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마는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으로 알았을지 모른다
모성애 / 오후 19시 20분
몇 차례 두 명의 간호사가 순서 바꿔가며 아내 건강 상태와 자궁문 개방 상황을 확인했다. 링거를 통해 투여했던 촉진제도 모두 체내로 들어가고 난 후 중단했다. 진통만 12시간째. 아내도 나도 점점 지쳐가다 보니 서로 대화도 현저히 줄었다. 아이는 정말 나오려고 하는 건지 하염없이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니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간호사에게 문의했다. 지나가듯 손목을 들여다보고는 자정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자정이라는 말에 그래도 ‘기다리세요. 아직 알 수 없어요. 조금 더 지켜봅시다.’라는 소리보다는 나았다.
끝이 조금 보이기 시작하는 건가? 잠시 후면 우린 아빠, 엄마 그리고 부모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거의 다 왔다. 뒤를 보거나 되돌아갈 수도 없다. 곧 아내 가슴에 안겨 작디작은 심장 소리도 들을 수 있게 되고 내 손으로 직접 만지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이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매번 다른 기분과 느낌으로 초조함이 밀려오지만, 더는 뒤로 물러설 곳도 없다. 우린 누군가 떠밀어 마지못해 아이를 기다리는 게 아니다. 우리가 선택했고 이 시간이 오기를 오랫동안 손꼽아 기다려왔다. 다행히 앞으로 기다린 시간보다 남은 시간이 더 적다고 생각하니 초조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물끄러미 아내를 바라봤다. 화장기 하나 없이 허연 얼굴에 닦아도 닦아도 흐르는 땀은 지금 힘겹게 견뎌내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퉁퉁 부은 얼굴과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간간이 거친 호흡을 내뱉을 때면 영락없는 임산부다. 지금, 이 순간 내 여자친구이자 아내가, 임산부라는 것이 아직도 약간은 낯설지만 대단하고 커 보였다. 바라볼 수밖에 없는 높은 곳에 먼저 올라서 있는 사람 같았고, 나는 절대 범접할 수 없는 영역 안에서 초인적인 힘으로 견뎌내고 있는 모습은 슈퍼히어로가 따로 없었다. 아내는 평소 즐겨 입던 보라색 원피스 대신 분홍색 임부복을 입고 있지만, 어느 때보다 내겐 사랑스럽고 예뻐 보였다. 눈물 때문인지 반짝거리는 아내 눈에 시선이 머물렀다. 손 등으로 천천히 볼을 쓰다듬었다.
“오늘 만날 줄 알았는데 자정이 넘어야 만날 수 있겠네.”
“응, 이 녀석이 엄마 애태우네. 빨리 만나고 싶은데.”
“이상한 생각이지만 아기는 울면서 태어나는 게 정상이잖아. 그런데 우리 아이는 큰 소리로 웃으면서 나오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 응애- 응애- 가 아니고 까르르 하면서 나오면 재미있지 않을까? 뉴스 감 이려나?”
“아이 오빠도 참. 가끔 뜬금없는 소리를 한단 말이야. 기운 없어 죽겠는데 오빠 때문에 웃는다. 정말.”
“이렇게 분만실에 들어와 있는데도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 문득문득 꿈같단 말이야.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는 것이 이상하고 더군다나 그 아이를 조금 있으면 만날 수 있다는 게 생각할수록 너무 신기하고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도 잘 모를 정도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그건 나도 그래. 걱정되고 긴장도 많이 되지만 내가 긴장하면 우리 아이도 긴장할까 봐 좋은 생각만 하고 행복한 생각만 하려 노력하고 있어.”
“그래 잘하고 있어. 그렇게 이야기해 주니 고맙다. 많이 힘들겠지만, 곧 만날 생각 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 보자.
“응. 그럴게.”
“처음 만나면 뭐라고 인사를 해야 할까. 표정은 어떻게 지어야 하나. 아빠 얼굴 보자마자 너무 울면 어떡하지? 목소리도 궁금해. 아빠 닮지 말고 엄마 닮아야 예쁠 텐데…. 엄청 작겠지? 내가 잘 안을 수 있을까?”
“오빠도 긴장 많이 되는구나? 긴장하면 꼭 그렇게 말이 많아지더라.”
