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둘이서만 살아가는 것
Epilogue 1
아이러니하게도 난 아내와 단둘이 살고 싶었다. 사회적 분위기도 임신과 출산에 신중했고 출산율 지표에 영향을 주는 아이를 하나만 낳을지 둘을 낳을지의 문제가 아닌 내 삶에 ‘아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지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정부도 심각한 출산율 때문에 아이 낳기를 독려하고 권장하고 있었지만 다양한 정책들을 쏟아내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출산율 그래프는 J커브를 그리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회적 분위기나 정부 정책과는 무관하게 우린 우리 둘 만으로도 가장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결혼 이후 달콤한 데이트를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일이 없어 좋았고, 새벽이 넘어가도록 어깨에 기대어 동이 틀 때까지 기다리다 아침 첫 버스에 몸을 실어 힘들고 피곤해도 둘이었기에 좋았다. 또, 주말 아침 늦잠으로 침대에 널브러져 아내의 다리가 내 가슴 위에 놓여 있어도, 아침 햇살에 눈 부셔 찡그린 표정으로 침 흘린 자국도 모른 채 씩- 웃던 아내 모습에도 행복했다. 당연하게도 결혼 후 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만족했고 그거면 된다고 항상 생각했다. 아이라는 것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렇게 우린 모든 순간을 함께 했다.
이젠 요즘 세상에 의도적으로 아이 없이 둘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일명 딩크족(Double Income, No Kids)이라 불리는 커플들. 이들은 결혼하고 부부생활은 즐기면서도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게 아닌 계획적으로 가지지 않는 부부들을 일컫는다. 맞벌이로 경제적 여유가 생기다 보니 부부간 취미 생활이나 여행도 즐기고 아이에게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부부 둘만을 위해 적극적 소비를 지향한다. 숨기지 않고 당당히 딩크족임을 지인과 가족들에게 떳떳이 알리고 그들만의 세계관을 향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자신 있고 당당하게 딩크족으로 살아가는 부부들은 때론 돈벌이와 육아에 지친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철저한 피임과 정해놓은 날짜에 맞춰 부부관계를 갖기도 하고 열심히 일한 만큼 목표한 금액에 도달하면 몇 달 전부터 예약해 놓은 해외 여행지로 스스럼없이 떠나기도 한다. 물론 딩크족을 지향하는 부부들마다 사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근본적인 개념과 방향은 거의 같아 보인다. 임신과 출산 그리고 아이에게 얽매이지 않고 오로지 내 삶을 영위하며 짧은 생을 철저히 부부만의 계획으로 살아가는 것. 더 이상 특별한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다. 물론 눈치는 보지 않아야 한다.
일은 남자가 하고 애는 여자가 봐야 하는 구시대적인 발상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오히려 여자들이 사회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집안일은 남자가 하는 경우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비록 ‘남자가 왜 집안일을 하지? 능력이 없나?’ 같은 선입견이나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하지만,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 매체나 우리만 주변을 둘러봐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면 곧 임신, 출산, 아이로 이어지는 공식도 선입견을 가지고 ‘결혼한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왜 아이가 없는 거지?’, ‘무슨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혹시 애를 낳지 못하는 걸까?’, ‘너희는 애 안 낳을 거니?’라는 물음으로 어깨 올리며 갸우뚱할 때도 있지만, 절대적인 공식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이해해야 한다. 아니 어쩌면 아무렇지 않아야 하는 게 정상일지 모르겠다.
결혼연령도 점차 늦어져 노산 문제나 환경적인 요인들도 많아 임신 자체가 어려운 부부들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불임과 난임으로 관련 전문센터를 찾는 사람들이 잦아지는 이유이다.
아이 없는 부부만의 삶. 경제적 이유도 한몫하겠지만 그 빈자리를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도 행복의 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에게 쏟는 열정과 비용을 오롯이 반려동물에게 향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반려동물을 내 자식처럼 생각하다 보니 아이에게 대하는 것 못지않게 동물인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키운다. 직접 낳지만 않았을 뿐 그들에겐 아이와 다를 게 없다. 반려동물은 부부가 모두 일을 할 수 있고 둘만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어 아이를 키울 때보다 제약이 덜하다. 그러다 보니 관련 시장도 늘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동호회나 카페도 속속 생겨나고 활동 인원수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이렇듯 아이보다 부부의 삶을 중요시하는 사회와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해진 만큼 결혼 후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점차 달라지고 바뀌어야 한다. 즉, 임신과 출산은 결혼했고, 부부이기 때문에 당연히 거쳐야 하는 절차가 아니라는 말이다. 분명 다양한 삶이 존재해야 하고 그 존재하는 삶을 존중하면 된다.
우리 부부도 딩크족까지는 아니었지만 결혼했으니 다음 수순으로 당연히 아이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무심코 나도 내 아이가 있다면 어떨까?라는 생각 정도였다. 내 아이를 간절히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조금은 남들 시선을 의식하기도 했고 딩크족이 아무리 늘어난다고 해도 주변에 아이 가진 부모가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보니 군중심리가 발동한 게 아닐까. 아이가 나오는 영화나 TV를 보다가도, 공원에서 부모를 뒤에 두고 소리 지르며 앞서 뛰어가는 아이를 볼 때면 문득 내 모습을 대입시켜 보기도 했다. 솔직히 자신은 없었다. 핑계 같지만, 아빠가 된다는 것에 잘할 수 있을지 없을지 확신이 없었고 남의 일인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당연히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었고 ‘내가 아빠가 될 자격이 있나?’라고 자문하며 외면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와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라는 영화를 보다가 가볍게 우리 2세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있었다. 서로 영화를 보며 알코올은 조금 들어간 상태였지만 정신은 멀쩡해 대화하는 대는 문제가 없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를 나누던 중 문득 서로 진지했던 순간이 있었다. 아내 신체나이가 주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너무 우리 부부 삶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물론 우리 삶도 중요하지만, 먼 훗날 나이 먹고 쇠퇴하고 늦어져 후회하진 않을지, 우리 닮은 예쁜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시기가 지금이 아니면 안 되지 않겠냐고, 최소한 시도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그렇게 여러 주제를 우리 삶에 대입시켜 대화가 오가며 아이에 관한 생각이 점차 하나가 된 날이기도 했다. 그날이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