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두 줄을 두 눈으로 보았다
희열의 두 줄
아내와 난 아이를 갖기 위해 그 누구보다 부단히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은 아이를 갖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냥 결혼하면 당연히 임신하고 아이가 생기는 것으로 생각했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지하기만 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우리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준비가 되고 부부관계만 이루어지면 원하는 시기에 바로 아이가 생기는 줄로만 알았다. 실제 그 시기에 맞춰 준비하고 계획된 것들도 많았다.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나 언뜻 들어본 불임이나 난임은 다른 사람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다. 그 때문에 결혼하고 난 후 초기 1~2년까지는 신혼을 즐기겠노라 우리끼리는 최선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피임을 했었다. 인터넷으로 한 상자 씩 사둔 콘돔으로 1차, 질 외 사정법으로 2차 이중으로 피임 하나는 철저했다고 생각했고 그에 더해 아내의 생리 주기까지 세어가며 반드시 문제가 없다고 판단되는 날짜에만 부부관계에 임했다. 신혼을 적극적으로 사수하기로 한 건 지인들의 입김도 컸다. 아이가 들어서는 순간 둘만의 시간은 이제 없을 것이라 핏대 높인 목소리로 조언이라며 언급했고 집 앞에 차 한잔하러 나가기도 쉽지 않다고 들었기 때문에 아이 생각보다는 당장 신혼이 더 중요했다고 생각했다. 그에 피임은 필수였고 반드시 해야 했다.
우린 결혼하기 잘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결혼 전보다 더 둘이 붙어 다녔다. 지역마다 장거리 여행은 물론이고 가깝게는 매주 주말이나 공휴일마다 새로 오픈했다는 핫플레이스와 쇼핑몰, 맛집 투어는 기본 코스였다. ‘문화생활이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공연, 행사, 전시, 박람회 같은 것들도 섭렵했다. 더운 날이든 추운 날이든 산이며 바다로 전국 각지를 갈 수 있는 곳은 모두 함께 했다. 당연하지만 결혼 후 연애하던 시절보다 둘이 보내는 시간이 더 많기도 했고, 그게 어디든 서로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웃음이 떠나질 않았었다. 아마도 연애 시절처럼 아쉬움에 헤어져야 하는 일이 없어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꿈같은 신혼 생활의 좋은 기억이 많아 전혀 후회는 없다. 아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더하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추억 쌓아가며 세월을 흘려보냈다. 아이 가질 때 되지 않았냐는 양가 부모님의 보이지 않는 압박도 있었지만, 우리도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신혼 3년이 지나가는 해에 본격적인 2세 준비를 시작했다. 나름 몇 개월간 운동과 건강식을 챙겨가며 몸만들기에 돌입했고 남은 콘돔은 서랍 속에 깊이 넣어두고 피임도 중단했다. 비타민에 영양제, 엽산까지 임신 전 갖추어야 할 것들은 모조리 체내로 흡수했다. 그렇게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그로부터 3개월쯤 지나 사무실로 흥분 섞인 반가운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여보세요.”
“오빠? 오빠! 통화돼?”
“아. 나영아. 잠시만….
키보드 소리만 크게 들릴 정도로 사무실이 워낙 조용했기 때문에 아내는 전화 걸기 전 항상 통화가 가능한지 문자를 먼저 보내 확인했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아내는 다급히 전화부터 걸어왔고 평소보다 한층 들뜬 목소리로 들렸기에 나쁜 소식은 아닌 것 같았다.
“응. 이제 말해도 돼.”
“오빠! 오빠! 나 축하해 줘. 그리고 오빠도 축하해!”
“응? 뭔데 그래. 무슨 일이길래 혼자 들떠서 대뜸 축하 인사부터 하는 걸까.”
“기대해! 호호! 너무 놀라지 마.”
“그래 알았으니까 어서 말해봐.”
“글쎄… 내 몸 안에 우리 아이가 찾아온 것 같아.”
“응…? 뭐? 뭐라고?”
“오빠도 알다시피 난 날짜가 정확하잖아. 그런데 분명 그날이 되면 허리 통증부터 슬슬 오기 시작해야 하는데 며칠이 지나도록 편안한 거야. 그래서 혹시나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지난번에 사둔 임신 테스트기로 확인해 봤는데 두 줄이 쫙! 나타나는 거 있지? 나 너무 신기하고 소름 돋아서 나도 모르게 입 막고 소리를 질러 버렸어. 그래서 기쁜 마음에 테스트기를 손에 든 채로 바로 전화하는 거야. 오늘 아침에 밥 먹으면서 나 좋은 꿈 꿨다고 말했던 거 기억하지? 그게 괜한 꿈이 아니었나 봐. 내심 바로 생길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될지는 몰랐어. 임신 테스트기 사진도 보내 줄게.”
아직 화장실 안에 앉은 채 전화를 걸었는지 목소리가 울렸다. 수화기 너머로 흥분된 목소리가 고스란히 전달돼 덩달아 나까지 흥분되었지만, 소리 죽여 차분히 말했다.
“진짜야? 그게 그렇게 바로 알 수 있는 거야?”
“응. 그럼. 정확한 건 병원 가서 검진을 받아봐야 알겠지만 요즘 임신 테스트기 성능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아. 확률이 높 단 말이야. 책에서만 보던 두 줄을 눈으로 확인하니 기분이 너무너무 이상해.”
“우와! 우리 이제 엄마, 아빠 되는 거야?”
“그럼. 당연하지. 오빠가 이제 아빠 되는 거야. 하하하. 내가 엄마라니. 이런 기분이구나. 가슴이 너무 두근거려. 오빤 어때? 좋아? 응?”
지금도 난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전화받고 너무나 놀란 마음에 사무실에 앉아 있다 조용히 탕비실 구석으로 가 전화를 사이에 두고 서로 기뻐했던 그날. 전화 끊고 많은 생각에 잠겼었다. 금세 뜨거워진 눈가엔 눈물이 그렁그렁 하기도 했었다. 기쁨의 눈물이지 않았을까? 지금까지 살아오며 처음 느껴보는 감정. 그런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기분이 너무 좋았고 축하하고 고맙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던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가 생겼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구름 위를 떠다닌다는 기분이 이런 것이라고 하면 맞을까? 굳이 표현하자면 순간 온몸의 혈관이 확장돼 빠르게 피가 돌면서 뜨거워지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르고 내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저릿하기도 했다. 눈 감고 생각만 해도 뜬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고 세상에 없던 날 닮은 아이가 생겼다는 것에 벌써 설레었다. 기쁜 마음에 제일 먼저 어머니에게 전화해 이제 할머니가 된다는 소식을 전했고 동생, 이모, 삼촌들 그리고 지인과 회사 사람들에게도 기쁜 소식 전하며 아이의 존재를 나누었다.
축하 인사들이 오고 가며 모두 내 일처럼 기뻐해 주었고 금세 휴대전화 화면이 가득 찰 정도로 이모티콘 섞인 문자들이 속속 날아들었다. 감사하게도 선물을 보내주기 위해 집 주소를 물어보기도 하고, 이미 아이가 다 커 쓰지 않는 육아용품들도 보내주겠다며 상자에 한가득 담아 마음을 전해오기도 했다. 그간 친구나 동료, 친척들이 비슷한 시기에 앞다퉈 임신 소식을 전해올 때면 영혼 없는 감정으로 의례 ‘잘됐네. 축하해’라고만 툭 던지고 말았던 나 자신이 무척 잘 못했다는 생각에 후회가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