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002 숨 쉬는 법부터 다시 배우다

by arimu

요가를 할수록 느끼는 거지만 인헤일. 엑스헤일. 이게 참 어렵다. 어떤 까다로운 동작보다 깊고 바른 호흡이 더 어렵다. 얕고 짧게 몰아치는 호흡에 허둥대다보면 옆자리 요기니의 깊고 긴 숨소리에 기가 죽는다. 선생님은 다그치듯 외친다. “숨 쉬세요! 숨 쉬세요!” 마치 숨쉬기를 모르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 같다. 그럴 때면 헉헉 대는 자신이 얼마나 낭패스러운지 모른다. ‘숨 쉬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스포츠웨어 브랜드 룰루레몬은 런던 레전트 상점가에 전광판 광고를 내걸었다. 거기엔 Breath란 고정된 활자 옆으로 In (Out) In (Out)이 일정한 간격으로 번갈아 반짝였다. 메시지는 간결했다. 숨 쉬란 거다. 숨 좀 돌리란 거다. 세계에서 가장 번화한 상점거리, 오늘도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 그 부산스러움 속에서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한 숨’이 아닐까.

룰루레몬 공식 인스타그램 @lululemon


광고는 우리의 욕망을 드러낸다. 그것이 희소하고 절박한 것일수록 메시지는 강력해진다. 이 영민한 브랜드가 주목한 것은 ‘숨’이다. 숨은 모두가 쉬고 내쉬는 것인데 굳이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룰루레몬은 '숨'에서조차 양질의 차이가 있음에 주목했다. 즉 우리는 바쁜 일상 속에서 누더기 같은 숨을 내쉬며 비단가운 같은 안식의 한 숨을 욕망하고 있는 건 아닐까. 크게 부풀어 올라 차분히 가라앉는 숨, 담대하고 느긋한 숨, 그 사치스런 한 숨을 말이다.

지난해 내가 겪은 가장 신비로운 체험은 ‘공황장애’였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밤 11시, 아직 지워가야 할 체크리스트가 이다지도 많은 때, 도무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정형외과에서 받은 물리치료가 잘못된 것일까, 하루 종일 느낀 뒷목 통증 때문에 숨 쉬기도 불편했다. ‘숨이 막히면 어떡하지?’ 벌컥, 무서운 생각이 들더니 아니나 다를까 덜컥, 숨이 막혔다. 공황장애는 10여 분간 계속됐다. 그동안 내가 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착각이라며 자신을 다독이는 것이었다. 스스로의 가슴을 토닥이며 그 박자에 맞춰 숨을 쉬고 내쉬었다. ‘숨, 포기할 수 없는 내 숨. 괜찮다. 괜찮다’ 그렇게 난 죽다 살아났다.

한때 초단위로 산다는 말이 근사하게 들린 적이 있었다. 시간을 쪼개 치열하게 사는 삶, 배로 사는 삶, 미쳐야 미친다는 그런 삶 말이다. 하지만 자기극복이 자기착취가 된다는 걸 깨닫고부터는 깊은 회의와 낭패감이 몰려왔다. 턱턱 숨이 막힐 때마다 아늑해지는 정신을 붙들며 난 무엇을 했던 것일까.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정작 내 숨은 이토록 짧고 얕은 것을.

숨은 마음의 투영이다. 초조함에 숨이 가쁘고, 다급함에 숨넘어간다. 쫓기는 마음에 숨이 막히고, 놀란 마음에 숨이 멎는다. 그리고 구원된 마음에서야 비로소 숨이 트이는 것이다. 질식할 것 같은 일상에서 우리는 한가로운 숨결을 되살릴 수 있을까. 차분하고 깊은 호흡, 넓은 전망과 짙은 나무의 향기를 되찾을 수 있을까.

요가수업이 시작됐다. 오늘도 다짐한다. “동작보다 호흡. 서두르지 말고 허둥대지 말고, 천천히 나만의 흐름을 만들어가자.” 요가가 가르쳐준 것, 그것은 이 한 숨, 한 숨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이렇게 숨 쉬는 법부터 배우고 있다. 매숨이 연습이다.


인헤일. 엑스헤일.

인헤일. 엑스헤일.

026.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001 요가매트 만큼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