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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Apr 26. 2022

역할 부적응 인간  

틀 밖으로 나와 사유하기 


주어진 역할에 걸맞지 않은 나를 발견할 때 


     

작가.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처음 들었던 이름이다. 브런치 작가라는 관문을 통과하자마자 ‘안녕하세요, 작가님!’이라는 인사 메일을 받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 바로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메일을 보내준다. 

 


처음 이 호칭을 접한 뒤 느낀 감정은 민망함이었다. 작가라니. 중동에서 삶을 꾸려가는 삼십 대 후반의 평범한 기혼여성에게 붙이기엔 참으로 거대하고 어마어마한 호칭 아닌가. 책을 쓴 경험이 있긴 했으나, 출판사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 나는 주로 ‘선생님’으로 불렸다. -깊은 의미는 없다. 본업이 교사라 그렇다 – 물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보니, 브런치 활동을 하며 작가라는 호칭도 점차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 그 이름을 들으면 여전히 민망하다. 어쩌다 가끔 출판사와 이야기하거나 강연을 나갈 때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듣는 경우가 생긴다. 여전히 그 이름이 주는 무게 앞에 위축되거나 민망함에 몸이 오그라들 때가 많다. 


 진정한 작가는 차근차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온 사람, 말 한마디에 깊이가 담겨 있는 그런 사람 아닐까? 머리를 쥐어뜯다 섬광처럼 다가오는 영감을 받아, 1분에 400타쯤 타자를 쳐대며 독창적인 글을 써대는 인간일 수도 있다. 아는 게 넘쳐 흐르거나 감수성이 충만해 근사한 말을 쏟아내는 그런 사람일수도.  


 전형적인 건 싫다고 손사래 치던 나였지만, 나 역시 그 뻔하디 뻔한 클리셰를 머릿속에 담고 사는 인간이었다. 이미 밝힌 바 있으나, 나는 글쓰기를 쉴 때마다 '힙합 히트곡  탑 100'을 듣거나 '아이돌 교차편집 동영상'을 멍하니 보는 대중적인 취미의 소유자다. 독창성이나 기발함은 내게 장착된 부품이 아니므로, 탐내지 않는다. 튀는 것보다 조용히 묻어가는 걸 상당히 좋아한다. “글 잘 쓰시네요”라는 칭찬보다는 “일처리가 깔끔하고 빠르시군요.”라는 평판을 선호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작가라는 이름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느껴졌다. 


  되돌아보니 내가 가진 명함 중 ‘엄마’라는 이름에도 비슷한 의구심이 늘 따라다녔다. 엄마라는 이름에 따라 붙는 몇 가지 단어들, ‘자상함’, ‘따뜻함’, ‘다정함’ ‘희생’, ‘헌신’ 이 중에 나에게 맞아떨어지는 말이 단 하나도 없었다. 작가라는 호칭이야 가끔 듣는 이름이라 혼란이 덜한데, ‘엄마’라는 명함은 하루 24시간, 8년째 나를 따라다니는 이름이다. 출산을 했고 아이를 기르는 중인 나를 규정하는 가장 강력한 정체성 중 하나는 '엄마'가 맞지만, 8년째 그 이름에 부적응 중이다.  


 일단 나는 ‘따뜻하다’거나 ‘다정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에서도 들어본 일이 없다. 역할 수행에 필요한 책임감을 장착한 인간은 맞지만, ‘따뜻함’과 ‘다정함’과는 일평생 거리가 멀었다.(사귀던 남자들은 물론, 가르쳤던 학생들에게도 그런 평판을 들은 기억이 없다). '희생'이나 '헌신' 같은 단어도 마찬가지다. 내 몸에 붙은 주의집중 안테나가 있다면, 그건 한결같이 타인이 아닌 내 자신을 향해 있었다. 타인에게 관심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내 인생의 주요 관심 대상은 늘 나였다. 아이를 낳은 후 달라지고 싶었으나 다방면으로 노력해봐도 달라지지 않았다. ‘엄마’라는 직함을 단 이후로 그 이름에 따라붙는 수식어와 내 본연의 모습 사이에서 꾸준히 괴리감을 느껴왔다. 


