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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Jul 26. 2022

'좋아하는 일'의 함정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플 때 조심해야 할 점  

 ‘좋아하는 일’의 이면 



 얼마 전 대학 친구들을 만나 반가운 대화를 나눴다. 원래 교사가 꿈이었던 친구가 인상 깊은 말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시작한 초기, 친구는 놀랐다고 한다. 교사가 되면 아이들을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이 중점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공문서를 작성하거나 업무 처리를 하는 일이 못지 않게 중요해 당황했다는 얘기였다.


 나 역시 사회생활 초기에 느꼈던 바다. 학교 근무 생활 중 적어도 5분의 1 정도의 시간은 수업이나 생활지도와 무관한 업무 처리를 하며 흘러간다. 교육청의 요청으로 교실에 있는 전등 개수라든지 에어컨 가동 여부를 살핀 후 보고한다거나, 아이들 전학 서류를 처리하거나 생활기록부 오탈자를 잡아내기 위해 흐르는 시간이 많다. 가정 통신문을 거두어 찬성, 반대를 세어 보고하는 일이 수업보다 매우 급박해지는 경우도 간혹 있다. 멀리서 바라보던 일을 실제로 해보니 생각지 못한 부분이 많아 당황했다는 그 말. 공감했다.


 지난 4년 간 나는 글 쓰는 일, 운 좋게도 좋아하는 일을 했는데, 이따금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글 쓰는 일을 생각하면 대체로 끊임없이 타이핑을 하는 글쟁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일을 해보니 예상치 못한 작업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글 잘 쓰는 능력보다, 어느 시점에서 완성도를 포기하고 마감을 맞춰 원고를 넘겨야 하는 절제력이 필요할 때가 많다. 교정의 오탈자를 잡아내는 꼼꼼함이 필요할 때도 있다.


 편집자들과 업무 메일을 주고 받으며 적절히 협의하는 능력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출간 기획서나 강의 계획서를 작성해 해당 기관에 보내는 작업이 신속하게 이루어져야 할 때도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자료가 많은 원고를 다루기 때문에 틀리지 않게 통계 결과를 적거나, 팩트 체크를 제대로 하는 작업이 중요한 일이 된다. 프리랜서에 가까운 일이니 어느 정도 일이 들어올 때까지는 관계자에게 먼저 나를 어필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어느 시점까지는 자존심을 접고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책이 출간되어 나오면 홍보를 위해 열심히 뛰는 자기 PR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책 홍보를 위해 어색함을 무릅쓰고 카메라 앞에서 말을 하거나, 강연을 위해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그럴듯하게 만들거나 말하는 능력이 필수일 때도 있다. 아무도 내 출근과 퇴근 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으니 게으름과 과도한 몰입 사이에서 홀로 적절한 균형을 맞추는 능력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좋아하는 분야에도 갖가지 성격의 일,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분야와 그렇지 않은 분야가 뒤섞여 있다는 것. 일을 하고서야 깨달았다.      



남다른 노력으로 탄생한 걸작, <오필리어>     


  

 라파엘 전파의 창립자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1829-1896). 1829년 잉글랜드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11세의 나이, 왕립 미술 아카데미 부설학교에 최연소로 입학할 만큼 신동이었다.


존 에버렛 밀레이의 자화상


 이 미술학교에서 밀레이는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 ) 등 뜻을 같이 하는 인물을 만나 라파엘 전파만든다. 라파엘 전파는 ‘라파엘로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자’라는 구호를 내건 화가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당시 예술의 정석처럼 전해져 내려오는 양식, 현실을 이상화해서 표현하는 영국 아카데미의 방식에 회의감을 품고 있었다. 솔직함과 단순함에 중점을 두어 미술을 묘사하고자 하는 게 이들의 목표였다. 특히 중세 고딕 및 초기 르네상스 미술에서 영감을 얻어 꾸밈없이 자연을 관찰해 묘사하고 자세한 세부 표현을 화폭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밀레이는 특히 세세한 자연의 모습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 라파엘 전파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밀레이의 작품은 아무래도 1851년작 <오필리어>라 할 수 있다.


오필리어(존 에버렛 밀레이, 1851)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한 장면을 다루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가 연인 햄릿에게 살해되자 아름답고 순수한 여인이었던 오필리어는 미쳐버린다. 매일 노래를 부르며 화관을 만들던 오필리어는 화관을 버드나무 가지에 걸어주려다 강물에 빠지고, 익사한 채로 발견된다. 비극과 낭만을 동시에 품고 있는 이 장면을 밀레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화폭에 담아내기로 결심한다.


 그는 작품의 배경을 먼저 그리기 위해 잉글랜드의 호그스밀(Hogsmill)강가로 향했다. 다채로운 식물과 꽃을 관찰해 그려내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였다. 이곳에서 그는 5개월간 머물며 그림의 배경을 그렸다. 잠시 스케치를 하고 실내에서 나머지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매일 11시간씩 앉아 밑그림부터 채색까지 끝내는 강행군이었다. 파리 떼와 모기, 강풍, 주변 주민의 항의까지 이겨내야 하는 상황이 거듭되었다. 파리떼에게 먹혀 완전히 사라지는 느낌에 시달리며 그는 외부 풍경을 최대한 자세히 묘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자 이를 피하기 위해 짚으로 움집을 짓고 그 안에서 작업을 계속했다고 한다. "…살인자에게 교수형 대신 이런 환경에서 그림을 그리라고 시켜도 되겠어요.” 밀레이가 친구에게 보냈던 편지 내용을 살펴보면 화가의 고난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노력의 결과물은 놀라웠다. 그림 속 꽃은 제각기 실물에 가까운 생동감을 지니고 있다. 더불어 제각기 꽃말에 따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가령 물 위의 수양버들은 버림받은 사랑을, 버드나무 가지 주변에 자라는 쐐기풀은 고통을 의미한다. 오필리아의 가련한 목에 걸려 있는 제비꽃은 육체적 순결을, 그의 뺨 옆에 피어 있는 장미는 젊음과 아름다움, 사랑을 의미한다. (오필리어의 오빠 레어티스는 그녀를 ‘5월의 장미’라 부르기도 했다)


