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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May 24. 2022

걸레질의 미학

작지만 거대한 집안일의 힘   

마음에 들어온 시


      

 시(詩)를 잘 모른다. 시어(詩語)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만큼 감수성이 발달하지 못한 탓이다. 그러나 둔감한 나 역시 가끔은 마음을 두드리는 시를 만난다. 이웃인 작가님이 디카시 시집을 내셨다. 책을 주문해 읽어 보다, 이런 시를 발견했다.       


걸레

                             양윤미



세상의 모든 때를 끌어안는다.      


시커먼 곳들이 눈에 밟혀

겹겹이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지나간 자리마다 환해지기를

검은 눈물로 기도를 드린다


 

고백하건대 평소 ‘걸레질’에 일말의 관심도 없는 나다. 몸을 써서 하는 모든 행위에 서툴다.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특히 손 걸레질은 힘겨운 가사의 상징과도 같았다. 일단 걸레질을 하려면 바닥에 무릎을 꿇어야 하고, 반질반질한 바닥상태를 보기까지 상당한 힘과 인내심을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걸레질을 마친 뒤 걸레를 빨고 물을 짜내는 게 나에게는 힘겨운 코스였다. 온몸의 물리적 힘이 약하지만 유독 손의 악력이 약한 나다. 분명 힘을 가득 주어 걸레를 짰음에도 여전히 물이 뚝뚝 떨어지기 일쑤였다. 불만에 가득 찬 채로, 귀찮은 마음으로 막대 걸레를 미는 게 일상이었다.       


 물론 육체노동이 정신노동보다 귀하지 않다는 생각을 품어본 적은 없다. 엄마가 가게에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번 수입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나니까. 엄마는 몇 평 남짓한 작은 가게에서 바비큐를 굽거나 버섯전골 칼국수를 조리하거나, 계란말이를 부치는 일을 하루 10시간 이상 해냈다. 거대한 양의 설거지를 하고 가게 안을 부지런히 빗자루로 쓸고 음식물 쓰레기를 치웠다. 집에 와서도 엄마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유일하게 쉬는 날인 일요일에도 냉장고나 화장실 청소 같은 어마어마한 일을 해치웠다. 말수가 적은 엄마는 묵묵히 그 모든 일을 해냈다.    


 해외 살이 중 주부의 삶을 살며 새삼 엄마의 일상이 얼마나 고단했을지 자주 떠올려 봤다. 집에서 하는 일이 얼마나 방대하고 끝없는 것인지 알게 되었으니까. 깨달음을 얻은 후 정성 들여 집안일을 했냐고? 정반대다. 끝나지 않는 버거운 일이라 생각하며 집안일은 최대한 회피했다. 최소한의 할 일만 꾸역꾸역 했다.


 당연하게도 걸레라든가, 청소기, 행주나 냄비 같은 사물에도 큰 감흥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런 것들은 교묘하게 '그림자 노동'이라든지, 주부의 '헌신’이나 '희생'을 강요하는 산물로 느껴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들에 주로 가치를 부여한다. 세상의 수많은 노동 중에서도 나는 밥벌이에 관련된 것들, 시장 가치로 환산할 수 있는 일에 주로 관심을 기울여 왔다. 집안을 깨끗하게 닦거나 신선한 재료를 사 와 정갈한 요리를 만드는 데 관심을 두어 본 적이 없었다. 나 아닌 타인을 먹이고 돌보고 살피는 일은 늘 의무감으로 해야 하는 행위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하게 ‘걸레’라는, 작은 사물을 소재로 한 시가 마음에 들어오면서 의문이 생겼다. 잘 보이지 않는 집안 구석구석을 닦는 그런 행동이, 검은 때를 모아서 어딘가를 깨끗하게 만드는 행위가, 생각보다 중요한 것 아니었을까. 내가 하찮게 여기던 것들이 생각보다 거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았을까.    



작은 사물과 행동에 생명을 불어넣다,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은 1699년 파리에서 가구 장인인 아버지 아래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주를 보인 어린 샤르댕을 미술학교에 보냈다. 아들은 학교에서 색채를 섞고 칠하는 고유한 기술을 익히며 장인 자격증을 따낸다.


장 시메옹 샤르댕의 자화상


  당시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지향하는 회화 작품은 그 주제에 따라 일정한 서열이 있었다. 가장 높은 서열에 있는 것은 영웅의 서사시나 신화나 역사 속 주제를 다룬 ‘역사화’였다. 그 아래에 왕이나 귀족을 그린 초상화가 위치했고, 그 아래에 사람의 일상을 다룬 장르화나 동물을 다룬 그림이 있었다. 그림의 위계 서열에서 가장 아랫부분에 있는 것이 ‘정물화’였다.


 이러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샤르댕은 도제 수업을 마친 후 정물화를 그리는 데 주력하기 시작한다. 당시 장르의 위계서열에 따라 화가의 위치나 수입도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가장 낮은 것에 속하는 정물화를 그리는 파격적인 선택을 한다.


