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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리미 May 09. 2024

19. 탄생

아빠가 된다는 것

탄생

   아기 소리…… 그래, 분명 아기 울음소리다. 녹음되어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생생하게 라이브로 들려왔다. 다른 분만실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조금 전에 확인했다. 그래! 우리 아기다. 이렇게 현장에서 처음 들어보는 아기가 세상에 나오는 소리. 길고도 우렁찬 울음소리가 명쾌하게 들렸고 크게 한두 번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잠잠해졌다. ‘나온 건가? 다시 왜 조용하지.’ 울음소리가 그치고 난 바로 직후 간호사가 서둘러 나오더니 나를 분만실로 이끌었다. 그리고 들어가며 생각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아내와 의사, 간호사들만 있던 방에 새로 태어난 우리 아이가 있다고? 어떻게 생겼을까? 얼마나 조그마할까? 날 닮았을까?’ 


   분만실은 아까보다 조금 더 어둑어둑했다. 간호사에 이끌려 들어가는 느낌은 마치 눈가리개를 하고 불 꺼진 방에 미리 준비된 선물을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아내가 서프라이즈!라고 외칠 것만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땀에 젖은 손을 바지에 닦으며 천천히 다가갔다. 밖에 있다 들어와 눈이 잠시 어두웠다. 커졌던 동공이 제 크기로 돌아올 때쯤 아내가 앞에 보였다. 제풀에 지쳤는지 천천히 감은 눈을 뜨고 웃으며 나를 맞이했다. 말은 없었지만 표정만 보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내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평온해 보였고 조금 전까지 구겨졌던 입술은 U자로 선하게 변했다. 높은 온도의 습식 사우나에서 갓 나온 듯 병원 임부복이 흠뻑 젖어 있었다. 짧은 눈 맞춤에 표정으로 대화가 오고 갔다. 너무 고생한 아내를 측은하게 내려다보니 가슴 아래쪽에서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아내 손을 가져와 내 손에 포개어 환하게 미소로 격려했다.


   그때! 아내의 다리 아래 덮어둔 천으로 된 장막 밑으로 붉고 하얀 무언가가 넘어왔다. 움직인다. 꿈틀대며 두리번거린다. 그래. 아기다! 아기! 내 아기. 버둥거리는 아기는 붉은색 핏물에 하얀 밀가루같이 끈적이는 점막이 뒤덮여 있었다. ‘이래서 핏덩이라고 하는 건가?’ 보인다. 보여. 내 눈으로 보여. 우리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심장이 더 빠르게 요동쳤다. 너무도 작은 손과 발을 바들바들 떨면서 있는 힘을 다해 또다시 울어 재꼈다. 방안이 떠나가듯 소리쳤다. 저 작은 체구에서 방 안이 가득 채워질 만큼 큰 소리로 울어대는 것이 놀라웠다. 지금, 이 순간이 환희? 감동? 감격? 어떤 감정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마냥 기뻤고 행복감이 큰 파도가 되어 밀려왔다. 의사는 아기가 태어난 걸 인증하듯 내 눈에 확인시켜 주고 다시 장막 밑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어느새 내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노랑머리 간호사가 내 오른손에 차가운 물건 하나를 쥐어 주었다. 날은 짧고 손잡이 부분이 긴 의료용 가위다. 어떤 용도로 건네줬는지 바로 알아챘다. 땀에 젖은 손 때문에 행여 놓칠세라 단단히 부여잡았다. 이윽고 의사에 의해 장막 일부가 걷히고 아기가 다시 들어 올려졌다. 다시 한번 크게 울음소리를 내고 난 뒤 입맛 다시듯 쩝쩝거리는 소리를 냈다. 조명이 어두운 탓에 이번엔 아기 피부가 붉은빛과 보랏빛이 섞여 보였다. 이리저리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한 의사는 아기를 간호사에게 건넸다. 아기가 나왔지만 바로 탯줄을 자르진 않았고 간호사는 가위를 잘 들고 있으라고 재차 강조했다. 



   잠시 후 탯줄 특정 부위를 어느 정도 간격을 두어 자를 수 있게 위치를 알려주었다. 남자라면 대부분 내 아이가 태어나면 탯줄 자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오늘, 지금. 내 손으로 탯줄 자를 생각에 한층 설렘이 가득했다. 탯줄을 자르는 행위는 단순히 태어났으니 순서에 의해 잘라내겠다는 것보다는 남자에서 부모가 된다는 의미로 이제부터 아빠라는 호칭을 가지게 된다는 의미 그리고 가장으로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 부담보다는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생애 몇 안 되는 소중한 의식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그랬다. 탯줄 자를 때 무섭지 않았냐는 물음에 ‘곱창 자르듯 그냥 자르면 돼.’라고…. 이 소중한 의식을 곱창에 비유하고 싶지 않았다. 탯줄 하나에 의지한 채 열 달 가까이 잘 버티고 자라온 아이다. 이 의식을 시작으로 아이와 난 아빠와 자식 관계를 시작한다. 


