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과 고통 사이
진통 / 오전 6시 43분
“안나영 님 보호자 분-”
“네. 네?”
오랜 기다림의 정적을 깬 건 간호사였다. 자동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지만, 벌떡 일어났다. 졸음이 확 달아났다. 얼굴에 눌린 자국은 없는지 입가에 침은 고여 있지 않은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절차상 확인부터 할게요. 남편 분 본인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안나영 님 현재 상황을 먼저 말씀드릴게요. 간혹 분만 상황이 아닌데도 조금 아프시다고 오시는 분들이 계셔서 출산 전 검사를 간단히 진행하셨어요. 검사 결과에 따라 분만이 가능한 상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되는데요. 분만 가능한 상황으로 확인되셔서 우선 안나영 님은 대기실 안쪽 침대로 안내해 드렸습니다. 보호자 분은 왼쪽에 보이시는 실내용 슬리퍼로 갈아 신으시고 신고 계신 신발은 ‘실외용’이라고 적힌 칸에 넣어두세요. 그리고 여기 손 세정제로 충분히 세정하시고 들어가시면 되세요. 들어가서 우측을 보시면 안나영 님 성함이 적힌 네임 카드가 붙어 있을 거예요. 아! 들어가시기 전에 여기 방문 기록지에 성함과 휴대전화 번호를 기록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대답했다. 방문 기록지에 적으면서 내가 제대로 알아들은 것인지 조금 어리둥절해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겉모습만 보면 비교적 젊어 보여 출산 경험이 없을 것 같은 간호사는 늘 하던 일을 한다는 듯 무뚝뚝한 표정이었고, 마치 조금 전까지 대본을 달달 외우고 그 즉시 외웠던 것을 쏟아내는 배우처럼 다소 빠른 말투로 안내 말을 내뱉었다. 버벅대지 않고 토씨 하나 다르지 않아 보이는 것이 완벽히 외운 것같이 보였다. 불친절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친절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에겐 처음 있는 이 상황이 저 간호사에게는 매일 있는 일이리라 생각했다.
간호사가 시키는 데로 비교적 깨끗해 보이는 슬리퍼로 갈아 신고 손 세정제도 듬뿍 발라 비벼댔다. 매직으로 ‘분만실’이라고 쓰인 슬리퍼는 조금 작았지만 발가락을 움직여가며 발을 구겨 넣었다. 생애 처음 들어와 본 분만 대기실. 입구 쪽 안내 창구에는 색색의 포스트잇이 끼워진 각종 서류와 모니터 두 대가 놓여 있었고 간호사는 세 명 정도 보였다. 그중 두 명은 안내 창구 안쪽 또 다른 공간에서 이른 아침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였고, 또 다른 한 명은 조금 전 나를 안내해 주던 그 간호사였다. 일반 병원 병동의 안내 창구와 비슷했지만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커다란 화이트보드 현황 판 내용이다. 분만을 앞둔 사람들로 보이는 이름과 알 수 없는 숫자 그리고 현재 산모 상황들이 간략히 암호처럼 적혀 있었다. 모두 다섯 명의 임산부 이름들이 기록돼 있었고 목록 중에 맨 아래 방금 기록했는지 아내의 이름이 다섯 번째 칸에 진하게 쓰여있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 간호사의 손짓에 안내 창구를 지나 하얀 천들이 가려진 곳으로 이동했고 창가로부터 두 번째 공간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아내 이름이 적힌 네임 카드가 보였다. 지방선거 투표하러 들어가듯 하얀 천을 들치고 들어가니 아내가 누워 웃으며 손짓했다. 잠깐 이었지만 서로 오래 헤어졌다 만난 것처럼 반겨주었고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을 건넸다.
“괜찮아?”
“응. 괜찮아. 오빠도 괜찮지?”
“그럼. 좀 놀라긴 했지만 너 표정 보니까 안심이 되네.”
컨디션은 좋아 보였지만 창백한 민 낯이 괜히 안쓰럽고 수척해 보였다.
“어디 별다른 이상 있는 건 아니래? 얼마나 기다리면 된대? 담당 의사 선생님은 계시데? 아이는 건강하데?”
