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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Feb 08. 2022

인생의 권태기 극복법    

안정감이 답답함으로 변할 때 

안정감이 답답함이 될 때 



 스무 살이 되어 입학한 대학교는 충청북도의 시골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학교 주변에는 논과 밭, 논두렁길이 펼쳐져 있었다(가끔 술을 먹고 걷다 발을 헛디뎌 논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1, 2학년 기숙사 생활이 의무인 이 학교에서 일주일 중 5일을 꼬박 보내면서 친구들과 밤마다 수다를 떨었다. 치킨이나 피자나 탕수육 따위를 밤에 몰래 시켜먹으며 또래들과 키득거리는 일도 좋았다. 집에서 벗어난 생활은 처음엔 자유롭게 느껴졌다.       


 기본적으로 행복한 시절이었지만, 마음 한 켠 답답함과 지루함이 찾아오는 시기도 있었다. 전교생이 대략 2500명밖에 안 되는 학교 치고는 캠퍼스가 넓었으나 생활 반경은 좁았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도 잘 알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인간관계의 폭도 넓히기 어려웠다. 좁은 커뮤니티 안에서 밤마다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수다를 떨 이야깃거리는 금세 동났다. 


대다수가 20대 초반이었으니 아무래도 가장 주요한 대화의 소재는 연애였다. 00과의 누가 xx과의 누군가에게 실연당해서 술로 밤을 새웠다는 이야기, △△선배가 누구에게 고백해서 같이 논두렁길을 걸었다는 이야기 등이 밤마다 입에서 입으로 떠돌았다. 연애 이야기뿐 아니라 누군가의 버릇이라던가, 작은 외모 변화, 특정 학번이나 학과의 특성 등이 모두 대화의 소재가 됐다. 좁은 세상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서로가 서로를 관찰하는 일이 잦았다. 되돌아보면 심각하지 않은 갈등도 심각한 인간관계 문제로 느껴졌고, 누군가의 연애 실패의 역사도 큰일처럼 느껴졌다. -물론 4년 내내 CC를 하지 못한 나는 그런 실패의 역사조차 없었지만-. 적응을 할수록 학교 생활에 권태기가 찾아왔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비슷한 감정이 떠돈 적이 있다. 같은 공간에서 몇 년씩 일을 하며 지속적으로 마주치는 사이였으니 서로에 대한 TMI가 오갈 때도 있었다. (어느 곳이나 그렇듯 다른 사람에게 유독 관심사나 많은 이들도 존재했다) 변화나 융통성보다는 정해진 규칙이 중요한 조직이다 보니 '내 방식이 제대로 된 규칙'이라며 다투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안정적이고 정다운 분위기 속에 있을 때가 많았지만, 지루하고 답답한 시기도 있었다.   


 육아를 할 때도, 해외 생활을 할 때도 비슷한 기분이 마음속을 맴돌던 시기가 있었다. 한 곳에 적응하며 몸담고 있을 때 안정감을 느꼈지만, 한편으로 내가 발 딛고 있는 세계가 좁아지는 걸 느꼈다. 그런 느낌이 들 때 어김없이 권태기가 찾아오고는 했다.  



제한된 세계를 보는 폭넓은 시야, <크리스티나의 세계>


크리스티나의 세계(앤드류 와이어스, 1948)

 

 핑크색 옷을 입은 여인이 들판에 앉아 있다. 먼 언덕 위에 있는 집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여성의 모습은 애처로워 보인다. 야윈 팔과 위로 쳐든 고개. 언덕 위의 농가는 한 없이 멀어 보이고, 들판은 어딘지 황량하게 느껴진다.


 미국의 사실주의 화가 앤드류 와이어스(Andrew Newell Wyeth, 1917~2009)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작품이다. 앤드류 와이어스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미술을 배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삽화가였던 아버지로부터 그림을 배웠다. 20대에 뉴욕에서 수채화전을 열면서 화가로서 성공적인 데뷔를 했다. 사실주의에 기초한 그림을 그렸으나 그의 작품은 어딘지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앤드류 와이어스의 자화상(좌)과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헬가>(우, 1979)를



 와이어스의 많은 작품은 자신의 고향 펜실베이니아 주를 배경으로 한다. 와이어스는 주로 메인주의 쿠싱(Cushing, Maine)이라는 곳에서 생활했는데, <크리스티나의 세계>도 이 곳에서 그린 작품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크리스티나는 실제 인물이다. 와이어스의 가까운 이웃인 올슨(Olson) 가에 살던 당시 55세의 중년 여성이었다.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가 불편했지만, 휠체어 타는 걸 평소에 거부했다고 한다. 그녀는 주로 농장 주변을 기어서 돌아다니곤 했다.

