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리미 Apr 24. 2024

9. 출산 휴가 / 오전 10시

당연한 것을 외칠 수 있는 권리

출산휴가 / 오전 10시

   산부인과에 도착해서 진통이 진행된 지 3시간 남짓, 안내 창구에 걸린 화이트보드에는 25%로 바뀌어 있었다. 숫자만 보면 4분의 1가량 진행된 것 같아 인터넷에서 파일 내려 받 듯 금세 100%에 도달하길 희망했다. 하지만 퍼센트마다 같은 비율의 시간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마다 기준이 달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다. 평소 존경하는 회사 유 과장님의 아내는 병원에 도착해 진통 2시간 만에 낳았다며 껄껄 웃으셨고 후배 녀석도 3시간도 채 걸리지 않아 그리 힘들지 않았다고 했다. 주변에 유부남, 유부녀들이 많아 출산 후기를 많이 접해서인지 우리도 산부인과에 도착하면 바로 아기를 보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왜? 3시간이 지나도 이렇게 더디게 진행되는 걸까. 조급해하는 아들 모습을 혹시나 어머니가 봤다면 그깟 3시간도 기다리지 못하냐고 한 소리 하셨겠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순 없으니 지금으로써는 기다리는 것 밖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자꾸만 조급 해가는 마음 다잡아가며 기다리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도 물론 잘 알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통은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산모에겐 무섭고 부담일 수밖에 없다.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 정해진 시간 동안만 고통을 견디면 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시간이 없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래서 이런 기약 없는 고통이 두렵기도 하고 자연분만은 엄두도 내지 못해 정해진 날짜, 정해진 시간에 낳으려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게 아닐까. 문득 제왕절개를 원하는 산모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고 언급했던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자연분만이라는 것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도 있지만 한없이 몇 시간을 기다리고 인내하는 정신적 고통도 힘든 출산 과정이기 때문에 그 과정을 택하기 보다 제시간에 출산할 수 있는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불룩한 아내의 배에 다가가 속삭였다. ‘뚠찬아 엄마 이렇게 고생하는데 너무 힘들게 하지 말고 어서 나와야 해. 혹시 숨바꼭질 놀이하는 거라면 이제 나와도 되니까 씩씩하게 만나자. 아빠가 많이 놀아 줄 테니까 조금 이따 꼭 만나자.’


   배 속의 아이를 몇 개월 동안 ‘아가야’, ‘아가야’ 하고 부르다 예쁜 별명을 만들어주고 싶어 태명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처음 만드는 태명이다 보니 생각보다 신중히 고민했다. 쉽게 생각하고 별것 아닌 것 같았지만 출퇴근 길에도, 잠들기 전에도 고민을 거듭해 생각보다 제법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주변 사람들 말로는 태명은 깊게 고민하지 말고 생각나는 데로 막 짓는 거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다. 첫 아이다 보니 더욱더 그러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요즘 어떤 이름을 짓는지 어떤 이름들이 의미가 있는지 인터넷이나 책을 많이 참고했다. 이름 짓는 것도 아닌데 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참고했고 업무 정리하 듯 에버노트(온라인 클라우드 기반 노트 프로그램)에 하나하나 기록했다. 그중 몇 가지를 추려보니 반복되거나 된소리가 들어가는 단어로 지으면 두뇌발달에 좋고, 가족이 꾸는 태몽이나 계절도 무시할 수 없고, 부모의 바람을 담아 짓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한다. 다 미신 같은 말들로 들렸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는 생각에 참고했다. 엄마처럼 조금 아프다고 엄살 부리지 말고 오로지 건강하게만 태어나길 바랐기 때문에 튼튼 하라는 의미와 힘차게 나오라는 의미를 합쳐 ‘튼찬이’라 지었고 된소리로 귀엽게 불러보니 ‘뚠찬이’가 되었다. 막 지은 거 같으면서도 의미를 부여해 만족스러웠다. 촉박한 일정 내에 결과물을 만들어 낸 것 같은 기분에 뿌듯했다. 결재 받듯 아내에게 의미와 태명을 전달했다.


