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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리미 Apr 23. 2024

8. 아내와 자전거

아내에게 일일코치 되기

아내와 자전거

   며칠 동안 내린 장대 비로 하늘이 어두웠다. 그런 탓에 꽤 오랫동안 쾌청한 모습 한번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유난히 날씨에 따라 감정 기복이 심하던 난 그 덕에 며칠째 가라앉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걸 보상이라도 해주듯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눈 부신 햇살에 하늘도 깨끗하고 누군가 방금 막 칠해놓은 것처럼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집에만 있기엔 날씨가 너무 ‘맑음’ 그 자체였다. 선선한 바람에 눈썹이 간질거렸다. 빗물에 거리도 깨끗했고 꽃잎들은 대부분 흐드러져 도로 곳곳이 노랑, 초록, 빨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만 보더라도 어느새 시꺼먼 롱 패딩은 온데간데없이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어 계절이 느껴질 만큼 포근하고 따뜻했다.


   아직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기꺼이 트레이너 노릇을 하기로 한 오늘, 각자 회사에 일찌감치 반 차를 제출하고 만나기로 약속했고 내가 조금 먼저 도착해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서워서 절대로 못 탄다면서도 오랜만의 야외 데이트라 기분전환도 하고 이번 기회에 꼭 한번 배워보고 싶다고 했다. 강하게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쳐 주겠노라고 약간 겁은 주었지만,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우고 탄다는 생각에 어린이날을 앞둔 어린아이 심정으로 어젯밤부터 아침까지 들떠 있었다. 그사이 멀리 헐레벌떡거리며 하회탈 웃음으로 뛰어온다.


   “오빠! 하아. 하아. 나왔어. 오래 기다렸지? 헤헤”


   아내는 팔짱 끼며 멋쩍게 웃었다.


   “뭐야. 배우러 오는 사람이 먼저 준비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되는 거 아니야?”


   신혼의 힘인지, 함께 자전거 탄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은 내가 더 좋았지만, 괜히 투정 섞인 말투로 반응했다.


   “일찍 나오려고 급하게 업무 마무리하고 화장도 고칠 새 없이 달려 나왔단 말이야. 지하철은 평일인데도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지 몇 번 보내고 타느라. 미안해. 화났어?”


장난으로 투정 부렸는데도 너무 미안해하는 모습에 용서하듯 턱을 들고 말했다.


   “좋아 오늘만 봐줬다. 준비는 됐지?”

   “응!”

   “그런데 진짜 지금까지 자전거를 한 번도 제대로 배우지 않았던 거야?”

   “응, 그냥 자전거에 몇 번 앉아 있어만 봤지, 나 혼자서 올라타 발을 구르거나 제대로 타본 적은 한 번도 없어. 회사 사람들이나 친구들 얘기 들어보면 대부분 아빠가 가르쳐 주신다는데 난 그런 기억이 전혀 없어. 막연히 배워보고 싶기는 했지만, 용기도 없었고 내가 자전거 탈 일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그냥 지나쳐 왔던 것 같아. 어쩌면 오늘 오빠한테 배우라고 그동안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닐까? 훗.”

   “음… 왜 전 남자친구들이 가르쳐 주지 않았을까나?”

   “피- 자꾸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거야?”

   “하하 아니야. 장난. 장난.”


   참으로 오랜만에 오게 된 여의도 광장. 유년 시절, 내게 자전거 하면 무조건 이곳 여의도였다. 지금은 ‘여의도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시설이나 조경도 잘 조성되어 있지만, 그 당시에는 공원이 아닌 아스팔트만 길고 넓게 깔려있고 시야도 탁 트여 자전거 타기에 그만한 장소가 없을 정도로 최적이었다. 오죽하면 뉴스에서는 오늘날까지 여의도 면적에 빗대어 크기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사용될 정도로 규모가 컸다. 나 역시 아버지에게 자전거를 이곳에서 배웠고 청소년기 친구들과 자전거는 물론 농구나 롤러스케이트도 타던 곳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자전거는 당시 최고의 놀이기구였고 저렴한 가격에 즐기기에는 최고인 곳이었다. 그 사이 자전거는 세월만큼이나 많이 다양하게 변해 기어가 15단이나 되는 것도 있고 두 명이 탈 수 있는 2인용 자전거와 커다란 바퀴가 3개 달린 자전거도 생겼다. 그 외 미니벨로, MTB, 다운힐, BMX 등등 이름도 다양한 자전거가 많아졌다.