 

크리스티나 올슨을 그린 와이어스의 다른 작품 

 

 어느 날 와이어스는 2층 작업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 집 주변에서 이동하는 크리스티나를 발견했다. 이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은 화가는 그녀의 모습을 작품으로 그리기로 결심한다. 몸이 불편한 크리스티나에게 포즈를 취하게 할 수 없어서 와이어스는 자신의 아내 베시에게 포즈를 취하게 하여 그림을 완성했다.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오블리비언'에 등장하는 등 다양한 영화와 소설에 영감을 준 작품이다. 


  그림은 사실적인 풍경을 그리면서도 일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림 속 크리스티나의 장애가 눈에 띄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야윈 팔과 약간 비틀려 있는 다리가 그녀의 상황을 짐작하게 만든다. 두 다리를 쓸 수 있었다면 한달음에 달려갈 집. 그것을 말없이 바라보는 크리스티나의 모습이 낯설지만은 않다. 금세 닿을 수 있을 것 같으나, 닿기 어려운 먼 곳을 바라보는 감정. 동경과 향수, 황량함과 외로움이 뒤섞인 마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끼는 감정 아닐까.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이 인상적인 작품을 그린 후 와이어스는 몇 십년간 그림 감상자들로부터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크리스티나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걸 알고 싶어 하는지 궁금해하는 이들의 편지였다. 와이어스는 명확한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림을 보는 이들의 해석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작품을 고독과 우울, 좌절의 의미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제한된 상황에 갇혀 있으나 그것에 굴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존재. 몸은 부자유할 수 있으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존재로 크리스티나를 바라보는 감상자들이 많다. 

 



내 세계는 얼마나 넓어지고 있을까 



<크리스티나의 세계>를 보며 몸이 갇혀 있으나 정신이 자유로운 상태를 떠올려 본다. 그림 속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제한된 듯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끝없이 넓어 보이기도 한다. 나는 얼마나 넓은 세계에서 지내고 있는가. 그림을 보며 이따금 던져 보는 질문이다. 


직장 생활 초년생 시절에 유럽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우연히 만난 동행인(당시 직장 10년 차 사회인이었다)으로부터 인상 깊은 말을 들었다.  “직장인이라고 해서 업무랑 직업에만 매달려 있으면 그 세계 안에 생각이 갇히게 되어 있어. 다른 세계를 계속 경험해 봐야, 답답하고 지루한 마음이 찾아와도 견딜 수 있지.” 당사자는 지나치듯 던진 말이었지만, 내 머릿속에는 꽤 중요한 지침으로 자리 잡았다


 그 후 인생의 각 단계에서 권태기가 찾아올 때마다 내가 속한 세계에 갇히지 않으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직장이 답답해질 무렵에는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 보려 했고, 익숙한 공간이 답답해지면 먼 곳을 여행했다. 육아생활이나 해외살이에 권태기가 왔을 때에는 물리적으로 멀리 갈 수는 없으니 글쓰기를 시도해 봤다. 내가 소속된 세계 외에 다른 곳으로 관심이 가 있으니 때때로 이질감이나 외로움이 찾아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답답함과 지루함은 줄었다. 호기심으로 이런저런 세계를 기웃거리다 보면 의외로 재미있는 일이 생기기도 했고, 다른 세계를 조금이라도 접하면 생각에 숨구멍이 트이기도 했다. 


 독서나 책쓰기도 결국 내가 아는 세계를 한 발짝 넓히는 느낌을 주기에 지속하는 행위다. 많은 시간을 육아에 할애하고 있지만, 하루 몇 시간이라도 책에 담길 글을 쓰거나 새로운 분야의 독서를 하고 나면 알지 못하던 세계를 기웃거린 느낌이 든다. 호기심이 솟아나는 분야도 새로운 관심사도 늘어나니 지루함이 줄어든다. 여전히 나는 ‘우물 안 개구리’지만 우물 밖으로 한 번 정도 펄쩍 뛰었다는 느낌도 든다.    

  

  인생의 각 단계마다 적응기를 지나면 지겨운 마음이 고개를 쳐드는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그럴 때는 생각이나 시야를 넓히려는 시도를 감행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권태기는 지루하고 무기력한 삶을 영속하라는 신호가 아니라, 이제 다른 세계를 기웃거려 보아도 좋다는 시그널 일지 모른다. 먼 곳으로 시선과 생각을 넓혀 두면, 지루함이나 괴로움도 견딜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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