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
혼연일체 / 오후 22시 45분
우린 여러 산부인과 전문병원을 참 많이도 다녔던 것 같다. 병원 선택 기준은 집에서 가까운 거리도 중요했고 너무 낡은 곳도 배제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기준은 분만 방법이었다. 요즘은 분만 방법도 트렌드가 있어 사전에 다양한 방법을 알아보고 원하는 분만법을 시행하는 병원을 찾아다녔다. 알아본 분만법 중 맘에 들었던 것은 ‘프레드릭 르봐이에’라는 사람이 고안했다는 ‘르봐이에 분만법’이다. 아이가 태어나 세상의 처음을 공포에 질린 채로 맞이하고 울부짖는 것을 보고 착안했고, 보통 산모의 고통에만 집중된 분만법에서 태어나는 아이에게도 배려해야 한다는 취지로 분만 방법을 고안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산모에게는 고통을 최소화해 주는 무통 주사나 수액이 준비되어 있고 안락한 침대도 있다. 하지만 아이는 그렇지 않다.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아이는 열 달 가까이 그 좁고 어두운 곳에서 의사 손에 이끌려 나오자마자 처음 보고 듣는 빛과 소리로 무서움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다. 산모에게는 최소의 고통을 아이에게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안겨주는 것이 최고의 분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라 분만실 조명은 아이가 태어난 직후 두렵지 않도록 밝은 백색의 주광 색 보다 약간 누런 전구 색으로 어둑어둑하게 빛의 양을 조절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되면 시력 보호는 물론 안정감까지 주게 돼 아이도 편안하게 바깥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또, 소리에 놀라지 않도록 은은하게 클래식 음악까지 깔아주면 산모도 아이도 더욱 안락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최종 선택한 이 병원은 ‘르봐이에’ 분만법을 시행하는 것도 주요 선택 포인트였지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맘에 들기도 했다. 평소 맛은 조금 없더라도 친절하다면 기꺼이 그 음식점을 다시 방문하는 성격의 나는 프런트 안내 직원과 간호사, 의사 분들도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주는 모습에 이전에 둘러봤던 병원들은 제쳐두고 아내와 큰 고민 없이 이곳을 선택했었다.
병원에 도착한 지 벌써 17시간이 지나고 있다. 2차 무통 주사가 투약되었고 진행 수치는 80%에 도달했다. 처음보다 뒤로 갈수록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다. 곧 분만이 진행될 것 같은 분위기에 부산스럽고 어수선했다. 분만실 벽에는 분만 방법에 대해 간략하게 순서와 설명이 캐릭터로 그려져 있었다.
분만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간호사들이 여러 차례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했고 점차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시작이다! 오래 기다렸다. 분만과 시술 용도로 보이는 여러 의료 기구들이 잇따라 침대 옆에 자리했고 뒤이어 당직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마스크를 쓰고 가운을 고쳐 입으며 들어왔다. 간호사는 어둑했던 조명을 약간 밝게 올리고 의사 옆에 다가가 하얀 고무장갑을 당겨 바르게 착용했다. 보통 늦은 저녁이나 새벽에는 당직 의사들이 시간표에 맞춰 돌아가며 근무한다. 그러므로 어떤 의사와 분만을 진행하게 될지는 아이가 나오는 날짜와 시간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동안 진료받았던 담당 의사에게 분만 진행을 맡기는 것이 산모도 남편도 마음이 편한 게 사실이다. 지금 들어온 당직 의사는 담당 의사는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담당 의사에게 분만을 맡기면 안 되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런 상황이 아닌 긴박한 상황이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믿고 맡겨야 했다.