“조금 기다리면 간호사가 와서 자세히 설명해 준데”
기다림에 조급했는지 나도 모르게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 버렸다. 사실 이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분만실이 눈앞에 보였고 지금 우리가 이렇게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기다리면 아이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짧았고 무지했다는 것을…
비좁은 대기 공간은 간이 칸막이 형태로 만들어져 철제 프레임에 하얀 천이 커튼식으로 둘러싸여 있다. 말 그대로 곧 분만을 앞둔 산모들이 아이가 나오기 전까지 임시로 거처하며 잠시 대기하는 공간이었다. 본격적으로 아이를 출산하러 가기 전까지는 이곳에서 산모와 아이의 건강과 컨디션을 확인하며 때가 될 때까지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 같았다. 들어오다 슬쩍 보았던 분만실은 문이 네 개, 이곳에서 대기하다 출산이 임박하면 준비된 빈 분만실로 향하는 것 같았다. 네 개의 분만실은 같아 보여도 크기와 시설이 다르기도 하고 아이가 언제 나올지는 의사나 간호사도 모르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분만실로 들어가기는 쉽지 않은 걸로 보였다. 상황에 따라 긴급한 순서로 운영되는 것 같았다.
아내는 분홍색 이불이 발끝부터 배꼽 아래까지 덮여 있었다. 산부인과 병원 이름과 로고가 반복된 패턴이 그려진 이불이었다. 더는 커질 수 없을 만큼 치솟아 불룩한 배에는 알 수 없는 선들이 붙어 있었는데 패치 형태로 가슴 아래쪽엔 빨간색 아랫배엔 파란색으로 두 개가 붙어 있었다. 그 선들은 아내의 배 아래로 길게 늘어져 침대 옆 서랍장 위에 놓인 기계와 연결되어 있었다. 커다란 인터넷 모뎀처럼 생긴 이 기계는 실제 인터넷이 연결 돼있어 산모와 의사가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원격으로 산모의 상태가 모니터링이 가능하다고 한다. 기계에는 디지털 숫자가 세 자리와 두 자리로 각각 표시되는 걸로 보아 산모의 상태를 숫자로 가늠하는 것으로 보였다. 기계 왼쪽엔 팩스처럼 용지가 나올 수 있도록 종이도 말려 있었다. 얼핏 보면 은행이나 우체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대기표 뽑는 기계처럼 생겨 정말 대기표가 나올 것만 같았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는 작은 폭으로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아내의 왼쪽 손에는 링거가 T자 형태의 세 방향으로 한 곳은 바늘이, 나머지 두 곳에는 호스가 연결되어 있었다.
침대 밑 둥근 간이 의자를 당겨 앉아 아내의 오른손을 살짝 잡았다. 집에서 입고 나왔던 옷에서 병원 이불과 비슷한 색깔과 패턴의 임부복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진짜 출산해야 하는 임산부로서 임부복은 비장해 보였고 무릇 ‘출산 전용 전투복’ 같아 보였다. 아내는 웃고 있는 표정이었지만 역시 긴장되는지 핏기 없이 낯빛이 하얗고 창백에 가까웠다. 나마저 긴장하면 안 될 것 같아 측은하게 바라보다 미소 지으며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우린 서로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 상황과 낯선 장소 그리고 지금 느껴지는 감정에 충실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처음 겪는 일들이 무척 많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곳의 ‘처음’은 내가 가진 모든 감정의 표현을 다 써도 모자랐다. 긴장, 초조, 두려움, 걱정, 미안함, 고마움, 희열, 환희, 기쁨, 사랑, 행복 등 단어 간 차이를 알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은 첫 경험의 모든 것을 형용해주고 있었다. 가슴 깊숙이 지금의 감정을 잊지 않기 위해 반복해서 각인하고 새겼다.
잠시 후 간호사가 들어왔다. 말없이 들어와서는 대기표 기계를 힐끗 보더니, 왼손에 들고 있는 차트 꾸러미에 무언가 기록을 했다. 체온을 재고 아내 배에 붙어 있는 패치를 확인하고 링거의 조리개를 굴려 약물 떨어지는 속도 조절까지 했다. 그사이 난 슬그머니 일어나 침대 끝에 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안나영 님, 진통을 제외하고 어디 아프거나 불편하신 데는 없으시죠?”
“속이 약간 매스껍고 기운은 없지만, 어디가 특별히 아프고 그렇지는 않아요.”
“음… 네. 그럼 안내 말씀 잠시 드릴게요. 현재 오전 6시 55분. 자궁 문이 1.5센티미터 열리 셔서 조금씩 진통이 느껴지실 거예요. 최소 10센티미터는 진행되셔야 분만할 수 있으시니까 그때까지 조금만 참고 기다려 주시고 보호자 분은 산모 분이 급격히 진통이 오시거나 많이 힘들어하시면 저희를 호출해 주시면 돼요. 호출 버튼은 침대 옆에 동그랗게 붙어 있으니 바로 보이실 거예요. 그전에 제가 수시로 들어와서 상태 봐 드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그럼 잠시 후에 다시 한번 체크하러 오겠습니다. 쉬고 계세요.”
