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난하다. 돈 안 드는 여행만 한다. 벽지와 침구만 깔끔하면(그렇게 보이면) 가장 싼 호텔방을 예약해 떠난다. 속옷 한 장, 똑딱이 카메라 한 대, 수첩, 펜, 책, 물통을 아무렇게나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선다. 작은 나라이니 멀어봤자 버스로 4시간. 어디든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다.
소여행 (小旅行)이 좋다. 많은 걸 하지 않는다. 호텔 주위를 산책하거나 산에 오르거나 절에 가서 108배를 한다. 입장료가 싼 미술관, 박물관, 문화재를 둘러본다. 그것의 좋고 나쁨을 멋대로 분별하면서 자신의 안목에 우쭐하는 시간을 보낸다. 사진을 찍고 메모를 하고 햇살에 얼굴을 굽고 혼자 흥얼대거나 괜히 바닥을 차면서. 한가로워지는 연습을 한다.
지난주엔 경주에 갔다. 도착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거니 탄식 같은 한 마디가 터져 나왔다. “너 참~~ 잘 돌아다닌다!” 칭찬일리 없는 그 말을 들으며 난 웃었다. 대수롭지 않은 여행을 하니 떠나는 일도 대수롭지 않은 것이다. 기념할 것도 해결한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여행. 그런 가벼움이 좋아서 난 떠나는 게 아닐까.
하루 일정은 되도록 일찍 끝낸다. 오후 4시쯤 여유롭게 호텔방에 돌아온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벌게진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젖은 머리채로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면 더없이 행복해진다. 이렇게 노력 없이도 행복해지는 구나, 당황하면서. 나는 정갈한 여유를 멀뚱히 바라본다.
그러다 아무런 타이밍에 요가를 한다. 떠오르는 대로, 내키는 대로 몸을 움직이는 동안 정적과 고요 속에서 마음이 넉넉해진다. 요가는 가벼운 여행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빈 공간에 맨 몸, 맨 손, 맨 발로 선다. 파트너도 없이 혼자 제 멋대로. 시간과 장소의 구애도 없이 자유롭다. 요가도 하나의 여행인지 모르겠다. 맨 몸으로 떠나서 홀로 돌아오는 작은 여행.
속초여행 땐 함께 간 친구와 요가를 했다. 마침 침대 없는 온돌방이라 널찍한 방이 요가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손을 뻗고 허리를 비틀고 깊게 호흡하면서 땀을 쏟아내니 한결 가뿐해졌다. 끙끙 앓던 친구도 끝내고 나니 기분 좋게 웃었다. “몸이 가벼워졌어!” 개운해하는 표정, 다음에 또 하자는 그 말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여행은 결국 비워내기 위해 떠나는 것 같다. 시시콜콜 얽혀 있던 갈등과 집착, 불안, 시기, 권태 등을 털어내고 다시 가벼워져서 돌아간다. 그래서 난 소여행이 좋다. 언제든 떠날 수 있고 무리 없이 복귀할 수 있는 단출함. 그 속에 요가는 가장 좋은 동행자가 아닐는지.
봄바람이 간질거린다. 훌훌 털고 떠나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이다. 나는 또 어딜 가볼까,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대여섯 가지 선택지를 들고 부자가 된 기분이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언제든 돌아올 수 있다. 더없는 자유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소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