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교감
신생아 검사 / 새벽 1시 51분
“지금부터 아기를 신생아 검사실로 옮길 거예요. 아버님은 가운 벗지 마시고 지금 그대로 저를 따라 이쪽으로 오세요.”
간호사는 아내 가슴에서 아이를 떼어 품에 감싸 안고는 신생아용 간이침대로 옮기고 문밖으로 나를 안내했다. 바퀴 달린 간이침대에 애벌레처럼 쌓여 마치 치열했던 전쟁 통에 구출된 아기처럼 도르르 끌려간다. 난 아기를 한 순간도 눈에서 떼지 않았다. 다른 분만실 두 곳을 지나 ‘신생아 검사실’이라고 붙은 방 앞에서 간호사는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들어갔다. 꼬박 하루가 지나도록 아내와 아이를 위한 기다림의 시간들이었다. 이제 기다리고 대기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기다려야 하는 것이라면 며칠이라도 기다릴 수 있다.
“아버님 들어오세요.”라는 말에 화색을 띠며 검사실로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허리춤 높이의 작은 테이블 앞에 섰다. 깨끗하게 물기 닦인 아이는 테이블 위 밝은 조명 아래에서 손과 발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버둥대고 있었다. 울지도 않고 연신 움직이며 꼬물대는 소리에 만져보고 싶었지만, 간호사가 조명을 가까이 비추고 절차에 따라 확인하느라 바로 만져보진 못했다.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보여 주었고 두 다리를 들어 엉덩이, 항문과 생식기까지 꼼꼼히 살펴 확인시켜 주었다. 양쪽 두 발바닥은 작은 롤 스탬프를 문질러 잉크를 바른 후 검사용지에 찍었다. 너무도 능숙하게 이리저리 돌려가며 아이를 마치 새로 산 물건이 깨진 곳이나 결함은 없는지 확인하듯 빠른 동작에 순서대로 검사를 진행하고 모든 상황을 기록했다. 내 자식이지만 나도 자세히는 처음 보는 터라 유심히 살펴보았고 그중 입을 오므릴 때마다 보이는 옴폭 들어가는 보조개를 보고 확신했다. ‘내 딸이다!’ 나도 보조개가 있어 더욱 내 자식이라고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보조개는 후천적이고 성장해 가며 보조개가 드러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갓 태어난 아이의 옴폭 패인 음영을 눈으로 확인하고는 잘못된 내 상식을 바로 잡았다.
이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어 사진 한 장 급히 찍으려 휴대전화를 들이댔다. 간호사는 찍을 수 있는 시간을 따로 주겠다며 손가락을 가리켰다. 가리키는 곳 안쪽에는 사진 스튜디오에서 볼 수 있는 엔틱하고 그럴싸한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뒤로는 스탠드 형 거치대에 배경지가 걸쳐 있어 사진 찍기에 적합해 보였다. 모든 확인이 끝나고 난 후 간호사가 가리킨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들어보니 작은 소프트박스 조명도 양쪽으로 갖추고 있었다. 간호사는 내가 앉아 있는 사이 아이를 아까와는 다른 담요에 잘 두르고 내가 안을 수 있도록 천천히 건네려고 했다. 남의 아이도 한번 제대로 안아본 적 없던 나는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문득 책에서 본 자세가 생각나 두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러 땀을 닦고는 기타 치는 모양으로 팔을 구부렸다. 간호사는 쭈뼛 거리는 내가 우스웠는지 피식- 웃으며 오른손 왼손 하나하나 위치를 잡아 주었고 난 마네킹처럼 자세를 고정하고 잡아주는 동작에 따라 팔만 구부렸다. 건네진 아이를 최대한 힘을 빼고 살포시 안았다. 왼쪽 팔꿈치가 접히는 안쪽에 머리를 대고 오른손은 감싸 안아 엉덩이 쪽을 받쳤다. 처음이라 약간 경직되는 것이 두 볼에 느껴졌다. 아이가 크게 불편해하는 것 같진 않았다. 아이 역시 아빠에게 안겨보기는 처음이라 서로 익숙해져야 했다. 방안은 시원했지만, 등에는 진땀이 흘러내렸다.
“휴대전화 저한테 주시고 여기 보세요. 여러 각도로 찍어 드릴 테니 아이도 바라보고 웃으면서 대화도 나누세요.”
우린 지금 휴대전화가 있어 언제든 간단히 사진으로 기록하고 남길 수 있는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 병원에 오면서도 평생 한 번뿐인 소중한 장면들을 좋은 카메라로 찍어두자는 욕심에 DSLR을 가져와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가져오지 않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나도 처음 보는 내 아이를 오늘 처음 보는 간호사가 너무나도 능숙하게 다양한 구도로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이보다 낯선 상황이 있을까 싶었다. 표정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지만 품에 안긴 내 아이를 내려다보니 가슴이 벅찼고 웃음이 떠나질 않았다. 나도 아이를 바라보고 아이도 나를 보고 있다. 의자와 조명까지 구색은 갖추고 있었지만, 스튜디오 사진처럼 잘 나오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사진보다 아이도 나도 태어나서 처음인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기를 바랐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이의 호흡과 심장소리 그리고 처음 교류하고 얼굴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순간이라 의미는 매우 컸다.