   “뚠찬이?”

   “응. 어때? 의미도 좋고 부르기 쉽고 괜찮지?”

   “하하. 오빠는 참 별것 아닌 것에 의미 부여한단 말이야. 이거 하나 지으려고 그렇게 오래 고민한 거야? 아무거나 짓자니까 고집스럽긴.”


   핀잔을 주긴 했지만 내심 맘에 들어 하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내 아이인데 신중히 해야지. 또, 앞으로 자주 불러야 할 이름이잖아. 안 그래?”

   “그래. 좋아 맘에 들어. 근데 오빠 되게 웃긴 거 알아? 너무 뿌듯해 하잖아. 나중에 진짜 이름이라도 지어오면 의기양양 하겠어. 하하하.”


   그래도 기특한 것이 아내 배에 가까이 대고 뚠찬아! 라고 부르면 꿀렁꿀렁하며 몸짓 신호를 보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자기를 부르는 걸 아는지 부를 때마다 요동을 쳤다. 우린 아이 반응이 재미있어 그렇게 한참을 불렀다.




   

   늦은 아침까지도 그렇게 어둡던 하늘은 이제 올려다볼 수 없이 눈이 부시도록 이미 해가 높게 자리해 있었다. 이른 새벽, 겨우 뜬 눈에 급히 나와 허둥지둥 정신없기도 했고 병원 접수와 입원 절차까지 마치고 나니 이제 조금 한숨 돌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제부터는 기다리는 시간만 남아 아내에게 이야기해두고 잠시 병원 밖으로 나왔다. 급히 움직인 터라 미처 회사에 연락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고, 침대에 누워 꼼짝 못 해 힘들어하는 아내에겐 조금 미안했지만 잠시 바깥바람을 쏘이고 싶기도 했다. 이미 출근 시간대는 훌쩍 넘긴 시각이지만 회사에 연락하지 않으면 업무 차질은 물론 팀원들까지 피해가 갈 수 있고, 아직 출근하지 않아 지금 내 책상이 빈자리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평소 시간약속을 강조하고 정해진 규칙과 기준은 철저히 지키라고 누누이 말씀하시는 부장님이기 때문에 서둘러 연락해야 했다. 업무만큼은 차가울 정도로 냉정하시지만, 출산이라는 긴박한 순간이니 만큼 잘 말씀드리면 이 상황을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했다. 뒷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지문을 인식하고 초록색 수화기 모양 아이콘을 눌렀다.


   “부장님. 저 이 팀장입니다.”

   “아 이 팀장… 아직 출근하지 않은 것 같던데 무슨 일 있어요?”


   내 책상과 시간을 확인하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하는 것 같았다.


   “네 부장님. 저 다름이 아니라 일찍 연락 드렸어야 했는데 정신없이 바로 병원에 오느라 이제서야 연락 드렸습니다. 죄송합니다.”

   “병원이요? 어디 아픈가요?”

   “아. 그게 아니고 아시다시피 제 아내가 임신 중인데 아직 예정일은 아니지만, 갑작스레 새벽에 진통이 시작되어 급히 산부인과 병원에 와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음… 그럼 오늘은 출근이 힘들겠네요?”

   “네 아무래도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부장님”

   “그래요. 음… 아내 옆을 지켜야 하니 당연히 그래야 되겠네요. 그러면 이 팀장, 병원에 있는 사람에게 묻기 좀 그렇지만 확인은 해야 하니 하나만 물어봅시다. 잠깐 통화 가능해요?”

   “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부장님”

   “음… 지금 진행 중인 OO 사이언스건 디자인 시안은 일정대로 이번 주까지 가능하겠죠?”


