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새로 나온 신간, <어느 날 유리멘탈 개복치로 판정받았다>에 대해 글을 써보고, 서평 이벤트를 제가 (출판사와 관련 없이 자체적으로) 작게 해 보려고 이렇게 글을 써봅니다. 사실 지난주 책 출간 때부터 이 글을 쓰고 싶었는데, 지난주와 어제까지 해야 하는 일이 있어서 이렇게 늦어버렸어요. 이웃분들 글도 최근에 자주 찾아가 읽지 못해 죄송스런 마음입니다.
제가 최근에 브런치에 글 올리는 횟수도 줄였고, 인스타에 글을 더 자주 올릴 때도 있어요. 그 곳에서 저와 성향이 비슷한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났고요. 그럼에도 제 주요 활동 영역, 놀이터나 고향(!) 같은 공간이 브런치라, 이 공간에서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드리고 서평 이벤트도 열고 싶었거든요. 애초에 이 책이 <예민한 당신을 위한 대화생활백서>라는 브런치북에서 비롯된 원고이기도 하고요. (브런치북은 지금 책이 나왔기 때문에 몇 개 글만 남기고 지운 상태예요. 죄송하지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먼저 책에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드리고, 서평 이벤트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
“그러니까, 이 책에 실린 글을 통해 저는 '멘탈이 절대 흔들리지 않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음에 지고, 좌절하고 울고 그런 지겨운 일을 반복하는 저니까요. 다만 마음이 힘들고 우울해도, 어디론가 도망가지 않고 자책감이나 우울의 늪에 발을 덜 담그며 지내는 방법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 <어느 날 유리멘탈 개복치로 판정받았다>의 에필로그 중 -
이번 책을 쓰면서 가장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입니다. 유리멘탈이라는 말이 몇 년 전부터 유행하고 제 책의 제목에도 들어가는 말이지요. 그렇지만 저는 그 말의 틀 안에 반드시 나를 넣어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자기 연민에 곧잘 빠지는 사람이에요. “내 상황이 최악”이라 말하며 자주 울고 고꾸라지는, 제가 봐도 별로인 순간이 참 많은 사람이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를 때때로 떠올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연민이나 불행의 프레임을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온다고 생각해요. 그 틀을 조금씩 벗어나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지고, 생각지 못한 용기가 솟아날 때가 있으니까요.
아마도 제 글이 드릴 수 있는 위로는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라고 느낄 수 있는, 덤덤한 공감과 위로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감을 통해서 나를 가둬두던 불행이나 자기 연민의 틀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고요. 이 원고 역시 그런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썼습니다.
그리고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에 비해 예민한 분들께 작은 요령을 전하는 데 신경을 썼습니다. 저처럼 예민한 분들은 “내가 너무 예민한 게 문제 아닌가?”라는 생각 때문에 자기감정이나 판단에 대한 확신이 흔들릴 때가 있어요. 감정이나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질 때가 있고요. 고민 주머니를 조금은 가볍게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을 전해드리고 싶었어요.
