라. 천국이 좋나 봐."


 

매거진의 이전글 산티아고 순례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