“네. 그런데 분만까지 얼마나 걸리게 될까요?”
자기 할 말 다 했다는 듯 급히 나가려는 간호사를 불러 재빨리 물어보았다.
“그건 산모 분마다 다르세요. 자궁문이 열리시는 상황을 지켜봐야 하고요. 빠르면 한두 시간 이내도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꽤 오래 기다리실 수도 있어요. 현재 산모 분께서는 1.5센티미터 정도로 약 10% 정도 진행이 되셨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음… 그런 경우면 저흰 보통 24시간 이내라고 말씀드립니다.”
“아아… 그렇군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잠자코 기다리면 다 알게 된다는 표정이었다. 기계처럼 약간의 미소도 짓지 않았다. 간호사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커튼을 걷고 나가버렸다. 아까부터 사물에 존칭 쓰는 것도 영 맘에 안 들었지만, 자궁에까지 존칭은 정말 듣기 싫었다. 어떻게든 사투리를 쓰지 않으려 말끝마다 ‘요’ 자를 꾹꾹 눌러 붙여 말을 높이려는 게 어색했지만 역시 이번에도 대본 외우는 듯한 말투는 더듬거리는 것 하나 없는 것이 간호사 전문 배우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이제 겨우 10%라니…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되는지 가늠도 안 되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다 보니 마음 졸여 긴장감이 도무지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내 앞이라 더욱 티도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나와는 달리 간호사의 설명을 진득하니 듣던 아내는 의외로 차분해 보였다. 겁도 많아 공포 영화는커녕 작은 벌레에도 득음하듯 소리 질러 무서운 건 질색하던 아내였는데 임신 초기부터 굳게 마음먹고, 이 순간이 올 것이라 오래전부터 다짐했는지 차분히 심호흡하며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이곳 대기실은 아무도 없이 혼자 있는 것처럼 고요하다가도 간헐적으로 고통스러워 견디다 못해 뱉어내는 거친 숨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다. 들어온 순서는 달라도 모두가 내 아이를 만나기 위해 참고 또 참는 인고의 시간을 같은 마음으로 보내고 있다. 입구 화이트보드에 적힌 내용만 보면 아내 말고도 네 명이나 더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산이 임박한 산모들 위주로 더욱더 신음소리가 크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양옆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서 번갈아 들려왔고 마냥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니라 이를 악물고 입술만 살짝 열어 새어 나오는 소리로 들렸다. 역사 드라마에서나 보던 장면처럼 천장에 매달린 천을 손목에 휘감고 산파의 구령에 맞춰 안간힘을 쓰던 모습이 떠올랐다. 귀에 전해지는 소리는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피부에 바로 닿을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아직 아내에겐 그런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가끔 찡긋찡긋 찌푸려지는 거로 봐서는 아내 입에서도 곧 새어 나올 것 같았다.
고개 돌려 대기표 닮은 기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디지털 숫자는 아까보다 조금 더 큰 수까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높낮이 평균값을 높여 유지하고 있었다. 아내 얼굴과 기계를 번갈아 바라보다 이 기계의 정체와 역할을 비로소 눈치챌 수 있었다. 가슴과 배에 부착된 두 개의 선들은 각각 심장과 태동을 체크하며 산모의 건강을 체크하고 아이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심장박동 같은 소리가 ‘쿵쾅쿵쾅’하며 기계 밖으로 들리게 된다. 디지털 숫자는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숫자 크기에 따라 진통의 정도를 아내가 고스란히 느끼는 걸로 보였다. 기계 전면에는 FHR, UC 같은 알 수 없는 영문이 표기되어 있지만, 그 표기가 무엇인지는 바로 알 수 있었다. 그중 UC 부분의 숫자는 두 자리로 최대 99까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숫자 크기에 따라, 표정을 보지 않아도 아내 상태를 숫자로 수치화해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의 고통을 기계로 전달해 상시 확인이 가능하다는 것이 놀라웠다. 어떤 기계인지 파악하고 나니 숫자가 빠르게 상승하게 되면 나 역시 간접적 고통이 느껴져 아내와 같이 미간이 찌푸려지곤 했다. 마치 이 기계가 아내에게 고통을 주는 것만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아내는 디지털 숫자에 맞춰 콧잔등을 조였다 풀기를 반복했다. 이제 본격적인 진통이 시작했는지 잔잔했던 물결이 불어오는 바람에 크게 파도가 일렁이듯이 신음소리는 깊은 곳에서부터 높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음… 으음… 후- 음… 으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