이미 태어나기 전 딸이라는 건 미리 알았지만, 눈으로 직접 확인하니 내게도 남들처럼 딸이 생겼다는 게 더욱 실감이 났다. 아직은 성별이 큰 의미가 없는 신생아이지만 딸이기 때문에 기분이 더 좋았다. 사실 아내와 난 아들이든 딸이든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었다. 하지만 점차 ‘딸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조금씩 더 앞서기 시작했다. TV 속 육아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딸이 나와 애교 섞인 표정이나 하는 짓에 더욱 끌렸고 육아용품을 둘러보다가도 머리핀, 드레스, 리본 달린 구두 등 작고 예쁜 것이 더 마음에 끌렸다. 점차 여자아이에 대한 로망 같은 것이 생겨 더 딸 쪽으로 기울었던 것 같다. 산부인과는 현행 의료법상 성 감별금지로 인해 성별을 미리 알려줄 수가 없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어느 날 “분홍색 담요를 준비하셔야겠습니다.”라는 말로 넌지시 암시했었다. ‘무슨 말이지? 정말 담요를 갖춰 놓으라는 소리인가?’ 난 바보같이 바로 이해하진 못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에게서 그 의미를 듣고 뒤늦게 이해했다. 우리 둘은 얼굴 마주 보며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밖에서 5분 정도 기다리니 투명 아크릴로 만들어진 인큐베이터를 간호사가 끌고 나왔다. 사방이 투명해 아이가 잘 보였다. 인큐베이터라는 것을 말로만 들어봤지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의료 기구 같아 아이가 무섭지는 않을까 걱정했지만 편안하게 누워 꿈틀거리고 있었다. 작은 아이에 비해 커다란 인큐베이터는 둥그런 우주선 같아 보였고 한쪽에는 손을 넣어 아이를 꺼낼 수 있는 문이 달려있었다. 태어나 처음 느껴지는 자기 혀가 신기한지 연신 작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꼬물거리는 아이 모습에 내 표정은 무장해제 되었다. 아직 흐릿한 한쪽 눈을 겨우 반만 뜨고 이리저리 동공을 굴려 둘러본다. 나도 모르게 재빨리 “아빠 여기 있어.”라고 손을 흔들어 아빠의 존재를 알렸다. 움직이는 생명 앞에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다시 눈물이 찔끔 새어 나왔다. 옆에서 간호사가 보고 있었지만 흐르는 눈물을 닦지는 않았다.
평소 사소한 것에도 의심이 많은 난 혹시 아이가 바뀌진 않았는지 조금 전 신생아 검사실에서 손목의 점과 엉덩이의 퍼런 무늬를 기억해 둔 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누가 봐도 날 너무 닮아 바뀐다고 하더라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은 아직 완전히 마르지 않아 약간 젖은 상태였고 아까와는 다른 조금 두껍고 하얀 속싸개와 그 위로 초록색 천을 한 번 더 두른 채 둘둘 말려 동그란 얼굴만 내밀고 있다. 포근한 표정으로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동작으로 입술과 혀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양수에서 갓 나와 눈은 약간 부어 있었지만, 세상이 궁금한지 껌뻑껌뻑 애써 두 눈을 뜨려 노력하고 있었다. 오랜동안 어둡고 깜깜한 엄마 배 안에서 나와 환한 빛에 눈이 부신 것 같아 오래 뜨지는 못했다.
잠시 기다려주던 간호사는 ‘신생아 확인 표’를 작성하고 분홍색 띠를 꺼내 확인 표와 비교하며 아내와 내 이름, 몸무게, 날짜, 성별, 시간을 기록했다. 다시 내게 확인시켜 주고 띠를 아이 발목에 채웠다. 이곳에서 퇴원하기 전까지 발목에 채워두기 때문에 혹시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고 부모와 확인하는 절차로 보였다. 나도 발목에 채워진 띠로 인해 조금은 안심되었다. 이제 곧 신생아실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진을 많이 찍어두라고 했고 간호사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나며 나를 배려했다. 반사적으로 뒷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재빠르게 꺼내 여러 각도로 돌려가며 카메라 앱의 동그란 셔터를 눌러댔다. 그 사이 아이는 오른쪽과 왼쪽 눈을 번갈아 가며 크고 작게 뜨더니 사진 찍는 것을 아는지 멈칫하며 내 얼굴을 바라보기도 했다. 교감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것일까. 서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여전히 신기하기만 했다. 사실 갓난아기는 시력이 아직 형성되지 않아 보통 3~4주 정도가 지나야 30cm 이내의 물체를 볼 수 있고 흑백에서 천연색으로 점차 구별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그래도 조금 더 눈 마주쳐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고 싶었지만, 인큐베이터를 사이에 두고 만질 수는 없었다.
‘우리 내일 다시 만나자. 내 딸, 엄마하고 같이 꼭 보러 갈게…’라는 말로 짧게 손 흔들어 잠시 떠나보내야 했다. 아이는 잠시 떨어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그렇게 사진과 영상 몇 개를 남기고 아이는 간호사와 함께 신생아실로 향했다. 인큐베이터가 멀어져 갔다. 잠시 떨어지는 것마저도 못내 아쉬웠다. 몇 차례 울음소리만 들은 게 전부라 혓바닥 날름거리는 소리라도 더 듣고 싶었다.
초음파 사진으로는 음영이나 굴곡에 의해 형태만 보이기 때문에 누굴 닮았는지 크기는 어떠한지 유관으로는 전혀 가늠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얼굴 생김새나 크기가 무척 궁금했고 초음파 사진과 비교해 정말 닮았는지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요즘은 초음파 사진도 3D 기술이 날로 발전해 제법 이목구비가 잘 보이긴 해도 하루빨리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다. 아내와 초음파 사진 몇 장 손에 쥐고 유치하게 너 닮았네. 나 닮았네. 웃으며 이야기하던 때가 얼마 전인 것 같았는데 어느새 바깥세상에 나와 아빠와 엄마를 만나다니. 그렇게 소원을 하나 이루었다고 해야 할까. 잠깐이었지만 함께했던 순간과 우리 아이 얼굴을 기억하고 잊지 않도록 계속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