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하게 자기리듬으로 나아가도록
“어깨와 귀가 멀어지세요!”
요가수업에서 종종 듣는 말이다. 완벽한 비문인데 곱씹을수록 재밌다. 어깨와 귀가 멀어지다니. 어떻게? 발이 달렸나, 손이 달렸나. 떼었다 붙였다 할 수도 없고. 당연하게도 이 말은 어깨의 힘을 빼라는 소린데 (그럼 자연히 귀는 멀어진다) 문제는 ‘왜 굳이 이런 아리송한 말을 쓰는가’다. 아마 선생님은 무척 답답하셨던 모양이다. 그냥 힘을 빼라, 하면 (절대) 안 빼니까 연상 작용을 일으킨다는 게 이런 비문을 탄생시켰다. “어깨와 귀가 멀어지세요!” 그럼 나는 그제야 힘을 탁- 푸는데, 정말 몇 센치 쯤 어깨가 턱- 떨어져 놀란다. ‘내가 언제 이렇게 힘을 주고 있었지?’ 완전 무의식의 일이다.
일을 할 때도 그랬다. 책상 앞에 앉은 나는 가관이었다. 컴퓨터 모니터에 이끌리듯 가슴과 목이 앞으로 쭉- 쏠렸다. 마우스를 쥔 손을 따라 오른쪽 어깨엔 힘이 빡! 들어갔다. (이로 인해 양 어깨가 시소처럼 기울었다.) 아무리 자세를 바로잡아도 금세 잘못된 모양(거북목과 기울어진 시소)으로 돌아갔다. ‘이러니까 어깨가 뭉치지.’ 스스로도 한심했다. 실랑이는 한 달 여 계속됐다. 알아차리고, 바로 잡고, 알아차리고, 바로 잡고. 그러다 서서히 바른 자세가 됐고, 어깨에 힘만 빼도 노동의 피로가 줄어든다는 게 놀라웠다.
일본 유학시절 한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사장님을 엄마처럼 따라서 호칭도 마마였다. 마마는 일하러 온 우리에게 밥도 지어주고, 간식도 만들어주고, 반찬까지 챙겨 보내는 정 많은 분이셨다. 그런 마마가 한 차례 사업에 실패한 경험을 들려주었는데 그때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목을 이만큼 빼서 턱을 빳빳이 들고 다녔다니까. 어깨는 하늘만큼 치솟아서는…” 그때 그녀는 성공에 취해 우쭐했다고 한다. 위에서 내려다 보 듯 사람들을 대했다고 한다. 그리곤 드라마에서 흔히 보듯 곤두박질쳤다. 참담한 실패를 겪었다.
난 마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의 파란만장한 일본생존기보다 이러한 에두름 없는 자각, 뼈아픈 성찰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실패와 실수는 누구나 한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사람마다 다르다. 우리의 태도에 따라 과거는 짐이 되기도 하고 발판이 되기도 한다. 마마는 비로소 어깨에 힘을 뺄 수 있었고 조금은 가벼워 지셨다. 난 그런 그녀가 보기 좋았다.
어쩌면 이런 알아차림이야말로 인생의 나침반이 아닐까. 우리는 수시로 길을 잃는다. 무지해서 오만해서, 무모해서 소심해서 자꾸 갈팡질팡한다. 그때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런 알아차림일 것이다. 내 걸음이 얼마나 볼썽사나운지, 자꾸 갓 길로 세는 건 아닌지, 자신을 속이고 주변을 속이면서 앞서 가려고만 하지 않는지 스스로 살피는 거다. 정직하게 묻는 거다. 문제가 있다면 바로 잡는다. 고쳐 걷는다. 나답게 나아간다. 난 이런 정직함이 좋다.
법정스님의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스님의 걸음걸이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깊은 산 속에서도 얼마나 거침이 없으신지, 두 팔을 앞뒤로 힘차게 젓는 모습이 보기에도 가볍고 당당하셨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산에 사는 사람과 마을에 사는 사람의 걷는 법은 달라요. 천천히 걸으면 더 피곤하다고. 자기리듬을 타면 돼”
자기리듬, 그건 어떻게 가능할까. 난 우선 어깨에 힘을 빼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에게 솔직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씩씩하게 내딛는 거다. 물론 처음엔 어렵다. 자꾸 움츠러든다.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다. 하지만 자꾸 알아차리고 바로잡으면 된다. 그렇게 심기일전하며 다시 뚜벅뚜벅 걷는 거다. 좀 더 가볍게 천천히 오래. 오늘도 그렇게 나아가기로 했다. 쉽진 않지만 해볼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