보통 초조하고 긴장되면 말이 없어지거나 조용해진다고 하지만 난 반대다. 스스로 긴장감을 감추기 위해서인지 억지웃음으로 말이 많아지는 버릇이 있다. 그런 성격 탓에 회사 면접을 볼 때도 쓸데없이 말이 많아 여러 차례 탈락의 쓴맛을 봐야 했던 게 아닐지 모르겠다. 상견례 때도, 연봉협상 때도 무언가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것이 다 그 때문이 아닐까 되짚어 보기도 했다. 이런 나를 아주 잘 아는 아내는 금세 눈치채버렸다. 침착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애써 보지만 표정에서 드러나 보였을 것 같다. 보통 부부의 촉은 이런 데서 발휘되는 것 같다. 아내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도 심호흡에 열중하며 나름대로 평정심을 유지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드디어 자궁 문이 4센티미터가 열렸고 그 덕에 아내는 무통 주사도 투여받을 수 있게 되었다. 빠르게 전달되는 무통 주사 효과로 한결 가볍고 편안해 보였다. 몇 시간 만에 보는 편안한 표정에 나 역시 마음이 조금 편안했다. 역시 천국의 약물인가?
잠시 보조 의자에 앉아 아이가 나오길 기다리다 보니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그래, 우리 엄마.’ 엄마도 날 이렇게 갖은 고생하며 힘들게 낳으신 건가. 나도 새벽에 낳았다고 들었는데 더 열악했을 그 시절 의료환경이나 출산 과정이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그것도 처절하게 외롭게 혼자 말이다. 종류를 가리지 않는 술과 안주 쪼가리 하나면 집 밖 어디서나 밤을 지새우시던 아버지는 내가 자궁 밖으로 나오던 날 밤에도 그렇게 술과 함께 보내셨다고 한다. 궁금했다. 왜 우리네 아버지들은 밖에선 그러지 못하면서 집 안에서만 가부장적이면서 엄하고 군주처럼 군림하려 들었을까. 그리고 왜 술에 절어 헤어 나오질 못했던 거지? 술만 먹으면 손을 올리고 고함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부부싸움 중이라고 광고를 하느냔 말이다.
국민학교 2,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그때 그 상황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평온한 집안을 헤치듯 철제 대문이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던 그날. 아버지는 거친 숨소리로 콧속을 찌를 만큼 풍기는 술 냄새와 얼마만큼 들이부었는지 몸도 잘 가누지 못하는 상태로 부엌을 지나 좁은 툇마루에 드러누웠다. 1층에 두 가구, 2층과 3층에 한 가구씩 사는 다세대 주택으로 현관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소리가 들리는 것은 물론 골목 안쪽에 있는 집이라 밤이면 동네가 쩌렁쩌렁 울리기까지 했다. 아마도 이 시간에 이런 요란한 소리가 들릴 때면 단연 우리 집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터. 이내 비틀거리며 단칸방 문을 벌컥 열고는 자고 있던 나와 내 동생을 큰 소리로 불러댔다. 자다 깬 탓에 정확히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불 밖 창가에 불빛 하나 없는 거로 봐서는 분명 새벽 2시는 넘어 보였다. 집 앞 구멍가게 할머니는 새벽 2시나 돼야 불을 모두 끄기 때문이다. 동생을 끌어안고 숨죽여 이불속에서 자는 척하는 것도 잠시 커다란 손에 이끌려 강제로 장롱문에 기대어 새워졌다. 불을 켜니 바퀴벌레들이 자기들도 들킨 것같이 재빨리 숨어 버렸다. 버릇처럼 우린 뒷짐 지고 장롱에 기댄 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내 손 뒤로 장롱에 붙은 판박이가 만져졌다. 며칠 전 방 청소 도와준 게 고맙다며 엄마가 사준 판박이 몇 장을 붙여두었는데 혹시 떨어질까 조심조심 꾹꾹 눌렀다.
“이놈에 새끼들. 아빠가 들어왔는데 자고 있어? 니들 안 자고 있던 거 모를 줄 알아? 아빠가 들어오면 뛰쳐나와 인사하라고 가르치지 않던? 니 애미가?”
