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리미 May 07. 2024

17. 갈비탕 원정대

먹고 싶다면 산딸기라도 따다 줄게

갈비탕 원정대

   별 하나 없는 까만 밤. 거실 베란다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그야말로 검고, 짙고, 깊은 밤하늘 그대로였다. 이내 눈발이 흩날리더니 제법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아내와 난 거세지는 바람에 창문을 단단히 닫고 잠자리에 들기 위해 침대 위로 몸을 던졌다. 오늘따라 조금 늦게 퇴근한 탓에 몸은 가라앉고 피곤함에 절어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침대 밑바닥까지 쑥-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눈 감은 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그냥 이대로 잠들기를 바랐다. 그런 나를 침대맡에 앉아 힐끔힐끔 눈치 보던 아내가 소곤거리듯이 말을 걸어왔다.


   “오빠. 오빠. 있잖아.”

   “응… 아. 음.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하지. 불부터 끄자.”


   아내는 무거운 몸에도 재빠르게 일어나 바로 불을 끄고 협탁 위 스탠드를 켰다. 은은하게 노란빛이 방안에 가득해졌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우리 예전에 임신 얘기할 때 오빠가 말했던 거 혹시 기억나?”

   “으음. 글쎄. 어떤 말…”

   “내가 임신하면 낮이든 밤이든 새벽이든 산딸기까지는 아니더라도 먹고 싶은 건 반드시 구해다 주겠다는 말. 그 말 혹시 기억나?”


   잠이 막 들려던 찰나 잠시 그 시간대로 돌아가 어렴풋이 기억을 더듬었다. 눈은 뜨지 않았다. 내심 기억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기억이 났다. 오랫동안 눈에 콩깍지가 씌어있던 시절에 했던 말. 어떤 말이든 달콤한 말이라면 서로 경쟁하듯 던지던 그때 그 말. 평소 기억력도 좋지 않은데 그런 건 잘 기억해 냈다. 순간 무언가 뒤통수가 서늘해지고 살짝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제 불 끄고 눈만 감으면 이대로 조용히 아주 편안한 상태로 렘수면을 향해 갈 수 있는 이 순간이 달아나려 하는 기분이 들었다. 난 굉장히 피곤한 목소리처럼 들릴 수 있도록 성대를 눌러 최대한 가라앉은 목소리로 감은 눈을 유지한 채 대답했다.


   “음… 응. 그럼 기억하지. 그게 왜?”


   차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자주 했던 말이기도 했고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인데, 오빠 미안한데 나 갑자기 갈비탕이 먹고 싶은데 어떡하지.”

   “으음. 가… 갈비탕? 이 시간에?”

   “응. 갑자기 자려고 하니까 뜨끈한 갈비탕 생각나잖아. 조금 전까지 전혀 먹고 싶은 생각이 없었는데, 아니 내가 먹고 싶다기보다는 우리 뚠찬이가 먹고 싶은 게 아닐까 싶은데….”


   대게 임신하면 본인이 먹고 싶어도 뱃속 아기 핑계를 댄다고 하던데 내게도 이런 상황이 생기는구나. ‘어쩌지. 어쩌지.’ 갑자기 궁지에 몰린 것 같은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지.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구글에 물어보고 싶었다.


   “지금? 너무 늦지 않았어? 밤늦게 먹으면 많이 부을 텐데. 요즘 많이 부었다고 고민 많았잖아. 바로 먹어야 하는 게 아니면 오빠가 맛 집 찾아 놓을게. 아니면 내일이 마침 주말이고 나들이 겸 한번 먹으러 다녀오는 건 어떨까?”


   다른 날이면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유독 피곤했다. 잠은 일찌감치 달아났지만 어떻게든 지금, 이 순간만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평소 얼굴이 부어 고민하던 것을 끄집어냈고 연타로 맛 집을 핑계로 둘러댔다. ‘유능한 달변가들이나 협상가들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까? 말 잘하시는 전직 프로파일러이자 범죄 심리학자 표창원 님도 이런 상황은 어쩔 수 없겠지?’ 하지만 아내는 능숙했고 저녁 내내 준비한듯한 멘트로 나를 이리저리 코너로 몰았다.


   “물론 주말 나들이도 좋고 그런 건 직접 가서 뚝딱 먹어야 제 맛이긴 한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잖아. 그리고 요즘은 바로 먹을 수 있게 포장도 잘해주더라고.”

   “지금 바로 먹고 싶은 거야? 밤이 늦었는데 속 부대끼지는 않겠어?”

