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고 빛났던 '그 시절'을 서성일 때
휴직 전 마지막으로 학교에 근무했던 해. 그 해는 여러모로 축복받은 1년이었다. 담임을 맡았던 학급은 대부분 유순한 고3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소속된 부서의 부장님은 더없이 온화하고 배려심 넘치는 분이셨다. 같은 사무실을 쓰던 동료들과도 궁합이 잘 맞았다. 잦은 야근이나 진학지도에 대한 부담감 정도는 견딜만하다 느낄 정도로 업무환경이 흡족했던 한 해였다. (교사는 매년 가르치는 학년이나 맡는 업무나 부서를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업무 환경이 매해 바뀌는 편이다). 경력 10년차에 근접해가는 시기여서 업무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최고조였다. 수업이나 생활지도에 대한 노련함도 나름대로 쌓여 있었다.
당시는 결혼 3년차였으나 아이를 갖지 않은 때였다. 신혼의 자유로움을 한창 즐겼다. 여유가 생기면 평일 저녁에도 커피숍이나 도서관에 가서 글을 쓰거나 공부를 하며 일과를 보낼 수 있었다. 가까운 이들과 틈틈이 콘서트나 공연을 구경하러 다니는 일도 일상 속 특별한 즐거움이었다.
일하는 중간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을 수 있는 동료들과 지인들, 업무능력에 대한 자신감, 일상에서의 자유로움과 안정감, 되돌아보면 그 모든 것을 갖추었던 화양연화(和樣年華)와 같던 시기였다. 하루하루를 대체로 평온하게, 뜻맞는 사람들과 함께 하며 한 해를 보냈다.
당시의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교사로 재직하는 기간 동안 이처럼 즐겁고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며 일할 수 있는 1년은 흔치 않다는 사실을. 다음 해만 되어도 학교나 업무, 동료들은 바뀔 것임에 분명했다. 이처럼 즐거운 시기를 다시 맞이하기 힘들 거라는 사실 역시 예상하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휴직 이후 해외살이를 하며 자신감이 가장 떨어져 있던 시기, 나는 그 해를 자주 회상했다. 사람들과의 대화 도중 그 시절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때면 수그러졌던 어깨가 절로 펴졌다. 단순히 옛 시절이 좋았다는 그리움 정도가 아니었다. 현재가 빛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만큼 나는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최근 들어서도 그 때의 내가 자주 떠올랐다.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부터의 일이다. 일상을 보내는 순간마다 그 1년이 머릿속에 자주 떠올랐다. 점심시간에 무리지어 다니며 대화를 나누는 직장인들을 볼 때는 그 시절 동료들과의 시간이 떠올랐다. 밤거리 커피숍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수다를 떠는 이들을 볼 때에는 당시의 자유롭던 나를 회상했다.
즐겁던 시절을 떠올리는데도 불구하고 기분은 경쾌하지 못했다. 오히려 마음이 아렸다. 어떤 형태의 노력을 기울여도 그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당시 내가 지니고 있었던 자신감, 자유로움, 사람들과의 시간. 그 모든 것들을 고스란히 재현해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으니까. 수업을 하지 않은지 수 년이 흐른데다, 현재의 나는 나 자신과의 시간을 가장 많이 보내고 있는 사람이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자 그토록 다짐했건만 빛나는 시절의 나와 지금의 현실 속 나를 무의식적으로 비교하고 있었다.