2. 에세이를 쓰면서 생기는 고충
에세이는 주변을 관찰하고 새로운 걸 발견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거쳐야 나오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글 하나를 꺼내놓기 위해서는 주변의 상황에 마음속 안테나를 세우며 관찰하고, 사유하고, 자문자답의 과정을 거듭해야 하지요. 나를 많이 내려놓고 마음을 살펴본 뒤 쓰는 게 좋은 장르이기도 합니다. 한 마디로 내 패를 많이 까서(?) 독자에게 보여줘야 하는 고충이 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에세이 쓰기에 회의감과 거부감을 느끼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어릴 때 예민한 아이였다는 게 오랜 세월 동안 저의 아킬레스 건이었어요. 그런 특성은 허약한 거라 생각했거든요. 씩씩하고 덤덤한 편이라 자부하고, 허약하다 생각하는 마음을 숨기며 지내왔는데, 브런치에 에세이를 쓰면서 깨달았어요. 제 예민한 부분, 날이 선 감각이 사라지지 않고 마음 한 구석 살아 있다는 걸요. 절 더 많이 알게 되어서 좋기도 했지만 이 예민함이 버거운 시기가 있었어요. (솔직히 지금도 가끔은 그렇습니다)
게다가 삶이 환희와 기쁨에 가득 찰 때에는 좋은 글이 나오기 어렵더라고요. 일정 비율의 외로움과 슬픔, 삶의 고통이 버무려진 시기에 만족할 만한 글이 나온다는 걸 깨달았어요. 어떤 순간에는(특히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 글을 쓸 때는) 과거의 외로움이나 상처, 자기혐오의 순간을 들추면서 그때의 감정에 저를 밀어 넣어야만 글이 나올 때도 있고요. 세상 모든 일에는 대가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회의감이 컸어요. 막말로 내가 대단한 글쟁이가 될 것도 아니고, 본업을 가진 사회인인데, 내가 가진 예민한 기질을 알아버린 게 앞으로 사회생활하는데 좋은 일일까? 굳이 알지 않고 지내도 될 걸 알아버린 건 아닐까? 글을 쓰기 전의 나로,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글 쓰는 생각하지 않고 지내던 예전의 나로 빨리 돌아가야겠다. 부끄럽지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조금 다른 원인도 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청소년 교양서 분야에서는 제가 조금씩 안정적인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저자가 아닐까 생각해요. 청소년 책은 유명한 저자보다 안정적으로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글을 쓸 수 있는 지은이가 필요한 분야라 느끼거든요. 안정성과 지속성. 제가 글쓰기를 하면서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감사하게도 집필한 청소년 책 중에 괜찮은 성과가 나온 책들이 있었고, 최근에 출판사들로부터 원고 청탁도 들어와서 올해 하반기에 나올 명화 에세이 <그림의 말들> 외에도 3권의 청소년서 집필을 더 계약한 상태입니다. (12번째 책 계약까지 맺은 셈이에요). 적어도 내년 4~5월까지는 쉬지 않고 원고를 붙잡고 써야 하는 상황이에요.
안정적으로 글을 쓸 수 있고 재미를 느끼는 분야가 따로 있는데, 정서불안과 감정 소모를 견디고, 사생활을 털어놓으며 에세이라는 장르의 글을 굳이 써야 할까? 청소년서와 달리 에세이는 '초짜'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이런 과정을 전부 거쳐야 할까? 고민이 샘솟을 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여러 가지 회의감이나 어려움 속에서도 에세이를 계속 쓰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에요. “나는 세상 살아가기에 부적절한 존재나 허약한 존재가 아니고 예민한 눈으로, 나만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다”, “나 역시 마음 깊숙한 곳을 꺼내놓고, 나를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과 소통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라는 걸 알게 된 기쁨이 큽니다. 이번에 출간된 에세이 역시 예민하고 자주 흔들리지만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용기를 지닌 나를 발견하게 해 준 원고였다고 생각해요.
3.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
많은 분들이 물어보셨어요.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뭐냐고요. 사실 저는 글쓰기에 커다란 철학이나 포부 같은 걸 품고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본격적으로 글을 쓴 지 4년 차니까 책 쓰기나 글쓰기에 대한 순수한 설렘이나 환상도 이제 어느 정도는 거두어진 상태이기도 합니다.
결과에 대한 기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덟 권의 책을 냈지만, 그중 잘 된 책도 있고 반응이 오지 않은 책도 있어요. 브런치 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유독 반응이 좋은 글도 있고, 반응이 오지 않는 글도 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글쓰기와 책 쓰기에 어느 정도 경험치를 쌓았기에, 글을 쓸 때 이미 어느 정도 감이 올 때도 있어요 이 책은 어느 정도 반응이 있겠구나, 이 책은 컨셉상 반응이 많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네. 이 글은 브런치에 발행하면 반응이 확 오겠는데? 이번 글은 반응이 좋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늘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런 느낌이 조금씩 있어요.