   천천히 가위를 들었다. 탯줄이지만 가위질에 아이가 아플 것만 같았다. ‘누구나 다 하는 탯줄 자르기지만 잘 못 자르면 어떡하지?’ 가위질 한 번이 뭐라고 긴장감으로 손에 계속 땀이 차 마르질 않았다. 빨간 선과 파란 선 잘 못 자르면 터지는 폭탄도 아닌데 왜 이렇게 떨리던지. 신중히 가위를 벌려 깊숙이 넣었고 오른손에 약간 힘을 실어 엄지와 검지를 맞잡았다. 


   싹둑-. 


   잘랐다. 한 번에 잘리지 않아 여러 번 잘라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했지만 한 번에 해냈다. 그렇게 탯줄은 끊어졌고 세상과 이어졌다. 그간 탯줄로 숨을 내쉬던 아기는 이제 폐 속 깊숙이 공기를 들이마시며 배아에서 태아를 거쳐 온전한 사람이 되어 우리 가족에게 왔다.


   잘린 탯줄의 흔적이 아기 배꼽 언저리에 남아있었다. 바로 간호사에 의해 파란 빨래집게 같은 것이 반투명한 탯줄 끝에 집혀 말려있었다. 시간이 흘러 저것이 떨어지면 배꼽이 되겠지. 아직 양수도 채 벗겨지지 않은 상태로 엄마 가슴 위에서 생애 처음 느껴보는 따뜻한 피부와 심장의 진동을 느끼고 있다. 아내는 주르륵 눈물 자국을 길게 남기며 울고 있지만, 슬픔이 아닌 감격과 행복의 미소로 아이를 맞이했고 조금 전 본인이 직접 낳은 아기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는지 이리저리 둘러본다. 그사이 난 열 달 가까이 뱃속에 품고 지내던 그 아기가 맞는지 신기해하면서도 손가락 발가락을 확인했다. 차마 만져볼 수는 없었다.


   “나영아 진짜 아기다…, 우리 아이야. 닮았어…”

   “응. 처음 보자마자 우리 둘을 꼭 닮은 것 같아 놀랐어.”


   정말 그랬다. 양수에서 유영하느라 얼굴이 불고 울어대느라 일그러진 얼굴이지만 우리 얼굴이 고스란히 담겨 닮아 있었다. 아기는 본능과도 같이 엄마의 젖가슴을 찾았고 모유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입을 가져가려 꼬물대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다신 없을 이 모습을 가슴속 깊이 담아두려 노력했다. 단 한순간도 눈에서 떼지 않았다. 시야가 뿌옇게 차올라 앞이 흐렸다. 안경 너머로 보이는 아내와 아기의 모습에 목이 메어 왔다. 차오른 눈물에 눈가가 흠뻑 젖었다. 그동안 고생한 아내에게도, 좁은 엄마 배 안에서 아빠와 엄마 만날 날을 기다렸을 우리 아기에게도 너무나 고마웠고 사랑스러워 가슴이 뜨거웠다. ‘내가 이렇게 눈물이 많았었나?’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고개 돌려 눈물만 연신 걷어 냈다. 아내도 아기를 품에 안고 눈물이 멈추지 않아 눈두덩이가 부어 충혈되어 있었다. 흐르고 있는 저 눈물의 의미는 나와 같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특하게도 아기는 더 울지 않았다. 아기는 태어나면 한참을 울어대는 건 줄 알았지만, 꼭 그런 것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를 닮아서인지 피부는 까무잡잡했고 혈관이 많이 보일 정도로 투명했다. 발바닥은 내 집게손가락만 한 길이였고 손은 주먹을 꽉 쥐고 오므려 마치 작은 물만두 같았다. 


   그렇게 잠깐 감동에 취해 있을 때 노랑머리 간호사의 부름에 돌아보았다. 언제 준비했는지 바퀴 달린 철제 거치대를 가져와 내게 손짓했고 그 위에는 작은 욕조가 걸쳐 있었다. 세상에 이런 크기의 욕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작았다. 미온수를 담아 아기를 따뜻한 물에 씻을 수 있도록 준비한 것이다. 태어나면 바로 데려가 신생아실로 향할 줄로만 알았는데 이런 소중한 순간을 마련해 주다니 병원 측에 감사했고 준비해 준 간호사에게도 눈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병원 측 규정에 따라 분만 과정의 절차였겠지만 감동이었다.