오필리어의 뺨 옆에 있는 장미는 젊음과 아름다움, 사랑을 의미하고, 목에 걸려 있는 제비꽃은 육체적 순결을 의미한다.




 그녀의 손 근처에 떠 있는 하얀빛의 데이지 꽃은 순수와 순결, 오른편의 팬지꽃은 보답받지 못한 사랑, 붉은 양귀비꽃은 깊은 잠, 즉 죽음을 의미한다. 각각의 꽃은 개화 시기가 달랐음에도 끈질긴 관찰과 묘사 덕분에 화가의 의도대로 정확하게 그려졌다. 오필리어의 심리와 감정 상태를 나타내는 꽃들이었다.


그녀의 손 근처에 떠 있는 하얀빛의 데이지 꽃은 순결, 노란 팬지꽃은 보답받지 못한 사랑, 붉은 양귀비꽃은 깊은 잠, 즉 죽음을 의미한다.


  

 배경을 다 그린 화가는 런던의 스튜디오로 돌아가 인물 표현을 위한 시도에 들어갔다. 연못에 빠진 채 죽음을 앞둔 오필리어를 그리기 위해 그는 19세의 모델 엘리자베스 시달(Elizabeth Siddall)을 섭외했다. 시달을 몇 주 동안 물 욕조 위에서 포즈를 취하게 하며 그림을 그렸는데, 차가운 물을 램프로 데워주어 모델을 배려했다. 그러나 중간에 램프의 불이 꺼졌고, 그림에 몰두한 나머지 밀레이가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적도 있다. 이 때문에 시달은 독감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 당시 치료비 때문에 모델의 아버지가 밀레이에게 와서 법적 조치를 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일도 있었다. 어쨌든 갖가지 고생 끝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공포조차도 인지하지 못하는 몽환적인 표정을 짓는 오필리어의 모습이 탄생했다.


오필리어를 그리기 위해 밀레이가 그렸던 습작(좌)과 모델이었던 엘리자베스 시달(우)의 모습. 후에 시달은 밀레이의 동료 가브리엘 로제티의 아내가 되었다가 아편 중독으로 요절했다.

 

밀레이의 거듭된 노력 끝에 작품은 섬세한 묘사와 생동감 넘치는 색채로 가득한 작품으로 탄생했다. 단순히 '아름다운 그림'이라 표현하기에 부족할 만큼 작품 숭고함을 담고 있다.  라파엘 전파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이 작품 뒤편에는 화가의 치밀한 노력이 숨어 있었다.



‘좋아하는 일’의 함정을 거두어 내는 법       



 아름다움을 창조하기 위해 밀레이가 감행했던 시도와 노력은 감탄할 만한 것이었다. 작품 속 오필리어의 매혹적인 모습에 취하기 전에 우리는 질문을 던져 볼 수도 있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 원하는 성과를 이루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까지 감수할 수 있는가. 파리떼를 쫓고 법정 출두의 위기를 겪는 일도 서슴지 않고 행할 수 있을까?   


  되짚어보면 좋아하는 일은 다양한 면면과 층위로 이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요리를 좋아해 셰프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건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결심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곧바로 근사한 요리를 내어놓는 셰프가 될 수 없다.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하거나 잔심부름을 하는 과정을 견뎌내야 하니까. 홀로 프리랜서로 하는 일은 독립적인 유형의 사람에게 맞는 일이지만, 의외로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 맺기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좋아하는 일 속에도 더 선호하는 업무와 그렇지 않은 업무가 뒤섞여 있고, 내가 뛰어난 능력과 부족한 능력이 고루 분포해 있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을 하며 꿈을 향해 달려 나갈 때 열정과 몰입이라는 감정에만 매몰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 꿈을 이루고 싶은 분야를 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단순한 열정보다, 해당 분야 중 싫어하거나 괴로워 하는 작업을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 되기도 한다.


멀리서 봤을 때 꿈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일이든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의외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다. 해당 분야의 싫어하는 부분을 커버할 만큼 좋아하는 마음이 강력한 것인지 가늠해볼 필요가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나의 일로 지속하고 싶다면, '좋아한다'거나 '열정이 있다'는 말 뒤에 숨지 말고, 그 일의 가장 싫어하는 부분과 견디기 힘든 부분이 무엇인지 찬찬히 파악해보자. 납작하게 판단하지 않고 다양한 시선으로 좋아하는 일을 살펴보는 태도도 필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도 싫어하는 부분, 함정은 존재하게 마련이니까.



1. 제가 9월에 발행될 <그림의 말들> 프롤로그를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지만 완성하지 못해서 ㅠㅠ 내일 저녁쯤 이웃분들의 글도 읽을 수 있고, 대댓글도 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 다음 글은 8월 9일(화)에 발행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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