그러나 반응이 좋지 않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와도, 대충 작업한 원고나 대강 써서 발행한 브런치 글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만큼은 단언할 수 있어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누군가는 시간이나 비용을 들여서 제 글을 읽을 거니까요. 몇 명이라도 제 글을 통해 도움을 얻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복잡다단한 마음이나 자질구레한 욕망을 거두어내면(물론 저도 이런 것들에 자주 흔들립니다만), 저의 경우 글쓰기를 지속하게 만드는 마음은 궁극적으로 두 가지예요. 내 글을 읽을 독자에 대한 책임감과 글을 쓸 때 제가 느끼는 희열.
최선을 다해도 별다른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지요. 작가라는 타이틀이 너무나 먼 것으로 느껴질 때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쓰는 것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묵묵히 새로운 글을 써야 또 다른 글쓰기의 희열이 오기에 별 수 없이 다음 글을 쓰고, 다음 원고를 집필합니다.
브런치에 발행한 글 반응이 좋아 우쭐할 수 있는 순간을 저도 좋아해요. 원고 청탁이 밀려올 때의 기쁨. 인정이나 칭찬을 받을 때의 그 환희의 순간을 저 역시 기쁘게 생각합니다. 글쓰기나 책 쓰기가 잘 되어서 부귀영화 누리고 싶다는 갑작스러운 욕망이 솟아오를 때도 있어요 반대로 글이나 책의 반응이 좋지 않을 때의 초조함과 좌절도 당연히 여러 번 느껴봤고, 그 일희일비의 순간을 앞으로도 자주 맞이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쁨과 환희, 언젠가 빛날 순간에 대한 기대만으로는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압니다. 솔직히 저 역시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얼마나 누리겠다고 이 시간에 이렇게 까지 노력하면서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자주 품어요. 그렇지만 안 써서 힘든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결국 쓰게 됩니다. 글을 쓰기 싫은 순간도 오지만, 기획출판이나 브런치 마감의 경우 제가 정해놓고 벌려 놓은 일이니 책임감으로 열심히 쓰게 되고요.
글쓰기에 대한 거대한 철학이나 엄청난 열정, 성공에 대한 확신이나 기대감, 그런 게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브런치의 많은 작가님들, 글쓰기를 즐기는 분들이 저와 비슷한 마음으로, 휘둘리는 마음이나 내 재능에 대한 의심, 다가오는 외로움을 견뎌가면서 새로운 글을 쓰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나를 알아가는 기쁨 때문에, 또는 쓰는 것보다 쓰지 않으면 더 괴로우니 용기를 내어 글쓰기를 지속하고 계실 겁니다. 저와 비슷한 분들이 계시다는 걸 느끼며 힘을 얻을 때도 많습니다.
4. 서평 이벤트 안내
마지막으로 서평 이벤트를 제가 (소심하게) 열려고 해요. 제 사인이 담긴 신간을 4분 정도께 보내드리려고 합니다. 제 프로필의 제안 메일을 눌러 주소, 전화번호, 성함을 알려주시면 제 사인과 짧은 인삿말(?)이 쓰여진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리뷰는 2주 안에
1. 브런치나 블로그, 인스타그램 등 어떤 곳이든 한 군데 이상
2. 온라인 서점(한 줄 평이라도 괜찮습니다)
에 남겨주시면 되어요.
유리멘탈답게 네 명 모집이 안 되면 어떻게 하지? 생각하며 많이 떨리기는 하지만 ㅎㅎ 이렇게 서평 이벤트 글을 올려봅니다.
선착순으로 신청하신대로 발표하고 마감이 되면 이 공간에 알림 문구를 올리겠습니다.
(책 보내드릴 분들 마감되었는데, 이제야 알림 문구를 올리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브런치에서 만나고 이야기 나누는 이웃 분들, 독자님들을 각별하게 느낀다는 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해요. 브런치에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다음 주 화요일(24일)에는 <그림으로 나를 위로하는 밤> 매거진에 글 올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책의 링크를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