   “자 아버님 먼저 휴대전화 저한테 주시고요. 양손 엄지와 검지를 저처럼 동그랗게 OK 하듯이 말아주시고 세수하듯 손 날을 붙여 주세요. 네. 그 상태로 욕조에 손을 살짝 담그고 기다리시면 돼요. 힘은 너무 주지 마시고요. 편안히 계시면 되세요.”


   온종일 ‘남편분’이라고 부르더니 그새 ‘아버님’이라고 호칭이 바뀌었다. 아버님이라는 말도 낯선데 이상한 동작까지 시켜 갸우뚱했지만, 잠자코 기다렸다. 간호사는 능숙한 동작으로 아내의 가슴으로부터 아기를 안아 머리 쪽을 내 손바닥 위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조용했던 아기는 버둥거리다 다시 울음이 터졌다. 아까보다 더 떠내려갈 만큼 울어대다 몸에 물이 닿았는지 잠시 조용해졌다. 말랑말랑한 머리가 느껴졌고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부서질 것만 같아 손바닥으로 살며시 감싸 쥐고 그대로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이렇게 엄지와 검지를 아이 두 팔이 들어갈 수 있게 열어 주시고 끼워 잡아 보세요. 그러면 편안하게 잡으실 수 있을 거예요. 잡고 계시면 저희가 물을 끼얹을 거예요. 그러면 아버님은 아기 등과 팔을 천천히 문질러 주세요.”


   손바닥에는 머리를 두고 양손 엄지와 검지를 두 팔에 끼우니 정말 아이가 그대로 안전벨트라도 한 것처럼 고정되어 편안한 자세가 되었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처음 보는 우리 아기가 내 손안에 있다 보니 긴장되면서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미끄러워 떨어트리진 않을까 염려스러웠지만 따뜻한 물이 편안했는지 오히려 나보다 아기가 침착하게 손 발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아기와 하나가 된 자세를 취하고 나니 두 간호사는 욕조 양쪽으로 자리 잡고 물을 조금씩 끼얹기 시작했다. 부서질까, 떨어질까. 난 힘을 줄 수도 안 줄 수도 없이 경직된 상태로 물에 담겨 있는 아기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너무 긴장되어 보였는지 간호사는 아기에게 태어나서 축하하고 보고 싶었다는 말을 계속 걸어주라고 주문했다. 아기가 아빠 목소리를 들으면 공포심과 긴장감이 이완된다는 이유였는데 막상 살갑게 말을 하려다 보니 간호사들 앞에서 쑥스러워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사실 나도 아기도 오늘 처음 보는 사이 아닌가. 그래도 용기 내 속삭이듯 말을 걸어보았다. 그러다 보니 아기가 정말 듣고 반응하는 건지 조용히 듣고 있는 것 같았고 때때로 동작을 멈칫하며 귀 기울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간단한 절차들이지만 이렇게 하는 이유 역시 ‘르봐이에 분만법’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아기와의 첫 유대관계를 중시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고 열 달 가까이 엄마 배 안에서 지내느라 몸에 묻어있는 양수를 닦아내기도 하고, 아기에게는 물소리와 함께 편안함을, 아빠에게는 친밀감을 주기 위한 절차이기 때문이다. 


   태어나 첫 목욕에 기분이 좋은지 살짝 미소 지어 보이는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도 이 세상에 없던 내 아기가 눈앞에서 미온수에 몸을 담가 발을 구르고 있다. 사람의 피부가 아닌 것 같은 감촉은 부드럽다거나 말랑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질감이었다. 아기를 씻기는 사이 아까는 제대로 보지 못해 다시 한번 눈으로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를 세어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손, 발 양쪽 모두 다섯 개씩 확인하고는 배꼽 부위를 보니 잘린 채 말려있는 탯줄이 눈에 띄었다. 저곳으로 열 달 동안 영양공급을 받고 세상에 나오기 위한 준비를 했을 거라는 생각에 아기지만 기특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잘린 탯줄의 잔재가 때어지고 나면 비로소 배꼽이 되겠지?’ 과거 엄마가 왜 장롱 안 깊숙이 말라비틀어진 아들의 탯줄 찌꺼기를 거즈에 감싸 그 오랜 세월 보관하고 있었는지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미온수 목욕을 마치고 간호사는 샤워가운만 한 크기의 얇은 천을 가져와 아기를 휙휙 포장하듯 두르고는 능숙하게 물기를 닦아낸 뒤 다시 한번 아내가 안을 수 있도록 가슴에 안겨 주었다. 그리고 다시 돌려준 휴대전화 속에는 목욕 중인 아기와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한 번뿐인 이 소중한 순간을 어느새 사진과 영상으로 담아준 간호사가 정말 고마웠다. 