   “응.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어. 지금 먹을 수 있다면 잘 먹을 것 같아. 너무 늦었는데 미안해. 오빠가 오늘따라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그냥 내가 잠깐 나갔다 와도 되고…”


   여우다. 내가 더 이상 달아날 수 없도록 구석에 완전히 가두었다. 그래. 분명 산딸기 운운하며 약속한 건 맞지만 정작, 이 순간이 다가오니 잠깐이었지만 내적 갈등이 일어났다. 하필 오늘따라 몸이 피곤함에 눌려 있다 보니 정신과 육체가 대립하기도 했다. 그래, 약속은 약속이다. 후회할 짓은 하지 말자. 아니 약속을 떠나 우리 아이를 품고 있는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라도 피곤함에 절은 몸 일지라도 무거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아니야 아니야. 알았어. 먹고 싶다는데 당연히 다녀와야지. 오빠가 약속했잖아.”


   그야말로 태. 세. 전. 환. 혹시나 싫은 내색 들킬까 봐 있는 힘껏 웃으며 두 입꼬리를 눌러 올렸다. 침대에 깊숙이 가라앉은 몸을 힘겹게 빼내었다. 슬쩍 커튼 사이로 밖을 내다보니 그새 동장군이 위협하듯 창문에 얼음 서리가 잔뜩 껴있었고 하얀 눈이 사선으로 매섭게 내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분명 조금 전까지 눈발만 조금 날리던 날씨는 내가 밖에 나가야 한다는 걸 들었는지 ‘어디 나오기만 해 봐’라는 식으로 거세게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히 내일이 주말이라는 것을 위안 삼아 붙박이 옷장 안을 뒤적거리며 내가 가진 옷 중 가장 두꺼운 외투를 꺼내 들었다. 오리털이 80% 이상 들어있다는 직원의 말을 믿고 작년에 큰맘 먹고 12개월 할부로 산 긴 패딩이다. 두꺼운 양말에 장갑까지 장착하고 풀 죽은 목소리로 들릴까 ‘나영아! 오빠 다녀올게!’라고 힘껏 인사 후 패딩에 달린 털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밖으로 나왔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아내는 씩 웃고 있겠지? 이 상황이 재미있을 거야. 정말 갑자기 미치도록 먹고 싶어진 걸까? 아니면 아침에 일기예보를 보고 계획적으로 오늘을 선택했을까? 에이 아무렴 어때. 그래 즐기자. 피할 수 없잖아. 우리가 이때 아니면 언제 이런 걸 즐겨 보겠어.’ 


   1층 공동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른 미사여구가 필요 없다. 그냥 추웠다. 추워도 너무 추웠다. 마스크라도 쓰고 나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몇 걸음 걸어 나온 것도 아까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갈비탕이 어디서 파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문득 지하철역 근처 해장국 집이 떠올라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지하철역은 평소 내 걸음으로 5분여 거리다. 짧은 시간 동안 눈이 제법 쌓였다. 강한 바람에 나부끼는 눈발로 인해 시야확보가 잘 되지 않았다. 고개를 반쯤 숙인 채 눈만 겨우 뜨고 한 걸음씩 나아갔다. 목이 낮은 운동화에 눈이 들어와 발목이 차가웠다. 눈은 날 내려다보고 괴롭히듯 더 쏟아져 내렸다.



   두껍게 내려앉은 눈밭에 발자국을 깊게 남겨가며 나아갔고 점차 무릎을 높이 들어야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만큼 눈이 쌓여가고 있었다. 평소 지나던 약간의 내리막길도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좁은 보폭으로 천천히 내디뎌야 했다. 군 시절 한 겨울에 혹독하게 행군하던 생각이 났다. 열외 없이 모두가 줄지어 계획된 코스를 돌아오는 고된 행군 길이었다. 일단 출발하면 쉬고 싶어도 쉴 수 없었고 행렬에서 멀어지거나 낙오되기라도 하면 다른 대원들에게도 피해가 갔다. 어두운 밤길 처음 가보는 산을 오르내리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손전등 하나에 의지 한 채 구호를 외치며 행군했다. 그때와 다른 건 등에 커다란 군장도 손전등도 없다는 것과 무거운 군화를 신고 있지 않다는 것뿐 체감은 약간 비슷하게 느껴졌다. 물론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그만큼 눈보라를 헤치며 걸어가는 길은 고됐다. 이미 밤이라고 하기엔 깊은 어둠이 깔려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시간대가 아니다 보니 발자국 하나 없는 골목길은 마치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기분마저 들었다. 기왕 가는 길 부디 해장국 집이 열었기를 간절히 기도했고 고개 숙여 강한 바람 밀어가며 연신 발을 내밀었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주인공 ‘프로도’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목적달성을 위해 온갖 고초를 겪으며 고난과 역경은 전부 내 몫이고 이 것이 운명이라 생각해 어떻게든 목적지에 다가가는 그 기분. 아마도 지금 내 기분과 약간은 비슷하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프로도’는 반지원정대라는 동료라도 있지. 난 혼자다. ‘프로도’는 반지를 위한 3부작의 긴 여정이었다면 난 5분 거리를 거센 강추위와 내적 갈등과 싸워가며 반드시 얻어야 하는 갈비탕이 목적이다. ‘프로도’처럼 손에 든 칼이나 마법의 반지는 없지만 긴 패딩을 갑옷 삼아 힘겹게 헤쳐나갔다. 비록 짧은 거리를 내려가고 있지만 찢겨 나갈 것 같은 두 볼을 매서운 바람에 내어주며 제법 오랜 시간을 내려온 것 같았다. 