“애들 자게 놔둬요. 내일 학교도 가야 하는…”
둔탁한 소리가 났다. 커다란 손의 궤적이 그대로 엄마에게 적중했고 구겨진 깡통처럼 찌그러지듯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동생은 내 뒤에서 눈을 질끈 감고 있어 보진 못했지만 난 정확히 보았다. 숨소리도 내면 안 되었다. 다리가 얼어붙었다. 목격자라도 된 것 같이 그 상황을 그대로 눈에 담았다. 난 쓰러져 있는 엄마에게 한 걸음도 옮길 수 없었고 의지와 상관없이 부들거리는 다리를 겨우 오므리며 눈물밖에 흘릴 수 없었다. 아버지, 아니 ‘그 사람’은 엊그제 '괴수 대백과 사전'에서 본 커다란 괴수 같았고 우린 밟으면 그대로 죽어버릴 벌레들이었다. 동생은 큰 소리에 놀라 울음이 터져 버렸다. 나도 소리 내 울고 싶었지만, 이 악물고 턱에 온갖 힘을 주고 꾹 참았다. 그리고 소리 내 우는 동생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며 등 뒤로 토닥여 주었다. 어서 빨리 저 괴수가 잠들기만을 바랐다. 창가엔 불빛이 잠깐 들어왔다 나갔다. 시끄러운 소리에 옆집 불이 켜졌던 것 같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소리소리치다 지쳤는지 우리가 누워있던 이불로 고꾸라졌다. 고함이 너무 컸는지 순간 정적에 이명이 길게 들려왔다. 그제야 구겨져있던 엄마에게 바로 달려갔다.
“엄마….”
“으응. 엄만 괜찮아. 내일 학교 가야지 어서 자. 이불 다시 펴 줄게.”
엄마는 입술 삐쭉 거리며 한쪽 웃음으로 억지로 웃는다. 왼쪽 뺨이 붉게 올라왔고 다리를 약간 저는 것 같았다. 우리 머리를 쓰다듬으며 겨우 이불을 꺼내 펼쳐 들었다. 손을 너무 꽉 잡았는지 아프다는 동생을 나 역시 웃으며 볼을 매만졌다. 반대편 구석에 깔린 이불속으로 몸을 옮겨 동생부터 재웠다. 그 사달에도 졸렸는지 바로 잠이 들었다. 익숙해질 것 같으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속상했다. 바로 잠들지 못했던 난 참았던 슬픔이 밀려와 끅끅 대며 울었고 관자놀이를 지나 귓가로 주룩주룩 흐르는 눈물은 베개를 흠뻑 적셨다. 그는 항상 그렇듯 내일이 되면 오늘 일을 코 고는 소리와 함께 잊어버려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자상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잘 잤는지 아침 인사를 할 것이다. 이 쳇바퀴 같은 하루하루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훗날 자식에게 효도는 바라지 말라고 늘어져 있는 ‘그 사람’을 향해 눈으로 힘줘 말했다. 그렇게라도 내 마음속 방아쇠를 붙잡아야 했다. 엄마는 오늘도 어디 가지도 못한 채 방문 앞 부엌에 쭈그리고 앉아 앓는 소리로 이 밤이 지나가길 바라고 계실 것이다.
그날 이후 엄마는 한 달 가까이 절뚝거렸고 역시나 기억 못 하는 ‘그 사람’은 엄마가 넘어져 다친 줄로만 알고 있다. 그렇게 난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성인이 되기까지 한 가지만은 분명하게 머리에 각인시켰다. 절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말이다. 아버지가 그토록 좋아하던 술과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을 것이며 당신 보란 듯이 자식과 아내에게는 이렇게 대하는 거라고, 똑똑히 볼 수 있게 행동으로 보여줄 거라고 되뇌었다. 내가 꾸린 가족은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폭력, 폭언이 없이도 가장은 가정을 이렇게 꾸려가는 거라고 당당하게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면 과거 잘못을 깊이 반성하시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게 내 방식의 복수였을지 모르겠다. 뼈가 사무치도록 후회하게 만드는 복수.
하지만 그 복수는 이제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빨리 세상을 등지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 허탈하게 복수라는 나쁜 마음을 가지도록 가슴만 텅 뚫어 놓고 떠나셨다. 우리에게 왜 그랬냐고, 엄마에게 왜 그랬냐고 소리쳐 묻고 싶었지만 공허함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