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자식을 낳아보기 전까지는 부모 마음 몰라
Epilogue 2
“네가 자식을 낳아보기 전까지는 부모 마음 몰라.”
청소년기 시절 어머니에게서 종종 들어왔던 말이었지만 그때마다 대수롭지 않게 흘려 들었던 것 같다. 당시엔 그 말이 가슴에 전혀 와닿지 않았고 그저 속 썩이는 자식에게 속상한 마음으로 의례 하시는 말씀 정도로만 이해하고 지나쳤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조금이지만 그 말뜻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은 후회의 동물이라고 누가 그랬던가.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저 가슴 아래부터 먹먹히 후회가 밀려온다. 조금 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 드렸더라면, 조금 더 자식으로서 기쁨과 행복을 안겨드렸더라면 하는 그런 후회. 우리는 왜 자식을 낳아야 비로소 느끼고 알게 되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모르겠다. 과장일지 모르지만 때로는 자식이란 부모 속을 썩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식과는 달리 아이러니하게도 부모는 그런 자식 하나 바라보며 당신 인생의 반 이상을 할애한다.
거칠고 긴 트랙을 계주로 달리는 것같이 오랜 시간 부모라는 이름으로 손에 바통을 쥐고 뒤도 돌아볼새 없이 앞 만 보며 달려간다. 이젠 내가 그 바통을 이어받아 손에 쥐고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 또 그 자식의 자식으로 이어지는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반복은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는 단계에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면서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순리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누구나 그러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온전한 인간으로 빚어지게 된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었다면 책임감을 느끼고 손에 쥔 바통은 꼭 쥐고 완주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명감까지도 필요 없다. 이유? 그런 거 없다. 그냥 하는 거다.
‘부모’와 ‘자식’이란 단어는 주어진 운명이고 부부가 거쳐야 할 과정과 책임이었다면 ‘임신’과 ‘출산’은 온전히 ‘여자’에게 그 무게가 실린다. 생물학적으로 임신과 출산은 여자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다는 건 불문이다. 무려 열 달 동안 늘어나는 체중을 감당해야 하고 평소 즐겨 입었던 옷이나 유행하는 패션은 포기해야 하며 술과 흡연은 당연히 금지다. 또 그 흔한 커피 한 모금 제대로 마실 수 없다. 다시 말해 여자에서 임산부로 사회적 신분이 바뀌게 된다 해도 과하지 않다. 물론 그에 따른 약간의 복지, 혜택 정도는 있다. 대중교통 이용 시 임산부 배려석은 당당히 착석할 수 있고, KTX 승차권 할인, 공항 패스트 트랙, 출산 전후 휴가, 의료비 경감, 보건소에서 제공해 주는 엽산과 철분제 그리고 임산부임을 인증해 주는 분홍색 배지 제공 등이 그것이다. 대단히 많은 혜택으로 보이지만 그나마도 일부 혜택은 현실에서 누리기 쉽지 않고 특정 상황이나 때에 따라서는 유명무실할 때가 많다. 사회적 제도 보완과 인식의 뒷받침이 되지 않고서는 누리기 쉽지 않다.
하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여자라면 누구에게나 임신과 출산이라는 선택과 권리를 가질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그 권리가 축복이라 말하지만 반대로 불평등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축복이라 말하고 싶지만, 불평등하다고 말하는 이유도 조금은 알 것 같다. 신체적 이유의 불평등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여자로서 임신에 따른 부담감이나 모든 과정을 혼자 겪어야 하는 신체적 어려움, 때로는 나 홀로 출산, 임신중독이나 유산의 두려움, 남자의 무관심 등 명확히 따져보면 불평등이라기보다는 여자 혼자 감내하는 것들이 많아 생기는 불만의 목소리, 아니 어쩌면 두려움으로 발버둥 치는 것이라 이해되기도 한다.
임신하고 출산을 하는 건 여자라면 대부분 기쁘고 행복한 마음이 먼저 들겠지만, 그 이면엔 압박과 함께 무섭고 두려운 마음이 앞서기도 한다. 계획된 임신의 경우는 조금 덜 하겠지만 계획 없이 덜컥 아이가 들어선 경우라면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로 ‘자. 이제부터 네가 엄마가 되는 거야 네 이름 따위는 없어.’라고 떠밀리다시피 임산부라는 명찰을 가슴에 달게 되면 더욱더 그런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임신 이후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우울증부터 호소하는 여자들이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이다.
