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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리미 May 11. 2024

21. 내 인생 두번째 가족

아내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내 인생 두번째 가족

   어머니는 내가 태어났을 당시 너무나도 못생긴 모습에 놀라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닌 것 같다고 가족들에게 우스개로 말씀하셨다고 한다. 요즘도 그때가 그리우신지 간간이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그럴 때마다 “아기는 갓 태어나면 누구나 다 못생긴 거 아닌가?”라고 볼멘소리를 했었다. 하지만 내 아이를 직접 본 순간 엄마 말은 그리 와 닿지 않았고 내 생각도 틀렸다는 걸 바로 알았다. 갓난아기는 누구나 못생겼을 것으로 생각했던 내가 어리석었다. 어쩌면 단순히 ‘귀엽다’, ‘예쁘다’, ‘잘생겼다’라는 단어의 기준 안에서는 못생겼다고 말 할 수도 있지만 분명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한다는 말이 백 번 공감되었다. 이제 막 태어났고 나 또한 아빠가 된 지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았다. 그사이 부성애라는 게 바로 생긴 걸까? 이보다 예쁜 아이는 없을 것 같았고 꼬물대는 사랑스러운 동작들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아직 아빠가 되었다는 것도 얼떨떨해 조금 전 눈으로 내 아이를 직접 보았는데도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아이를 보내고 다시 아내가 있는 가족분만실로 서둘러 들어갔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의사는 분만 마무리를 마친 상태였다. 아이와 함께 자리 비운 사이 절개했던 부위를 봉합했던 것 같다. 너무 수고 많으셨다고 감사하다는 말을 여러 번 고개 숙여 전했고 의사는 아이가 예쁘고 산모도 건강하다는 말을 남기고 전장의 모든 임무를 마친 장수처럼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무도 없는 분만실 안, 잠시 아내와 둘이 남겨진 틈에 땀에 흠뻑 절은 아내 머리를 쓸어 내리며 손을 잡았다.


   “나영아. 너무 고생 많았어. 많이 힘들었지.”


   더 이상 마를 수 없을 만큼 메마른 입술에 기력도 없는지 눈을 크게 뜨지 못했다. 그리고 날 바라보며 웃는다.


   “오빠도 고생 많았어. 긴 시간 동안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내 옆에서 자리 지켜내느라 많이 힘들었을 거야. 고마워.”

   “아니야 내가 뭘. 난 정말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던걸.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옆에 있는 것밖에 없어서 그냥 있었던 거야. 이제 다 끝났으니까 몸 생각하고 쉬자. 그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그래 알았어. 뚠찬이는?”

   “응.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조그맣고 귀여워. 태어나서 바깥세상이 처음이었을 텐데도 평온한 표정에 혀를 내밀기도 하고 눈을 뜨려고 하는지 여러 번 깜빡 거리기도 해. 한참을 보면서 딸이니까 널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런 건지 예쁘더라. 그리고 아이 나오면 오빠보고 꼭 확인해 보라던 손가락 발가락 다 확인했어.”

   “에이. 난 오빠 웃는 표정이 너무 좋아서 꼭 오빠를 닮았으면 했는걸. 그래도 반반씩은 닮아야지 않겠어? 우리 딸인데.”

   “아니야, 그래도 딸인데 예쁜 널 더 많이 닮아야 해. 난 보조개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어머! 보조개가 있어? 힝. 그새 또 보고 싶어. 눈물이 자꾸 나와서 얼굴을 제대로 보지를 못 했어. 언제 다시 볼 수 있데?”

   “조금 전에 신생아실로 들어갔으니까 내일 오후쯤 볼 수 있을 거야. 아주 건강하게 잘 있으니까 일단 몸부터 추스르고 기운 차리자. 그래야 번쩍 들고 젖도 물리고 안아 줄 수 있지.”

   “그래야겠지? 아직은 먹고 싶은 게 별로 없다. 그냥 조금 배고프기만 하네. 몸무게는 얼마나 된데?”

