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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리미 Apr 22. 2024

7. 고통의 연속 / 오전 7시 10분

내가 할 수 있는게 별로 없다

고통의 연속 / 오전 7시 10분

   이제 곧 본격적인 분만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출산 후 머무를 수 있는 병실을 미리 배정받아야 했다. 1인실과 2인실 두 곳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한다. 아무래도 1인실은 비용을 더 지불해야 했지만, 출산 후 안정과 건강을 우선으로 생각했고 다른 산모와 가족들이 들락거리는 것이 휴식에 방해가 될 것 같았다. 돈 아끼지 말고 이럴 때 쓰라고 버는 돈이라는 생각에 1인실을 선택했다. 답사 차원에 미리 배정받은 병실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복도 끝으로 병실이 세 개 보였다. 신발을 벗고 병실 입구에 다다르니 대량구매 인지 협찬을 받은 것인지 분만 대기실과 같은 소독 용품이 곳곳에 비치돼 있었다. 


   아직 출산한 임산부가 없어 한 층 복도 전체가 조용했다. 801호를 지나 802호 표찰 밑에 아내 이름이 흘려 쓰여 있었다. 미리 받아둔 열쇠로 병실 문을 천천히 열고 머리부터 들이밀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잠시 후면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가 이곳으로 온다는 생각에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라고 약간 들리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창가 쪽 블라인드를 슬쩍 젖혀 내려다보니 8층 높이라 전망은 좋았다. 저 멀리 남산 타워도 조그마하게 보였다. 병실에는 머리와 다리 쪽이 접히는 버튼 식 침대와 작은 냉장고, 바닥에 놓인 슬리퍼까지 이제 곧 태어날 아기를 위해 모든 것이 청결해 보였고 이불과 베개에 주름 하나 없었다. ‘잠시 후에 이곳에서 아빠랑 엄마랑 만나자.’ 혼자 미소 지으며 흐뭇하게 창 밖을 내려다보았다. 


   오전 8시 5분. 이미 표정으로 한껏 느껴지는 아내의 진통은 내 표정도 같이 일그러질 만큼 아픔이 전해졌다. 간호사는 때가 되었다는 판단에 자리 이동을 지시했다. 분만을 위해 이곳 간이 대기실에서 분만실로 이동해야 했다. 간호사는 아내 몸에 붙은 패치 선들을 제거해 주고 분만실을 가리켰다. 팔뚝에는 여전히 링거를 꽂은 채 천천히 아내를 일으키고 부축했다. 아내 휴대전화를 챙기고 링거 거치대를 끌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분만실 입구엔 ‘가족 분만실 2’라고 표찰이 붙어 있었다. 부지런한 간호사는 어느새 아내 이름을 표찰 옆에 끼워 놓았고 아내 이름과 ‘39+’라는 숫자가 함께 기록돼 있었다. 아마도 임신 39주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닫이문을 왼쪽으로 밀고 들어갔다. 아파트 작은 공부방 하나 크기의 규모로 간이 대기실에서 사용하던 것보다 약간 큰 침대와 발 밑 쪽 벽에 걸린 커다란 TV, 보호자도 쉴 수 있는 낮은 보조 침대와 회전의자 그리고 침대 옆 작은 탁자가 전부였다. 탁자 위 디지털 온도계 숫자는 아기가 태어나기에 적절한 온도로 맞춰 놓은 것이라고 간호사가 나가며 말해줬다. 다소 아담한 공간이었고 조명은 약간 어두웠다. 처음부터 어두운 조명을 설치한 것이 아닌 빛 조절이 가능한 것이라는 걸 출입문 옆에 작은 전구 그림이 그려진 조그셔틀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주광색 조명 덕분인지 실내는 은은하고 아늑함이 느껴졌다. 이곳이 과연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아기를 낳는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최대한 산모들이 편안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잘 꾸며 놓았다. ‘이런 곳에서 아기가 태어나는구나.’ 난생처음 보는 분만실을 둘러보니 그저 차가운 수술실 같을 거라는 생각은 선입견에 불과했다. 병원마다 시설은 다르겠지만 시대 흐름에 따라 많은 변화를 주려는 느낌도 들었고 저 출산 시대에 산모 모시기 경쟁이 붙어 그런지 시설 투자도 제법 되었다는 게 눈으로 보였다. 아무래도 출산이란 걸 처음 겪는 것이다 보니 사소한 것 하나하나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해 두리번거리기만 했다.



