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리미 Apr 30. 2024

14. 시험관을 위한 준비

비뇨기과에 가봤어?

시험관을 위한 준비


   주말 아침, 여느 때라면 아직 이불 깊숙이 잠에 취해 있어야 할 시간. 평소 주말은 이 시간에 일어날 일이 별로 없지만 오늘은 일찍이 잘 설정해두지 않는 알람을 맞춰 두었고 그 소리에 맞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자마자 침대 끝 화장대 거울을 보니 헝클어지지 않은 머리가 비교적 잘 정돈된 모습이었다. 머리를 감을지 말지 잠시 고민했다. 이미 베란다를 지나 안방까지 길게 들어온 햇볕이 피부에 닿아 따스했다. 몸도 가벼운 것이 컨디션도 좋았다. 일찌감치 움직여 라디오부터 켜고 식빵에 우유 한 잔 대충 들이켜 가며 나갈 채비부터 했다. 잠시 고민했던 머리도 감았다. 다른 날 보다 오늘만큼은 마음가짐부터 차분하고 경건하게 시작하기로 했다. 가벼운 옷차림에 선글라스도 챙겼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Jeremy Zucker의 Comethru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작게 흥얼거리며 손가락 한 마디 정도 열린 안방 문을 한쪽 눈으로 빼꼼 들여다봤다. 아직 이불속에 있는 아내에게 작은 소리로 인사하고 서둘러 집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단지 내 분주한 주말 장터를 빠르게 가로질렀다. 주말이면 아파트 단지에 장터가 열리는데 매번 이분들은 도대체 몇 시부터 장사를 시작하시는 건지 부지런함에 놀란다. 나름대로 일찍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이분들은 벌써 준비를 마치고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니 이제 막 도착했는지 요란한 소리를 내는 지하철을 확인하고는 달려가 문이 닫히기 전에 가까스로 탑승했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출근 시간대와 비슷한 시간인데도 주말 아침은 사뭇 분위기가 달랐다. 주말인데도 출근하는 평범한 직장인부터 완전 군장 같은 등산용 가방을 둘러멘 등산복 차림의 어르신, 결혼식을 가시는지 한껏 색을 입힌 꽃무늬 한복을 둘러 입으신 할머니 그리고 유모차를 옆에 두고 나들이 가는 가족들까지 각자 어디론가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바닥부터 의자까지 핑크 빛인 맞은편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젠 지하철 대부분 좌석 맨 끝에 한두 개씩 자리해 있다. 일명 ‘임산부 배려석.’ 사회적으로도 임산부 인식이 많이 달라지다 보니 배려하는 문화가 점점 늘고 노약자석과 같이 비워두는 경우도 많아졌다. 하지만 배려이지 의무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말들이 오고 가지만, 분명한 건 임산부를 바라보는 인식은 많이 변화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언젠가 내 아내도 저 자리에 당당히 앉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치던 핑크빛 자리지만 오늘따라 달리 보였다. 왜냐하면, 나에게도 오늘은 중요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도착한 곳은 빨간 벽돌의 고층 건물로 지난번에 아내와 한번 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는 길이 낯설지는 않았다. 오늘은 혼자다. 복도 중간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8층으로 향했다. 올라가는 동안 긴장되는 마음에 거울을 보며 길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무겁도록 조용한 실내가 긴장감을 더 고조시켰다. 8층에 도착하니 멀리 복도 끝 안쪽으로 유리문이 보였다. 문에는 ‘남성 난임 특수검사실.’이라고 투명하게 프린트되어 있었다. 출입구에 다다르니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정면에 눈이 마주친 안내 직원이 힐끔 쳐다보고는 벌떡 일어나 신분 확인과 함께 신분증을 돌려주며 종이 한 장을 들고 상냥하게 말했다.


   “확인되셨고요. 옆에 대기표 뽑으시고 이 문진표 받으세요. 앞 뒷장 모두 작성 끝나시면 저에게 주시고요. 오늘 먼저 온 고객님들이 많으셔서 시간이 조금 걸릴 수 있으니 잠시만 앉아 기다려주세요.”


   사전에 예약하고 왔는데도 대기는 해야 했다. 예약자들끼리의 대기. 아마도 근무시간을 피해 주말 시간대로 예약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대기표를 뽑아 입에 물고 의자에 앉아 문진표를 작성했다. 곁눈질로 둘러보니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많았다. 대부분 남자 혼자 온 것 같았고 간혹 부부끼리 온 사람들도 보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불임이나 난임으로 이곳을 찾는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놀랐다.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불임, 난임 센터라고 하니 몇 주 전부터 예약을 잡아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곳이라고 아내에게 들었다. 대기하는 사람들 표정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게 덤덤한 사람도 더러 있었지만 대부분 간절함이 얼굴에 묻어났고 나도 그들과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하니 괜한 동질감까지 생겼다. 남자들은 보통 묶으러 간다거나 발기에 문제가 있는 경우 비뇨기과 같은 곳을 찾는데 난임으로 내가 이런 곳에 오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의식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이상하게 시선이 느껴지고 낯설어 앉아 있기 불편했지만 나 역시 간절하기에 꼭 자리를 지켜야 했다. 남들 눈치 보거나 체면 차릴 사안이 아니었다. 그냥 차분히 앉아 대기 순번이 내가 가진 대기표와 같아질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대부분 남자들만 모여있다 보니 가뜩이나 조용한 실내는 헛기침 정도 들릴 뿐 도서관보다 조용하고 엄숙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경우 보통 여자 문제로 치부하고 여자들만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남자도 함께 검사하면 건강도 건강이지만 내 정자 상태도 체크 해볼 수 있어 낯설었지만 검사를 위해서라도 이곳을 방문했다. 잠시 앉아 있는 동안 여러 검사를 혼자 했냈을 아내 생각에 여러 감정이 섞여 들어왔다.