   예상대로 업무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그가 익숙하면서도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차가운 말투로 빈정대는 듯한 언어 구사가 그 다웠다. 물론 서운한 감정은 없었다. 전화를 걸면서부터 어느정도 예상하기도 했고 오히려 걱정해주고 축하 받는 것이 더 낯설기 때문이다.


   “아… 저… 그게 출산휴가를 쓰게 되면 차주에 완료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정을 조금 조정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OO 사이언스 측에는 일정조절 관련해 제가 전화를 해 놓겠습니다.”


   나라에서 규정해 놓은 법으로 보나 회사 규정의 사규로 보나 내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로 사용할 수 있는 출산휴가지만 조아리며 배려를 바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씁쓸했다.


   “출산휴가요? 그래요. 출산휴가 써야죠. 아이와 아내를 위해서라도 써야죠. 음… 그런데 말이죠. 이 팀장, 지난달에도 병원 간다는 이유로 연차와 반차로 인해 하루 이틀 밀리다 클라이언트에게 좋지 않은 피드백으로 돌아왔던 거 기억하시죠? 클라이언트들은 출산휴가나 연차를 사유로 너그럽게 이해해 주지 않습니다. 또, 단순히 클라이언트 일정만 양해를 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제반 사항들이 많이 있어요. 개발 기간, 마케팅 일정, 제휴사와 협력업체 조율 등 틀어지는 일들이 하나둘이 아닌 거 그 누구보다 이 팀장이 잘 알지 않습니까. 지금 사내 대체 인력이 없는 상태에서 잦은 일정 문제를 유발하게 되면 이 팀장 뿐 아니라 저를 포함해 모두에게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요즘 우리 회사 매출상황 말 안 해도 아시잖아요.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최소한 급여만큼은 정상적으로 나오는 상황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출산휴가 물론 써야죠.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건 저도 동의합니다. 요즘 세상에 출산휴가 쓰지 말라고 하는 회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랬다가는 큰일 나는 세상입니다. 다만 할 건 하고 타 부서에 피해가 없는 한도 내에서 그 권리가 정당하고 모두가 이해 가는 상황이지 않을까요? 아. 물론 강요는 아닙니다. 모두의 입장을 고려해 보자는 취지로 말하는 거에요.”


   그래서 출산휴가를 쓰라는 건지 쓰지 말라는 건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부장님의 말은 대부분 맞는 말이었다. 한창 회사 성수기에 중요 프로젝트들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내가 빠지면 일정이 미뤄지거나 누군가가 내 몫의 일을 더 해야 했다. 길고 긴 설교로 느껴져 부장님의 말 하나하나가 너무 듣기 싫었지만, 구구절절 맞는 말들이었다. 반박할 수 없는 말 들로만 쏘아붙였다. 평소 언변이 워낙 뛰어난 분이다 보니 틀린 말도 맞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분이시다. 내겐 출산이라는 것이 인생의 커다란 영향을 주고 전환점이 되기도 하겠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남의 사생활 중 하나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뭘 그리 대단하게 바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당하게 출산휴가 쓰겠다고 큰소리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순 없었다. 너무나 큰 죄를 진양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양해를 구할 뿐이었다.


   “네 맞습니다. 부장님. 하지만 조금 있으면 아내가…”

   “그래요. 모두가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고 축복 속에 태어난 아이를 위해 우리가 또 이렇게 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도 아이가 둘이나 있고 누구보다 아이 아빠들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응원합니다. 하지만 저 때는 출산휴가라는 단어조차도 언급할 수가 없었어요. 요즘은 세상이 좋아 나라에서도 출산휴가를 종용하는 것 같은데 아직 현실은 그렇지를 못합니다. 출산휴가를 쓰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업무에 지장이 있을만한 급한 프로젝트는 마무리하고 사용하는 게 어떨까요. 이번 프로젝트만 마치고 이후에 출산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는 취해 놓겠습니다.”


   출산 전후 힘들어하는 아내 옆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남자들의 출산휴가 목적과 의미 중 하나인 것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사용 하라니 답답함에 한숨이 나왔지만, 별다른 소리를 낼 순 없었다. 잠깐 고민 후에 다시 한번 사정했다.