 이름에 맞춰 나를 바꾸려 나름 시도도 해봤다. 무덤덤한 말투를 고쳐서 자상함을 장착한 엄마가 되어보려 한다든지, 작가처럼 깊은 사유를 하는 척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집안을 어슬렁거린다든지(쓰면서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런 시답잖은 행위를 해봤다. 그러나 몇 분의 짧은 시도만 해봐도 깨달음이 왔다. 전형적인 역할 수행의 모습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소년은 왜 도망칠까, <비평으로부터의 탈출>    


       

<비평으로부터의 탈출>(1874, 페레 보렐 델 카소)

 

 

두 손으로 창틀을 잡고 있는 소년이 있다. 소년의 오른 발은 창틀에 얹어진 채다. 그가 창 밖으로 탈출을 시도 중임을 짐작할 수 있다. 흰자위가 반을 차지할 정도로 부릅 뜬 눈. 소년의 다급한 마음을 드러낸다.  어깨를 반쯤 드러낼 만큼 벗겨진 옷에서도 절박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작품을 다시 들여다보면 놀라운 점을 깨닫게 된다. 소년이 발을 딛고 서 있는 창틀은 실은 사각형 액자다. 액자를 창틀처럼 보이도록 착시효과를 일으키는 작품이다. 그림은 캔버스에서 인물이 튀어나오는 듯한 입체감을 선사한다. 


 그림을 그린 예술가는 페레 보렐 델 카소(Pere Borrell del Caso. 1835~1910). 스페인의 화가, 삽화가 및 조각가다. 


페레 보렐 델 카소의 자화상



델 카소는 19세기 트롱프뢰유(trompe l'oeil)라는 기법의 대가였다. 트롱프뢰유는 프랑스어로 ‘눈속임’을 뜻하는 말이다. 이 장르에 속하는 회화는 '언뜻 보기에 현실로 착각하게 하는 효과를 가진 그림'을 의미한다. 주로 대상을 3차원 입체처럼 보이도록 착시 현상을 유도하는 기법을 말한다. (트릭아트 미술관을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델 카소 이전부터 오랜 세월동안 화가들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해 이 멋진 눈속임을 그림 기법으로 활용해왔다.  


트롱프뢰유 바이올린(얀 판 데르 파르트, 1723년 이전)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그려진 정물화(Samuel Dirksz van Hoogstraten, 1664)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그려진 비엔나의 한 성당 천장화(Andrea Pozzo1703). 실제로 천장은 평면이라고 한다. 

 


 델 카소는 트롱프뢰유 기법으로 유명한 화가였다. 그는 명암이나 원근감, 가상효과를 적절히 사용해 그림을 그렸고, 이는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당시 미술 비평가들의 비판을 피하지는 못했다. 비평가들은 트롱프뢰유 기법을 '잔재주'나 '장난같은 눈속임'으로 취급했다. 


초상화(페레 보렐 델 카소) 

 

 이러한 평가는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다. 19세기 이후 사진술이 발달하면서, 현실을 재현하는 역할은 회화가 아닌 카메라 렌즈가 대체하게 되었다. 실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기법보다는 개성 있는 표현이나 사회 비판 정신이 담긴 그림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널리 퍼졌다


 이런 분위기 아래 델 카소의 그림 세계 역시 다양한 비판을 받았다. 비평가 집단이 쏟아내는 ‘눈속임을 위한 그림’이라는 혹평. 화가는 그 틀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델 카소의 바람을 구현한 작품이 바로 <비평으로부터의 탈출> 이다. 틀 밖으로 탈출하는 소년의 모습은 트롱프뢰유 화가인 화가의 자아를 나타낸다. 소년이 탈출을 감행하고 있는 창틀은 그를 둘러싼 혹독한 비평가들의 시선이라 할 수 있다. 화가는 2D와 3D의 공간을 넘나들며 자신의 정체성과 장르의 정신을 완벽히 구현했다. 결과적으로 이 그림은 그 자체로 ‘트롱프뢰유’ 장르의 대표작이 되었다.   