   미끄러운 길에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행여 넘어지기라도 하면 다시 돌아가는 길이 더욱 험난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침내 도착한 지하철역 주변 번화가는 여전했다. 한적하기는커녕 밤을 기다렸다는 듯이 골목골목이 번쩍였다. 그래도 이곳은 가게마다 내린 눈을 바로 쓸어 놓아서인지 비교적 걷기가 수월했다. 어깨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지하철역을 지나 맨 끝 골목길로 들어서고 보니 멀리 노란 바탕에 빨간 궁서체 간판이 보였다. ‘열었다!’ 작게 탄식했다. 종종걸음으로 다가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숨을 가다듬고 ‘WELCOME’이라고 적힌 발판에 신발을 털며 물었다.


   “저 혹시 지금 갈비탕 포장되나요?”

   “네 됩니다. 얼마나 해드릴까요?”

   “한 그릇만 포장해 주세요.”

   “네네. 잠시만 앉아 기다리세요.”


   계산대 옆 플립 형 시계가 새벽 2시를 이미 넘긴 상황이었지만 우린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는 표정으로 대답해 주시는 친절한 아주머니, 헛되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여러 번 말씀드리고 싶었다. 5분 거리를 30분 정도 걸려 내려온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 체감은 그 이상이었다. 눈에 젖은 모자와 장갑을 벗고 포장이 될 때까지 잠시 나무로 된 마룻바닥에 앉았다. 추위에 꾹 움츠리고 내려와서 그런지 어깨 근육이 조금 뻐근했다. 가게는 테이블 다섯 개와 홀 가운데 녹이 제법 슬어 예스러운 난로가 우직하게 놓여 있었다. 테이블 하나에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앉아 해장국을 먹고 있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고 다정해 보였지만 그것도 잠시 피-식 고개 돌려 웃음이 나왔다. ‘저 남자도 언젠가 이 시간에 이곳을 헐레벌떡 찾을 날이 오겠지?’ 후배 바라보듯 선배 같은 미소를 몰래 그에게 지어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난로에는 양은 주전자가 올려 있었고 그 위로 구불구불 연통이 길게 뻗어 있었다. 열이 후끈 올라와 빨개진 볼이 입구 유리문에 비쳤다. 가만히 꾸부정하게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한번 옅은 웃음이 나왔다. 조금 전까지 침대 위에서 귀찮아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그냥 이 상황이 재미있다고 느껴졌다. 그냥 이것도 아빠가 되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먼 훗날 엄마와 뱃속 뚠찬이를 위해 소중한 갈비탕을 사러 다녀왔다고 자랑삼아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사실 갈비탕 한 그릇 별것도 아니지만 아주 큰 일 했고 힘들었지만 나오길 잘했다며 스스로 토닥였다.


   이른 새벽이지만 자다 말고 버선발로 나오게 된 이유는 아내 말대로 과거 약속한 것도 있었지만 아내가 몇 달간 아주 심한 헛구역질로 너무 고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른바 입덧이다. 임신 3개월쯤부터 시작해 오랫동안 기운을 영 내지 못하고 누워만 있던 아내는 얼굴에 피가 돌고 있긴 한 건지 어쩌면 백지장이 더 하얀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창백했다. 나도 느끼지 못하는 작은 냄새에도 취약해 끼니는 물론 제철 과일 하나 제대로 입에 넣지 못했다. 매스껍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고 했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입덧이 시작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표현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눕지도 일어서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약물이나 그 어떤 처방도 힘들어 견디기 힘들어 보였다. 그저 스스로 참고 이겨낼 수밖에 없다. 아내는 헛구역질이 잦은 편은 아니었지만 한번 하면 제대로 잠들지 못할 정도로 오래 했고 심하면 몸을 스스로 가누지 못해 주저앉기도 일쑤였다. 그러다 지쳐 구토에 화장실 변기를 안고 있었던 적도 많았다. 마치 심한 파도에 뱃멀미까지는 하지만 이 배에서는 절대 내릴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으로 매우 고통스러워 보였다. 