   그중에 가장 무난히 가르칠 수 있는 것으로 아내 골반 위치 정도 높이에 엉덩이가 편하도록 넓은 안장이 있는 자전거를 선택했다. 바퀴는 조금 큰 것이어야 했고 보조 바퀴는 없었다. 색은 중요하지 않았지만,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핑크 보디에 갈색 안장으로 된 것을 골라 앞바퀴에 달린 플라스틱 바구니에 아내 가방을 넣어두었다.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자전거에 올라앉는 데만 몇 번을 기우뚱했는지 제대로 설 수 있을 때까지 한참이 걸렸다. 쓰러지지 않도록 뒷바퀴 쪽에 달린 보조 안장을 힘주어 잡은 채로 아주 서서히 밀기 시작했다.


   “뒤에서 꽉 잡고 있으니까 왼쪽 페달에 발을 올려 두고 오른발로 바닥을 힘껏 밀면 되는 거야. 그리고 재빨리 오른발을 오른쪽 페달에 올리고 힘껏 구르기만 하면 돼. 구르는 속도는 늦추지 말고 일관된 힘으로 왼발, 오른발 번갈아 가며 페달을 밀어야 자전거가 쓰러지지 않아. 알았지? 왼쪽으로 가고 싶으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가고 싶으면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돼. 브레이크는 손잡이 아래에 있는 것을 주먹 쥐듯 잡으면 되고, 오른쪽 왼쪽 모두 다 있지만 되도록 왼쪽을 사용하도록 해. 이 자전거는 왼쪽 브레이크가 조금 더 잘 제동이 되는 것 같으니까. 갑자기 꽉 잡으면 넘어질 수 있으니까 이렇게 살짝만 잡아도 자전거가 멈추게 될 거야. 그리고 천천히 기울어지는 쪽의 발을 바닥에 내려놓으면 돼.”


   이해하고 잘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신난 표정으로 끄덕였다. 그렇게 짧게 이론을 설명하고 본격적인 실습에 돌입했다.


   “이렇게?”

   “그래 좋아. 발 밑은 보지 말고, 앞을 봐야 해. 되도록 시야를 넓게 보고, 가야 할 방향 확인하고, 발은 계속 구르는 거 잊지 말고. 그렇지! 그렇지!”


   처음엔 몇 발씩 구르다 서기를 반복했다. 잘 안되는지 얼굴 붉히며 낑낑거리긴 했지만 그래도 천천히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얼마나 탔을까? 오기가 생겼는지 한참을 자전거와 씨름했고, 난 뒷바퀴 안장을 잡으며 계속 따라다녔다. 조금씩 기울어지기도 했지만, 바닥에 발을 딛지 않는 횟수가 늘어났고 점차 앞으로 잘 나아갔다. 어느덧 조금씩 속도가 붙는 것을 확인한 후 ‘이때다’ 싶어 잡고 있던 자전거를 살짝 놓아 보기로 했다. 쓰러지려는 자전거를 계속 힘껏 잡고 있어서 손이 아프기도 했다.


   “나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아까보다 훨씬 오래가는 것 같지 않아? 바람이 너무 시원해. 오빠? 잘 잡고 있는 거지?”

   “응 그럼. 아주 좋아. 잘하고 있어. 그 페이스 꼭 기억하고 그대로 나아가면 돼.”


   거리가 벌어지다 보니 조금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아내는 뒤에서 잡고 있다는 생각에 혼자 제법 멀리까지 페달을 저어가며 멀어져 갔다. 생애 처음 자전거를 혼자 타는 순간이었다. 뿌듯했다. 그렇게 넘어질 듯 넘어질 듯 잘 가던 아내는 아무 대답이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멀리 있는 나를 확인하자마자 핸들을 급격히 꺾었고 자전거와 함께 옆으로 기울어지며 벌러덩 넘어져 버렸다.


   “아야-”


   넘어질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너무 큰 궤적을 그리며 나동그라지는 바람에 놀라 바로 달려갔다. 다리에 얹혀 있던 자전거를 치워두고 어깨를 잡아 일으켜 앉혔다.


