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도 한 시즌 동안은 일을 하면서 반차를 쓰고, 연차를 써가며 야구를 봤다. 고척에서 하는 경기는 주말을 제외하고 어떻게든 보려고 노력했다. 경기는 즐거웠으나 혼자 순수하게 야구만 보는 인간에게 - 밖에서 먹으면 잘 체해서 커피 외엔 사 먹지도 않았다 - 남는 건 카드 명세서뿐이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좌석이 하필 고척에서 제일 비싼 좌석이었던 탓에, 달라진 카드 명세서가 더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을 보는 일을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다만, 무언가를 남길 수 있다면 좋을 거라 생각했다. 카드값 말고, 그들의 기록 말고, 내가 그곳에 있었음을 증명하는 무언가를, 내가 그들을 좋아하고 있음을 내가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말이다.
그러다 생각난 것이 거의 버려둔 내 유튜브였다. 현재 내 유튜브는 천오백 명 정도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데, 그때만 해도 열아홉 명, 그러니까 내 친구들만 보는 아주 작고 소중한 것이었다. 그 유튜브는 말도 없고 연락도 없는 내가 내 일상을 간헐적으로나마 기록하던 그런 용도일 뿐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히어로즈가 내 삶에 스며들었고, 그들을 빼곤 일상을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 일기장 같은 유튜브에 그들이 담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한 시즌을 보내며 나도 그들에게 응원을 하고 있다는 걸 간접적으로라도 표현하고 싶었다.
반복해 말하지만 나는 소심한 인간이다. 그러므로 내가 야구장 전광판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팻말을 들고 춤을 출 순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상으로 당신들을 응원하러 갔었어요,라고 표현하는 건 가능할 거 같았다. 더불어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친구들에게 보여줄 수도 있고 말이다. 그렇게 내 야구 직관 브이로그가 시작되었다.
내가 유튜브를 운영해 유명해질 거란 생각은 맹세코 하지 않았다. 다만 검색창에 자기 이름을 가끔 검색해본다는 선수들이, 우연히 내 영상을 봐서 이렇게 뒤에서 조용히 응원하는 팬이 있다는 걸 알면 뿌듯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선수의 지인인 누군가가 내 영상을 보고 선수들에게 '야 너네 팬이 이런 것도 하더라?'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내 기록을 남기며, 선수들에게 응원하고 있다는 메시지도 전달할 수 있을 테고, 결과적으로 내 나름대로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는 셈이었다.
요즘엔 야구 직관 브이로그가 많아졌지만 내가 처음 시작한 21년도만 하더라도 나처럼 꾸준히 야구 직관 브이로그를 올린 사람이 없었다. 이 부분에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최초다! 음하하하! 물론 조회수를 많이 받는 직관 브이로그는 따로 있다. 이 부분을 궁금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빠르게 말하고 넘어가겠다. 야구 직관 브이로그로 조회수를 많이 올리고 싶다면 가장 빠른 길은 선수들의 출퇴근 길을 찍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사인을 받는 장면을 찍어 올려도 좋다. 팬서비스 장면은 누구나 좋아하는 - 특히 야구선수는 팬 서비스로 욕을 먹은 적이 많아 더더욱 - 것이고, 퇴근길은 선수들의 사복을 볼 수 있어 조회수 올리기에 딱 좋다. 자기 자신을 주체로 한다면 욕설을 섞은, 혹은 눈물을 담은 열정적인 야구 응원과 먹방을 곁들이는 것이 조회수 올리기에 좋다.
그래서 소심한 당신이 그런 걸 했냐고? 당연히 아니다. 물론 나도 초반엔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어야 했기에 내 얼굴을 찍기도 했지만 말없이 야구장 가기 전까지의 과정을 찍을 뿐 위에 말한 건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걸 할 수 있었다면 이미 내가 받은 사인이 백개를 훌쩍 넘었을 거다.
대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했다. 야구장 내부로 들어온 선수들을 주로 찍었고, 사람들이 흔히 보지 못하는 연습 과정이나, 사이사이의 재밌는 장면을 편집해 올렸다. 그게 바로 나 같은 인간이 쉽게 할 수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이었다. 내 일상이기도 했고 말이다.
좋아한다고 표현하면 살아있는 것 같았다. 기록을 남겨두면 내가 어느 장소에 존재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존재를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몰랐던 나는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것으로 나는 내 존재를 형상화했다. 그리고 나는 이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나름대로 처절하게 살아보려는 몸부림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겨놓은 기록은 내게 또 다른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나는 기록을 시작하며 이벤트에 당첨되기도 했고, 다른 팬들에게 좋은 말을 듣기도 했으며, 관계자들에게도 잘 보고 있다는 말을 들었고, 내 버킷리스트 중하나였던 웹툰 작가라는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라고 묻는다면 짧게 답하겠다. 마침 연재를 끝낸 한 웹툰 작가 지인이 우연히 야구로 범벅이 된 내 소셜 미디어를 보고 야구 관련 작품을 하나 해보지 않겠냐고 권한 것이다. 나는 당연히 오케이 했다. 내 버킷리스트에 버젓이 적혀 있던 일이었다. 해보지 않았다고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내 마음이, 그를 표현한 내 수단이, 내 버킷리스트를 이루게 해 주었다.
그러니 나는 나같이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눈치를 잘 보는 모든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에게 소중한 무언가가 있다면, 좋아하고 응원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반드시 표현하라고. 소리치지 않아도 된다. 춤을 추지 않아도 된다. 다만 당신의 방식대로 표현하라.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다. 쉬워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또 그로 인해 힘을 받을 수 있는 건 긍정적인 감정이다. 확신한다. 왜냐하면 내가 온몸으로 그걸 겪었기 때문에.
나는 정말 죽고 싶었다. 내게 남은 빚을 해결하고 깔끔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었다. 그런데 고작 공놀이 하나로, 그깟 공놀이 하나로 살고 싶어졌다. 이 사람들이 잘하는 걸 보고 싶었다. 이 팀이 원하는 우승이라는 목표를 이루는데, 나도 티끌 같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게 다였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들에 기대어 힘을 받고 있는 건 나다. 그들로 인해 내 내일은 또 기대로 가득 차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지 나도 몰랐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다. 오늘의 나는 '우리'의 눈부신 미래를 꿈꾼다.
이 모든 건 순전히 내가 사랑하는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다고 생각한 그 마음, 그리고 그를 표현한 아주 작은 용기에서 비롯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