침대 아래 둥근 회전의자를 끌어 앉은 의사는 아내 상태를 들여다보고 시계를 보며 간호사에게 3차 항생제 투약을 지시했다. 남편은 잠시 나가 달라는 요청에 나가서 대기했다. 계속 옆에 있고 싶었지만, 지시에 따라야 했다. 그 뒤로 15분 정도 흘렀을까. 다시 들어가니 이불만큼 커다란 천이 아내 다리 밑으로 가려져 있었다. 때가 되었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본격적인 분만에 돌입했다. 자정을 30여 분 남겨 놓은 상황에 드디어 분만 스타트! 당직 의사와 침대를 기준으로 키가 큰 좌측 간호사, 노랑머리 우측 간호사까지 모두 세 명이었다. 키 큰 간호사는 들고 있던 차트를 작은 탁자에 올려두고 아내가 누워있는 침대 양쪽 옆에 달린 고리를 젖혀 아래쪽으로 향해 있던 철제 프레임을 좌, 우 모두 새워 다시 고정했다. 마치 변신 로봇의 날개를 세우듯 일으키니 아내가 양쪽 프레임을 잡을 수 있도록 구조가 바뀌었다. 몇 시간째 이곳에 있었지만 저런 장치가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간호사는 고통스러워하는 아내가 쉽게 잡을 수 있도록 두 손을 고정된 프레임 손잡이 쪽에 위치해 주고 다시 의사 옆으로 이동했다. 이제부터 젖 먹던 힘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 별것 아닌 저 손잡이가 든든하게 큰 역할을 해줄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난 아내 옆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에 노랑머리 간호사는 아내를 독려하며 급박한 상황과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응원하듯 말했다.
“자! 산모님! 아래로 밀어내듯 천천히 배에 힘주시고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고 후- 하고 뱉어보세요. 힘드셔도 쉬지 않고 하셔야 해요.”
의사와 좌측, 우측 간호사는 눈짓과 고개 끄덕임 만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분만 순서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 같았고 잘 맞는 한 팀 같았다. 마치 아이돌 연습생들이 오랜 기간 합숙하며 팀워크를 맞추듯 동선 하나하나 호흡이 척척 맞아 보였다. 아내는 이 순간만 견디자는 생각으로 얼굴을 있는 힘껏 찌그러트렸고 땀에 젖어 피가 난 것같이 벌겋게 변한 표정은 보는 사람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거친 호흡을 연신 쏟아내며 간호사의 나긋나긋하면서도 강한 어조의 독려에 잘 따랐다. 이럴 때를 대비해 ‘라마즈’라고 하는 호흡법을 아내와 연습 삼아 해본 적이 있다. 후웁- 심호흡을 하고 난 후 짧은 숨 두 번, 긴 숨 한 번을 계속 들이마시고 뱉어내는 방법으로 분만이 임박하면 짧고 얕게 반복하며 호흡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어 보였다. 의사는 무언가 체제변환을 하듯 두 팔을 걷어붙인 채 나지막이 말했다.
“조금 더 힘을 줘 보세요. 호흡을 흡- 하고 길게 밀어낸다는 느낌으로 해야 아이가 순조롭게 나올 수 있습니다. 아이가 입구에 있고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지금보다 더 힘을 내주셔야 해요.”
남자 의사지만 목소리가 비교적 여성스러워 누가 봐도 응급 상황임에도 말투 하나하나가 차분했고 신뢰가 가는 목소리였다.
“으음…… 흡-”
“좋습니다. 산모님! 짧게 숨을 두어 차례 쉬다가 호흡을 참으면서 길게 아래로 밀어내세요. 혼자만 하시면 안 되고 저와 동시에 합이 맞아야 하니 제가 신호를 보내면 힘을 주세요. 자 시작합니다!”
“흐음…… 후-”
“좋습니다. 하나 둘 셋! 흡! 하나 둘 셋! 흡! 제 구호 들리시죠? 지금처럼 저와 함께하시는 겁니다. 다시 한번 하나 둘 셋! 흡!……”
긴박한 상황이라 의사나 간호사 모두 서로들 소리칠 만한데 ‘르봐이에 분만법’의 특징인지 굉장히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를 유지하며 대화가 오고 갔다. 아내와 난, 이런 긴박한 순간이 올 것이라 상상을 몇 번 해봤지만, 막상 상황이 닥치니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이제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서 이 고통스러운 순간이 조금이라도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고 바랐다.
신음은 곧 복식호흡으로 바뀌어 모두가 다 같은 리듬과 박자로 호흡했다. 따뜻했던 분만실 내부는 뜨겁게 휘감은 열기로 후텁지근해 오랜 통화로 인한 전화 부스 안처럼 온도와 습도가 높게 느껴졌다. 그와 함께 눈으로 보이는 이 생생한 상황과 귀로 전해지는 현장감 그리고 피부까지 느껴지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방안 곳곳을 맴돌았다. 분만실에 창문이라도 달려있다면 활짝 열어 시원하게 환기라도 하고 싶었다.