   내가 퇴근하고 옷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씻고 나오면 아내는 벽에 걸린 시계부터 올려다본다. 준비해 놓은 병원 봉투를 가슴에 품고 화장실로 후다닥 들어간다. 처음엔 말도 없이 들락날락하길래 궁금해 물어보니 배에 주사를 놓는단다. 병원에서 약을 받아왔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게 주사인지는 몰랐다. ‘자기 배에 스스로 주사를 놔야 한다고?’ 남이 놔주는 주사도 질끈 눈 감고 아프다고 엄살 부리던 아내다. 낯선 모습이었지만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는지 오늘도 혼자 주사하려다 내가 궁금해하며 조르자 마지못해 한 번만 보여주겠다고 했다. 이미 익숙한 듯 변기 뚜껑을 내리고 그 위에 앉았다. 윗옷을 슬쩍 올리고는 미리 준비해 놓은 손가락만 한 주사기를 꺼내 오른손으로 쥐고 왼손은 배꼽 아래 뱃살을 한 움큼 움켜잡고는 거리낌 없이 슬쩍 찔러 넣는다. 보는 내 눈이 다 질끈 했다. 스스로 약물을 주사하는 절차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 모습을 이렇게 직접 보니 안쓰러웠다. 그제야 아내 배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주사 놓은 자국이 상처가 되어 작은 딱지가 여럿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랬구나….’ 괜히 미안했다. 지난번 독감 주사 맞으러 갔을 때만 해도 본인 차례가 다가오면 벌벌 떨던 아내가 임신을 위해 날카로운 바늘 끝 두려움을 감수하고 배가 이렇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미안했다.


   아내는 이미 몇 주 전부터 난임 병원을 통해 여러 차례 각종 검진과 주사도 맞고 처방을 받아 약을 먹고 있었다. 여자들은 여러 검사와 절차도 많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배란과 착상이 잘 될 수 있도록 최적의 몸 상태도 만들고 컨디션과 식이 조절까지 꾸준히 유지하도록 노력을 해야 했다. 또 시술을 위해 때론 굶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시술은 크게 인공수정 시술과 시험관 시술로 나뉜다. 인공수정은 정자 채취 후 자궁 안으로 직접 주입하는 방법으로 비교적 절차가 간단하다. 시험관 시술은 과배란 유도를 시작으로 난자채취, 난자와 정자 수정, 배아 배양, 자궁 내 배아 이식, 착상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절차상 단계 하나하나마다 그에 따른 시간이 소요되고 약물도 함께 사용해 임신에 도달될 때까지 이런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의사와 오랜 상담 끝에 인공수정이 아닌 시험관 시술을 해보기로 결정했고 그에 따른 절차로 과배란 유도를 시행하게 된 것이다. 처음엔 이런 시술들이 다 무엇인지, 과배란은 또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걸 알기 위해선 우선 시험관 시술에 대해 더 알아야 하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여자와 남자에게서 난자와 정자를 각각 채취해 체외수정 즉, 몸 밖에서 수정(결합)하여 다시 여자의 자궁내막으로 이식하는 것이다. 여자는 일반적으로 배란 시기가 되면 매달 하나의 난자를 생산하게 되는데 ‘과배란 유도’라는 방법을 시행해 난포(난소의 여포)들이 자라 한 개가 아닌 여러 개를 생성하도록 만든다. 이는 다량의 난자를 채취하려는 목적으로 시험관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난임병원에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나도 처음엔 체외수정이나 난포 같은 말들이 어려워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순서대로 차근차근 진행하면서 알아가고 있다. 


   아내는 초음파 검사 후 생리 주기에 맞춰 주사와 먹는 약물을 처방받았다. ‘고나도핀’, ‘바이오아지니나액’ 같이 이름도 어려워 어떤 약물인지 궁금해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봤고 대략 효능은 어떤지 성분은 무엇인지 알 수는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찾아보고, 확인하고, 알아보는 이유는 최소한 아내가 어떤 약으로 얼마나, 어떻게 체내에 흡수시키는지는 알고 있는 게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사는 주사대로 투여하고 약물도 식전 2회를 꾸준히 챙겨야 했다. 내 몸이 아파 나으려고 먹는 약과는 엄연히 달랐다. 생각보다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우리 아이를 만나기 위해 아내는 꾹 참고 그 어려운 걸 묵묵히 해나가고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