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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리미 Apr 29. 2024

13. 여자와 엄마 / 오후 12시 05분

우리 엄마 생각나는 밤에

여자와 엄마 / 오후 12시 05분


   이제 막 정오가 지났다. 진통만 다섯 시간째다. 진통은 5~10분 간격으로 진행되었고 호흡은 처음보다 약간 빠르게 코로 들이키고 입으로 내쉬고 있다. 진통이 올 때마다 입술 굳게 닫고 이를 악물어 양쪽 턱 근육이 불끈 치솟기도 한다. 아직 극도의 고통까지는 아닌지 간혹 찡그린 표정으로 웃기도 했지만, 이따금 입술을 오므려 신음을 옅고 길게 내뱉기도 했다. 심호흡을 자주 해 입술이 금세 말라 물을 조금씩 주고 젖은 수건으로 입술이 촉촉이 유지되도록 적셔 주었다. 일반 병원 환자 간호가 아닌 출산을 앞둔 임산부 간호이다 보니 보호자이면서 남편으로서 책임감이 더 크게 느껴졌고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기를 바랐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가중되는 고통은 아내 혼자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고 같이 느끼는 것이 내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면 남편으로서 자격을 의심해 봐야 한다고 평소 생각해 왔기 때문에 오늘 내가 힘든 건 힘든 게 아니었다. 이제 아이는 여자 혼자 낳는 세상이 아니지 않은가.


   KBS 프로그램 중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의 사소한 고민부터 사회 전반적인 문제까지 들여다보고 현장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해 고민 해결을 끌어내는 프로그램으로 거의 매주 빠짐없이 부부 문제가 고민거리로 등장한다. 대부분 오랜 시간 골이 깊어 좁혀지지 않는 부부간 이견이나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남녀 간 생각 차이가 주된 주제다. 다양한 사연들이 많았지만 몇 가지 에피소드는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만한 내용도 많았다. ‘독박육아에 지친 아내’ 편에서는 이미 3명의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넷째를 더 낳자는 남편이 고민의 주제였다. 사연의 주인공은 첫째 출산 후 3개월 만에 둘째를 바로 임신했고 둘째 출산 후 1년 만에 셋째를 임신한 상상만 해도 힘들어 보이는 내용이었다. 임신과 출산은 차치하고서라도 육아마저 오롯이 아내 몫이었고 도와달라는 아내의 말에 ‘넌 아기 엄마니까 엄마가 키워야지’라고 말하는 남편. 그뿐만이 아니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는 고작 60만 원 남짓. 이마저도 어린이 집 비용까지 포함된 금액으로 그 돈 가지고는 세 아이를 먹여 살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며 꺼내 놓기 힘든 이야기에 눈물을 흘리고 방청객들은 공감했다.


   그 외에도 아내가 한창 분만실에서 진통과 사투를 벌일 때 남편은 옆에서 잠을 잤다는 사연, 진통이 몇 시간째 길어지다 보니 분만실에 홀로 아내를 두고 PC방을 다녀왔다는 사연, 제왕절개 수술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셔 일어나지 못하는 남편을 두고 아내 혼자 버스 타고 출산하러 갔다는 사연, 출산 후 아내의 튼 살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는 남편 등 사연들을 접하다 보면 ‘와 저런 사람들도 있구나. 어떻게 저런 생각과 행동들이 가능하지?’ 우린 아직 낳아보지 않았지만, 텔레비전을 보며 함께 분개하고 열을 올리곤 했었다. 지금 이렇게 아내 옆에서 자리 지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그런 에피소드들은 시청률을 위해 다 작가들이 시키고 대본대로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세상에는 아내에게 잘하는 남편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고 있다. 저렇게 극단적인 사례들만 모아놓은 프로그램이다 보니 시청자들이 분개하고 공감을 끌어내야 시청률에 영향이 끼치기 때문일 것으로 이해된다. 다만 저런 사례들을 보면서 분명 남자들도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거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저러지는 말아야지 라는 게 가슴에 남지 않을까. 행동으로 보여주진 못하더라도 미안함 정도는 들지 않을까?


   남자는 평생 절대 느껴볼 수도 없고 가늠도 되지 않는 출산의 고통은 내가 아픈 게 아니라고 관심이 없거나 여자니까 생물학적으로 당연한 것 아니야?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그렇다고 남자이기 때문에 대단한 책임감까지 요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임신부터 출산까지 최소한 옆에서 보고 느끼며 여자들이 얼마나 극한 고통 속에 아이를 출산하는지 남자들은 표정 하나하나 놓치지 말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다행히 요즘은 남자들도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나중에 아이랑 잘 놀아 준다거나 아빠 역할을 잘하겠다고 선언하는 경우가 늘고는 있다고 한다. 물론 아이가 태어나고 아빠와 함께하는 육아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임신과 출산으로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과정은 그보다 더 중요한 순간이고 반드시 함께해 봐야 그것에서 파생돼 느끼는 감정이나 행동들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다다른다고 난 믿는다. 남자들이 임신과 출산을 직접 피부로 느끼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숨소리, 표정, 땀 그리고 긴장되는 결정의 순간과 감정 등 직,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운 순간을 가슴 깊이 새겨보고 느껴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오래전부터 난 아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었다. 