어느 순간, ‘빠득-’하고 나만 들렸는지 무언가 소파 같은 가죽 소재가 뜯어진 것 같은 소리가 짧게 들렸다. 언뜻 분만 시 회음부가 찢어지거나 절개한다는 걸 책에서 본 적이 있었다. 보통 자연분만 시 회음부를 절개하게 되는데 이는 아기가 나오는 산도를 넓히고 공간을 확보해 수월한 분만이 가능해 많이 시도하는 방법이다. 정확히 그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리와 동시에 의사는 간호사에게 남편을 재차 나가 있도록 지시했다.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또다시 지시에 따라야 했고 이번엔 키 큰 간호사와 함께 분만실 밖으로 나왔다. ‘어떤 문제가 발생한 걸까?’ 나가 있으라고 할 때마다 걱정됐지만 분만 절차 중 하나로 보였다. 키 큰 간호사는 어디선가 분홍색 가운과 마스크, 두건을 내게 주고 착용하도록 지시했다.
“가운 입으시고 머리에 두건을 착용하세요. 마스크는 가운 주머니에 있고요, 거울은 정수기 옆에 있어요. 잠시 후 들어오라고 할 때 들어오시면 되세요.”
그렇게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간호사는 다시 들어갔다. ‘분만 끝까지 계속 함께 있는 게 아니었나?’라고 생각했다. 문득 분만 시 아이가 나오려 할 때 아내 다리 근처로 지나가지 말라는 말을 선배에게 들은 것이 기억났다. 남편이 많이 놀란다고. 인터넷에도 그 모습을 본 뒤로 후유증이 있다는 글과 그 뒤로 아내가 달리 보일 수도 있다는 그런 글들이 많았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물소나 기린 같은 포유류 동물들이 출산하는 모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처음 볼 때는 얼굴 찡그리며 저렇게 ‘나오는구나’ 하고 멍하게 자연의 신비함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비록 사람은 아니었지만,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당연히 처음이고 잘 모르니 시키는 대로 기다렸고 복장을 추스르며 문 앞에 서서 두 손을 비벼댔다. 불안한 상황에 직면해 지금 내 기분이 어떤 것인지 복잡했고 선택하기도 힘들었다. 아내 혼자만 낯선 곳에 두고 나온 것 같아 걱정이 앞섰고 불안한 마음에 태엽으로 걸어 다니는 장난감처럼 두세 걸음씩 좌우로 왔다 갔다 움직였다. 애꿎은 손톱을 자꾸 깨물었고 냉가슴에 체할 것처럼 명치가 답답하고 아려왔다. 시계를 보니 바늘이 몇 칸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기분이었다. 초조했다. 그리고 긴장됐다.
입대를 위해 훈련소 입구에서 곧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부모님과 동생 얼굴이 멀어질 때도 당연히 해야 하는 국방의 의무라는 생각에 덤덤했었다. 부대마크가 붙여진 커다란 철문 앞으로 걸어 들어가면서도 이렇게까지 초조해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덤덤한 성격으로 오히려 예견된 큰 상황이 닥치면 긴장보다는 어차피 해야 할 일 계속 걱정하고 고민만 하면 뭐 하나라는 생각이 더 컸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순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 없이 오로지 나 혼자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아니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안내 창구에는 아무도 없었고 커튼으로 가려져 있던 산모 대기실도 모두 개방된 채 조용했다. 오히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아 정적이 깊어 윙- 소리가 길어져 귀가 괴로웠다. 귀가 막히는 것 같아 하품도 억지로 해봤다. 눈을 깜빡이는 것이 내 눈 안쪽에서 보였고 시야도 약간 좁아졌다. 피가 급류처럼 흘러 소용돌이쳐 심장도 급격히 뛰며 빠르게 움직였고 큰 소리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쾅-쿵-쾅…… 목구멍도 좁아지고 호흡이 모자라 가슴을 움켜쥐었다. 부족한 산소 탓에 어지러워 급히 호흡을 천천히 그리고 크게 서너 번 들이키고 마셨다. 휘청거리는 몸을 잠시 회전의자에 맡겼다. ‘후- 왜 이러지 몸에 너무 힘을 주고 긴장을 많이 했나.’ 살짝 정신이 돌아올 때쯤 방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으… 아… 으아아아… 아아아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