이따금 나처럼 과거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났다. 가장 빛나던 옛 시절의 모습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바라보던 사람들. 과거의 옛사랑 이야기를 자랑스레 읊던 지인, 직장 커리어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절을 늘 언급하던 누군가, 모두 그 시절의 하이라이트를 반복해 훑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의 빛나던 순간을 도돌이표처럼 노래했다.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한탄도 내뱉었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나 역시 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튤립은 왜 정물화의 주요 소재가 되었을까
창턱에 놓인 꽃병 (암브로시우스 보스샤르트)
아치형으로 생긴 창문턱에 꽃병이 하나 놓여 있다. 붉은 색과 노란 색, 푸른 색을 띈 꽃들이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특이한 무늬를 한 튤립의 자태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튤립 외에도 장미와 아이리스 등 다양한 꽃이 눈에 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 속 꽃들은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움만 전달하고 있는 건 아니다. 화병 속 꽃들은 제각기 다른 시절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한창 봉오리를 피어내는 꽃이 있는가 하면, 화려한 시절을 보낸 뒤 조용히 시들어가고 있는 모습도 존재한다. 아예 창문턱에 떨어져 그 생명을 다해가는 줄무늬 카네이션도 눈에 띈다.
16-17세기를 살았던 네덜란드의 화가 암브로시우스 보스샤르트 1세(Ambrosius Bosschaert the Elder. 1573-1621)가 그린 꽃 정물화다. 보스샤르트는 자신만의 정물화 장르를 구축했던 예술가다. 특히 꽃과 벌레, 조가비 등을 함께 그린 꽃병 그림을 즐겨 그렸다.
꽃은 화려한 아름다움의 상징이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피어올랐다가 시들어버리는 인생의 한 장면을 의미하기도 한다. 17세기 상업과 무역의 부흥으로 전성기를 지내던 네덜란드에서는 이처럼 인생의 유한함, 생의 부질없음을 전달하는 정물화 장르를 바니타스화(Vanitas는 라틴어로 헛되고 덧없는 것을 뜻함. 예전에 올렸던 관련 글)라 불렀다. 주로 꽃과 함께 해골, 썩은 과일, 연기나 모래 시계, 악기 등을 그림에 나타낸다. 이 모든 사물은 죽음이라는 인간의 숙명, 생의 부질없음과 헛됨을 상징한다.
바니타스 (필립 드 샹파뉴, 1671)
바니타스화에 등장하는 꽃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튤립이다. 네덜란드인들이 사랑하는 꽃이기에 잦은 등장이 당연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름의 역사적 맥락도 존재한다.
튤립은 본래 터키를 원산지로 하며 16세기에 네덜란드에 전파된 원예작물이다. 상거래를 통해 부(富)를 축적하던 네덜란드인들은 터키에서 건너온 이 꽃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었다. 튤립은 점차 부를 과시하는 상징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단순히 관상용으로 소비되었지만, 이 꽃의 구근은 점차 얼마 후 투기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현대인들의 주식의 미래 가격을 예측하듯, 꽃뿌리가 어떤 형태의 꽃을 피워낼 것인지를 예측하며 당시의 네덜란드인들은 튤립 구근을 사들였다. 특히 튤립을 다른 꽃가루와 수분할 경우 특이한 무늬를 가진 튤립이 탄생했는데 이 기형 튤립의 인기가 남달라서 그 가격이 집 한 채 가격에 맞먹기도 했다. 튤립 구근 하나의 가격이 목수나 재단사의 1년 수입을 웃도는 경우도 있었다.
플로라와 바보들의 수레(헨드리크 포크, 1640년 경). 튤립 투기의 상황을 풍자한 작품. 튤립을 든 꽃의 여신 플로라와 그녀가 탄 수레를 따라가는 군중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가격 거품은 곧 그 끝을 맞이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과도하게 오른 튤립 가격에 불안감을 느꼈다. 튤립을 구매하려는 사람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사들인 튤립은 되팔려는 사람만 늘어났다. 투매 심리가 우세해지자 튤립 가격은 불과 4개월 만에 99%가량 급락했다. 튤립 투기에 전 재산을 바쳤다 파산하거나 빚을 지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자본주의 역사상 최초의 버블경제라 불리는 튤립 파동은 이처럼 허무한 결말을 맞았다. 이러한 연유로 튤립은 바니타스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했다. 한순간 피어났다 사그라드는 세속적 쾌락, 경제적 번영, 그리고 아름다운 인생의 찰나를 상징하는 꽃이 되었기 때문이다.