   “죄송합니다. 부장님 이번 한 번만 양해해 주시면 회사로 돌아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회사 팀원들과 클라이언트에게는 제가 잘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일정에 문제없게 하겠습니다. 매출에 지장 없도록 하겠습니다. 아내 옆을 지킬 수 있도록 다시 한번 고려해 주세요.”


   그간 회사 내에서는 군소리 없이 부장님 말에 따랐겠지만, 오늘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약간 강한 어조로 약간은 차갑게 다시 한번 양해를 구했다. 평소 들어보지 못했던 목소리 톤에 약간 당황하는 것 같았다.


   “음… 지난번처럼 클라이언트에게 좋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거나 늦어지는 일정으로 인해 회사 신뢰가 깎이지 않도록 해주세요. 밤을 새워서 반드시 끝내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알아서 일정 맞출 수 있도록 하세요. 한번 잃은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습니다. 명심하세요. 아… 늦었지만, 곧 아버님이 되시는 것 축하합니다. 그리고…”


   오른쪽 귀가 뜨거워져 있었다. 한참 동안 설교를 들어야 했고 끝날 줄 모르는 그의 목소리는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데 마력이 있었다. 1층 복도 통유리에 비친 내 얼굴은 사우나에서 막 나온 사람처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한쪽 귀로 직장 상사의 가르침이 끊임없이 들려왔고 목구멍으로는 욕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꾹 눌러 참고 있었다. 예상했던 반응이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것이 날 더 허탈하게 만들었다. 아니 예상했던 반응을 훨씬 뛰어넘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기도 했고 아내 옆에서 신경이 곤두서 있다 보니 여느 때보다 더 견디기 힘든 통화였다.


   “아… 네네. 알겠습니다.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 주엔 꼭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부장님…”


   잠시 그와 입장 바꿔 생각해 보았다. 내가 부장님 위치라면 부하직원의 출산을 기쁘게만 맞이할 수 있었을까? 산재한 업무와 대표님으로부터 매출 그래프를 앞에 두고 쉽사리 축하의 말로 출산휴가라는 나름 긴 시간의 부재를 허락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해하자. 그래. 이해하자. 그냥 이렇게라도 부장님을 이해해보려 노력했다. 이해 안 하면 또 어쩔 것인가. 앞으로도 얼굴 마주치며 함께 일해야 할 사람이 아닌가. 무언가 목구멍 언저리까지 쓰디쓴 게 올라오는 것을 있는 힘껏 삼켰다. 모두를 위해 참아야 했다.


   그렇게 길고 긴 통화를 마쳤다. 긴 마라톤을 마친 기분이었다. 생각과는 다른 말을 뱉어내며 나도 모르게 두 손은 오른쪽 귀에, 허리는 90도로 굽어 있었다. 아직 찬 날씨임에도 아까부터 등에 흐르는 식은땀은 마를 줄을 몰랐다. 한숨조차 나오지 않았다. 가슴이 시려 왔다. 나름 며칠 밤을 지새워 가며 최선을 다한 디자인 시안을 삐딱한 고개로 내려보며 두 손 모은 내게 궂은 소리를 늘어놔도, 수당도 주지 않는 주말에 나와 조금 일찍 퇴근 준비했다는 이유로 핀잔을 들어도 이렇게까지 서럽지 않았었다. 깊은 생각에 눈물이 차올라 흐를 것만 같았지만 편히 울 수 없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껌뻑 거리며 기어 나오려는 눈물을 넣어보려 했다. 스무 살 남짓 군 전역 시절 번쩍이는 부대 마크를 가슴에 달고 철문을 나오며 이제 무슨 일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다짐했던 때가 떠올랐다. 군 생활보다 힘들고 더 한 것이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야 한숨이 길게 나왔다. 후우-. 가장이라는 무게가 어깨로 조금 느껴졌다.