 속사정이 있었다. 샤르댕은 역사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표정이나 동작을 그리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화가는 자신의 재능이 지닌 한계를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움직이는 사람을 그리기 위해서는 구도를 머릿속으로 상상해 떠올려야 했다. 이 역시 샤르댕의 기질과 맞지 않았다. 결국 그는 움직이지 않는 사물을 직접 놓아두고 눈에 보이는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본인의 재능에 맞는 길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정물화가로서 샤르댕의 첫 움직임을 보여주는 작품이 1726년에 그린 『가오리』다.


가오리(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1726~1727)


그림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오리다. 내장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 바다 생물은 그림 감상자에게 강렬한 느낌을 안긴다. 가오리의 윗부분이 사람의 이목구비를 닮아 기괴한 느낌을 자아내기도 한다. 그 아래에 있는 것들 역시 국자나 주전가, 냄비, 칼 등의 주방 기구와 음식 재료인 굴, 잉어, 파 등이다. 대상의 질감이 작품의 생동감을 더해준다. 강렬한 색채로 눈길을 끄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통해 샤르댕은 '동물과 과일에 재능 있는 화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왕립 회화 조각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다.


 이후 꾸준히 정물화를 그리던 샤르댕은 인물이 포함된 장르화에도 도전하기 시작한다. 그가 그려낸 풍경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던 일상적인 가정의 모습이었다. 음식 재료를 사들고 부엌에 서 있거나 순무를 다듬는 여성, 식사 전 기도를 하는 평범한 가정의 모습 등. 그가 그려낸 소재는 특별한 교훈을 담지 않았으나 아름답고 따스한 것들이었다.


시장으로부터의 귀가(1739)


순무를 다듬는 여인(1740)


    

식사 기도(1740)


 

정물화 그리기도 이어졌다. 후기로 갈수록 명암의 표현이나 붓질이 점차 섬세해졌지만, 작품 속 소재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특별하지 않은 음식재료, 부엌의 기구 등 살림살이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주석을 댄 구리 냄비, 후추통, 부추, 달걀 세 개와 찜 냄비(1734~1735)


단식 기간의 식사(1731)

 


은쟁반(1750)


 샤르댕은 평범한 가정의 일상이나 작은 사물을 소박하게 그려내며 거창한 교훈이나 극적인 장면 없이도 예술 세계가 성립 가능함을 보여준 화가였다. 이후 그의 작품은 세잔의 정물화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치며 미술사에 중요한 흔적을 남긴다.     



하찮은 것들이 지닌 힘      



 하찮은 것으로 여겨졌던 행위와 사물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 힘. 샤르댕의 작품은 독창적인 세계를 보여주며 그 단단한 힘을 드러냈다.  


<걸레>라는 시를 접하고, 샤르댕의 그림을 본 뒤 깨달았다. 걸레질이나 빨래를 걷고 접는 행동, 요리를 하는 과정 그 모든 행위가 하찮은 것들이 아니라, 그걸 하찮게 보는 내 눈이 먼저였음을. 작고 소박한 것들을 외면한 만큼 나는 삶의 중요한 장면을 놓치고 있었다.   


 겉으로는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냉정한 시장의 논리나 교환 가치를 비판하면서도, 누구보다 그 논리에 따라 일의 서열과 등급을 나누는 게 나였다. 물론 그림자 노동을 대가 없이 사회 구성원에게 은근히 떠맡기는 시장과 기업, 일을 부정하게 배분하는 세상의 논리에는 문제가 있다 (나는 여전히 이러한 불공평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공평한 일의 배분과 별개로 나는 세상의 일 중 절반쯤을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 집안일을 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낮추어 볼 때도 있었다. 식사를 내어 놓기 위해 식재료를 손질하고 칼질을 하는 것, 정갈한 집안을 만들기 위해 구석구석을 닦아내는 행위, 그 행위가 지닌 가치를 모른 체 하며 시장 가치가 분명한, 밥벌이가 되는 다른 일에 가치를 부여하기 바빴다.


 그러나 세상의 진실은 내가 외면했던 그 절반쯤의 행위에 있었을지 모른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고, 사랑과 헌신을 담아 정성스레 무언가를 하는 행위, 그런 것들이 지닌 하찮아 보이지만 거대한 힘을 자주 잊었다. 누군가가 헌신하고 베풀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내가 이렇게 존재하기 어려웠을 게 분명함에도. 인간의 생존과 안녕을 위해 필수적인 행위임에도 그것이 지닌 의미를 자주 외면했다.


 세상이 부여하는 순위를 거부하고 누군가를 위해 작고 소박한 것들을 정성스레 해보는 것. 내가 오늘 당장 되돌아 봐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작고 흔해 보이지만 세상을 정갈하고 따스하게 만드는 것들을 바라본다. 집안의 냄비를, 한 구석에 놓인 걸레를, 부엌에 놓인 냄비를 가만히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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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에 이웃 작가님인 양윤미 님의 시 한 편을 넣었는데요, 더불어 작가님의 시집 안내글도 링크해봅니다. 작가님의 좋은 시가 많이 담겨 있는 <오늘이라는 계절>이라는 시집입니다.

https://brunch.co.kr/@claire1209/212


2. 다음 달 글 역시 둘째, 넷째 화요일(6월 14일, 28일)에 올립니다. 다음 글까지 텀이 기니까, 그전에 한 번쯤 시간이 닿는 대로 책 쓰기에 도움이 되어 드릴 만한 글을 한 번쯤 올릴지도 모르겠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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