   내 손을 떠나 아내에게 안겨있는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지금 이게 무슨 기분이지?’ 오히려 내게 묻는다. 실감? 볼을 두드려 꿈이나 망상이 아님을 느꼈다. 간혹 믿기지 않는 상황이 오거나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되면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판단이 바로 서지 않을 때가 있다. 깊게 꿈을 꾸다 경련을 일으키며 벌떡 일어나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도 많다. 하물며 지금같이 이런 탄생의 순간은 현실 자각이 오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달콤한 꿈에서 아직 깨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지금, 이 순간이 꿈일지라도 오래오래 꾸고 싶은 마음이다. 두 손을 보니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고 조금 전까지 느껴지던 아기의 감촉이 그대로 살아있어 꿈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내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 난 이제 부정할 수 없이 ‘아빠’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간호사도 이제 날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오래전 ‘아버지’를 부를 때 내 입에서 나오던 ‘아빠’라는 이름. 꼬꼬마 어린 시절 내겐 너무나 든든했던 이름 ‘아빠’. 그 이름은 따뜻했고 부드러웠고 때론 강했다. 좁은 단칸방에서 작은 숨소리로 숨바꼭질할 때는 영락없는 내 친구였고, 엎드려 넓은 등에 올라타면 기꺼이 무릎이 닳도록 말이 되어 주었고, 넓디넓은 어깨 딛고 올라가 천정에 머리가 부딪칠 만큼 목에 걸터앉아 오르면 비행기를 탄 것 같아 소리 지르며 아빠에게 놀이동산 같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 어두운 퇴근길 저 멀리 긴 그림자가 보이면 목청껏 그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기도 했다. 어쩌면 그 당시 집에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마저 소중했고 내겐 전부이지 않았을까.


   이제 그 타이틀을 고스란히 내가 갖게 되었다. 언젠가 내 아이에게서 ‘아빠’라고 불리게 되는 날 한때 내 아버지처럼 반드시 든든한 아빠가 되겠노라고 다짐했다. 아버지도 내가 태어나던 날 지금 느끼는 이런 기분이 조금이라도 들었을까? 엄마가 아기를 낳고 내가 태어나던 날까지 술에 절어 있던 그날, 아버지의 자식을 처음 마주했던 그때를 어떤 기억으로 가슴에 가지고 계셨을까? 아내처럼 땀에 절어 수척해 있을 엄마에게 수고했다고 품에 안아 주기는 했을까?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이것만큼은 분명하다고 믿고 싶었다. 무뚝뚝한 성격에 살가운 말씀은 안 하셨겠지만 그래도 내 피붙이고 내 자식이라며 최소한 흐뭇한 미소는 지어주시지 않았을까? 그리고 뒤돌아 눈물 한 방울 흠칫 흘리시진 않았을까. 잘은 몰라도 아버지가 날 처음 안았을 때 무척 기뻐하셨다는 엄마의 말에 비추어 보면 지금 느끼는 이 감정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유추해 본다. 내 아버지가 느꼈을 감정과 내가 아빠가 되는 과정에 만감이 교차하는 지금. 너무나 미워하는 아버지이지만 오늘, 이 순간만큼은 감사함을 전해본다. 저를 태어나게 해 주셔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아내 가슴에 안긴 아기는 몇 차례 눈을 슬쩍 떴다가 감으며 누가 내 아빠이고 엄마인지 확인하는 것 같았다. 아직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아기에게 태명을 조그맣게 불러 보았다. 소리가 재미있었는지 엷은 미소를 띠는 것 같았다. 터무니없이 허튼소리 같지만 태어나는 순간을 아기도 함께 기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먼 훗날 내 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는 날. 오늘 이 날을 회상하며 아이와 함께 첫 만남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토록 기다려오던 아이가 오늘은 눈앞에 있다는 것. 이보다 신기하고 기이한 경험이 또 있을까 싶었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인생의 변곡점을 찍는 순간들이 여럿 있기 마련이다. 기억에는 없지만 내가 태어나는 순간과 학교라는 곳에 처음 발을 디딜 때, 국방의 의무로 군에 입대할 때,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아내와 혼인서약을 할 때 변곡점을 한 점 한 점찍어왔다. 오늘은 그 점을 하나 더 찍게 되는 날이 되었다. 이젠 그 변곡점에 내 아이와 함께 있다. ‘나’와 ‘아빠’라는 이름으로 점을 이어 원만한 그래프를 완성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자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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