   ‘선우야 힘 내야지. 고개 들고 어깨 펴고 이 정도에 무너지면 안 되잖아. 그냥 자존심 조금 상한 것 뿐이야.’

그래, 아직 아내가 저 위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다. 뚠찬이도 엄마, 아빠를 만나기 위해 안간힘을 내고 있을 것이다. 한 소리 조금 들었다고 내가 울거나 비참해 하면 안 되는거다. 자존심은 결코 가족을 담보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내 심정을 아는지 위로해 주듯 늦겨울 바람이 불어 이마와 등에 흐르는 땀을 식혀주어 고마웠다. 다시 정신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어 병원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눌렀다. 벽에 붙은 거울을 보며 억지로 최대한 환하게 웃음 지어 보았다. 씩-. 그리고는 거울 밑 노란 문구를 보고 힘을 얻는다. ‘아빠! 오늘도 힘내세요!’


   분만실로 올라가자마자 화이트보드부터 확인했다. 50%. 많이 왔다. 그래 이제 절반이다. 버릇처럼 손부터 소독하고 들어가 보니 먼저 온 산모들이 이미 여럿 출산한 후라 처음 왔을 때보다는 다소 조용했다. 아까와 달리 간호사도 두 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른 아침엔 당직자와 교대 자가 함께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처음에 도착하자마자 자궁에 존댓말 해가며 안내해 주던 간호사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밥보다 더 좋아하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라도 손에 들고 들어가고 싶었지만, 생각에만 그쳤다.


   “나영아 나 왔어. 좀 어때? 아직 많이 힘들지?”

   “응… 좀. 그래도 조금 전보다는 견딜 만해. 되게 많이 아플까 봐 무서웠는데 참다 보니 생각보다 견딜 만하네.”


   간간이 인상을 쓰면서도 애써 괜찮다고 미소 띄우며 말하는 모습에 진짜 내가 알던 겁쟁이 아내가 맞나 다시 한번 들여다봤다.


   “그런데 오빠 회사에는 전화 했어?”

   “응. 그러잖아도 조금 전에 하고 왔어. 부장님이 축하한다고 하시면서 예쁜 아이 순산하고 아내 옆에서 잘 보살펴 주라고 하시네. 출산휴가도 잘 이야기해서 이번 주는 내내 너와 함께 할 수 있어. 좋지? 그러니까 지금은 아무 걱정하지 말고 힘내서 우리 뚠찬이 어서 만나자.”


   평소 부장님의 성격이나 성향, 언행을 잘 아는 아내는 내 말이 거짓인 걸 느꼈는지 더는 묻지 않았다. 어쩌면 내 표정에서 벌써 드러나 버렸는지 모르겠다. 임신 중에도 아내 병원 문제로 회사에 여러 차례 연차를 낸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한 소리 듣거나 눈칫밥 먹기 일쑤였다. 어쩌다 제시간에 퇴근할 때도 부장님이 자리 비운 틈을 타 도망치듯 해야 했고, 그마저도 밤이 되면 장문의 잔소리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그 문자를 아내가 여럿 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부장님이 이런 갑작스러운 남편의 부재를 흔쾌히 기쁨으로 대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힘들게 가진 아이이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웠다. 병원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꼭 데려다 주고 출근해야 마음이 편했다. 그런 탓에 지각도 빈번했다. 아이를 가졌다는 것이 죄나 범법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눈칫밥을 먹는 건 이제 여자들 뿐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현실적인 고민임에는 분명했다. 세상의 인식이 바뀌려면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이제 출산휴가는 여자들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사용해야 한다. 육체적으로는 여자가 낳지만 출산은 둘이 함께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잘 낳았어?’라고 전화 한 통화나 문자 하나 만으로 취급하기엔 그 무게가 여자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크다. 출산휴가는 눈치 보는 게 아니라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고 그에 맞는 제도적 장치가 분명 절실해 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