   “언젠가 출산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네 옆에 있을게. 머리채를 잡아도 좋아. 어떤 순간 이어도 옆에 함께 있어 줄 것만은 반드시 약속할게.”


   그래서 그런지 요즘은 분만실 이름도 대부분 ‘가족 분만실’이라고 명칭이 붙어 있다. 출산은 단지 여자 혼자 겪는 것이 아닌 가족이 함께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남편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아내의 출산을 돕는 것, 어찌 보면 이 간단해 보이는 것이 막상 시기가 임박하면 귀찮아하고 여자가 하는 일이라며 내 일 아닌 듯 발뺌하는 남자들. 변화하고 반성하자.


   요즘 변화는 산부인과 병원에서도 발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저 출산 영향으로 단순히 분만 가지고는 유지하기가 힘든 탓에 난임, 불임, 제대혈 등 분만 이외의 클리닉으로 비중을 늘리거나 전환하는 추세다. 심지어 분만실이 없는 산부인과도 많아졌다. 분만실 내부 분위기나 시설에도 변화를 줘 산모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있기도 하다. 이제는 병원도 경쟁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산모들이 찾는 병원으로 탈바꿈해 아늑한 분만실 인테리어는 물론 마사지 서비스, 임산부를 위한 분만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한다. 그럼에도 출산 자체가 줄다 보니 폐업하는 산부인과가 속출하고 있다는 기사도 종종 보게 된다. 인력난도 심각해 저 출산과 함께 이중고를 겪고 있다. 당장 수익이 되는 클리닉이나 조리원 사업은 점차 늘겠지만, 분만실은 줄어 정작 출산하려는 산모는 갈 곳이 없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누군가는 낳지 않으려 하고, 누군가는 낳으려 해도 낳기 쉽지 않은 그런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잠시 과거로 거슬러 당장 우리 어머니들은 어떻게 우리를 낳았을까 생각해 봤다. 당시만 해도 산부인과 병원이라고 해봐야 동네 의원이나 낡은 병원들이 허다했고 분만실도 하얀 타일로 도배된 출산보다는 수술을 위한 공간이라고 보는 게 맞을 정도의 공간에서 우리를 낳았다. 그 차디찬 분만실에서 조명 몇 개에 의존한 채 힘겹게 출산하고, 그마저도 요즘은 당연한 코스지만 출산 후 제대로 된 산후조리조차 받지 못해 영양공급도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즘처럼 쾌적하고 첨단의 '조리원'이란 시설이 그 시절에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탓에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 어머니들은 허리, 다리 통증과 후유증, 골다공증 등 각종 만병질환을 겪으며 그 고통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오신 분들이 많다. 내 어머니가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당시엔 가족 없이 홀로 출산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했고, 남편은 지금처럼 분만을 함께하는 분위기도 아니어서 바깥에서 한없이 기다리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그마저도 걱정하며 기다려주면 고마운 상황이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남편들은 특별한 일이 없음에도 병원에 같이 오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고 하니 육체적인 고통보다 몸서리치는 외로움과 쓸쓸함이 더 했을 것만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 당시에는 순산을 위한 방법이 많지 않았다. 단순히 제왕절개 아니면 자연분만이었다. 배를 절개해 개방하거나 내 힘으로 낳는 거 외엔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냥 참고 견뎌야 했고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었다. 요즘은 너무 흔한 무통 주사? 그 당시에 있었다면 꿈같은 천국의 약물이 아니었을까. 여자니까 아파도 무서워도 홀로 외로이 분만실에 몸을 맡겨 출산하는 게 어쩌면 당신들의 역할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어머니들도 엄마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출산이란 걸 처음 경험했을 텐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지금보다도 그 시절엔 임신, 출산의 연령대도 무척 어렸기 때문에 열아홉, 스물이면 낳는 경우도 허다했다. 결혼했으니 아이 낳는 건 당연했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건 생각도 못하는 시대였고 오히려 못 낳으면 부부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는 시선으로 보거나 남자보다는 모두 여자 잘못으로 치부했다. 애 못 낳는 여자. 그야말로 낙인이다.