   “괜찮아?”

   “아파. 아파. 너무 아파~. 계속 잡고 있겠다며 그냥 놓으면 어떡해. 나 너무 놀랐단 말이야.”


   겉으로는 살짝 긁힌 자국만 보여 괜찮아 보였지만 넘어지며 놀라서 그랬는지 일어나려다 다시 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어버렸다. 어쩌면 믿고 있었던 사람에게 당한 기분이 들어 서러워 우는지도 모르겠다. 다 이렇게 하면서 배우는 거라며 토닥여 보았지만 한참을 서럽게 눈물을 훔치더니 양 팔꿈치를 흔들어댔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 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표정만큼은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달래고 달랬다. 


   그 뒤로 그렇게 해가 질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하며 자전거를 타더니 자신감이 붙었는지 이젠 잡지 말라며 혼자 나아가기도 했다. 방향 전환은 아직 미숙했지만, 직진만큼은 감을 잡아 꽤나 멀리 나아가기도 하며 함박웃음에 기세 등등 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뭐 좀 먹을래?”


   한참을 자전거에 몰두하는 아내가 허기질까 먹는 얘기를 꺼냈더니 위아래로 격렬하게 고개를 흔든다. 걸어가는 길에 아까는 괜찮아 보였는데 다시 보니 다리를 살짝 절뚝거렸다. 바지 밑단을 올려 확인했다. 무릎은 벌겋게 긁히고 종아리 바깥쪽에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멍이 푸르게 변해 있었다. 꽤 아팠을 것 같은데 참아가며 자전거를 타다니, 미련해 보이면서도 끝까지 배워보려는 모습이 예뻐 보였고 기특했다. 서둘러 근처 매점에서 사발면과 김밥을 먹이며 다리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그새 더욱 붉고 파랗게 올라온 상처는 넓은 부위까지 범위가 늘어나 있었다. 그래도 재미는 있었는지 아픈 줄도 모르고 탔다는 아내. 밴드를 붙이다 상처를 건드리니 라면을 입에 잔뜩 머금은 채 또 울먹이려고 했다. 자전거는 다 그렇게 타는 거라고 재차 말하기는 했지만 미안했다.


   작은 상처나 멍에도 금세 젖는 눈을 보면 여성스럽기도 하고 여린 어린아이 같아 보호 본능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내의 그런 모습이 순수해 반한 것도 있긴 하지만 걱정도 돼 잔소리도 많이 했던 것 같다. ‘건널목 건널 땐 차가 오는지 좌우를 꼭 살펴보고 건너라’, ‘버스는 완전히 정차하고 문이 열리면 천천히 내려라’, ‘길 건너 멀리 내가 보이더라도 뛰어오지 말아라’, ‘비가 많이 올 땐 슬리퍼를 신지 말아라’, ‘지하철 탑승할 때 무리하게 타지 말아라’ 같은 어린아이에게나 할 법한 잔소리를 여러 번 늘어놓기도 했다. 그런 내 마음을 잘 아는지 불평 하나 없이 알았다며 내게 의지를 많이 하는 아내. 천생 여자이면서도 해야 할 건 해내는 모습이 안심되기도 했다.


   “이렇게 상처 나고 다쳤는데 다음에 또 타러 올 수 있겠어?”

   “응. 다친 곳이 조금 아프긴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 사람들이 왜 자전거를 타려고 하는지 이제 알 것 같아. 이렇게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처음 느껴보거든. 내가 두 발을 저어 그 기분을 직접 느끼니까 기분이 너무 좋아. 자주 나오자 우리. 오늘처럼 나 잘 탈 수 있도록 도와줄 거지?”

   “그래. 오늘은 내가 잡아 주느라 같이 타지는 못했지만, 다음에 더 연습해서 오빠랑 같이 나란히 달려보자.”

   “응!”


   겨우 반나절이었지만 가르치고 붙잡아주고 신나게 달리다 또 다칠까 노심초사해서 그런지 긴장이 풀리며 기운이 쭉 빠졌다. 자주 나오자는 말에 잠깐 고민했지만, 점차 나아지리라는 생각에 미소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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