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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아리니 Oct 25. 2022

복잡한 감정교류가 필요 없는 '우리'



두 번 다시 야구장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 어떻게 아직까지 야구팬으로 남아있냐고 묻는다면, 그다음 경험이 중요했다고 말하겠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를 한 번의 실패로 포기하는 인간은 아니었다. 물론 김하성 선수의 사인이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 좌석 선택은 중요했다. 한참을 고민하고, 후기도 찾아봤지만 좌석도에 한 번 속은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의 추천을 믿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고전을 따르기로 했다. 


모를 땐 돈을 써라!


바로 그거였다. 그래서 나는 제일 비싼 좌석에 앉아보기로 했다. 야구장을 그렇게나 많이 다닐 줄 모르고 결정한 일이었다. 


고척 스카이돔에서 가장 비싼 좌석은 '로열 다이아'라고 불리는, 이름부터 어마어마한 포수 뒤쪽 좌석이다. 로열 다이아석은 평일 5만 5천 원, 주말 8만 5천 원의 몸값을 자랑한다. 


그 좌석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선수들의 목소리는 물론, 숨결까지 느낄 수 있으며, 19년도에는 그 좌석을 산 사람 중 신청자를 받아 선수들이 나갈 때 덕 아웃 앞에 서서 하이파이브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게다가 딱딱한 다른 좌석들과 달리 소파 재질로 되어 있어 3시간을 앉아 있어도 엉덩이가 아프지 않다. 말 그대로 돈값하는 좌석인 것이었다. 


나는 어차피 사람이 많이 오는 주말에 나가는 인간은 아니었으므로, 평일 5만 5천 원으로 이 모든 행복을 누렸다. 


로열 다이아는 비싼 좌석인 만큼 수용인원이 많지 않았다. 덕분에 다닥다닥 붙어 앉는 것도 피할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 좋은 좌석인 만큼 스폰서 기업에게 협찬을 해주거나 하는 경우도 있어 이 좌석에 앉은 사람들은 소리 높여 응원을 하진 않았다. 박수를 치거나 환호성이 나올 만한 플레이엔 소리를 높였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각자 여유를 즐기며 MLB 스타일의 응원을 해도 되는 곳이었던 것이다. 


할렐루야! 드디어 광명을 찾았다. 아차! 나는 무교다. 


솔직히 로열 다이아를 체험하지 않았더라면 다시 집관에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로열 다이아에 갔고,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했고, 그들의 목소리도 들었으며, 침대처럼 포근한 로열 다이아석에  편하게 앉아서 야구를 관람했다. 천국이었다. 밖에서 돈을 쓰는 취미라곤 하나도 없던 내가 충분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다. 


아니, 그럼 돈이 많아야 혼자 야구를 즐길 수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좌석 편에서 따로 이야기하겠다. 







'아니, 근데 박병호를 제일 먼저 좋아했으면서 그 사람 사인은 안 받았어요?'라고도 묻는다면 나중에 아주 먼 훗날 받았다. 


박병호 선수는 히어로즈의 심장이었으며, 모든 팬들이 사랑하는 이였으며, 그중에서도 꼬마팬이 미친 듯이 많았다. 무슨 소린고 하니 차마 버틸 수 없었다는 거다. 사람이 많은 것도 힘든데 그 인파가 온통 아이들이라면? 백기 투항이다. 그래서 사인회만 노렸고, 위에 말했듯 단 한 번도 당첨되지 않았다. 


그래도 기죽진 않았다. 이미 김하성 선수의 사인을 받아 푹 빠진 상태기도 했고, 19년도의 그들의 야구는 너무나도 찬란했기 때문이었다. 찬란한 그들의 야구 덕분에 나쁜 생각을 많이 날려 보냈지만, 나는 여전히 부정적인 인간이었다. 내가 야구를 보는 날엔 그들이 질 것 같았고, 내가 그의 타석을 보면 안타를 못 칠 것 같았으며, 내가 그의 투구를 보면 홈런을 맞을 것 같았다. 


하지만 영웅이라 불리는 그들은 이런 나의 부정적인 생각을 가볍게 날려버렸다. 그들은 나와 상관없이 항상 빛났고, 내 예상을 좋은 쪽으로 뒤엎었으며,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이겼다. 그리고 항상 이렇게 말했다. 


'우리 히어로즈 팬들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힘낼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틀에 박힌 말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렇게나 빛나는 사람들이 나를 '우리'라고 불러주었다. 언제나 존재의 의미에 의문을 두는 사람에게 동경하는 이들의 '우리'라는 호칭은 큰 의미가 있었다. 현재 살아있는 이유가 오직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에게, 그 외에도 너는 '우리'라는 이유로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말해준 것 같았다.  


'우리 팬'이란 이름 아래 나는 그들의 측근이 아니면서도 측근이었다. 그저 그들을 응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복잡한 감정교류는 필요 없었다. 사람과 사람이 친해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그 쑥스러움, 약간의 갈등, 그를 넘어섰을 때의 카타르시스와 평안, 그러나 다시 찾아오는 위기까지. 그 복잡한 모든 것들이 야구팀과 팬 사이에선 필요 없는 감정이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나는 그런 그들을 응원한다. 그거면 충분했다. 모든 문제를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지만 분이 풀리는 소심하고 예민한 인간에게 이만큼 단순하게 사랑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조금은 다른 시작이었지만, 그렇게 나 또한 진정한 야구팬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완벽하게 사랑하게 된 19년도는 나의 성향을 좋은 쪽으로 바꾸는 해가 되었다. 히어로즈의 찬란한 햇빛 속에서 나는 어느새 땅을 밟고 서 있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배 위에서 언제 뛰어내릴까 생각하던 나를 히어로즈라는 다정한 파도가 어느새 뭍으로 밀어 보내준 것이었다. 아주 부드럽고 기분 좋은 물살이었다. 


혼자가 아닌 '우리'로 존재하는 것은 생각보다 더 행복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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