   “2.9kg이래.”

   “정말? 너무 작다. 내가 입덧을 너무 심하게 하느라 못 먹어서 작은 건가? 그런 거라면 엄마가 너무 미안한데.”

   “그러잖아도 나도 걱정돼서 간호사에게 물어봤는데 이 정도 몸무게면 정상이래. 걱정하지 말라고 하던걸.”

   “다행이야. 당장 모유부터 부지런히 많이 먹여야겠어.”

   “그래. 일단 너부터 먹자. 그리고 나영아 이 말은 꼭 하고 싶었는데. 우리 뚠찬이 낳아줘서 정말 고마워. 옆에만 있기에 너무 미안할 정도로 그 고통 참아내며 끝까지 버티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오빠가 없었다면 아마 더 힘들었을걸? 나 솔직히 해내지 못할 줄 같았어. 그만둘 수 없는 걸 알면서도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포기할 줄 알았어. 그런데 아이도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생각에 힘을 냈어. 오빠도 옆에 있어 줘서 힘이 되었고. 맨날 엄살 많다고 놀렸는데 오늘만큼은 그렇지 않지? 그렇지? 나 대단하지? 함께 있어 줘서 내 옆에서 손잡아줘서 나 역시도 정말 고마워.”


   아이를 낳았다는 생각에 자신도 대견했는지 미소 지으며 인정해 달라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낫지만, 오히려 잘할 줄 알았다고 볼을 쓸어 내리며 믿음의 눈빛으로 화답했다.


   “그래 널 닮은 아니 우리 둘을 닮은 우리 아이에게도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꼭 전하자.”


   입술은 여전히 하얗게 부르트고 거칠었지만, 창백했던 얼굴은 혈색이 약간 돌아와 핏기가 돌았다. 아직 아내의 이마에는 더는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송골송골 빼곡히 땀으로 가득했다. 젖은 땀에 감기 걸릴까 휴지로 톡톡 닦아내 주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옷 매무새를 만져주며 말없이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내 아내가 맞나?’ 이젠 알 거 다 안다고 생각했던 아내를 다시 보게 되었다. 아내는 내가 그간 생각했던 것 보다 강했고 단단했다. 오히려 옆에 있기만 했던 나를 격려한다. 부부란 것이 이런 것인가.



   비록 아이는 둘이 가졌지만 대부분 모든 출산 과정은 아내 혼자 견뎌냈다고 난 생각한다. 조금 전까지 긴박하게 사투를 벌이던 아내 모습만 보더라도 애는 누구나 쉽게 낳는 것이 아니란 걸 눈과 몸으로 느꼈다. 여자니까 당연하게 낳는 것이 아니란 것도 알았다. 이번 분만을 통해 하나 확실하게 느낀 건 남편의 역할이 있든 없든 그 역할이 크고 작든 반드시 아내 옆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함께 한다는 것 자체로 남편에게도 아내에게도 의미가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이 모든 걸 혼자 감당하라 하기에는 너무 힘들고 외로운 일이다. 평생 가슴 시린 순간으로 상처가 되어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만 같았다. 대신 낳아줄 순 없지만 ‘같이’, ‘함께’라는 것만으로도 서로 힘이 되고 오히려 부부간 결속력이 강해지는 걸 느꼈다.


   비록 시간상으로는 단 하루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꼬박 하루 동안 시간이 지날 때마다 롤러코스터와 같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했다. 아내도 나도 롤러코스터가 무섭고 두려워 내리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참고 견뎠다. 남자라는 이름을 걸고 오늘 하루 있었던 이 모든 것들을 평생 잊지 않고 아내를 위해 헌신하고, 이제 가장으로서 더욱 무거워진 어깨와 책임감을 가족을 위해 희생하겠노라고 가슴에 손을 얹고 스스로 약속해본다.


사랑해. 내 인생 두 번째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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