질그릇에 담긴 튤립과 카네이션 (Jacob_van_Hulsdonck) 특이한 무늬의 튤립이 눈에 띈다. @wikiart
바니타스화 속 튤립은 꽃봉오리를 화려하게 피어내지만 언젠가 시들어버릴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런 그림을 바라 볼 때마다 모든 계절과 시절은 찰나와 같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튤립이 있는 정물화(요하네스 보스샤르트)와 꽃 정물화(암브로시우스 보르샤르트) @wikiart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바니타스화는 삶의 덧없음과 공허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그림이 아니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면, 가장 소중히 대해야 할 시간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전령의 역할도 한다. 찰나와 같이 지나가는 순간. 그것은 과거 뿐만이 아니다. 인간의 유한한 삶을 생각하면 현재를 붙잡아 살아가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 된다. 그래서 바니타스화가 건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은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인 동시에 '현재를 살아내라'는 무언의 명령인 셈이다.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히거나 미래의 불안에 잠식당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작품은 전달하고 있다.
지나간 순간을 인정할 때 생기는 일
꽃이 피고 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있다. 가장 빛나던 한 때는 찰나였으며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 당연한 진리를 수긍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철학자 강신주는 자신의 저서 <감정수업>에서 과거의 절정에 사로잡혀 헤매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한다. 그에 따르면 모든 꽃나무는 매년 새로운 꽃을 탄생시킨다. 매해마다 피어나는 꽃은 비슷해 보이지만 결코 작년과 같지 않은 꽃이다. 꽃이 지는 광경을 안타까워하면서 바라본다면, 새로운 꽃이 피어나는 광경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다.
되돌아보면 내가 그리워했던 건 과거의 시간 자체가 아니라 '그 시절의 나'였다. 과거의 내가 지니고 있었던 일종의 자신감, 자유로움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당시 내 마음과 머릿속을 채우던 자신감, 당당함이 지금 대부분 허물어지고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허물어지고 없어진 그 자리를 대신 채우는 것들이 있다. 현재의 나는 그 때에 비해 융통성이나 여유라는 미덕을 조금 더 갖춘 인간이 되었다.
지나간 시절에 사로잡히지만 않는다면 나는 다른 형태의 화양연화를 맞이할 것이다. 과거의 반짝이던 내 모습이 아쉽다면, 그 시절의 인연이 유난히 그립다면, 가장 찬란했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이제는 다른 형태의 삶을 살아내야 할 시간이 왔다는 신호다. 과거를 고스란히 재현하려 애 쓸 필요 없이, 새로운 시기를 맞이해야 한다는 마음의 명령이다.
과거의 편집된 기억이 일종의 착각임을 깨달을 필요도 있다. 영화 <화양연화>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등장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영화 화양연화 속 한 장면 @네이버 영화 스틸컷
얼핏 슬픈 이야기로 들리기도 한다. 아름답고 빛나던 과거가 이제 어렴풋하고 희미한 것이 되었다는 이야기니까. 그러나 이 말은 과거를 회상할 때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착각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먼지 낀 창틀을 통해 과거의 아름다움과 빛나던 시절을 흐릿한 상태로 기억한다. 과거의 시간 속에도 일상의 지루함, 머리를 쥐어짜게 만들던 고민의 순간은 존재했겠으나, 그런 자질구레한 장면은 기억 속에 휘발된 상태다. 인간의 머릿속 거대한 편집기는 과거를 흐릿한 상태로 미화시키게 마련이니까. 과거가 유독 빛나고 아름다운 건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과거의 빛을 쫓다 현재가 비루하게 느껴질 때 되새겨보자. 지금 당신은 새로운 형태의 꽃을 피워내고 있다.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자리에는 지금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현재를 살아낸다면, 또 다른 계절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