   방바닥을 기어 다니는 것도 여러 차례. 담당 의사는 물 냄새마저도 괴로워 잘 마실 수 없으니 심하면 탈수가 올 수 있다고도 했다. 입덧이 하도 심해 인터넷을 뒤지고 뒤져 어느 정도 고통을 완화해 준다는 손목 형 밴드까지 구매하기도 했다. 양 손목에 시곗줄처럼 밴드 구멍에 끼워 착용하고 동그란 톱니바퀴 같은 것으로 손목을 조이면 되는 간단한 장치다. ‘저런 게 효과가 있나?’ 싶을 정도로 별다른 기능이 없어 보였다. 원리를 알아보니 손목을 지나는 정중신경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부분을 조이고 자극해 뇌를 통해 항진된 위 움직임을 감소, 입덧을 완화시켜준다는 것이었다. 그럴싸한 기능과 원리로 포장해 놨다. 아내 말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구매했다고 하는 데 그다지 효과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물론 입덧이란 게 첫째나 둘째 낳을 때 다르고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입덧이 심하면 정말 가벼운 일상생활도 쉽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남편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의학이나 민간요법 차원으로도 대안이 명확하지 않다 보니 입덧을 전혀 하지 않는 임산부에게는 축복이 내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임신이란 게 그렇다. 입덧도 입덧이지만 임신은 마치 3단 변신하듯 변화 아니, 진화라고 해도 될 정도로 몸의 형태도 달라지고 호르몬 체계도 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신기하게도 점점 배가 불러오다 보니 대부분의 장기가 위로 밀려 올라가 숨 하나 들이쉬고 내 쉬기조차 쉽지 않게 된다. 단순히 배만 앞으로 불쑥 나오는 것이 아니란 소리다. 그에 따른 증상이나 신체 내외의 변화도 많아 남편으로서 옆에서 지켜본 임신에 따른 몇 가지 다양한 증상들을 발견했다.


   첫째, 손과 발이 퉁퉁 붓는다. 태아에게는 추가로 반드시 필요한 혈액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때 과도하게 늘어난 혈액으로 인해 혈액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그에 따라 몸이 부어오르는 증상이 발생기도 한다. 


   둘째, 쩍쩍 갈라지는 튼 살이다. 여자에게 민감할 수밖에 없는 피부는 임신과 동시에 탄력을 잃어 피부 외벽이 손상되고, 피하조직마저 파열되기 쉽다. 남산만큼 부른 배와 늘어난 체중으로 인해 갈라지는 튼 살은 한번 생기면 잘 사라지지도 않는다. 좋게 말해 영광의 상처라고 해야 할까? 평생 가져가야 하는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도 튼 살 크림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만 써 본 결과 개인적으로 효과는 미미하다. 그래서 이런 튼 살로 인해 출산하고 나면 자신감이 떨어지고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하니 유심히 살펴보는 게 좋다. 


   셋째, 임신성 여드름이다. 평소 피부 하나는 정말 깨끗하던 아내였지만 호르몬이 불균형하다 보니 피부 피지선에 기름이 과잉 생산하게 되고 그로 인해 피부 곳곳에 울긋불긋 작은 봉우리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래서 아내는 평소 자주 보던 거울을 잘 보지 않았다. 작은 뾰루지에도 민감한 임산부라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넷째, 개인적으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감정 기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임신하면 호르몬과 몸이 급격히 변화하고 식욕감퇴, 체력 저하 등 다양한 상황에 부닥치게 돼 하루에도 수십 번은 들쭉날쭉 오르고 내리는 감정 기복을 겪게 된다. 의학적으로는 뇌 속 신경전달 물질인 세로토닌 체계가 바뀌는 게 주요 원인이라고 하는데 심한 감정의 기복을 여러 차례 겪다 보면 작고 사소한 일에도 예민해지고 초조하고 눈물도 평소보다 많아지게 된다. 여러 감정과 신체는 카멜레온처럼 다양하고 변화무쌍하다 보니 때로는 감기나 고열도 잦아지고, 흔한 두통 하나에 약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해 지끈거리는 머리를 눌러가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임산부도 먹을 수 있는 두통약 타이레놀이 있긴 하지만 약은 절대 먹지 않겠다며 거부했다.