   분만실로 이동하자마자 간호사는 아내의 오른팔에 수액을 꽂고 항생제도 투여했다. 수액은 일반적으로 보충의 역할도 하지만 그보다 갑작스러운 응급 상황 발생 시 혈관확보를 위해 투여하는 것이 목적이기도 하다. 항생제는 모체 감염 즉, 산모의 생식기나 비뇨기관 감염이 발생할 때나 임신과 관련된 합병증이 있을 때 아기와 산모의 감염을 줄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투여하게 되는데 보통 1~3회 투여하게 된다고 한다.


   아내는 점차 고통이 더해지는지 조금 전보다 더 힘들어하는 표정이다. 그럴 때마다 난 덩달아 마음이 조급해졌다. 가만히 분만실에 앉아 기다리다 보니 우리보다 먼저 온 산모들은 그렇다고 해도 뒤에 온 산모들이 먼저 가족 분만실에 입장해 분만을 시도하는 것을 옆 방 소리로 알 수 있었다. 다른 산모들은 미리 준비한 것처럼 빠르게 분만하는 것 같은데 우리만 느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힘들어하는데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니 답답하기만 했다. 조용히 한숨 쉬다 안내 창구 쪽으로 나가 화이트보드를 들여다보았다. 15%. 아내 이름 옆에 10%였던 숫자가 조금 올라가 있었지만, 그 오름세가 더디다 못해 이대로 멈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사이 간호사들은 비정기적으로 번갈아 가며 아내 상태를 살피기 위해 다리까지 덮인 이불을 들춰 손을 넣어 만져보고 들여다보았고 그때마다 표정 하나 없이 확인하고 나가길 여러 차례 반복했다. 답답함에 다녀갈 때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물어보았지만, 조금 더 기다려야 된다는 답변만 반복했다. 간간이 묻는 말에 답변하던 아내도 힘에 부쳤는지 신음소리와 거칠어진 호흡만 내내 뱉어냈다. 말수도 많이 줄었고 식은땀을 많이 흘렸다. 아내 상태를 확인하려 조용히 말을 걸었다.


   “나영아. 많이 힘들지.”

   “…”

   “목 좀 축일 수 있게 물 좀 줄까?”

   “……”


   당연히 힘들고 입술은 건조하고 목이 마르다는 걸 알고 있지만 뭐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다. 힘든 사람에게 힘드냐고 묻는 것이 바보 같은 질문인 걸 알면서도 눈치 봐가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너무 견디기 힘들면 말해. 간호사 불러 줄게. 그때 말한 거 그거 해보자.”

   “………”