         

전형성의 틀을 벗어날 때      



 델카소의 그림을 통해 틀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본다. 전형성의 틀은 늘 우리 곁을 맴돈다. 성별, 직업, 연령에 따라 세상이 요구하는 일정한 모습. 타인이나 세상이 만들어낸 ‘틀’도 있으나, 반대의 경우도 존재한다. 인간은 홀로 전형성의 틀을 짓고,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두기도 하는 존재니까.      


 가령 ‘부모’라는 이름 안에 아이를 돌보고 사랑하는, 일정한 책임감과 역할이 따라붙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사랑을 실행하는 모습을 획일적으로 밀어붙이는 건 위험한 일이다. 특정한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다 본래의 모습을 잃거나, 더 큰 좌절이나 자책감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클리셰'의 길만 걷다 보면 안정감 있는 인간은 될 수 있으나 지루한 인간이 될 가능성도 높다. 


 직장에서의 역할 수행도 마찬가지다. 그 모습을 한 가지로 규정해 놓으면 인생이 뻔하고 지루해지기 십상이다.  예전에 남편이 신입사원 시절 노래방 회식 자리에서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소 놀란 적이 있다. 축축 처지는 분위기에 팀장님이 노래를 중간에 꺼버렸다는 대목까지 듣자 속으로 조소했다. 아니, 직장인이 왜 그리 눈치가 없나. 적어도 회식 자리에서는 나처럼 '남행열차'나 '사랑의 배터리' 같은, 적당히 분위기 띄우는 노래를 불러야지. 되짚어 보니 우습게도 그런 건 내 마음속에나 있는 꼰대 같은 규칙이었다. ‘노래방 회식에서 사원이 불러야 할 노래 목록’ 따위는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까. 팀장님 앞에서 싸구려 커피를 부르는 회사원도 존재하게 마련이다. 눈치 없는 게 아니라 그저 원하는 노래를 부른 것 뿐이었다. 


 되돌아보니 작가라는 이름에 붙는 클리셰도 비슷한 것이었다. 영감을 받기 위해 머리를 쥐어  뜯거나 마감의 괴로움에 몸을 오들오들 떠는 모습, (물론 지금 나도 글을 발행해야 해서 오들오들 떨고 있기는 하지만) 어찌 보면 전형성의 틀로 판단한, 허상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그런 틀에 스스로를 우겨 넣다 어울리지 않는다며 자아 성찰이나 비판을 거듭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영감보다 인내심으로 글쓰기를 해내는 사람도 있을 테고, 독창성보다 다른 자질에 기대어 글을 짓는 이도 있을 테니까. 


 만약 글 짓는 사람들로 구성된 마을이 있다면 기발한 천재나 스타성을 지닌 인물이 제일 먼저 조명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실한 기술자도 그 마을에 필요하지 않을까.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작은 기술의 연마를 거듭하며 글을 쓰는 사람. 생각해보니 그런 역할이 '글 짓는 나'에게는 맞춤형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틀을 벗어나 내 자리를 스스로 마련하고, 전형성을 벗어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틀은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것일 뿐이었다. 특정한 이름의 클리셰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 하면, 도리어 마음 속 괴로움이 가중되기도 한다. 어떤 역할의 틀 속에 갇혀 답답하다 느껴질 때는 그게 대체 누가 만든 틀인지, 정당하고 온당한 것인지 먼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가끔은 틀 밖으로 나와 사유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전형성을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역할을 수행해 나갈 때, 비로소 흥미로운 인생이 펼쳐지지 않을까.      


   


지난 주에 말씀드린대로 원고 집필 관계로 5월부터는 월 2회(둘째주, 넷째주 화요일)만 글을 발행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5월 2일)는 쉬고 '5월 9일 화요일'에 매거진에 글을 발행하겠습니다. 찾아와 글 읽어주시는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거듭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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