   남편은 이런 모습을 그냥 지켜봐야만 하는 게 안타까웠다. 난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고 계속 머리에 기록했다. 극한의 고통을 견디며 소중한 생명을 열 달 가까이 잉태하는 아내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도록 끊임없이 주입시켰다. 내가 곁에서 할 수 있는 설거지, 빨래, 요리, 청소 같은 건 당연했고 이렇게 이른 새벽 거친 눈보라를 헤치며 뛰쳐나와,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지금 하는 고생은 고생도 아니다. 아니 비교 불가가 아닐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남자들, 서운하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임신으로 아내에 비해 사실할 것도 별로 없지 않은가. 오히려 임신한 아내를 두고 늦게까지 술에 찌들어 들어온다 거나, 주말만 손꼽아 기다리는 아내 생각은 뒷전이고 취미 생활이라고 모임이나 동호회 등 사람들 만나며 돌아다니는 남자들 생각보다 허다하다. 분명 뱃속에 가족이 하나 늘어 혼자는 아니라고 하지만 얼마나 외로울까… 둘이 함께 가진 아이를 혼자만 전전긍긍하는 그 기분은 겪어보지 않아도 어림짐작 가늠된다.


   그래서 난 아내가 외롭지 않게 혼자만 임신의 굴레에 빠진 것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먹을 것 좋아하던 아내가 헛구역질해가며 바닥에 기어 다니다시피 하고, 끼니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걸 눈으로 똑똑히 보아 잘 안다. 그러므로 별 하나 없는 이 칠흑 같은 새벽일지라도 갑자기 먹고 싶은 게 생겼다는 말은 내겐 너무 반가운 일이다. ‘그래. 얼마든지 사다 줄 수 있다. 먹고 싶은 게 산딸기라고 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천운인가.’ 혼자 마룻바닥에 앉아 이런저런 생각하다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갈비탕 포장 나왔습니다.”


   가게 이름이 적힌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는 갈비탕 국물과 밥, 고기, 채소 건더기 그리고 국수 면이 개별로 비닐 포장돼 담겨 있었다. 국물을 냄비에 담아 고기 넣고 5분 정도 더 끓여 먹으라는 말씀을 지나가듯 들으며 카드기에 신용카드를 꽂았다. 음식이 식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영수증 나오는 시간마저 조급히 느껴졌다. 내가 어서 오기만을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아내를 향해 ‘수고하세요’를 외치고 힘껏 내달렸다. 바깥은 아직 눈이 내리고 있어 뛰는 것보다는 빠른 걸음이 맞았다. 비록 잠깐 이었지만, 집에서 나오기 전 밖에 나오는 것을 귀찮게 여겼던 것이 후회되었다. 푸념 섞인 반지원정대 이야기는 잊어버리자. 따끈한 국물에 흡족히 먹을 생각에 기쁨이 밀려왔다. 잠을 조금 포기하고 내 임무를 마친 후 돌아가는 길이 너무 행복하고 발걸음이 가벼웠다. 


   분명 아까보다 눈발이 조금 약해지긴 했지만 쌓인 눈이 워낙 많아 마음처럼 빠르게 걷기가 어려웠다. 검게만 보였던 하늘을 올려다보니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몇 개 없는 별마저 길을 밝혀주며 어서 가보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길거리에 주차된 자동차들 머리 위엔 하얗게 두꺼운 마시멜로가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비닐봉지가 터지지 않고 찬바람에 식지 않도록 오른손을 꽉 쥔 채 품 안에 두고 조심스럽고 최대한 빠른 걸음으로 오던 길 그대로 집 앞에 도착했다. 꼭대기에 올라가 있는 엘리베이터가 어서 내려오길 기다리며 발에 묻은 눈을 툭툭 털어댔다. 문 여는 소리가 나면 한달음에 달려 나올 아내를 상상하니 묘한 웃음이 지어졌다. 남편으로서 남자답게 내 역할 다했다는 으쓱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아내를 불렀다.


   “나영아.”

   “……”

   “나영아? 오빠 왔어. 따끈한 갈비탕 사왔…”


   환하게 불 켜진 안방에 들어서니 침대 위 불룩해진 이불이 호흡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했다. 언제부터 잠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는 척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렇게 꿈나라로 가셨다. 고요한 방 안에는 쌔근거리는 숨소리와 손에 들린 비닐봉지 소리만 부스럭거렸다. 조용히 문을 닫고 내일 일어나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냉장고에 넣어둔 뒤 소파에 앉아 한숨을 돌렸다. 허탈감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주문을 읊었다. ‘자고 싶다. 자고 싶다. 자고 싶다…’




이전 16화 16. 모성애 / 오후 19시 20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