반대로 간절히 임신을 원해도 아이는 찾아오지 않는다. 시험관이니 인공수정이니 하는 다양한 시술을 여러 차례 시도해 보지만 간절한 만큼 보답이 찾아오지 않아 바늘구멍같이 낮은 확률인데도 기적이 찾아오길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때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충분히 값어치를 지불할 의향이 있으니 언제든 내가 원할 때 갖고 싶은 걸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
이처럼 세상에는 임신과 출산이 두려운 사람이 있는 반면 간절한 사람들도 많다. 더불어 심적, 육체적 비중은 아무래도 여자들의 몫이 크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남자들은 이 몫에 대해 반박하기 힘들 것이다. 간혹 아내가 불쑥 먹고 싶은 게 있어 그게 무엇이든 어디서든 사러 나간다거나, 밤이고 낮이고 무거운 몸에 다리가 아파 주물러 주기도 하고, 쫙쫙 갈라지는 피부에 튼 살 크림 몇 번 발라주는 정도로 그 몫에 대해 상당 지분이 있다고 말한다면 아내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임신과 출산은 ‘여자’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것이라고 강조하여 말하고 싶다.
작가의 말
이 글의 최초 기획 의도와 목적은 임신과 출산을 오로지 여자 몫으로만 알고 있는 지인의 생각과 행동을 보고 남자들에게 경각심을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남자’라는 이름으로 내 몸이 당장 임신하지 않았고 할 수 없을뿐더러 출산할 일이 전혀 없으므로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자들. 그들에게 그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남자는 남자가 잘 안다. 아무리 강한 어조로 ‘남자들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발 그러지 말아!’라고 메시지를 전달하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을뿐더러 강요하는 것 같아 삐딱한 시선으로만 보게 된다. 그래서 남자의 시각으로 ‘임신의 어려움’과 ‘출산의 고통’을 지면으로나마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었고, 남자가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전달해야 여자의 마음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에 기반해야 했다.
‘공감’이라는 키워드에 비중을 두어 ‘임신이 너무나 간절한 부부’와 ‘아이를 갖지 않는 선택적 비 출산인 부부’, ‘날짜가 며칠 남지 않아 곧 출산을 앞둔 부부’, ‘이제 막 가족계획을 시작하는 신혼부부’ 그리고 ‘이미 아이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부부’들을 타깃으로 현실에 입각해 글을 작성했다. 남의 일처럼 소설 같이 느껴도 괜찮으니 편안히 읽고 고개 끄덕이며 무언가 뇌리에 남는다면 어느 정도 기획의도와 목적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을 나무에 비유한다면 현장감 있는 출산 과정이 이 책의 큰 뿌리다. 그 뿌리와 함께 아내의 소중함을 되돌아볼 수 있는 아내와의 첫 만남, 임신에 이르기까지 정신적, 육체적인 고된 시간 그리고 소중한 우리 아이를 만나기까지 그 과정에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담아 결국 남자가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만한 내용 들을 줄기와 가지로 엮었다. 물론 절대적으로 남자의 시선으로 담았기 때문에 일방적이고 편향적일 수도 있으나 사회생활이나 가장으로 거듭나기까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들도 여럿 다뤄 지금 나는 어떠한지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특히나 남자들은 자라온 환경 특성상 아버지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어린 시절 겪었던 ‘내면 아이’를 끄집어내 그 시절을 돌아보기도 하고 부자지간, 모자지간도 회상해 볼 수 있는 부모 이야기는 보너스다. 그렇다고 여자 관점에서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니 반대로 남자들의 시선을 느껴보고 그들의 고충도 함께 생각해 본다면 더할 나위 없는 이 글이 지닌 목적에 들어맞는다.
특별한 소수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다.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모두 공감하기를 바라며 써 내려갔다. 다른 육아 서적처럼 딱딱한 형식으로 남자는 이래야 하고 저래야 한다는 공식 같은 가르침이 아닌 소설처럼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자도 공감할 수 있는 전개를 통해 사실적인 임신과 출산을 느끼고 배울 수 있도록 했다. 서점에 가면 남자들이 볼 수 있는 책으로 육아 비법이 담긴 서적은 많지만, 유독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는 여자 입장의 서적이 많아 남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바이블 같은 책들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여자는 이렇고 저렇다는 서술만으로는 ‘임신과 출산은 여자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기 쉽지 않아 보였다. 결국 모든 것은 ‘여자니까’라는 말로 귀결되기 때문에 여자의 고충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정보 차원에 이해와 접근이 쉽지 않아 보였다. 이 글을 읽고 각자의 상황에 대입해 현실과 소설 중 어디에 더 가까운지 가늠해 보는 것도 좋다. 부디 역지사지로 깊이 공감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며 특히, 남자들! 현실을 회피하지 말자. 당신만 바라보고 있는 미래의 아내, 과거의 여자친구 그리고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뜨겁고 따뜻했던 그때를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이 글을 다 읽고 뒤돌아 갈 때쯤엔 내 아내와 아이가 존재하는 이 모든 것에 감사함이 가슴 깊이 남기를 바란다.
지금은 특별한 것이 아닌 당연한 것이 소중한 시대이다.
+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