   산모들의 극한 고통을 줄여주고 천국으로 인도한다는 신비의 약물 일명 ‘무통 주사’라는 게 있다는 걸 우린 알고 있었다. 사람들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출산 과정에는 대부분 아픔과 고통이 따른다. 그런 탓에 출산을 두려워하는 산모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어쩌면 아픔과 고통은 출산 과정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출산 시 고통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크기나 규모, 범위마저 알 수 있는 기준이 없다. 종이에 손이 베이거나 짧게 깎은 손톱 밑 살갗이 쓸리거나 가구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이 부딪히는 것 같이 어느 정도 가늠할 만한 상황이나 비교 군이 없다. 이에 말 그대로 통증을 사라지게 해 준다는 주사는 유혹이 일 수밖에 없고 반대로 그런 게 있다는데 맞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무통 주사는 척수 신경 막 사이에 관을 꽂아 진통제를 투여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척추 일부분을 마취하는 거라 보면 된다. 하반신의 감각 신경만 마취되는 것이고 혈관주사도 아니어서 태아에게도 영향을 주지도 않는다고 한다. 주사를 맞으면 완전한 고통 해방까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고통을 완화해 주고 분만 시 힘을 주기에도 크게 무리가 없다 보니 산모들이 선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제왕절개 시 마취를 위해 사용되는 약물과 같아 안심해도 된다. 다만 주의할 점이 있다면 혈압을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어 저혈압인 산모는 주의해야 하고 경련 같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고통스럽다고 무조건 투여하는 행위는 자칫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런 걸 알기 때문에 아내는 되도록 무통 주사를 투여하지 않는 분만을 원했었다. 하지만 점점 힘에 부치는 아내 모습을 몇 시간째 지켜보다 이대로 안 되겠다 싶으면 간호사에게 그 주사를 놓아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탁자 위에 놓인 티슈를 뽑아 땀에 젖은 얼굴을 가볍게 톡톡 눌러 주었다. 아직 15%밖에 진행되지 않았고 자궁 문도 1.5~2센티미터밖에 열리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나 걸릴지는 산모의 몸 상태와 아이에게 달려 있다고 하니 사실상 지금으로서는 자궁문이 원활히 열리기도 해야 하고 아이도 나오려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 그저 대기, 대기, 또 대기였다. 시계를 보니 흘러간 시간 대비 진행이 너무 지지부진했다. 고통스럽겠지만 진통도 어느 정도 진행이 돼야 했다. 진통은 자궁이 수축과 이완되는 과정으로 아기가 나올 수 있도록 골반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래서 진통이 약하거나 규칙적이지 않을 때 투여하는 약물도 있다. ‘옥시토신’이라고 불리는 것을 투여하게 되는데 보통 분만을 유도할 때 사용하며 이를 ‘유도분만’이라고 한다. 옥시토신을 투여하게 되면 자궁 수축이 일어나 진통을 유발하고 아이가 수월하게 모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한다. 이를 ‘촉진제’ 또는 ‘수축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아내 역시 수월한 분만을 위해 이미 촉진제를 몇 차례 투약했다.


   평소 조금이라도 피가 나거나 작은 상처에도 아파해 견디기 힘들어하는 아내다. 엄살도 한몫하다 보니 식탁 모서리에 팔꿈치만 살짝 부딪혀도 눈물 찔끔 흘리며 아랫입술을 삐쭉 거리기도 한다. 식탁 모서리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토록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은 처음 보는 모습이라 더욱더 안쓰러웠다. 이따금 힘껏 이를 악물고 견디는 모습을 본 간호사는 ‘치아와 턱에 무리 가지 않게 너무 힘주지 마세요’라고 전하고 나갔다. 더는 구겨지지 않을 것 같은 표정과 목을 조른 듯 벌게진 혈색은 고스란히 이미지가 되어 내 눈에 담겼다. 그런 아내를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자니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이렇게 견디고 있는 것이 대견해 보이면서도 미안하고 대단해 보였다. 항상 약하고 여리게만 보였던 아내가 오늘만큼은 누구보다 강해 보였고 든든해 보이기까지 했다. 


   어느 땐가 살짝 넘어져서 긁힌 무릎을 부여잡으며 많이 아파하고 우는 모습에 ‘나중에 아기나 잘 낳을 수 있을까 모르겠네?’라고 놀리며 했던 말이 후회되었다. 가녀리게만 여겼던 여자에서 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고통은 감내해야 하는 걸 아내도 나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으로 피부로 가슴으로 보고 느끼는 건 이론과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는 너무나 달랐고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감히 지금 이 고통을 안다고 말할 수 없는 난 그저 자리에 앉아 이 순간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만 있었다. 


‘지나갈 거야. 내일이면 서로 웃으며 볼을 쓰다듬어 줄 그 시간이 반드시 올 거야. 나영아. 우리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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