   지금은 달라진 시대만큼 출산의 방법도 다양하고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도 많다. 여러 분만법들이 존재한다는 건 달라진 출산 문화를 말하기도 한다. 몇 가지 대표적인 분만법을 소개하자면 양수와 유사한 조건에서 낳는 ‘수중 분만’, 산모의 심리나 육체적 고통을 줄여주는 ‘라마즈 분만’, 서양의 근육 이완 법과 동양의 요가를 혼합해 산모와 아이 모두 편안함을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소 프롤로지 분만’, 태아도 인권을 가진 존재로서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철학적 방법 ‘르봐이에 분만’ 등 종류별로 다양하다. 원하는 분만법이 가능한 병원을 찾고 다양한 후기와 책, 영상을 미리 보고 마음의 준비만 하면 된다.


   시대가 변하면 모든 것은 발전하고 새로운 것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좋은 세상에 사는 우리는 우리 어머니들을 생각해서라도 예쁜 아이를 맞이하기 위한 다양한 정보들을 접하고 아내와 함께 같은 생각으로 머리를 맞대어야 한다.




   진통도 어느덧 여덟 시간이 넘어가니 아내가 조금 더 처지기 시작했다. 나도 달리 하는 것 없이 자리 지키고 옆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도 체력 소진되는 게 느껴졌다. 그사이 두 번째 항생제를 투약했고 진행률은 60% 가까이 지난 상황이다. 그렇게 1시간 정도 더 흘러 아내도 이제 거의 한계에 다다랐는지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고 짧게 숨소리로만 끙끙거리곤 했다. 인내의 순간이 열 시간에 이르렀을 땐 링 위에서 10라운드째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는 복싱 선수처럼 흐느적거렸다. 이곳이 링이고 아내가 그 위에서 비틀거린다면 당장 수건이라도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내는 절대 아이를 위해 맞지 않겠노라 다짐했지만, 극도의 고통 앞에 장사 없었다. 결국 버티고 버티다 무통 주사 효력을 믿어 보기로 했다.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겨우 입만 벙긋대며 내게 사인을 보냈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 바로 간호사를 호출했다. 간호사는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 상태를 체크해본 후 다시 밖으로 나갔다. 잠시 후 간호사는 파란 마스크를 쓴 남자와 함께 의료 도구를 들고 들어왔다. 마취과 담당 의사였다. 잠시 남편은 나가 달라는 요청에 분만실 밖 문 옆에 대기했다. 이럴 때 앉아 있으라고 놓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원형 회전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발로 쓱 밀어 두고 앉지는 않았다. 매 순간이 초조했다. 아침부터 아랫입술을 하도 뜯어내서 더는 뜯어낼 입술도 없어 보였다. 잠시 후 커튼이 걷히고 조금 열려있던 문이 마저 열렸다. 철제 받침대를 손에 든 간호사를 선두로 마취과 담당 의사가 뒤따라 나오고 들어가도 된다는 말 외에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바로 들어가 아내 얼굴부터 확인했다. 이제 평온 해졌을까? 표정만 보면 그렇지 않아 보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허리춤에 가늘고 긴 무통 주사 관을 설치만 했다고 한다. 결국, 그 관을 통해 무통 주사 약물을 주입할 수 있는 준비만 한 것이다. 이유는 아직 자궁 문이 협소한 이유로 무통 주사를 맞을 수 없다는 것. 오히려 허리에 관을 꽂아 두어 허리 통증만 더해졌다는 아내. 희망 사항일 뿐인가. 천국을 맛볼 수 있다는 그 약물은 도대체 언제쯤 느껴보도록 할 수 있는 걸까. 아내는 허탈감에 망연자실해 울기 직전이었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고 어떤 긴 문장으로 위로해도 도움 될 것 같지 않아 조금만 더 힘내 보자는 말만 해 주었다. 언제 볼 수 있을까? 아내의 평온한 눈웃음이 너무 보고 싶어졌다.


   평소 힘든 상황에 직면하거나 고통스러운 일이 발생 돼 그 상황은 절대 피할 수 없고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면 난 스스로 이렇게 마인드컨트롤 한다.


   ‘언제나 그렇듯 지금 이 시간은 지나갈 거야. 그리고 세월이 흘러 오늘을 뒤돌아보겠지. 잘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닌 일일 수 있어. 그냥 지금 이 순간이 굉장히 힘든 거야. 비관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생각이 뒤섞여 있지만, 그 시간을 긍정에 할애하겠어.’


   그러다 보면 어느새 멀리 앞에 있던 시간은 뒤로 멀어져 돌아보게 되고 ‘그땐 참 너무 힘들었었지.’라며 고개 들어 소회 하게 될 날이 오게 된다. 아내와 함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언젠가 이 모든 것이 끝나 먼 훗날 우리 아이와 함께 지금, 이 순간을 떠올리게 될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당장은 아내가 가장 힘든 상황이지만 함께 웃으며 거품 가득 든 맥주 한잔 기울일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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