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막: 무너지지 않기 위해 견디던 시간들 (과거)
무사히 항암치료를 끝낸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했다.
오랜 꿈이었던 애견센터를 열었다.
나는 늘 강아지와 함께 자라면서, 동물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빠가 애견사업을 한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매일 학교를 마치고 동생과 함께 아빠의 가게로 향했다.
아빠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수 있는 한 아빠를 도왔다.
개들을 산책시키고, 배변을 치웠다.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여전히 아빠가 아플까 봐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아빠곁을 맴돌았다.
아빠는 정말 열심히 사업을 일궈갔다.
애견 미용사도 채용했고,
매일 끼니도 걸러가며 청소를 하고
강아지들을 돌보았다.
엄마는 아빠가 무리하는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즐거워하는 아빠를 보면서 조용히 지지해주었다.
하지만 이때는 IMF 경제위기 시기였고,
아빠의 노력과는 무색하게
이내 가게 문을 닫게 되었다.
아빠는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총동원했고,
애견 농장사업을 이어갔다.
이때 나는 어느새 중학생이 되어 있었다.
사업에 실패하게 되자,
아빠는 택배일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빠의 사고소식이 들려왔다.
일을 하던중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손가락이 절단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학교를 마치고 바로 아빠의 병원으로 향했다.
문득, 어릴적 아빠가 위암수술을 했던때가 떠올라 겁이 났다.
'또다시 아빠가 많이 아파지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스쳤다.
병실안을 들어가니 내 걱정과는 다르게
아빠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작은 사고가 났는데, 아빠 많이 안다쳤어. 괜찮아"
손가락이 조금 다쳤다고 했지만 아빠는 나를 그저 안심시켰다.
아플텐데도 나를 보며 애써 농담을 던지는 아빠의 모습에
가슴이 저려왔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위로조차 건네지 못했다.
나는 그저 아빠옆에서 한없이 고개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이후 아빠는 가족을 먹여 살리겠다는 의지 하나로
다른 지방으로 떠났다.
집에선 아빠의 흔적이 지워져갔다.
점점 짐이 줄어들었다.
옷가지며, 아빠가 보던 책들도 사라졌다.
점점 아무도 언급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 상황이 나는 너무 슬펐다.
이렇게 가족이 떨어지게 될줄 몰랐다.
나에게 단단한 나무같았던 아빠가 아프면서 내 마음도 흔들리는 것 같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엄마의 웃음기가 사라져갔다.
그걸 보면서 점점 나도 우울해져만 갔다.
활발하고 긍정적이던 예전의 나와는 달리
중학생이 되자 점점 말수가 사라졌다.
내 얼굴에도 웃음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교 생활이 어렵게 느껴졌다.
다니던 학원도 빠지는 날이 많아졌다.
자연스레 성적도 떨어지고 있었다.
어떤날은 이 모든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내가 학교를 잘 다니는것도,
학원을 다니는것도 아무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다시 부모님이 뭉치길 바랐고,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었다.
경제적인 상황이 나아졌으면 했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일없던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그건 내 바람일 뿐이었다.
그로부터 몇달후,
학교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현관 앞엔 낯선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냉장고,세탁기,엄마 화장대까지
집안 곳곳에 온통 빨간 압류 딱지가 붙어 있었다.
전화기를 붙잡고 다급해하던 엄마의 모습까지
그 모든 풍경이 마치 영화처럼 느껴졌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머릿속이 하얘졌고, 숨이 가빠졌다.
'이게 무슨 일이야?'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어쩔줄 몰라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보여
무작정 도우려 했다.
"엄마, 이게 무슨일이야? 나는 뭐하면 돼?"
"너는 아무것도 몰라도 돼, 그냥 있어"
돌아오는 날선 말이 왠지 마음아팠지만,
그 상황에선 진짜 내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한 걱정이었겠지만,
왠지 모르게 소외된 느낌을 받았다.
가족문제에 있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철부지 어린애 같았다.
설명이 없는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또다시 이상한 감정이 찾아왔다.
답답하기도 했고, 이번엔 화도 났다.
가족을 돕고 싶었는데, 내 자리는 없는것만 같아서 슬프고 우울해졌다.
그 사건 이후 한동안 아빠를 보지 못했고,
날이 갈수록 힘들어하는 엄마를 보며
나는 더 빨리 어른이 되었다.
내 마음과는 달리 시간이 빨리 갔다.
동생은 갈수록 말이 없어졌고,
엄마는 점점 예민해졌다.
그런 엄마와 동생을 보며,
'내가 좀 더 착하게 지내야지,
내가 좀 더 배려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나는 갈수록 내가 하고싶은 말대신,
동생과 엄마가 원하는 쪽으로 말하고 행동했다.
뭔가를 먹을때도,
어딘가로 갈때도,
내가 하고싶은 것 대신 가족이 원하는대로 했다.
그렇게하면 지금 남은 가족들이라도,
뿔뿔이 흩어지지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감추는 법을 배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